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F/W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 3편

PARIS

편집장 고동휘 디렉터님은 2018 F/W 파리 패션 위크에서 어떤 쇼가 가장 좋았나요?
고동휘 제일 보고 싶었던 게 GmbH였는데, 이걸 못 봤네요.
편집장 가장 좋았던 쇼가 못 본 쇼라고?
고동휘 하나만 고르라니까 어려워요.
편집장 너무 많아서?
고동휘 최근 몇 시즌 동안 파리 패션 위크도 평준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도시마다 성격이 분명하잖아요. 밀라노가 이탈리아 브랜드의 전통적인 남성 패션을 보여준다면 파리는 아티스틱하고 아방가르드하고 진보적인 남성복을 보여주죠. 그런데 이런 구분도 흐릿해지면서 두 도시 모두 평범해지고 있달까요.
백진희 고동휘 디렉터님의 기준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편집장 패션 디렉터의 기준이 높아서 전 좋아요.

 

 

MAISON MARGIELA
메종 마르지엘라


백진희 르메르와 벨루티, 메종 마르지엘라가 예쁘던데.
고동휘 메종 마르지엘라도 뭐 나쁘진 않았어요. 존 갈리아노가 여태껏 여성복과 쿠튀르만 만들었는데 2018 F/W에 처음으로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잖아요. 쿠튀르적인 남성복을 보는 맛이라든지 존 갈리아노 특유의 광인 같은 옷이 재밌긴 했어요. 상업적인 쇼를 연달아 보는 와중에 속 시원한 느낌도 있었고. 하지만 마르지엘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자꾸 예전 마르지엘라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편집장 역시 기준이 높으셔요.
고동휘 마르지엘라가 아니라 갈리아노였죠.
권지원 저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발렌시아가는 발렌시아가 같은가요?
편집장 뎀나의 발렌시아가는 이젠 완전히 다른 발렌시아가죠.
권지원 2018 F/W를 얘기하는 자리여서 좀 앞서나가는 얘기이긴 하지만, 2019 S/S에서 버질아블로가 만든 루이비통은 우리가 알던 루이비통인가요?
고동휘 결국 디자이너가 브랜드와 고객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달린 문제죠.
백진희 그런 면에서 피비 파일로와 셀린느는 한 몸 같았죠.
고동휘 메종 마르지엘라랑 존 갈리아노는 좀 잘 섞인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근본부터 다른 느낌이랄까요.
편집장 브랜드의 CEO가 어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선택해서 어떤 창의성을 브랜드에 불어넣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판을 뒤집어엎을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DNA를 유지하면서 계승 발전시킬 것인지.
백진희 근데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궁합에 관한 평가는 시즌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라프 시몬스와 디올이 맞았나 싶다가도 정작 캘빈클라인과 라프 시몬스를 보면 또 디올 시절이 더 좋았나 싶기도 하거든요.
편집장 패션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반드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를 계속 발전시킬 것이냐, 새롭게 재출발할 것이냐.
백진희 그런데 요즘 트렌드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 출발을 하는 것 같아요. 로고부터 갈아치우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도 다 바꾸고, 있던 것에 새롭게 덧칠하는 게 아니라 거의 벽지부터 다 뜯어내고 콘크리트 구조부터 새로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고동휘 단절하고 새 출발하는 것에 저는 불만 없어요. 다만 그만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DUNHILL
던힐


