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년’ 까르띠에가 탱크와 함께 한 시간

까르띠에가 탱크와 함께한 시간. 그동안 쌓인 디테일의 역사.

‘스위스 메이드’와 ‘워터 레지스턴트’만 쓰여 있는 탱크의 간결한 뒷면. 사실은 이 둘도 변화의 산물이다. 초기의 탱크에는 ‘파리’라고 쓰여 있었고, 처음부터 방수 기능이 있지는 않았다.

어떤 시계가 아이콘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오로지 그 시계에 대한 책이 나왔는지 보면 된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책으로는 부족하다. 특정 브랜드의 특정 라인업에 대한 책이어야 한다. 그런 명예의 전당급 시계가 몇 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까르띠에 탱크.

이 원고를 쓰기 위해서 까르띠에 탱크에 대한 책을 많이 참고했다. 프랑스 출판사 플라마리온에서 나온 <더 까르띠에 탱크 워치>. 이탈리아의 시계 전문 작가 프랑코 콜로니가 썼다. 그는 까르띠에 탱크에 관한 책만 세 권을 썼다. 탱크에 대해 쓸 말이 그렇게 많을까 싶기도 한데… 많긴 정말 많다. 시계와 20세기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책답게 탱크의 시작점에서부터 출발한다. 1917년 첫 탱크가 나왔다. 루이 까르띠에는 진짜로 당시 신무기였던 탱크에서 영감을 얻었다. 탱크는 군인들의 결정적인 첨단 무기였다. 첨단 기계를 고가 시계의 브랜딩에 썼다고 볼 수 있다. 지금으로 치면 리차드 밀 드론 혹은 로저 드뷔 알파고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시계를 둘러싼 이야기를 잘 가꾸어온 덕분에 탱크는 100년이 넘도록 상징적인 시계가 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시계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탱크처럼 질리지 않는 시계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유행과 패션과 사회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시대의 분위기와 유행은 늘 이런 식으로 대화하듯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까르띠에가 제1차 세계대전의 괴물인 탱크를 받아들인 것처럼, 배꼽을 드러내는 투피스 수영복의 이름이 핵실험이 진행된 군도인 ‘비키니’가 된 것처럼. 반대로 세상의 변화가 스타일을 만들기도 한다. 두껍고 질기지만 색이 쭉쭉 빠지는 노동복 소재인 데님을 시대적 아이콘으로 만든 리바이스가 대표적인 예다. 까르띠에 탱크를 이야기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시대와 브랜드의 대화를 알아야 탱크의 성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탱크는 시계계의 아이콘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보통 시계의 아이콘에는 확실한 기능이 있거나 사용자를 들뜨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롤렉스 서브마리너에는 방수라는 기능이 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나 랑에 운트 죄네에는 사용자를 꿈꾸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 탱크는 우아한 디자인으로 아이콘이 된 경우다.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끝이 뾰족하고 밑에 돌기가 달린 크라운 역시 탱크만의 디테일이다.

탱크는 버전에 따라 버클 형태도 다양하다. 사진 속 탱크는 드레스 워치의 기본인 핀 버클을 썼다.

탱크처럼 디자인으로 아이콘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강력한 일관성이 필요하다. 일관성을 가지려면 처음부터 다 만들어져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완성도 높고 강력한 방향성이 필요하다. 탱크에도 처음부터 완성된 콘셉트가 있었다. 사각 케이스, 로만 인덱스, 특유의 시침과 분침과 크라운.

책 <더 까르띠에 탱크 워치>를 보면 이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101년 전에 나온 첫 탱크는 놀랍게도(아니면 전혀 놀랍지 않게도) 지금의 탱크와 큰 차이가 없다. 가로와 세로 느낌이 완연히 다른 사각 케이스. 케이스를 그대로 짧게 연장한 베젤도 여전하다. 베젤이 케이스에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탱크 특유의 11자 같은 실루엣이 생기고, 그 실루엣이 스트랩과 이어지면 길쭉하고 날씬한 느낌이 난다. 탱크를 100년 동안 이끌어온 탱크만의 호리호리한 실루엣이다.

