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F/W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 1편

2018년 가을·겨울 시즌에 우리를 매료시킬 런던의 스타일과 밀라노의 디자이너와 파리의 브랜드에 관한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

편집장 1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에스콰이어> 2018 F/W 패션 위크 토크.
패션팀(특히 백진희 에디터) 저흰 아무도 안 기다렸는데요.
편집장 그러니까… 독자 여러분께서 2017년 8월호에 진행했던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를 너무 재미있어 하셨거든요.
패션팀(특히 고동휘 패션 디렉터) 독자분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구요?
편집장 (못 들은 척 자문자답) 그렇게 재미있고 유익했다던 패션 위크 토크인데 왜 1년 만이냐?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를 업그레이드하느라고요. 2017년 8월호의 패션 위크 토크는 딱 파리 패션 위크 하나만 다뤘잖아요. 이번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는 파리뿐만 아니라 밀라노와 런던까지 3대 패션 위크를 모두 다룹니다.
패션팀(사실 권지원 에디터) 그런데 왜 1년 만인데요?
편집장 1년 전 2017년 8월호에 실은 패션 위크 토크는 2018 S/S를 다뤘잖아요. 당시 시점으로 보면 최소한 6개월 이후에 선보일 패션 트렌드를 이야기한 거잖아요. 에디터들은 반년 뒤의 트렌드를 미리 보고 돌아온 거라 신이 나지만, 정작 독자분들은 반년 뒤에 일어날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어서 심드렁할 수도 있어요. 2018년 9월호는 2018 F/W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이슈예요. 그래서 <에스콰이어> 2018 F/W 패션 위크 토크가 이번 호에 실리게 된 거죠.
권지원 사실 이번 호 패션 위크 토크의 녹음 자체는 반년 전에 했잖아요.
편집장 고동휘, 권지원, 백진희 에디터가 각자 파리, 밀라노, 런던을 다녀온 게 지난 1월이었잖아요. 그 직후에 곧바로 이 토크의 기본 줄거리를 녹음했죠. 영감이 충만할 때.
고동휘 그런데 이후에 각 패션 브랜드들의 내부 사정에도 정말 변화가 많았어요. 굵직굵직한 브랜드들의 수장이 자리바꿈을 했고.
백진희 루이비통의 킴 존스가 디올 맨으로 갔고,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을 맡았고, 디올 옴므의 크리스반 아쉐가 벨루티를 이끌게 됐고.
권지원 참, 백진희 에디터는 얼마 전 6월에 있었던 2019 S/S 파리 패션 위크에서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쇼와 킴 존스의 디올 맨 쇼를 모두 보고 오지 않았나요?
편집장 이번 <에스콰이어> 패션 위크 토크는 2018 F/W가 주제지만, 백진희 에디터가 얼마 전에 미리 보고 온 변화무쌍한 파리 패션계의 이야기도 살짝 덧붙일까 봐요. 그럼 식순에 의거해서 <에스콰이어> 2018 F/W 패션 위크 토크는 런던으로 시작합니다. 런던이 일정상 맨날 맨 먼저거든. 백진희 리포터 나와주세요.

LIAM HODGES

LONDON

백진희 리포터 아니고 에디터거든요.
편집장 런던 패션 위크에서는 빅 하우스는 없지만 신선하고 젊은 브랜드를 접할 수 있잖아요.
백진희 사실 이번에 흥미로웠던 건 패션 위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선보였던 버버리와 고샤 루브친스키의 컬래버레이션 론칭이었어요.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선보였거든요. 매장 앞에 줄을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번 줄을 서봤어요. 알고 보니까 줄을 서봐야 소용이 없고 사전에 신청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거였더라고요.
편집장 그런데?
백진희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가 운 좋게 티켓을 얻어서 들어갔어요.
편집장 그렇게 서성거리고 있으면 티켓을 얻을 수도 있는 거?
백진희 글쎄요. 다시 패션 위크로 돌아와서, 컬렉션을 보러 런던을 자주 간 편인데요, 처음 갔을 때보다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빅 브랜드 하우스들이 런던에서 쇼를 꽤 했거든요. 런던을 대표하는 빅 브랜드인 버버리만 해도 야외에서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해서 크게 쇼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고 보니 고동휘 선배를 처음 만난 것도 런던 패션 위크에서였네요.
고동휘 그때가 시작이었군.
백진희 선배, 우리가 처음 런던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정말 화려하지 않았어요? 버버리, 알렉산더 맥퀸, 던힐, 비비안 웨스트우드까지.
고동휘 런던의 빅 브랜드들이 런던 패션 산업을 붐업시키자며 쇼를 열던 때였어요. 그런데 한두 번 그렇게 하더니 각자 원래 쇼를 하던 도시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죠.
백진희 그때만 해도 J.W. 앤더슨과 마가렛 호웰도 런던에서 쇼를 했죠. 그런데 이번 패션 위크에서는 그런 볼거리가 별로 없어서 아쉬웠어요. 쇼를 하던 장소도 다양했는데 점점 공간도 협소해지는 것 같아요. DDP에서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처럼 런던에서도 모든 쇼가 한 장소에서 열리거든요. 그러니까 파리에서처럼 시간에 쫓기거나 이동이 힘든 건 없어요.
편집장 대신 쇼에서 공간 연출이라는 변수가 빠져버린 거네.
백진희 공간에 대한 기대를 안 하게 되는 거죠.

