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볼드 앤 피어리스

21세기의 산토스 듀몽들이 샌프란시스코의 까르띠에 소셜 랩에 모여 혁신을 말했다.

“SNS에 포스팅하지 말고 직접 행동하세요. SNS에 포스팅하는 건 행동이 아닙니다. 진짜 행동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프리브 브라두가 외쳤다. 모두의 손가락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다들 이 순간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멜라니 로랑도 말했다. “소셜 네트워크가 진짜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어요.” 브라두가 따끔하게 말했다. “테슬라 전기차를 몰면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는 건 모순 아닌가요?” 로랑이 덧붙였다. “배우인 제가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두들 시간 낭비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지구 환경에 무관심하다는 건 자기 삶에 무관심하다는 뜻 아닐까요?” 클로드 그뤼니츠키가 말했다. “해시태그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의 행동이죠.”

#소셜랩

과감했다. 두려움도 없었다. 세 사람은 청중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쏟아냈다. 지난 4월 4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AT&T 파크와 아름다운 베이 브리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피어48에서 까르띠에가 주최한 소셜 랩이 열리고 있었다. 까르띠에는 과감하고 두려움 없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혁신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선택받은 청중 앞에서 서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게 배려했다. 그걸 ‘소셜 랩’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전에 짠 각본 같은 건 없었다. 정해진 결론도 없었다. 토론자와 청중이 스스로 토론을 창조해나가길 바랐다. 까르띠에야말로 진정 과감하고 두려움 없이 소셜 랩을 기획했다.

각본도 없고 결론도 없었지만 주제는 있었다. 알베르토 산토스 듀몽이었다. 산토스 듀몽은 20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혁신가였다. 그의 시선은 창공에 꽂혀 있었다. 무려 22가지에 이르는 비행체를 개발했다. 그중에는 오늘날 헬리콥터의 원형도 있었다. 산토스 듀몽은 당대 혁신가들과 교류했다. 루이 까르띠에와 쥘 베른, 구스타프 에펠 같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산토스 듀몽은 루이 까르띠에와 세계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오늘날 산토스라고 불리는 까르띠에 남성 시계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시계를 손목 위에 차고 다니게 만든 게 두 남자다. 산토스 듀몽과 루이 까르띠에가 없었다면 최첨단 시계라는 스마트워치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두 남자는 시계의 역사와 세상의 모습을 바꿨다.

소셜 랩이 알베르토 산토스 듀몽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까르띠에는 소셜 랩에서 산토스 듀몽의 본질적 정신이 재해석되기를 원했다. 과감함과 두려움 없음 말이다. 이 시대의 산토스 듀몽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들이 어떻게 과감하고 두려움 없이 세상을 혁신해나가고 있는지를 묻고 답하고 들었다. 혁신가들이 산토스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이고 서로 네트워킹할 수 있기를 원했다. 누구도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산토스 듀몽이 루이 까르띠에와 함께 산토스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소셜 랩은 그런 자리였다.

4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열린 소셜 랩에는 아티스트, 배우, 음악가, 기업가, 경영 구루, 셰프, 건축가, 환경운동가, 사진가, 서퍼, 산업 디자이너까지 여러 분야의 혁신가들이 모였다. 모두가 과감하게 자신의 분야를 혁신해나가는 21세기의 산토스 듀몽이었다.

 

#미래

프리브 브라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브라두는 블루오크의 공동 창업자다. 블루오크는 버려진 전자 제품에서 산업용 금속을 채취해 재활용하는 이웨이스트(eWaste) 리사이클링 스타트업이다. 브라두는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두려움 없이 블루오크의 투자 설명을 이어가서 주목받았다. 다보스 포럼의 영 글로벌 리더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브라두는 창업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 앞의 장애물에 대해 충분히 이성적으로 고민한 다음 그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완벽하게 비이성적으로 믿어버리는 것.” 브라두 앞에는 배우 멜라니 로랑이 앉아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배우다. 정작 로랑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만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대중에게 과감하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감독이 됐고 환경운동가가 됐다. 환경 다큐멘터리 <내일>을 연출했다. 클로드 그뤼니츠키는, 말하자면 현실 세계의 ‘블랙 팬서’ 같은 인물이다. 그뤼니츠키는 토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큰아버지가 토고의 대통령이었다. 그뤼니츠키는 그런 특권을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트레이스>라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문화가 융복합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묶어내는 매거진이었다. 매거진 <트레이스>는 TV로 확장됐다. 지금은 서구 금융 국가나 아시아 산업 국가 모델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국가만의 독자적인 발전 모델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과감한 도전이다.

