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재는 시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당신이 볼 시간 측정 기술의 최첨단, 그리고 그 뒤에 묻혀 있는 이야기들.

기술적으로 모든 게 변한 타임키핑에서 딱 하나 변하지 않은 게 이 종들이다. 마지막 랩에서 이 종을 친다. 크기에 비해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총을 쏘면 사람이 놀라겠죠.”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에 총을 쏘는 자세를 하고 발을 굴렀다. 우리는 옛날 기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금속으로 된 기계 장치가 들어 있었다. 상자 한 면을 비스듬하게 자른 모양이었다. 그 비스듬한 면 위로 초시계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그곳은 스위스 비엔에 있는 오메가 박물관이었다. 비엔은 스위스의 유라산맥 권역에 있는 작은 도시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함께 써서 도시의 공식 명칭은 비엘비엔이다.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면 아예 ‘비엘비엔’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인구는 5만4000여 명에 불과한 도시다. 여기에서 고가 시계의 두 거물인 오메가와 롤렉스의 시계가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오메가는 작년에 반 시게루를 초빙해 대단한 최신 공장을 만들었다. 공장 중심부에 거대한 부품 창고가 있고, 로봇이 자동으로 움직여서 각 층의 사람들에게 부품을 가져다주는 첨단 시설이었다. 그 길 건너편에 오메가 박물관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왔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e-건을 시연하는 오메가 폴란드 홍보 마케팅 담당자.

오메가의 타임키핑 관련 소장품.

오메가가 한국의 몇몇 저널리스트를 초대했다. 신제품 시계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물론 오메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계식 시계 제조사 중 하나다. 잘 만들고, 잘 알리고, 잘 판다. 하지만 오메가가 이번에 기자들을 부른 이유는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로서의 오메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타임키핑은 스포츠 경기에서 시간과 관련된 각종 기록을 측정하고 집계하고 발표하는 일이다. TV나 경기장에서 보면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 옆에 특정 시계의 로고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게 공식 타임키퍼다. 타임키퍼는 마케팅 목적이 강하긴 하나 옥외광고처럼 돈만 준다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쪽에도 나름의 엄정한 기술이 필요하며, 그 기술의 발전사도 있다. 근본적으로 시계 회사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타임키퍼가 있으려면 우선 대회가 있어야 한다. 가장 유명한 운동 대회는 역시 올림픽이다. 여기서 타임키핑의 역사가 근대 올림픽의 역사와 맞물린다. 근대 올림픽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다. 그는 좀 괴짜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스포츠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3000년 전 그리스의 체육 대회인 올림픽이라는 이벤트를 찾아내 복각했다. 비유하자면 이런 식이다. 한국의 어느 부자가 ‘모두가 새를 키운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심을 거듭한 끝에 키르기스스탄의 3000년 전 새 날리기 대회를 다시 재현하기로 했다. 듣다 보면 황당하겠지만 이게 근대 올림픽이 열린 배경이다.

초기의 타임키핑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는 정말 대단한 진보다. “약 100년 전에 운동선수의 기록을 어떻게 쟀느냐 하면,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시간을 재게 하고 평균값을 냈어요. 사람들이 실수할 수도 있고 시계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타임키핑이라고 볼 수가 없었죠.” 아까 총 쏘기와 타임키핑을 설명하던 남자가 이어 말했다. 이 이야기를 신나게 해준 사람은 데이비드 율미였다. 오메가 소속의 박물관 시계 제작자. 오메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빈티지 오메가 시계를 고치고 잘 돌아가게 하는 게 그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대단한 시계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초기 타임키핑의 역사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 전의 타임키핑이 그 정도였으니 오메가가 1932년 LA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타임키퍼가 된 겁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그때의 타임키퍼는 우리도 하겠다 싶은 수준이다. 실제로 시간을 재는 타임키퍼는 단 한 명, 스톱워치 30개가 장비의 전부였다. 사람 한 명이 가서 계속 누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메가가 1932년 처음 올림픽에 가지고 간 크로노그래프.

성공한 자들은 기록을 남긴다. 오메가는 자체적으로 발간한 <레코딩 올림픽 드림>을 통해 타임키핑 분야에서 자신의 성과를 보여준다. 그 책 앞 페이지에 초기의 타임키퍼가 아직 남아 있다. 30분까지만 잴 수 있는, 주먹만 한 크로노그래프다. 지금 이걸로는 초등학교 운동회를 치르기도 힘들 것이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다. 즉 기술 자체가 엄청나게 발전했다.

시간 계측의 초창기에는 전문 계측 장비랄 게 없었다. 범용 스톱워치에 전용 스탠드를 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인류는 참 멀리 왔다.