 

KIKO KOSTADINOV, WALES BONNER
키코 코스타디노브, 웨일스 보너


편집장
2018 F/W 런던 패션 위크에서 가장 좋았던 쇼는 무엇이었나요?
백진희 키코 코스타디노브 쇼가 제일 좋았어요.
편집장 커팅의 마술사.
백진희 독특한 커팅으로 남다른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죠. 아식스의 대표적인 러닝화 젤-님버스20을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재해석한 운동화는 정말 갖고 싶은데.
고동휘 패션팀 모두가 갖고 싶어 하고 있죠. 나도 이번 런던에서는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제일 좋더라. 옷이 예쁘고 아티스틱한 면이 도드라져서.

권지원 사실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컬렉션을 선보였던 초반에는 이렇게까지 예뻐질 줄 몰랐어. 그런데 이번 쇼는 정말 예뻤어요.
백진희 그런데 이번 쇼에서는 기존의 아티스틱한 면에다 실용적인 면까지 더해졌어요. 약간 무난해졌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충분히 예쁘고. 그래서 함께 봤던 각국 프레스들도 예전 시즌과는 느낌이 다르다면서 흥미로워하더라고요. 원래 불가리아 사람인데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까 한국 뮤지션도 쇼에 초대됐던데.
권지원 딘.
고동휘 아마 코스타디노브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을 거예요. 코스타디노브는 뮤지션 오혁과도 친하던데. 오혁이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옷을 입고 나올 정도니까. 코스타디노브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백진희 무엇보다 이번 쇼는 색감이 정말 예뻤어요. 이번 쇼의 주제가 ‘구름에 가린’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색감이 원색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솜사탕 같은 느낌이었어요. 쇼 초대장에는 말린 꽃이 붙어 있었거든요. 이번 쇼에서는 여성 컬렉션과 남성 컬렉션을 함께 선보였는데 여성 모델들은 모두 꽃으로 장식된 헤어피스를 하고 나왔어요. 헤어 아티스트 가쓰야 가모의 작품이더군요.
편집장 남녀 컬렉션의 느낌이 달랐나요?
백진희 여성 컬렉션을 먼저 선보이고 그 뒤로 남성 컬렉션이 이어지는 형식이었어요. 그런데 남녀 모델 모두 스터드 비즈로 장식된 니트 가방을 메고 나왔어요. 귀여운 포인트였달까.
편집장 고동휘 디렉터는 이번 런던 패션 위크에서 눈여겨본 쇼가 있었나요? 이번에는 밀라노 패션 위크에 갔지만 런던에도 가서 직접 봤으면 좋았겠다 싶은 쇼가 있다거나.

고동휘 저는 런던에 갈 때마다 웨일스 보너 쇼를 항상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한국 프레스한테 쇼 티켓이 잘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진희한테 티켓이 나왔다고 해서 부러웠어요. 쇼는 직접 보니까 어땠어?
백진희 테일러링이 정말 좋은 옷이 많이 나왔어요. 웨일스 보너가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흑인 남성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였어요. 머슬린 같은 천으로 쇼장을 장식했는데 여러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웨일즈 보너는 워낙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쇼 자체는 아름다웠어요. 다만 매 시즌 비슷하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았어요. 뭔가 특별하다는 건 없었어요. 대신 완성도가 높은 옷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런던 패션 위크는 아무래도 어린 디자이너가 많아서 퍼포먼스 위주의 쇼가 많거든요. 그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쇼로 기억되네요.
편집장 2018 F/W 시장에서 선보이는 웨일스 보너 옷은 믿고 사도 되겠네요. 테일러링이 뛰어난 완성도 높은 옷이라니. 당장 매치스패션에 접속해봐야겠다.