이렇게 두려움 없는 세 사람이 마주 앉았으니 과감한 발언이 쏟아진 것도 당연했다. 100년 전 산토스 듀몽과 루이 까르띠에의 대담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들은 소수 정예의 청중 앞에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브라두가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과거의 리더들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렇게 시작된 미래의 리더십에 대한 토론은 <아큐파이 월 스트리트>부터 영화 속 히어로들에 이르기까지 수만 가지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어졌다. 이렇게 지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필연적 통찰과 우연한 영감이 넘쳤다. 청중은 대화 속에 흩뿌려진 단서들을 주워 담기에 바빴다.

 

#실패

소셜 랩에서는 이런 토론이 수시로 벌어졌다. 사흘 동안 모두 10개의 세션이 열렸다. 저마다 다른 혁신가들이 저마다 다른 조합으로 모여 앉아서 저마다 다른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멜라니 로랑과 프리다 핀토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놀랍도록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핀토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성공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됐다. 하지만 정작 핀토는 그 이후 딜레마에 빠졌다. 모두들 핀토가 전형적인 인도계 캐릭터를 연기하기만을 원했다. 핀토가 차기작에서 실패하자 그동안의 관심은 차디찬 비판으로 변했다. 핀토는 말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작은 실패도 큰 실패로 포장됩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의 성공과 실패를 나라는 인간의 성공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로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가 실패하면 사람들은 배우를 먼저 탓하죠. 영화가 성공하면 사람들은 감독부터 칭찬해요.” 두 여배우는 입을 모아서 말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일자리를 얻는 데 거듭 실패하는 구직자와 같아요. 그래서 캐스팅에 거절당했다고 해서 그걸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혁신

건축가 마얀송과 산업 디자이너 이브 베하와 조명 디자이너 레오 빌라렐의 3인 토크는 이번 소셜 랩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건축가 마얀송은 캐나다 미시소가에 앱솔루트 타워를 설계했다. 굽이치는 건물의 곡선이 메릴린 먼로의 자태 같다고 해서 메릴린이라고 불리는 쌍둥이 초고층 빌딩이다. 조명 디자이너 레오 빌라렐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리지를 LED 조명으로 장식한 주인공이다. 베이 브리지의 경관 조명은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브 베하는 우리에게는 삼성전자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다. 세 사람 모두 천박한 물질주의와 간사한 상업주의에 맞서 도시를 지키는 과감하고 두려움 없는 디자인 히어로들이다. 마얀송은 동양적인 산수성시를 자신의 건축 철학으로 삼았다. 인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를 말한다. 앱솔루트 타워의 곡선은 직선으로만 이뤄진 꽉 막힌 대도시에 조화를 이끌어낸다. 빌라렐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에 빛을 더했다. 베하는 자칫 의식 없이 대량생산될 수 있는 공산품들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도시 생활의 디테일을 바꾸고 있다. 세 사람은 소셜 랩에서 도시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마얀송은 말했다. “건축은 제2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도시 역시 대자연처럼 우리 삶의 일부여야 합니다. 도시는 인간에게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듯이 현대인은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하는 말했다. “도시의 모든 변화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 기술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이해하려고만 하기보다는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빌라렐은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어느 누구도 ‘노’라고 하지 않습니다. 변화에 매우 개방적입니다.” 마얀송은 덧붙였다.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도시의 변화는 도시 공동체의 주도로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도시의 변화가 누구의 주도로 이뤄지든 미래 도시의 모습은 에너지부터 환경까지 고려한 지속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는 겁니다.”

 

#변화

소셜 랩에서 모두가 공부만 했던 건 아니다. 소셜 랩 한편에는 거대한 주방이 마련돼 있었다. 앨리스 워터스의 주방이었다. 워터스는 미국인의 식탁을 바꿔놓은 혁명가로 불린다. 그는 1971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레스토랑 셰 파니스를 열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놓아서 지역의 유명 인사가 됐다. 앨리스 워터스가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된 건 학교 급식 프로그램인 ‘학교 텃밭 먹거리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부터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유기농 먹거리를 먹이자는 운동이었다. 워터스가 주도한 바른 먹거리 운동은 미국 전역의 5000개 학교에서 받아들였다. 워터스는 그렇게 과감하게 세상을 바꿨다. 이제 워터스가 직접 해주는 요리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워터스는 셰프보다는 사회운동가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르띠에 소셜 랩은 워터스가 직접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토스맨 배우 유아인도 워터스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유아인도 요리를 좋아한다.