고동휘 의외로 던힐이 좋았어요. 애초에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 그런가.
백진희 던힐에서 나온 바이커 재킷은 GmbH와도 닮지 않았나요? 고동휘 선배 취향인 것 같아요.
고동휘 던힐이 한국에서 철수했어요. 장사가 잘 안돼서. 그래서 이번에 이 쇼 티켓 신청을 홍콩에다가 했죠. 던힐이 좋았던 적도 없고, 별다른 정보도 없이 갔어요. 근데 옷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그제야 디자이너를 찾아봤죠. 버버리에서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일하던 마크 웨스턴이라는 사람이었어요. 던힐치고는… 뭐라고 해야 하지, 파격이었어요.
권지원 급진적 던힐이라니.
백진희 제가 마지막으로 본 던힐 쇼는 런던에서 열린 거였거든요. 그때도 귀엽긴 했지만 파격적이진 않았는데.
고동휘 쇼피스가 꾸준히 예쁜 브랜드이긴 한데, 이번 디자이너가 만든 던힐은 완전 요즘 옷 같은 느낌. 근데 또 던힐이 발렌시아가는 아니니까 대놓고 확 갈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런 고민을 거쳐서인지 굉장히 균형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우아하고요.
백진희 던힐의 이미지가 컬렉션에서는 좀 클래식한데 귀엽기도 하고. 이번 시즌 같은 경우는 선배 말처럼 트렌디하기도 한데, 한국에서 던힐의 이미지는 약간 타이랑 벨트, 지갑이 주력인 잡화 브랜드 느낌.
권지원 우리나라에는 던힐이 라이선스로 들어왔었나요?
고동휘 리치몬트 코리아에서 운영했었어.
백진희 근데 뭐 한국은 일단 사업을 철수했기 때문에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몰라요.
고동휘 어쨌든 그 쇼가 무척 좋았거든요. 게다가 백진희 에디터가 본 2019 S/S도 좋았던 거에 비하면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좀 이상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편집장 브랜드를 재건하려면 그만큼의 절대 시간이 필요하죠. <에스콰이어>는 마크 웨스턴의 던힐 재건 프로젝트를 응원합니다.
권지원 아디다스와 팔리의 해양 보호 운동도 응원하시잖아요.

 

OFF-WHITE
오프화이트


편집장 오프화이트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2019 S/S부터 루이비통의 수장이 된 버질 아블로. 2018 F/W 파리 패션 위크 때만 해도 아무도 짐작조차 못 했는데. 대반전.
고동휘 주제가 ‘비즈니스 캐주얼’이길래 슈트를 변형한 새로운 옷이 나올까 기대하고 갔죠. 버질 옷에서는 테일러링이 항상 아쉬웠거든요. 옷으로만 보자면 브랜드가 과대평가받는 경향도 있고요. 슈트가 나오긴 했는데, 슈트뿐만 아니라 뭔가 다양한 직업군의 비즈니스 웨어라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원 옷도 있고, 정비공 옷도 있고, 농부 옷도 있고.
편집장 그 정도 설명만 들으면 베트멍이 연상되는데.
고동휘 또 그 정도로 훌륭하진 않았어요.
고동휘 버질 옷을 보면 항상 깊이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들거든요. 근데 또 2019 S/S 파리 패션 위크의 루이비통 쇼까지 놓고 미리 얘기하자면, 오프화이트보다는 발전한 것이 보이고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권지원 저는 버질 아블로를 좋아해요. 깊이는 부족할 수 있지만 분명 영리한 사람이에요.
편집장 깊이와 완성도에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할지 몰라도, 버질 아블로가 지금 대중적으로 가장 핫한 디자이너인 건 맞잖아요. 피스 자체의 완성도는 루이비통이라는 인프라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2019 S/S 파리 패션 위크에서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쇼 데뷔전을 지켜본 건 백진희 에디터네요.
백진희 그냥 고동휘 선배가 지적하신 버질의 약점들이 많이 보완됐다고만 말씀드릴게요.

 