 

PER GÖTESSON, PHOEBE ENGLISH, OLIVER SPENCER, xander zhou, LIAM HODGES
페르 예테손, 피비 잉글리시, 올리버 스펜서, 샌더 주, 리암 호지스


편집장
권지원 에디터는 런던 패션 위크에서 주목했던 쇼가 있나요?
권지원 런던 디자이너 중에서는 페르 예테손을 좋아해요.
편집장 고동휘 디렉터가 <아레나>에서 에디터로 일할 때 페르 예테손에 관해 이렇게 썼어요. “페르 예테손은 데뷔 쇼 전날 RCA 졸업 쇼를 치른 런던 패션 신의 입장에서는 얼른 데뷔시키고 싶은 물건이다. 급진적이고도 간결한 방식으로 구성한 쇼의 방식이라든지, 소음 같은 음악을 집어넣은 훌륭한 취향, 디스토피아적인 음울과 스트리트, 힙합, 1990년대식 아방가르드가 뒤섞인 그 옷들을 보고 나니 다른 신인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권지원 완전 동의해요. 런던 패션 위크는 확실히 페르 예테손 같은 신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죠. 그런데 이번에는 페르 예테손이 쇼를 작게 한 모양이더라. 이번에 선보인 컬렉션들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디자이너라서.
편집장 피비 잉글리시는 어땠나요?
백진희 옷이 정말 예쁘고 웨어러블하더라.
권지원 맞아요. 정말 웨어러블했어요.
백진희 그래서 런던에서는 오히려 피비 잉글리시가 신선해 보였어요. 계속 미친 옷만 보다가 정말 차분하고 웨어러블한 옷을 조용한 공간에서 보니까.
편집장 런던은 기본적으로 개성 과잉이군요.
백진희 피비 잉글리시의 옷은 원래 깔끔하고 무난하니까요. 서정적이고.
고동휘 원래 여성복에서 핫한 디자이너였는데 몇 시즌 전부터 남성복을 론칭하더니 꽤 잘하고 있어요. 남성 컬렉션은 점점 심플해지는 느낌이고.
권지원 그래서 난 오히려 남성복은 이게 피비 잉글리시의 옷인지 잘 모를 정도야.
백진희 올리버 스펜서 쇼에서는 <에스콰이어 UK>의 패션 디렉터 캐서린 헤이워드가 런웨이에 섰어요. 캐서린 헤이워드가 걸어 나올 때 사람들이 박수 치고 환호성 지르고 그랬어요. 옷은 클래식하더라고요.
고동휘 편집장님도 언제 한번?
백진희 캐서린 헤이워드 스스로 무척 즐기면서 워킹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올리버 스펜서와도 친한 크루였고.
편집장 리얼 피플이 무대에 올라왔을 때 꼭 필요한 요소 같아요. 스스로 즐기고, 그래서 모두가 즐겁고.
백진희 반면에 샌더 주의 쇼는 매 시즌 비슷하다는 전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네요. 샌더 주는 중국 전통 의상이나 클래식한 의상을 변형하는 방식의 오리엔탈리즘의 극대화로 요약될 수 있는 디자이너잖아요. 게다가 이번에는 정말 피스가 많고 끝없이 모델이 나왔어요. 그걸 보니까, 몇 년 전에 런던에서 처음 샌더 주를 인터뷰했을 때만 해도 신인급이었는데 어느새 런던에서 자리 잡은 디자이너가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편집장 어느새 훌쩍 성장해버린 거네요.
백진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콘셉트도 잘 정리했고, 그 안에서 목걸이나 벨트나 체인 장식의 디테일까지 잘 연출하고 있었어요. <에스콰이어>와도 친숙한 모델 김수민과 나재혁이 샌더 주의 오리엔탈 중국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니까 그것도 잘 어울렸고요. 어떤 면에서는 강시가 나오는 것 같았달까. 선글라스에 용 문양이 있는 것도 있었어요.
편집장 이번 2018 F/W에는 용 문양이 있는 선글라스를 볼 수 있을 거란 말이군요.
백진희 리암 호지스도 나쁘지 않았어요. 런던의 청소년들이 왜 리암 호지스를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아주 펑키해요. 휠라와 협업한 신발들도 눈에 띄고. 젊음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편집장 리암 호지스와 휠라가 협업해 만든 맨투맨이나 신발은 어쩌면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지 모르겠네요. 전반적으로 무난하던데. 리암 호지스×휠라를 신고 나도 중년의 기쁨을 표현해볼까.