자동차의 폭이 넓어지듯 까르띠에 탱크의 폭도 조금씩은 넓어진다. 알고 보면 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101년이 흘렀는데 그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다. 탱크는 101년 동안 라인업 자체도 굉장히 활발하게 많이 바꾸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같은 노래여도 연주자에 따라 특징이 아주 달라진다. 다양한 탱크도 그와 같았다. 탱크 쉬노이즈, 탱크 루이 까르띠에, 탱크 아메리칸, 탱크 프랑세즈, 각각의 탱크는 탱크의 특징을 공유하되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탱크를 재해석했다. 무브먼트가 두 개인 탱크도, 달리의 그림처럼 휘어진 모양의 탱크도, 심지어 가로가 세로보다 긴 탱크도 있었다.

아직도 원형의 탱크와 비슷한 탱크를 구할 수 있다. 지금도 까르띠에에서는 원형에 가까운 탱크를 판매한다. 지금 보시는 오늘의 탱크가 그 시계다. 1917년의 첫 탱크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아무것도 안 변하기도 했고 모든 게 변하기도 했다.

우선 달라진 점부터 본다면, 근본적인 비례가 변했다. 비례감만 놓고 봤을 때 최초의 탱크는 지금 탱크보다 조금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다. 지금 탱크는 첫 탱크에 비해 조금 날씬하다. 4:3과 16:9 정도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행 탱크는 첫 탱크보다 조금 날씬해지긴 했지만 ‘이건 탱크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잘 변했다 싶은 정도로만 디테일을 변경하는 건 보석 명가의 아주 예민한 재주다.

탱크는 1917년 처음 나오자마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렇게 성과가 좋았던 사회적 분위기도 한 번쯤 알아볼 필요가 있다. 탱크가 태어난 1910년대 후반과 탱크가 번성한 1920년대 초반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낙관에 가득할 때였다. <더 까르띠에 탱크 워치>를 쓴 프랑코 콜로니는 그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술이 샘처럼 흐르고 전후의 여자들이 독립성을 찾기 시작하던 때, 파리가 세계의 중심이던 때.” 탱크는 파리식 모던과 아르 데코의 상징이었다.

이때 판매하던 1920년대의 탱크는 지금 탱크와 거의 흡사하다. 최초의 탱크와 지금 탱크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시침과 분침이다. 첫 탱크에는 시침과 분침 가운데쯤에 장식적인 구멍이 뚫려 있었다. 1920년대의 탱크는 좀 더 간결한 일자 시침과 분침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쓴 푸른 시침과 분침은 아직도 탱크를 대표하는 요소 중 하나다.

101년 전의 탱크와 비교해 지금 탱크가 가장 덜 변한 부분은 무엇일까? 크라운이다. 탱크 같은 사각 시계는 몇 있지만 탱크처럼 크라운을 만드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모양도 일관적이다. 죽순 윗부분 같은 모양, 맨 아랫부분의 돌기, 크라운 상단을 장식한 파란 카보숑.

사실은 그 디테일도 조금은 다르다. 어느 시대의 어느 까르띠에였는지에 따라 길어봐야 5mm도 안 될 크라운의 디테일도 끝없이 달라진다. 얼마나 길어지는지, 돌기가 어떻게 장식되는지, 크라운 끝에 달린 보석의 끝부분이 얼마나 뾰족한지, 금속과 카보숑의 길이 비례는 어느 정도인지. 이 모든 요소가 조금씩 모두 다르다. 시계는 작으니까 ‘다 그게 그거지’ 싶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굉장히 다르다. 상황과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주를 주었을 것이다.

탱크의 다이얼에는 가는 선이 많지만 확대해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선이 선명하다. 훌륭한 마감이다.

탱크의 다이얼 레이아웃 역시 100여 년을 이어온 디테일이다. 중심으로부터 퍼져 나간 듯한 로마자 인덱스, 로마자 인덱스 아래로 테두리를 친 기찻길 모양 ‘레일 트랙’ 장식, 그 안에 보이는 12시 아래의 까르띠에 로고 역시 1917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다.

