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의 재발견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지방시를 새로 쓴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첫 지방시 쇼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서 파리에 남기로 결정했다. 작년 10월이었다. 오랜 시간 지방시를 좋아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리카르도 티시를 좋아했다. 그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마저 아티스트의 절개라 생각했으니까. 스트리트를 럭셔리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자 죽어가던 지방시 하우스를 살린 영웅. 하지만 티시를 향한 애정과는 별개로 지방시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웨이트 켈러가 적임자일까’라는 의문은 떨쳐낼 수 없었지만.

그녀는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여성스러움으로 똘똘 뭉친 브랜드의 수장과 지방시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티시가 만들던 지방시와 연결되지 않았다. ‘남성복을 잘 만들까’라는 궁금증도 있었다. 랄프 로렌 남성복에서 일한 경력도 속 시원한 답변이 되진 않았다. 미심쩍은 마음을 못 버린 채 그녀의 데뷔 쇼를 목도했다. 티시의 지방시가 늘 으르렁대는 동물적 집단의 광기 같았다면, 웨이트 켈러의 지방시는 섬세하고 매끈하고 감성적이었다. 가려져 있던 지방시 하우스의 본질도 예전보다 잘 보였다. 누구의 옷장에서도 잘 섞일 융통성 있는 옷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 전학 온 학생 같은 쭈뼛거림을 감추긴 어려웠다. 의기소침했고 조심스러웠다.

반 년 만에 열린 웨이트 켈러의 두 번째 쇼는 어쩌면 처음보다 더 궁금했다. 직전에 있었던 쿠튀르 쇼가 예상 밖으로 무척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 쇼에서는 그녀의 몸과 마음이 풀린 듯 생동했고 더 명확했다. 짐작대로 두 번째 쇼는 쿠튀르 컬렉션의 어떤 연장선에 있었다. 조형적이고 압도적인 실루엣, 온갖 장식적 요소가 본능적으로 충돌하는 서사는 분명 지난 쇼에서 읽지 못했다.

지난 쇼가 버밍엄 출신으로서 영국적 뉘앙스를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1980년대 베를린의 밤이다. 향락과 음산함이 낮게 깔린 쇼 전반은 마치 새벽녘 일촉즉발의 젖은 뒷골목 같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속 몇몇 장면도 스쳤다. 기름진 광택이 번쩍이는 가죽 옷과 거친 인조 모피 코트는 마치 잔뜩 웅크린 야행성 동물 같았다.

그녀는 이런 옷과 복고적인 색, 아카이브에서 차용한 프린트, 이브닝 룩과 클럽 웨어를 섞고 뒤흔들어 재조립했다. 조형적인 실루엣에서는 베를린 브루탈리즘이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솔하고 인도하는 건 촘촘하게 스며든 그녀의 모던한 기질과 하우스적 우아함이었다. 다시 파리적인 세련됨을 이야기했다. 웨이트 켈러의 전략이었다. 데뷔 쇼를 보기 위해 파리 법원 청사를 들어설 때의 미심쩍었던 감정은 두 시즌 만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방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떻게 달라질 건지, 이제 보였다.

티시가 얼마 전 타계한 위베르 지방시의 아카이브를 의도적으로 우회하고 낯선 가치를 주입했다면 웨이트 켈러는 지방시 하우스를 다시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녀는 지금 어떤 시절보다 지방시를 더 탐구하고 재건하는 중이다. 지방시는 가장 지방시다운 방식으로 달라지고 있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