MAN, KENT & CURWEN,
ALEX MULLINS,
CHARLES JEFFREY LOVERBOY
맨, 켄트 앤 커웬, 알렉스 멀린스,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백진희
런던 패션 위크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하나가 탑맨이 후원하는 MAN 쇼잖아요. 찰스 제프리며 페르 예테손이며 J.W. 앤더슨까지 모두 MAN 쇼를 통해 등장했고.
고동휘 이번에 MAN 쇼 무대에 선 3인방은 누구였어?
백진희 그게 말이죠. 정말 낯설어서…. 아트 스쿨, 로딩퀸 바자, 스테판 쿠게.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디자이너들이었죠. 원래가 신인을 발굴하는 쇼이긴 하지만 셋 다 쇼를 옷을 보여주기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옷은 정말 볼 게 없었고. 아트 스쿨은 ‘퀴어’가 테마였어요. 다양한 성별의 모델들이 등장했고. 로딩퀸 바자 역시 보통 모델들의 다섯 배는 덩치가 큰 빅 사이즈 모델들이 등장했죠. 두 쇼 모두 중심은 메시지였죠. 그러다 마지막 스테판 쿠게는 퍼포먼스나 메시지가 아니라 니트웨어라는 옷을 보여줘서 색달라 보였어요. 기존 니트를 새롭게 재조합한 상·하의 옷들을 선보였죠.
편집장 바지까지 니트라고?
백진희 그래서 못생겼더라고요. 내의 같은 느낌이었달까.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예쁘다고 하던데. MAN 쇼는 항상 신선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퍼포먼스로 접근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런 건 예전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자주 하던 방식이 아닌가 싶었고.
권지원 원래 MAN 쇼라는 게 신인 디자이너 3명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게 목적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죠.
백진희 반면에 켄트 앤 커웬이라는 브랜드의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상업적이었어요. 일단 베컴이 후원하는 브랜드거든요. 영국패션협회에서도 추천하는 브랜드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공간도 실제 켄드 앤 커웬 매장이었고. 매장에 거대한 비디오그래피를 설치해놓았어요. 크리켓 같은 영국의 전통적인 스포츠가 테마거든요.
편집장 한국 시장에서는 2017년부터 전개되고 있더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26년부터 시작된 클래식한 영국 브랜드. 물론 한국에서는 좀 낯설지만, 켄트 앤 커웬은 몰라도 데이비드 베컴은 아니까.
백진희 안 그래도 데이비드 베컴의 이름이 옷마다 쓰여 있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웨어러블하고 캐주얼한 옷이었어요. 영국의 클래식 브랜드답게 옷감과 테일러링은 훌륭했고. 쇼장에서 베컴도 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이시더라. 사진도 못 찍게 하고.
백진희 동휘 선배는 알렉스 멀린스가 좋다고 하던데 전 별로였거든요. 왜 좋아하세요?
고동휘 미친 옷 같은 게 좋았어요.
백진희 눈이 아플 정도로 현란한 옷들이 있었어요. 하긴 동휘 선배는 그런 걸 좋아하죠.
백진희 그래도 자기 색깔이 확실한 옷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찰스 제프리는 쇼에서 항상 퍼포먼스를 강력하게 하는 브랜드이긴 한데 이번엔 정말 상상 이상이더라고요. 불이 다 꺼진 쇼장에서 약에 찌들거나 상처받은 영혼 같은 퍼포먼스 팀이 나왔어요. 제가 맨 앞에 앉았는데 제 앞에서 막 소리를 지르고 쓰러지더라고요. 안 그래도 가뜩이나 저녁 쇼라 힘든데, 그거 보고 저도 거기에 같이 누워버릴 뻔했어요. 좀비 같은 사람들이 모형 칼이나 깨진 유리를 들고 앞에 와서 위협하고 그러니까. 쇼라도 빨리 좀 했으면 좋겠는데, 퍼포먼스를 몇 분씩이나 하다가 드러머가 드럼을 치면서 겨우 쇼가 시작됐어요.
편집장 혼비백산 쇼네.
백진희 어쨌든 위트 있는 옷이 많이 나왔어요.
권지원 찰스 제프리를 보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생각나요. 쇼 하는 방식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백진희 그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인지, 런던에서 쇼를 볼 때는 부담은 없는 것 같아요. 밀라노나 파리 쇼에 갔을 때는 이 쇼에서 뭔가를 찾아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그냥 함께 쇼를 즐기면 되는구나. 그래서 런던이 영 제너레이션을 많이 키울 수 있는 것 같고.
편집장 런던과 밀라노, 파리에서 패션의 정의가 각각 다른 거 같아요. 파리의 경우는 엄청나게 세련되게 가공한 상품이라면 런던은 위트를 섞은 놀이 같은 느낌.