율미는 진짜 시계 애호가였다. 그는 옛날 계측기를 기분 좋게 두드리며 “전부 금속이에요. 묵직하죠”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오메가의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도 자기 가족의 업적처럼 신나게 설명해주었다. 기술은 금방 발전해서 오메가도 향상된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초기 시간 계측 기술 발달의 산물이 처음에 우리가 본 스톱워치의 보조 기구였다. “곧 우리는 방식을 바꿨어요. 신호탄을 쏘면 바로 스톱워치와 연결돼서 시간을 기록하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재는 입장에서 기록을 잴 때 중요한 부분은 둘이다. 스타트와 피니시. 오메가는 이 부분에서 꾸준히 계측기를 새로 개발했다. 육상 경기의 경우에는 선수들이 스타트를 준비하는 받침대에 센서를 달아서 선수들이 튀어나가는 동시에 시간 계측이 시작되도록 했다. 수영의 경우에는 벽을 치면 자신의 기록이 바로 집계되는 장치를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정확한 시작과 종료 시점을 알아내기 위한 묘안이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시작과 끝을 기록하는 것과 선수 본인의 시작과 끝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삶처럼 스포츠는 그 미세한 차이가 모든 것을 규정하기도 한다. 오메가는 거기서 충실한 기록자가 되고자 했다.

신호탄과 연결되어 있던 초기의 크로노그래프. 21세기의 시간 계측기와 원리는 같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측정 장비에 한계가 있다면 인간의 최선과 최선의 결과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율미의 말은 오늘날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기계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겁니다. 크로노그래프가 있어도 사람은 실수를 하니까요.” 오늘날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손목시계의 발전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타임키핑이라는 부분에서 인간은 ‘더 정확한 기록’이라는 목표를 위해 당시의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게 시계 기술이 아니라 해도.

시간을 측정하는 첨단 기술은 시계 기술을 한참 넘어선다. 올림픽은 특정 기록이라는 절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운동선수가 참가한다. ‘잘했나’뿐만 아니라 ‘누가 더 잘했나’라는 상대적 기록도 중요하다. 율미는 그 부분에서 혁명적인 발전을 이룩한 기계 앞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가장 작은 기내용 여행 가방만 한 검은색 기계가 삼각대 위에 놓여 있었다.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과 런던 하계올림픽(1988년까지 동계올림픽과 하계올림픽이 같은 해에 열렸다)에서 쓰기 시작한 포토 피니시였다. 올림픽에서 이때부터 사진 판독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였다.

초기의 포토 카메라. 1등의 기록과 상대적 순위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 계측의 기본적인 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시간을 측정하는 첨단 기술은 시계 기술을 한참 넘어선다. 올림픽은 특정 기록이라는 절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운동선수가 참가한다. ‘잘했나’뿐 아니라 ‘누가 더 잘했나’라는 상대적 기록도 중요하다.

포토 피니시의 원리는 간단하다. 결승선이 카메라와 이어져 있다. 육상 기록의 정의는 ‘가슴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이다. 1등 선수가 가슴으로 결승선을 치고 지나가면 결승선과 연결된 카메라 셔터가 눌려 사진이 찍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최고 수준의 선수들은 거의 비슷한 결과를 낸다. 눈으로만 보면 누가 1등인지 알기 힘든 경우도 많다. 포토 피니시는 이럴 때 더 공정한 답을 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승선을 치지 못하는 2등, 3등은? “기록이 안 남는 거죠. 1등 기록만 남습니다. 그런 시대였어요.” 율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1등이 아니라면 기록도 남기지 못했던 1948년은 지금으로부터 딱 70년 전이다. 그동안 올림픽과 오메가와 타임키핑 기술은 각자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IOC는 상업성을 인류애로 포장하는 신들린 홍보 마케팅으로 올림픽을 세계 최고 수준의 스포츠 이벤트로 발전시켰다. 오메가는 쿼츠 무브먼트가 퍼지는 바람에 업계 전체가 망할 뻔한 상황에서도 위기를 극복하고 업계 최고 수준의 고가 시계 브랜드가 되었다. 그동안 타임키핑 기술 역시 엄청나게 발전했다. 기록이라고 하기도 머쓱한 숫자를 남기는 시대도,

1등의 정확한 기록만 남는 시대도 지나고 타임키핑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곳은 의외로 아주 깊은 산속에 있었다.