LEMAIRE
르메르


고동휘 르메르는 <리베라시옹> 신문사의 옛 사옥에서 쇼를 했어요.
백진희 저도 르메르를 좋아해서 쇼를 보려고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접속했거든요. 분명히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접속했을 텐데 라이브 창으로 올라오는 글은 80%가 한국어인 거예요. 르메르가 한국에서 정말 인기가 많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고동휘 저도 르메르를 좋아하고 자주 입기도 하지만, 솔직히 쇼에서는 큰 기대를 안 하거든요. 늘 안정적으로 예쁘고 큰 변화가 있는 브랜드도 아니니까요. 그 우아함이 다른 우아함으로 바뀌지도 않고. 그런데 의외로 무척 좋았어요.
편집장 무엇이 의외였나요?
고동휘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한 방향으로 올곧게 가는 타입이었다면 이제는 많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스타일링도 다양해지고, 색의 폭도 더 넓어지고. 그리고 르메르에게 더 젊어졌다는 표현이 맞진 않겠지만 예전보다 살짝 어려진 느낌?
백진희 맞아요. 살짝 더 어려지고, 제가 느끼기에는 예전에는 정말 땀 한 방울도 안 흘릴 것 같은 정적인 남자가 입는 옷이었다면, 이번엔 조금 더 분방한 느낌이었어요. 갖고 싶은 아이템도 너무 많았어요.
고동휘 바지가 실루엣이며 소재며 컬러며 다양했는데, 또 거기에 딱 어울리는 신발을 잘 조합시켰어요. 전반적으로 그런 식의 매치를 지루하지 않게 아주 계산적으로 잘 만들어놓았어요. 스타일링 수준이 높다고 느껴졌어요.
백진희 이번에는 핑크색이 나오기도 했잖아요. 그 핑크색이 흐릿한 핑크가 아니라 강렬한 핑크색이었죠. 르메르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색인 건 확실해요. 르메르가 선배 말처럼 조금 더 젊게 접근하기도 하고,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여성 컬렉션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거든요.
고동휘 유니클로와의 협업이 성공해서 자본도 많이 생기고 파트너인 사라의 영향도 큰 거 같고요. 2018 F/W는 르메르 브랜드로서는 전환점일 수 있겠구나 싶은 쇼였어요.
편집장 듣고 보니까 르메르는 한국에서 가뜩이나 인기가 많은데, 2018 F/W 컬렉션은 시장에서 더 화제를 모으겠네요. 나도 사고 싶다. 르메르의 강렬한 핑크.

 

VALENTINO, AMI
발렌티노, 아미


고동휘 발렌티노는 최근 엄청나게 화려한 컬러와 장식과 스트리트 무드가 강했죠. 이번에는 네이비, 그레이, 블랙 위주의 슬림한 코트, 아우터웨어, 슬림한 바지 그런 게 주를 이뤘어요.
편집장 이전 시즌보다는 덜 화려했나 보네요?
고동휘 조금 진정됐다고 할까요.
백진희 이번에도 로고 플레이 있었나요?
고동휘 로고 있었어요. VLTN 이제 안 쓸 줄 알았는데, 또 쓰는구나 싶었죠.
권지원 그게 정말 인기가 많던데.
고동휘 몽클레르랑 협업한 VLTN 패딩 아우터웨어가 나왔는데 이건 정말 잘 팔릴 거 같아요. 가격도 기존 몽클레르보다 많이 비싸지도 않았고요. 운동화나 가방 중에서 탐나는 것도 좀 있었어요.
편집장 아미는요?
고동휘 아미는 지붕으로 쇼장을 만들어놨더라고요. 파리의 젊은 애들이 루프톱에서 논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대요. 남녀 모델 커플이 나와서 민망한 연기를 하다가 쇼가 시작됐는데 옷은 항상 아미가 만드는 그런 착한 옷들이 나왔고. 흥미로웠던 건, 본격적인 여성 컬렉션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편집장 이전 시즌에도 여성 모델이 여성복을 입고 나왔던 것 같은데?
고동휘 여자 모델이 종종 나오긴 했잖아요. 근데 그건 유니섹스로서 나온 거고요, 2018 F/W부터 본격적인 여성 라인이에요. 여성 라인도 기존 아미와 결이 다르지 않은 느낌의 슈트와 코트 위주였죠. 릴랙스한 실루엣이 특징이었죠. 아미 남성 라인에서도 여성 고객이 상당수거든요. 아마 아미의 여성 라인도 잘될 거예요. 다만 아미는 가끔 옷이 너무 착해서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일상적으로 편하게 잘 입을 수는 있는데 말이죠.
편집장 고동휘 디렉터한테 잘 어울릴 거 같은 옷인데. 실제로 많이 보유하고 있고.
고동휘 많죠. 많은데….
백진희 아미가 남자들이 입기에 좋은 옷 같아요. 뭘 사든 기본 이상으로 괜찮기도 하고. 난해하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소재가 나쁜 것도 아니고요. 그 가격대에서 고를 수 있는 훌륭한 답안인 거 같아요.
고동휘 한국에서 잘 팔려서 쇼 좌석도 많이 나왔다고 하네요.
편집장 고동휘 디렉터는 아미의 에디터라기보다는 바이어였던 듯. 하긴 고동휘 디렉터뿐만 아니라 권지원과 백진희 에디터도 마찬가지겠네요.
고동휘 아미는 런웨이 쇼보다는 퍼포먼스가 있는 프레젠테이션 방식이 더 적합할 거 같아요. 아미 쇼를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인데.

