가심비 높은 새 공간들

5000원짜리 물건을 1만5000원에 판매해도 찾게 되는 곳이 있다. 값이 나가더라도 만족감을 주는 제품을 소비하는 현상, 2018년 소비 트렌드 용어로 가심비(價心費)라 한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도 그곳이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가심비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주제로 대표되는 공간을 찾았다. 오너의 고집스러운 취향을 발견하고, 왜 그들은 하나의 물건에 집중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물었다.

에이피 숍

주소 서울 중구 남대문로5길 9 301호
문의 @artistprrof_shop

판화가 최경주의 쇼룸이자 트럼펫 연주자 이동률의 공연장. 그래서 자연히 둘의 이야기로 묶인다. 최경주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최경주 작가의 아트워크로 채워진 공간에 이동률 대표의 연주가 더해졌다.

테이블 매트, 에코 백, 러그, 스툴 등 공간을 채운 모든 제품이 최경주 작가의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것이다.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만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작업의 희소성을 아는 분들이 가치를 알아봐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이동률 대표에게 최경주 작가의 취향을 물었다. “좋다는 생각이 들면 값이 나가도 구입하고 봐요.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에요.”

최경주 작가의 취향이 궁금해졌다. “취향이 분명한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결혼 6년 차인데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좋아할 것 같다고 하면 ‘이건 좀 얕아’라고 할 때가 있어요. 물건을 통해 창작자가 어떤 태도로 작업했는지, 얼마만큼 시간을 들이고 내공이 있는지 간파하는 사람 같아요.” 본인이 그렇게 작업을 해서다. “완성도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도 부끄럽다며 버리는 게 굉장히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작가죠.” 여기엔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것들을 모았다.

2016년 3월 문을 열고 두 번째 여름을 맞았다. “볕과 바람이 드는 곳에 매장을 낸 뒤로 삶의 질이 달라진 것 같아요. 우리의 작품과 분위기를 사람들이 좋아해야 운영이 되는데, 그런 면에서는 행운이죠. 여기엔 우리의 것만 있어요. 우리의 것은 이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요.” 볕도, 공기도, 창밖으로 반짝이는 나무의 초록빛도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귀한 것들이 머문다.


오벌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길 48-29
문의 02-325-1981

올해가 10년이다. 오벌이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지킨 시간.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수랑 오너 디자이너가 말한다. ‘내가 갖고 싶은 문구 제품은 왜 한국에서 팔지 않는 것일까’가 시작이었다.

왜 문구 제품이었을까. “문구 제품이 하나의 물성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한 덩어리 안에 여러 디테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입장에서 재미를 느끼죠.” 특히 연필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이다. 수집가가 아니면 보통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구입하지 않는다. 빈티지 제품의 경우 거래에 거래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단가도 높다. 연필 한 자루에 몇천원, 몇만원이다. 빈티지 제품을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데 연필만큼은 다르다.

볼펜이 나오기 전에는 필기류가 연필밖에 없어 지워지지 않는 연필, 속기사 연필, 에디터용 연필 등 목적에 맞게 다양했다. “오벌 안에서 문구 제품이 자연스럽게 묶였으면 좋겠어요. 오프라인 매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공기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잘 차려놓은 곳에서 예쁜 걸 보는 기분을 경험했으면, 똑같은 물건도 이곳에서 구입하고 싶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으면 해요.”

물건이 주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제일 흥미롭다. 10년을 해보니 하나에 집중한 게 옳았다는 판단이 선다. 무리해서 규모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더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부끄럽지 않은 공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버텼어요. 내가 부끄럽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고 다행히 부끄러운 건 없어요.” 단단함이 전해진다.


이라선

주소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5
문의 @irasun_official

사진 이론을 공부한 김진영 대표와 패션 포토그래퍼로 일하는 김현국 대표는 부부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사진집을 모아보니 100여 권 정도 됐다.

“사진집만 다루는 서점을 해보겠다고 하니 모두가 반대했어요. 사진과 교수님마저 말렸어요.” 잘될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좋아하는 일이니 하다 보면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생각, 잘되지 않으면 그냥 우리가 가지면 된다는 배짱으로 덤볐다.

주인장으로서의 즐거움은 책이 진짜 주인을 만나는 것. “사진집은 다른 책보다 물성이 중요해서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진열해요. 책에 손을 뻗도록 하는 공간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나름의 운영 원칙이 있다. 직접 만지고 펼쳐 본 책만 판매한다. “우리의 취향으로 선별하지만, 서점은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내 취향만 고려한다면 굉장히 협소한 공간이 될 거예요. 우리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좋은 책이 있어야 해요.” 주인장의 안목에 손님의 취향이 더해져 이라선의 폭도 넓어진다.


와일드덕

주소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11길 38
문의 @wildduck_co

“제 레스토랑에 걸 포스터들이었어요.” 포스터&액자 전문 가게 와일드덕 대표 홍원기의 꿈은 젊은 다이닝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 유학 시절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등 세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포스터를 모았다. 포스터를 접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작가들에게 직접 연락해 그들의 아트 프린트도 모았다. 대략 300장 정도. 여행 한 번 다닐 때 화통에 모인 포스터만 10kg이 넘을 때도 있었다.