100년 후의 까르띠에는 다이얼 역시 재현하는 동시에 열심히 발전시키기도 했다. 특히 탱크의 다이얼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다이얼 제조 기술의 발전을 볼 수 있다. 1920년대의 탱크 다이얼은 좋게 봐도 손 그림 수준이었다. 조금만 확대하면 로마자 I 주변의 물감이 미세하게 삐져나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오늘의 까르띠에는 아무리 확대해서 봐도 안료가 전혀 삐져나와 있지 않다.

101년 전 탱크와 지금 탱크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쓰여 있는 곳은 어쩌면 6시 방향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탱크는 6시 방향에 ‘스위스 메이드’라고 적혀 있다. 이게 지금 까르띠에의 현재다. 탱크가 처음 나온 1910년대 당시에는 까르띠에를 비롯한 시계 명가라 해도 무브먼트 생산 기술을 가진 곳이 많지 않았다. 까르띠에 역시 첫 탱크의 무브먼트를 예거 르쿨트르에서 납품받았다. 자동차 회사에서 엔진 기술을 아웃소싱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파네라이도 초기에는 롤렉스 무브먼트를 썼다. 지금의 까르띠에는 당당한 시계 전문 회사다. 자사 무브먼트가 있고 하이 컴플리케이션도 있다. 101년 동안 까르띠에 역시 계속 성장해온 것이다.

탱크가 101년 동안 번성한 또 하나의 비결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왔다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의 품질만으로 탱크가 번성한 건 아니다. 사람이 물건을 갖고 싶어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비싼 물건은 비싸기 때문에 그 물건을 가져야 할 이유가 최대한 많이 있어야 한다. 탱크 같은 경우는 탱크의 역사가 이 물건에 대한 일종의 보증이 된다. ‘오랫동안 많이 팔린 고급품이기 때문에 나도 살만 하겠군’ 하는 마음을 노리는 것이다.

이 역사책에는 탱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와 있기도 하다. 탱크를 차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도 실려 있다. 이걸 보면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으로 하고 있던 일들을 까르띠에 역시 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도 왕들과 개리 쿠퍼와 알랭 들롱이 탱크를 찼다는 기록이 있다. 패티 스미스와 다이애나비와 카트린 드뇌브도 탱크를 찼다. 이렇게 되면 매력적인 유명인의 이미지에 물건을 실어 보내는 전략을 쓸 수 있다.

탱크를 좋아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유명인은 앤디 워홀이다. 그는 탱크 수입가였는데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시간을 말해주기 위해 탱크를 차지 않아요. 사실 나는 태엽도 안 감아요. 나는 그냥 차야 하는 시계이기 때문에 탱크를 차는 겁니다.” 시계도 아니고 매번 ‘탱크’라고 말해주는 유명인이라니, 까르띠에 홍보 담당자는 이 말을 듣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비싼 물건에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은 물건을 살 때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시계든 뭐든 고가품을 사야 할 때 그 물건을 잘 모른다면 역사가 깊은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다. 뭐가 좋은지 잘 모르니까. 사고자 하는 물건을 잘 안다 해도 역사가 깊은 물건을 살 것이다. 그 물건을 오래 알았으니까. 까르띠에 같은 브랜드가 스스로 역사를 가꾸는 건 이들에게 프랑스의 낭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에서 마진이 발생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작동이 잘되기만 한다면 이야기의 마진이 꽤 높아진다는 것도.

IWC를 성장시키고 브라이틀링으로 넘어간 CEO 조지 컨은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명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 이미지, 제품 디자인, 그다음 기술이라고. 까르띠에 탱크는 이 명제의 완벽한 예다. 101년 동안의 신화가 만들어온 이미지가 있다. 멋진 데다 점점 발전하는 디자인이 있다. 그 디자인을 더욱 예리하게 표현하는 세공 기술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고? 오늘도 누군가는 탱크를 살 것이다. 세계 어딘가에 있는 까르띠에 매장에서. 탱크 신화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면서.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