 

RICK OWENS
릭 오웬스


편집장 쇼에 몰두하기로는 릭 오웬스를 따를 자가 있겠어요.
백진희 이번에는 실내에서 했죠?
고동휘 그때는 되게 드라마틱한 야외 쇼장이었는데 이번엔 심플했죠. 옷은 뭐 릭 오웬스 스타일이죠. 이런 것도 옷이 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경외감이 드는 옷들. 근데 중간중간 모델들이 얼굴에 흰 칠을 하고 가발을 이상하게 달고 나오는 거예요. 이게 뭔가 싶어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형벌 있잖아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면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다시 올리고… 무한 반복 형벌을 받는 그 시시포스요. 그를 주제로 한 쇼더라고요.
편집장 릭 오웬스답네요. 그런데 형벌을 받는 건 그인가, 게스트인가.
백진희 릭 오웬스 쇼에는 항상 그런 메시지가 있어요.
고동휘 릭 오웬스 쇼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좋았어요. 굉장한 소음 같은 전자 음악이에요. 고막이 걱정될 만큼 쾅쾅대는 음악요.
백진희 지원 선배가 밀라노에서 봤던 릭 오웬스 전시는 어땠어요?
권지원 릭 오웬스가 만든 가구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가구가 없어서 좀 아쉬웠어요. 의상 아카이브 전시였던 거죠.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솔직히 릭 오웬스 옷을 길거리에서 자주 접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몇 년에 걸쳐 그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한데 모아놓고 쭉 보니까 마치 현대미술 같았어요. 릭 오웬스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달까요.

 