잠깐만. 레스토랑 오픈 준비와 포스터 수집이 대체 무슨 관계인가. “오너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구분하는 제 기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식당에 갖다 놓았느냐’거든요.” 멋진 물건을 샀을 때 놓아둘 공간, 눈 닿는 자리를 찾아 궁리하는 이라면 크게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특히 유럽 레스토랑에는 액자가 없는 곳이 없어요. 제 가게의 액자에는 아트 프린트를 넣자고 생각했어요.” 알찬 계획은 지금의 와일드덕으로 잠시 우회 중이다. 무엇보다 지인의 지인의 지인들을 통한 입소문이 컸다. “다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던 것들은 대부분 팔렸어요.” 그가 아쉽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아카이빙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사람들이 요즘 자주 찾는다는 앙리 마티스 포스터는 많이 구비하지 않았다. 그보다 시립 미술관인 스테들릭 뮤지엄이 자리한 벨기에 암스테르담의 예술 신을 좋아한다. “유럽에 갈 때 보통 경유해 거쳐 가는 도시잖아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유럽의 ‘정신 나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요. 진짜 새롭고 다르고 멋져요.” 와일드덕은 그런 사물을 모은다.


론드리 프로젝트

주소 서울 용산구 신흥로 78
문의 02-6405-8488

비밀인데, 론드리 프로젝트 대표 이현덕은 빨래를 잘 안 했다. “빨래하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될 수도 있잖아요. 최소 30분 동안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시끄럽고, 빨래가 다 되면 널어 말려야 하고.”

코인 빨래방은 그런 수고를 덜어주는 곳이지만 딱히 할 게 없어 시간이 붕 뜬다는 게 문제였다.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최소 30분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커피를 한잔하거나, 책을 한 챕터 읽거나, 쌓인 이메일 답장을 해치우거나, 멍하니 앉아 볕을 쬐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론드리 프로젝트에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곳에는 6대의 세탁기, 건조기와 친환경 세제(구매는 물론 무료 사용할 수도 있다)가 구비된 세탁 공간, 그리고 카페처럼 꾸민 열린 공간이 있다. 빨래와 휴식이 필요한 사람 누구나 오간다. 론드리 프로젝트에는 쓸모 있는 시간이 흐른다.


파도식물 1.5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40
문의 @padosikmul

“식물을 사면 기분이 좋아지나요? 난 아닌데.” 파도식물 1.5의 주인 복창민이 말했다. 광고 회사에 다니던 그는 광고 마케팅을 위해 소형 트럭을 구입했다. 트럭은 프로젝트가 끝나자 효용이 없어졌다. 재미 삼아 주말마다 그 트럭에 다육식물을 싣고 해방촌, 경리단길 등 동네 근처에서 팔았다. 이게 새 업이 됐다. 왜 식물이었을까?

“어릴 때 어머니가 꽃집을 하셨거든요. 저는 꽃이 싫었어요.” 꽃은 싫었지만 보고 자란 영향을 무시 못 해서인지 ‘어쩌다 보니 식물’을 다루게 됐다. 그래서 식물에 대해 잘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른다. “공부해서 이제 어느 정도는 알죠. 그런데 식물은 늘 새로워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놀라워요. 그래서 저는 식물이 무서워요.”

식물을 사면 기분이 좋으냐고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식물이 무서운 연유는 가게 이름이 파도식물인 배경과 이어진다. “모감주나무라고 있어요. 통통해진 씨앗이 톡 떨어지면 씨방이 3등분으로 나뉘어요. 그게 배 모양으로 생겼어요. 바람에 휙 날아가서 물에 떨어지면 배가 되어 바다를 건너는 거예요. 어딘가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고 자생지를 이루는 거죠. 도대체 어떻게 조성됐는지 모를 모감주나무 군락지의 지구 반대편에도 분명 모감주나무가 있어요.”

무서우리만큼 식물은 생명력이 강하다. 진짜 무서운 것은 그토록 강한 식물을 책임감 없이 사서 말려 죽이는 사람들이겠지만. “’어떤 게 잘 자라요?’, ‘어떤 식물이 키우기 쉬워요?’라고 많이 물어봐요. 파도식물에는 관엽식물, 수생식물, 식충식물 등 다양한 식물이 있어요. 하지만 키우기 쉬운 식물을 추천해드리지 못해요. 그런 식물은 세상에 없어요. 대신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는지를 알려드리죠.” 파도식물 1.5는 사람들과 모감주나무 씨앗과 파도의 관계를 도모한다. “식물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경험이거든요. 식물은 애정을 쏟는 만큼 자라나요.” 참고로 이곳의 시그너처 컬러로 소문난 푸른 조명은 절대 멋 내기용이 아니다. “건물에 볕이 잘 안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자외선, 적외선 램프를 쓰는 거예요. 그래도 식물에는 햇빛이 가장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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