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의 모든 것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 신발 박람회 미캄(MICAM)에 다녀왔다.

미캄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매년 두 번씩 개최하는 국제 신발 박람회다. 올해로 85회째이며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제 신발 박람회와 밀라노 패션 위크의 일정을 묶으려고 한다. 신발과 패션을 함께 묶어서 패션 중심지로서 밀라노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패션 에디터들에겐 밀라노 패션 위크가 우선일지 모르지만 사실 미캄의 위상과 규모는 대중적으로 밀라노 패션 위크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규모에서부터 2만 평이 넘는 행사장의 크기와 1500개 가까운 참여 브랜드 숫자까지, 미캄엔 분명 압도적인 구석이 있다. 이번 미캄 취재는 이탈리아 무역공사 서울무역관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한 시즌 앞서 미캄에 참여했던 권지원 에디터의 경고를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압도적인 규모를 각오하고 취재에 나서야 한다는 경고 말이다. 첫날부터 앵클부츠를 신고 미캄 행사장을 나선 게 실수였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1관을 다 돌기도 전에 발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얼빠지고 복잡하고 발이 불타는 듯했다’던 권지원 에디터의 미캄 취재 경험은 정말 진짜였다.

미캄은 신발의 블랙홀 같은 곳이었다. 유명 브랜드부터 소규모 장인의 브랜드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수백 명의 이탈리아 제조업체 사람들과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몰려온 구두 장인들은 자신들의 2018-2019 F/W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 세계에서 온 리테일러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드레스 슈즈, 부츠, 여러 컬러의 스니커즈와 모카신, 드라이빙 슈즈까지 다양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살바토레 페라가모, 체사레 파치오티 등 럭셔리 플레이어들도 럭셔리 1관에 있었지만 미캄의 진짜 스토리는 작은 장인 제작자들의 것이었다. 이탈리아 구두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가족 소유의 장인 구두 브랜드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기초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세계적 위상을 자랑하는 듯했다. “이탈리아에는 5000여 개의 회사가 있어요. 그중 90% 정도는 가족 소유 사업체죠.” 미캄의 CEO 토마소 칸첼라라가 말했다.

또한 이탈리아 구두 장인들은 좀 더 독창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구두라는 창작물을 이탈리아의 정신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또한 뉴욕이나 파리의 최신 트렌드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자신만의 디자인 고집을 갖고 있고 그런 고집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캄에서 마주한 이탈리아 장인의 구두에서 느껴지는 고집스러운 태평함은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미캄에서는 소규모의 독립적인 인터내셔널 바이어들과 이탈리아 소매업자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브랜드들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고객과 브랜드를 연결해주는 데 미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럭셔리 1 관에서는 이전 미캄 때처럼 프라다와 구찌는 보지 못했지만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살바토레 페라가모, 체사레 파치오티가 참가했다. 특히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부스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토리도 참석했다.

미캄에서 구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번 미캄에서도 스포츠웨어와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애슬레저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 가장 지배적이었다. 브랜드들은 클래식한 스니커즈에 독특한 텍스처로 포인트를 주거나, 새로운 실루엣으로 변형해 위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벨벳 소재와 진주, 보석 디테일이 여성 신발에서 많이 사용됐고, 구찌라는 브랜드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85번째 미캄은 많은 기록을 남겼다. 방문객의 60%는 해외 방문객이었다. 러시아에서 온 방문객이 22% 정도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우크라이나로 7%였다. 미캄은 신발의 창작성을 보여주고 시장을 알 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최근 수년 동안 개최된 미캄에서 우리는 본 성질을 바꾸지 않고 페어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더 글래머러스해지고 매력적일 뿐 아니라 좀 더 실리적이고 바이어들의 요구에 응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회사들은 여기서 전 세계에서 온 바이어들을 만날 수 있으니, 그들의 새로운 제품을 론칭하기 위해 미캄을 선택하고, 그들의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다져가며 비즈니스 관계를 만들어내고 통합해나가죠.” 이탈리아 신발제조업협회 대표 안나리타 필로티가 말했다.

미캄은 올해부터 모조품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위조와 싸우는 것은 단순히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중요한 부분을 방어하는 것뿐 아니라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최종 소비자, 국가의 경제를 전반적으로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캄의 수많은 가족 장인 기업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창의성을 탐내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을 막아내고, 장인들이 창의성과 노력의 대가를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미캄의 가장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다.

미캄은 회를 이어갈수록 현대적이고도 세계적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을 유지한 채. 내가 미캄에서 본 건 가죽과 신발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이탈리아 패션 그 자체였다. 미캄은 분명 신발의 모든 것이다. 미캄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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