LOUIS VUITTON
루이비통


백진희 루이비통은 늘 좋아요.
편집장 아시다시피 전 킴 존스의 팬이라. 2018 F/W가 루이비통 디자이너로서 킴 존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네요.
고동휘 킴 존스의 마지막 컬렉션이어서 그의 친구들이 많이 왔어요. 자비에 돌란, 베컴 패밀리도 다 오고.
백진희 2019 S/S 파리 패션 위크에서 킴 존스의 첫 번째 디올 쇼는 제가 봤잖아요. 그때도 킴 존스의 친구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킴 존스는 참 친구가 많아요. 옷도 옷이지만 킴 존스의 친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죠. 마지막 루이비통 쇼의 옷은 어땠어요?
고동휘 요즘 루이비통 남성복이 한창 붐이기도 해서 기대를 했는데, 기대에는 못 미쳤어요. 지난 슈프림 협업이 너무 셌죠. 주제는 루이비통이 항상 하는 여행자 테마였는데, 이번에는 도시라든가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데서 다양한 요소를 끌어모아 합친 뒤 반죽을 해서 내놓은 그런 거죠. 예를 들면 트레킹 부츠인데, 디테일은 또 웨스턴 부츠예요. 하이브리드적인 그런 게 많았고요. 옷과 아이템을 기존의 기능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스타일링하고 섞었어요.
편집장 역시 옷보다는 사람이었나.
백진희 페어웰 쇼라서 그런지, 마지막 인사도 참 길었잖아요.
고동휘 런웨이 마지막에 그의 친구 나오미 캠벨이랑 케이트 모스가 나왔어요. 그리고 피날레에서는 킴 존스가 그녀들의 손을 잡고 런웨이를 한 바퀴 빙 돌고 퇴장했어요.
백진희 신나 보였어요. 뭔가 즐거운 이별?
고동휘 전역하는 느낌이랄까.
백진희 진짜 그 정도로. 현장 영상을 보니 슬픈 이별이 아니라 ‘잘 있어! 나 갈게’ 하는 느낌?
고동휘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난다고 했을 때 다들 슬퍼했잖아요. 근데 킴 존스에게는 아쉬움보다는 그간의 수고에 대한 격려를 보내는 분위기였어요. 그도 싱글벙글이었고요.
편집장 킴 존스는 박수 칠 때 떠나는 느낌이지 않았나요? 루이비통 남성복을 성장시켰으니까요. 그만큼 매출도 올려놓고 흥행도 시켜놓은 상태에서, 패션에 대한 평가도 좋은 상태에서 휙 떠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고동휘 지금 생각해보면 다음 시즌에 디올로 가기로 거취가 정해진 상태였던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았더라도 LVMH에서는 워낙 그를 좋아하니까 믿음이 있었겠죠. 당시에 그의 후임으로 에디 슬리먼, 버질 아블로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 버질 아블로였네요.
백진희 버질 아블로가 이렇게까지 루이비통을 또 화제로 만들지 당시에는 우리 모두 몰랐죠.
고동휘 그래도 2018 F/W에서 옷을 좀 기대했는데, 옷보다는 역시 가방과 소품이 마음에 들었어요. 새로운 방식을 접목한 것도 많고, 네온 색을 쓴 부분이나 로고를 변형한 것도 흥미로웠고요.

 

DRIES VAN NOTEN,
JUNYA WATANABE, JUUN .J,
ALEXANDER MCQUEEN
드리스 반 노튼, 준야 와타나베, 준지, 알렉산더 맥퀸


편집장 다음은 드리스 반 노튼.
고동휘 그의 옷에서 기대하는 건 한결같아요. 서정적이고 로맨틱하고,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귀족적인 분위기도 있고. 근데 이번에는 다양한 나라의 흔적이 보였어요. 영국의 타탄체크, 미국의 웨스턴 셔츠 같은 것도 있고요. 색이나 프린트 같은 경우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느낌도 났고. 그런 다양한 것이 공존하는 느낌이어서 새로웠어요. 그리고 나일론 아우터웨어가 피날레 때 우르르 나왔어요. 프린트가 마블링이었는데 아름다웠어요.
권지원 유화 같은 느낌?
고동휘 응. 그런 프린트였는데, 각기 다른 색과 프린트가 줄지어 나오니 드라마틱했어.
권지원 드리스 반 노튼 옷은 언제나 비슷비슷하잖아요. 근데 그런 마블링 프린트 때문인지 이번에는 좀 다르게 보였어요.
백진희 다음은 준야 와타나베.
고동휘 일본 디자이너 쇼 중에서는 그나마 안 지루했죠. 지난번에 노스페이스랑 협업이 정말 잘됐나 봐요. 거의 모든 피스가 협업이었는데 캐나다 구스, 노스페이스, 카리모어, 칼하트, 리바이스. 예전에 베트멍이 수십 개 브랜드와 협업한 것처럼요. 옷이 경찰 옷 같기도 하고, 보안 요원 옷 같기도 하고, 환경미화원 옷 같기도 하고.
편집장 워킹 피플.
고동휘 카리모어 백팩이었다가 아우터웨어로 변형되는 옷도 있었고요.
권지원 그걸 지난번에도 하더니.
고동휘 반응이 좋았던 거 같아.
편집장 일본 디자이너 중에 유일하게 고동휘 디렉터에게 간택을 받은 준야 와타나베.
권지원 간신히.
편집장 그다음 준지.
고동휘 준지는 이번에도 룩북 사진 걸어두고 프레젠테이션과 짧은 쇼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역시 롱 패딩의 나라에서 온 브랜드다웠죠.
편집장 롱 패딩이 등장했어?
고동휘 네. 롱 패딩을 만든 브랜드는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여긴 거의 다 롱 패딩이었어요. 오버사이즈랑 레이어드가 주제였는데, 스타일링이라든지 아이템이 개인적으로 연상되는 브랜드가 있어서 좀 아쉬웠죠. 브랜드가 예전처럼 흥미롭지는 않은 거 같아요. 발렌시아가 트리플 S 이후 못생기고 투박한 운동화를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봤어요. 준지도 그렇고요.
백진희 루이비통, 아크네 스튜디오, 발렌티노, 심지어 제냐까지. 이제 운동화가 투박하지 않으면 더 이상 패션 운동화로 기능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근데 그런 운동화가 또 너무 무거워요. 다 발을 넣어봤어요. 그 투박함을 밑으로 유지시키려면 밑창부터 무거울 수밖에 없죠.
고동휘 이런 어글리 스니커즈 유행은 지금 2018 F/W뿐만 아니라 2019 S/S까지 이어지니 최소 1년은 더 간다는 얘기죠.
권지원 다음, 알렉산더 맥퀸.
고동휘 알렉산더 맥퀸은 제가 늦어서 입장을 못 하고 뒤쪽 가드들과 나란히 서서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어요. 항상 쓰는 블랙과 레드였는데도 이전과는 좀 달랐어요.
권지원 어떻게요?
고동휘 긴 코트가 마음에 들었고, 아노락을 허리에 묶는 스타일링이라든지 스타일링이 훨씬 좋아졌어요. 로맨틱함과 퇴폐적인 게 섞인 분위기도 재밌었어요.