워터스의 식탁 위에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지도가 놓여 있었다. 오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식재료가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지를 알려주는 푸드 맵이었다. 워터스가 말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고장의 식재료를 맛보는 것이죠. 우리 고장의 물과 토양이 우리의 몸과 영혼을 만든 것이니까요.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느껴보세요.” 워터스는 유달리 유아인에게 관심을 가졌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엄마처럼 다정하게 자신의 요리를 설명해줬다. 대지의 꽃과 줄기가, 바다의 굴과 농장의 푸아그라가 차례로 식탁 위에 올라왔다. 워터스가 말했다. “맛보세요. 우리 스스로 지구 위의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줄 겁니다.” 워터스는 ‘학교 텃밭 먹거리 프로젝트’를 이끌 때 텃밭에서 키운 주요 식재료였던 담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려 22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아이들이 한 학교를 다녔어요. 그들 모두가 다 함께 담황을 먹었죠. 그렇게 하나의 대지에서 함께 자라났던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베리 맥기는 아주 수줍은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불법과 탈법을 오가며 샌프란시스코의 거리 풍경을 바꿔놓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낯을 가렸다. 맥기만큼 샌프란시스코의 정신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사실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까르띠에가 왜 산토스 소셜 클럽을 구태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었는지. 까르띠에 관계자가 말했다. “알베르트 산토스 듀몽의 고향인 브라질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의 선택은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여야만 했습니다.” 맥기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유진주와 마주 앉았다. 그는 조용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평생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유분방한 도시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어요. 샌프란시스코가 혁신의 도시가 된 건 두려움이 없고 과감한 도시 특유의 힘 때문입니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는 인터넷과 음악과 예술의 도시가 됐죠. 특히 샌프란시스코에는 성난 무정부주의자 같은 청년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저도 그중 하나였고요. 기존의 상식과 관념에 저항하고 반응하고 행동하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죠.” 샌프란시스코는 분명 혁신의 메카다. 맥기의 그래피티들은 그런 샌프란시스코의 두려움 없고 과감한 정신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특이점

까르띠에의 소셜 랩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10번의 세션이 열렸다. 그동안 단 한 사람도, 단 한 번도 까르띠에나 산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소셜 랩은 결코 산토스를 홍보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산토스라는 제품을 홍보하려 했다면 이렇게 모으기 어려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필요가 없었다. 광고 한 번, 행사 한 번이면 족했을지도 모른다. 까르띠에는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느껴주기를 바랐다. 모두가 느낄 거라 믿었다. 까르띠에 하우스를 관통하는 산토스 정신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라는 혁신의 도시에 배우 이드리스 엘바와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라샤펠, 비디오 아티스트 알렉스 프레이저, 장애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모델 겸 스포츠 스타가 된 에이미 뮬랑을 모아서  대화하게 만든 이유였다.

까르띠에의 시도 자체가 과감하고 두려움 없는 도전이고 혁신이었다. 가장 세련된 시도였다. 덕분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 숱한 혁신의 영감들이 뿌려지고 흩어졌다. 어쩌면 이번 소셜 랩을 통해 이어진 사람들이 장차 새로운 혁신의 도전을 함께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날 얻은 영감으로 누군가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세상을 바꿔나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까르띠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회적 역할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산토스 정신을 지켜내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었다.

소셜 랩 마지막 날에는 스튜어트 브랜드와 케빈 켈리의 대담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경영 구루라고 불리는 현자였다. 두 사람은 함께 발행인과 편집장으로 매거진 <홀 어스 카탈로그>를 창간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얘기한 “계속 바보 같고 계속 배고프라”는 조언은 <홀 어스 카탈로그> 마지막 호에 나온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의 필독서였다. 두 사람은 말했다. “세상의 변화는 독특한 특이점에서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런 혁신의 특이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 특이점이 새로운 세상의 시작입니다.” 어쩌면 까르띠에의 산토스 소셜 랩도 그런 특이점이었다. 그렇게 산토스의 특이점에서 새로운 미래가 흩어졌다.

 

BOLD AND FEARLESS SANTOS PARTY 

소셜 랩 둘째 날 저녁에는 새로운 산토스의 론칭 파티가 열렸다. 피어48 선착장은 하룻밤 동안 강렬하고도 격렬한 파티장으로 변신했다. 글로벌 산토스맨 제이크 질런홀과 한국의 산토스맨 유아인이 나란히 파티장을 수놓았다. 슈퍼스타 DJ 제이미 XX가 과감한 음악으로 파티장을 가득 채웠다. 프랑스 얼터너티브 록 밴드 피닉스의 콘서트가 두려움 없이 밤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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