CRAIG GREEN, DGNAK,
BOBBY ABLEY
크레이그 그린, 디그낙, 바비 에이블리


백진희
아, 크레이그 그린 쇼도 빼놓을 수가 없네요. 지난 시즌 J.W. 앤더슨과 같은 장소에서 쇼를 했거든요. 같은 공간을 다르게 해석했더군요. 크레이그 그린은 2년 연속 영국 남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했어요. 키코 코스타디노브 다음으로 좋았던 쇼였어요. 모델들이 텐트를 변형한 듯한 모형을 앞에 메고 나왔어요. 너무 예뻤어요. 크레이그 그린은 로프나 선, 구멍 이런 게 특징적인 브랜드잖아요. 모델들이 움직일 때마다 달려 있는 물 풍선이 같이 통통 움직이고. 어린아이의 동심이나 자유를 다룬 것 같아요. 런던 컬렉션에 처음 갔을 때 크레이그 그린을 신인 디자이너로 인터뷰했는데 이제는 런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됐네요.
편집장 (폼 잡으면서) 우리 패션 에디터와 함께 성장한 디자이너군요.
패션팀 (이구동성) 우리는 성장한 게 맞나요? 맨날 쳇바퀴 돌 듯이 마감만 하다가 1년이 가버리는 인생인데.
백진희 디자이너 강동준의 디그낙은 뭐랄까, 좀 독특했어요. 주제가 ‘덧없는 꿈’이었거든요. 부와 명예와 화려한 삶까지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더군요. 소비되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것. 스트리트 패션과 한국의 전통적 실루엣이 결합된 느낌. 도복을 연상시키는 의상도 있었는데 옷마다 해골 패치가 있었어요. 디그낙은 원래가 블랙&화이트가 특징인데 해골 패치까지 있어서 더 눈에 띄었어요.
편집장 메멘토 모리인가. 죽음을 기억하라. 당신도 죽는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덧없다.
백진희 피날레곡으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나왔거든요. 다들 그 정서만큼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어쩌면 편집장님은 이해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백진희 다음 쇼였던 바비 에이블리 쇼에 나온 트위티가 좋더라고요. 비비 에이블리가 워너 브러더스와 협업해서 트위티를 활용한 옷을 내놓았거든요.
고동휘 내가 좋아하는 옷인데. 바비 에이블리가 원래 캐릭터를 활용해서 옷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백진희 쇼도 캐릭터만큼이나 흥이 넘치더라. 프랑스 힙합 뮤지션이 모델로 섰는데 어찌나 신나게 걷던지.
편집장 바비 에이블리가 카카오나 라인의 캐릭터로 옷을 만들면 어떨까? 그럼 <에스콰이어>가 커버도 할 텐데.
권지원 런던은 점점 재미가 없어져요.
백진희 파리와 밀라노만 보다가 런던을 보면 신선하다고 느끼던 때도 있었는데.
권지원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백진희 과거엔 GmbH나 032C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신진 디자이너의 요람이었는데 요즘은 그들조차 베를린이나 파리나 피렌체에서 시작하니까요. 이젠 런던 기반의 디자이너들만 런던 패션 위크에 등장하는 것 같아요. 아쉽죠. 무엇보다 예전에 런던에서 하던 유쾌한 퍼포먼스와 발칙한 도발을 이젠 발렌시아가 같은 빅 브랜드가 큰 쇼에서 해버리고 있거든요. 아예 그런 흐름이 주류가 돼버리고 나니까 런던의 입지가 좁아진 거죠. 그래서인지 바이어들도 런던에서는 바잉할 게 별로 없다고 하더군요.
편집장 그래도 웨일스 보너나 리암 호지스는 난 딱 구매 각인데. 아, 켄트 앤 커웬도. 베컴 때문이 아니라 요즘은 아메리칸 클래식이나 브리티시 클래식이 끌려서.
패션팀 편집장님은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를 원하시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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