 

BERLUTI
벨루티


편집장 그리고 대망의 벨루티.
고동휘 하이더 아커만으로 바뀌고 나서 제가 간 첫 벨루티 쇼였거든요. 하이더 아커만을 워낙 좋아해서 이날 가장 기대했던 쇼였어요. 이자벨 위페르와 루이 가렐을 직접 봐서 정말 좋았죠. 옷이 정말 예뻤어요. 고급 소재와 고급 색의 향연이었죠.
백진희 여성 모델들이 입고 나온 옷도 너무 예뻤어요.
편집장 어쨌든 2018 S/S도 그랬지만 2018 F/W는 더 우아했었던 듯.
고동휘 네, 그랬어요. 저는 하이더 아커만 디자인의 근간이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거라 생각하거든요. 벨루티는 그런 걸 다루는 브랜드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쇼를 보니 하이더 아커만적인 성향이 도드라지고 브랜드의 우아함도 여전해요. 굉장히 기묘하게 섞인 느낌. 하이더 아커만은 벨루티를 통해서 남성복의 새로운 우아함을 만든 거 같아요.
편집장 매스큘린 엘레강스. <에스콰이어>와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고동휘 굉장히 남성적인 것 같기도 하고, 여성적인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하잖아요. 분명 남성적인 브랜드인데 옷에는 또 굉장히 유연한 느낌이 있어요. 멋진 여자들이 입어도 잘 어울리겠다 싶은.
백진희 모델 선정도 굉장히 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벨루티의 이미지나, 옷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데에서 죽이 척척 맞아요.
고동휘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우아함이 공기 속으로 분사되는 그런 쇼였어요. 황홀했어요.
편집장 고동휘 디렉터 입에서 황홀했다는 표현까지 나오다니.
고동휘 그런데 이게 하이더 아커만이 만든 벨루티의 마지막 쇼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2018 F/W 컬렉션을 끝내고 그렇게 갑자기 벨루티를 떠날 줄이야.
백진희 디올을 이끌다가 하이더 아커만에 이어 벨루티를 이끌게 된 크리스 반 아쉐는 2019 S/S 파리 패션 위크에서는 쇼를 안 해서 또 아쉬웠죠. 하필 제가 파리에 갔는데 벨루티 쇼를 못 봤다고요.
편집장 (괴로워하며) 그만. 그 얘기는 다음 시즌에 하면 안 될까요.
고동휘 (냉정) 크리스 반 아쉐의 벨루티가 살짝 걱정되기도 하고요.
편집장 그래도 난 기대하고 있어요. 벨루티니까.