스위스 타이밍 CEO 알랑 조브리스트. 그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순수 기술 기업입니다.” 둥글둥글한 인상의 남자가 말했다. <프리즌 브레이크>에 나온 앤트워스 밀러를 닮았으나 심한 프랑스 억양의 영어를 썼다. 우리는 별 장식이 없는 접견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는 코르제몽, 비엘 시내 뒤로 거대하게 뻗은 유라산맥 초입에 있는 작은 동네였다. 여기에 스위스 타이밍 본사가 있었다. “스와치그룹 자회사 중 시계 제작과 아무 상관이 없는 유일한 회사예요.” 우리에게 말해준 남자는 스위스 타이밍 CEO 알랑 조브리스트였다.

스위스 타이밍은 굉장히 특이한 회사다. 조브리스트의 말처럼 스와치그룹 자회사 중 시계 제작과 아무 상관없다. 여기는 스포츠 타임키핑에 특화된 회사다. 올림픽뿐 아니라 시간 계측이 필요한 모든 종목의 모든 대회에 들어간다. 다만 그 타임키퍼의 브랜드만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 론진이 타임키퍼인 승마 대회와 티쏘가 타임키퍼인 모토 GP도 모두 실제로 일하는 인력은 스위스 타이밍 직원들이다. 코르제몽 본사 벽에 붙은 인포그래픽에 따르면 스위스 타이밍은 1년에 500개 이상의 스포츠 이벤트에 참가하고 1년에 120만km 이상 이동한다. 이 기업에도 올림픽은 가장 큰 이벤트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해요. 모든 선수가 결승선에 닿자마자 제대로 된 결과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모두에게 보여준다’는 건 미세한 사진 판독 과정이 빨리 끝나서 정확한 결과가 송출되는 걸 말한다. 여기서의 ‘빨리’란 평균 수 초, 송출 범위는 전 세계다.

오메가 박물관 직원인 율미도 신나게 보여줬는데 CEO는 자기 기술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조브리스트 역시 신나게 자기 회사의 최신 기술을 보여주었다. 최신 기술이라 해도 기본적인 뼈대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다. 출발 시간, 도착 시간, 절대 시간, 상대 시간. 말하자면 1948년의 포토 피니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만 순간순간의 정보량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정보가 양적으로 많아졌을뿐더러 질적으로도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대표적인 최신 측정 장비가 스캔-오-비전이다. 스캔-오-비전의 기본 개념은 1948년의 포토 피니시와 같다. 다만 스펙이 좀 다르다. 사실 엄청나게 다르다. 20배 광학 줌의 카메라가 2048픽셀 사이즈의 사진을 초당 1만 장 찍을 수 있다. 1/10,000초 단위의 시간으로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가려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스캔-오-비전으로 사진을 찍으면 해당 시간에 누가 도착했는지가 긴 파노라마 같은 사진으로 바로 뜬다. 100명이 동시에 들어오는 사이클 같은 종목에서도 1/100초 단위로 정확하게 우열을 매기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이걸 한 개만 다는 것도 아니었다. 한 곳에서만 찍으면 4명이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쇼트트랙 같은 종목에서 순위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 5개는 답니다.” 스캔-오-비전을 시연한 직원이 알려주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해요. 모든 선수가 결승선에 닿자마자 제대로 된 결과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모두에게 보여준다’는 건 미세한 사진 판독 과정이 빨리 끝나서 정확한 결과가 송출되는 걸 말한다. 여기서의 ‘빨리’란 평균 수 초, 송출 범위는 전 세계다. 누군가가 이겼네, 졌네 하면서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는 동안 스위스 타이밍의 프로페셔널 타임키퍼들은 고성능 카메라에 포착된 디지털 이미지를 확인해서 전 세계로 경기 결과를 쏘아 보내는 것이다.

타임키핑의 변치 않는 목표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절대 시간. 9초 89 같은 것. 하나는 비교 우위다. 이상화와 고다와라 중 누가 더 먼저 들어왔나 같은 것. 그런데 정확하게 시간을 재고 더 엄정하게 순위를 매기는 진보는 사실상 다 끝났다. 스캔-오-비전이 좋은 예다. 결과와 순위를 사진으로 판독하는 건 같으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정보의 양이 완전히 달라졌다. 1/10,000초 단위의 우열까지 가릴 수 있는 기기라면 이제 더 이상 무슨 진보가 필요할까 1948년 포토 피니시가 생긴 지 70년 만에 ‘시간 계측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사라졌다. 그럼 여기서 끝일까? 그럴 리가. 그런 자세로는 어디서도 살아남지 못한다.

본래의 목표를 달성한 스포츠 타이밍은 이제 시간 정보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선수의 실시간 데이터다. 원래 모든 올림픽은 최신 중계 기술과 시간 계측 기술의 장이다. 선수의 실시간 데이터라는 것이 타임키핑 부문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혁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선수 데이터는 또 둘로 나뉜다. 모션 센서를 통한 데이터 추출, 그리고 데이터 시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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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스포츠용 트랜스폰더. 스키 부츠에 끼우는 것, 스키에 붙이는 것.