 

DIOR MEN
디올 맨


편집장 디올 옴므는 어땠어요?
고동휘 저는 이런 부강한 브랜드에서 하는 대규모 쇼를 좋아하거든요. 옷이 어떻건 간에 기본 이상은 할 테고요. 디올 옴므는 항상 그런 브랜드이고 셀러브리티도 많이 오는 브랜드이고 하니까.
백진희 이 쇼에 이번 <에스콰이어> 9월호 커버 모델인 송중기 씨가 초청됐잖아요.
편집장 송중기 씨, 송혜교 씨 부부가 함께 왔던 거 아니에요?
고동휘 송혜교 씨는 며칠 뒤에 있었던 디올 쿠튀르 쇼 참석차 왔었고요.
편집장 디올과 송혜교·송중기 부부의 관계는 오랜 시간 각별했으니까요.
고동휘 2018 F/W는 크리스 반 아쉐의 마지막 디올 옴므 쇼였잖아요. 이번 쇼에서는 큰 주제 두 가지가 섞여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는 무슈 디올의 아카이브, 또 하나는 크리스 반 아쉐의 개인적인 아카이브. 이걸 한 쇼에 다 집어넣은 거죠. 무슈 디올의 아카이브는 예전에 1940~1950년대 디올의 바 재킷이라고 허리가 잘록 들어간 여성 재킷이 있어요. 그것에서 영감을 받은 남자 슈튼인데, 그 슈트 허리가 굉장히 잘록해 만들기가 엄청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슈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굉장히 우아해 보였죠. 그리고 크리스 반 아쉐의 아카이브를 쓴 부분은 1990년대 이야기예요. 그가 추억하는 1990년대인 거죠. 하이웨이스트의 큰 청바지, 긴 티셔츠에 반소매 폴로티를 겹쳐 입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복고풍 스타일링을 보여줬어요.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트라이벌 타투 프린트를 쓴 건 좀… 왜 그랬을까 싶었죠.
편집장 그게 1990년대에 유행했던 타투라면서요.
고동휘 그걸로 슈트를 만들기도 하고, 목걸이도 만들고, 귀걸이도 만들고. 많이 좋아했나 봅니다. 또 1990년대에 유명했던 남자 모델이 몇몇 나오기도 해서, 그런 건 재미있었어요.
편집장 아쉐는 자신의 아카이브로 마지막 쇼를 꾸민 셈이네요.
고동휘 저는 후임자 킴 존스가 만든 2019 S/S의 디올 맨이 훨씬 좋더라고요. 이제 디올 옴므라는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디올 맨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JIL SANDER
질 샌더


고동휘 질 샌더는 프레젠테이션이었는데, 파리에서 처음으로 했어요. 원래 밀라노에서 했거든요. 지금 디자이너가 OAMC의 부부 디자이너예요. 흥미로운 게 남편은 슈프림 출신이고 부인은 루이비통이나 이런 하이패션 브랜드 출신이고요. 그래서 이들의 옷에 아주 미묘한 지점이 있죠.
권지원 OAMC 예뻐요.
고동휘 근데 이들이 질 샌더까지 맡게 되면서 질 샌더가 많이 변했어요.
백진희 맞아요. 근데 예전 질 샌더로 돌아갔다기보다는 젊어지고 동시대적인 느낌이에요. 캠페인도 많이 변했고.
권지원 디자이너가 바뀌면서 캠페인을 참 예쁘게 잘 찍어요.
고동휘 브랜드가 많이 리뉴얼됐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백진희 캠페인 사진도 그렇고, 캠페인 영상도 그렇고, 재밌는 시도나 재밌는 비주얼을 많이 만들어서 좀 기대되는 브랜드예요.
고동휘 몇 년간 갈팡질팡했는데 잘됐으면 좋겠어요.