요즘 기술의 가장 큰 경향은 센서다.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센서가 들어가서 온갖 데이터를 모은다. 심지어 올림픽 선수도. 동계올림픽 각 종목의 선수들은 작은 트랜스폰더(transponder, 중계기)를 차고 경기에 출전한다. 트랜스폰더의 크기와 모양은 종목마다 조금씩 다르다. 스키 부츠 뒤에 붙이는 초코바 모양의 트랜스폰더도 있고, 스키 플레이트 위에 붙이는 접시형도 있다. 트랜스폰더 안에는 모션 센서가 있어서 선수에 대한 다섯 가지 운동 데이터를 모은다. 자세, 움직임, 가속, 감속, 중력가속도까지. 스키 점프를 예로 들면 가속과 감속, 실시간 속도는 물론 스키가 벌어지는 각도 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집계된다.

모인 데이터는 쓰여야 의미가 있다. 선수라는 데이터는 어떤 형태로 출력될까? 이 출력물이야말로 개인적으로 꼽는 이번 올림픽의 백미다. 각 트랜스폰더가 입수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중계 영상에 뜬다. 아까 예로 든 스키 점프의 경우엔 해당 선수가 점프한 순간의 속도와 거리가 테슬라의 속도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심지어 왼발과 오른발의 스키 각도까지 별도의 그래픽으로 표시된다. 당신이 남자라면 여기서 뭔가를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거다. 사람의 몸 주변에 방금 기록에 대한 컴퓨터 게임 같은 영상이 표시되는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로.

조브리스트는 장담했다. “라이벌이 있겠죠. 하지만 시간과 점수를 정확하게 재고, 거기서 파생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 모든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타임키핑 회사는 우리뿐입니다.”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상황에 대해서도 자신만만했다. 지금 한국은 엄청나게 춥다. 건전지로 움직이는 트랜스폰더가 꺼지는 건 아닐까. 조브리스트는 답했다. “맞아요. 추운 날씨에서는 꺼질 수 있죠. 우리는 영하 50도부터 영상 100도까지 테스트했습니다.” 실시간으로 그렇게 데이터가 많이 오가면 해킹 가능성은 없을까? “아니요. 우리의 네트워크는 꽉 막혀 있습니다. 주파수 대역을 바꾸기도 해요.” 하긴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비싼 값을 받는 게 스위스 스타일이다.

이제는 스포츠에서 스타팅을 할 때 실제로 총을 쏘지 않는다. 빨간 e-건을 누르면 스피커에서 총소리가 난다. 그때부터 스위스 타이밍의 프로그램이 집계를 시작한다.

“지금의 타임키핑은 기계식 시계 제작과 아무 상관이 없어졌어요.” 오메가 박물관에서 기계식 시계를 사랑하는 율미가 말했다. “마케팅이에요. 그룹에게 거대한 마케팅이죠.” 부정하기 힘든 말이다. 다만 마케팅 활동이라고 열심히 안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이미지가 걸려 있으니 엄정하게 잘해야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간다. 스캔-오-비전이나 트랜스폰더를 포함해 모든 측정 장비에는 오메가 로고가 박혀 있다.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면 오메가의 이미지도 실추된다. “우리에겐 진짜 역할이 있어요. 책임을 느낍니다. 실수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조브리스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시간이라는 조건은 같아요. 1분이 60개의 초로 나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죠.” 조브리스트는 참 말을 잘했다. 스위스 회사에서 사장이 되려면 말하기 시험이라도 봐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멋있는 말이 이어졌다. “그걸 재는 방식이 바뀐 겁니다. 1초나 1/100초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순간의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보여주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우리는 스위스 타이밍의 작은 접견실에서 나왔다. 벽에는 이들이 참여한 온갖 스포츠 이벤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1등을 하고 기뻐하는 선수들 곁에 타임키퍼의 로고가 꽤 많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시계 브랜드가 기억되겠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한 마케팅이다.

조브리스트를 포함해 300명의 타임키퍼가 곧 한국에 온다. 평창의 스타디움 곳곳에 스캔-오-비전 카메라를 설치하고 어딘가에 앉아서 사진으로 기록을 판독해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30년 전 서울에서 했던 것처럼.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컴퓨터 기반 타임키핑이 이루어진 첫 대회이기도 했다.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금, 오메가는 평창을 무대로 센서 기반의 최신형 데이터 시각화를 보여줄 준비를 마쳤다. 스위스 타이밍 현관에서 조브리스트가 인사를 건넸다. “평창에서 봅시다.” 그러게요. 평창에서 봅시다. 따뜻하게 입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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