 

HERMÈS
에르메스


편집장 이제 에르메스네요.
고동휘 에르메스도 딱히 새로울 게 없어서 크게 할 말은 없어요. 저는 에르메스 액세서리는 참 좋아하는데 옷은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이번에 좀 관심 가는 옷이 몇몇 있었어요.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색을 좀 특이하게 조합하잖아요. 그게 굉장히 좋을 때도 있고 이상할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괜찮게 느껴졌고요.
편집장 전 베로니크 니샤니앙과 아는 사이예요. 옆자리에 앉아서 밥 먹은 사이.
패션팀 (비웃음) ‘친해요’도 아니고 ‘좋아요’도 아니고 ‘알아요’네요.
편집장 (웃음) 누구나 아는 디자이너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니야?
고동휘 에르메스만큼은 요즘 패션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아한 걸 잘 풀어내기만 해도 될 텐데 말이죠.
백진희 하이더 아커만의 벨루티가 그렇게 우아한 길을 가게 된 게, 남들이 다들 요즘 옷, 요즘 옷 할 때 아이덴티티 지키고, 우리 색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거다 이렇게 밀고 나간 건데. 에르메스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장 패션팀 에디터 여러분을 만족시키지는 못해도 에르메스도 분명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느껴요. 다만 벨루티보다 조금 느리고 보수적이고 진중할 수는 있겠죠.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에르메스 행사에 가보면 느껴지는데,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방식으로 요즘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어요. 무조건 젊어지려고 하기보다는 어쩌면 여전히 보수적일 수 있지만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 남자의 스타일을 에르메스는 상상하고 있어요. <에스콰이어>도 태도라는 단어를 중요시하잖아요. 스타일은 어떤 태도와 특정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되니까. 그래서 <에스콰이어>는 에르메스의 태도가 좋다는 거고. 패션이 아니라 스타일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패션팀 편집장님은 에르메스와 아는 사이라더니 사랑하는 사이네요.

 

LANVIN
랑방


고동휘 랑방은 크게 도드라진 적도 없고, 크게 이상했던 적도 없지만 저는 항상 괜찮다고 생각해요. 쇼에서만큼은. 매장에 있는 물건이 쇼피스와 괴리가 좀 있거든요. 어쨌든 파리 컬렉션에서 꾸준히 선방하는,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디자이너예요. 루카스 오센드라이버.
고동휘 슬림한 슈트에 테크니컬한 옷을 비정형적으로 스타일링하고 했는데, 개별 옷도 좋았고 스타일링도 좋았어요. 저는 그의 스타일링을 좋아하거든요. 이번에도 뭐, 화제가 되진 않겠지만 랑방 쇼 괜찮았어요.
백진희 근데 한국에서 매장도 없어지고. 그리고 랑방은 쇼에서 볼 때랑 매장에 걸린 거랑 너무 달라요.
고동휘 대만의 어떤 미디어 재벌이 랑방을 소유하면서부터 브랜드 가치가 완전 떨어졌죠. 매출 하락에 재정난에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올해 결국 중국 기업에 팔렸어요. 이제라도 잘돼야 할 텐데. 그나마 남성복은 루카스 오센드라이버가 잘 버텨주고 있는데 여성복은 총체적 난국이죠. 루카스 오센드라이버는 그냥 다른 좋은 브랜드로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2018 F/W
최고의 쇼와
최고의 디자이너

편집장 런던과 밀라노와 파리까지 이어진 2018 F/W 남성 패션 위크에서 최고의 쇼와 최고의 디자이너를 뽑는다면?
권지원 밀라노의 프라다 쇼.
고동휘 파리에는 없는 거 같아요.
백진희 런던에도 없어요.
편집장 잔인한 것들. 그러면 런던과 파리가 기권한 관계로 밀라노의 프라다 쇼가 최고였던 걸로. 설마 최고의 디자이너도 없나요?
백진희 지금 최고는 아니지만 기대해볼 만한 디자이너를 꼽자면 키코 코스타디노브.
고동휘 이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네요. 벨루티의 하이더 아커만.
편집장 (울컥) 더 이상 하이더 아커만이 아니라고. 전 크리스 반 아쉐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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