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추억’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추억을 팔려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한다.

볼록 튀어나온 헤살라이트 글라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 워치의 표식. 아주 약간 누런빛이 도는데, 사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와 비교하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쉽지 않다.

케이스 위로 볼록하게 솟은 유리가 보인다. 요즘 저렇게 시계 케이스 밖으로 유리를 튀어나오게 마무리한 시계를 보기는 쉽지 않다. 자세히 보면 저 유리는 다른 시계의 유리에 비해 아주 조금 뿌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유리 소재의 이름은 헤살라이트 글라스다. 한국어로는 운모 유리라고 한다. 헤살라이트 글라스는 아크릴의 일종인 구식 유리 기술이다. 요즘의 거의 모든 시계는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라고 부르는 유리를 쓴다. 헤살라이트의 장점은 충격에 조금 더 강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는 (유리니까) 파편을 일으키며 깨진다. 반면 헤살라이트 글라스는 완전히 쪼개져도 파편이 생기지는 않는다.

단점도 있다. 거의 모든 시계 브랜드가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헤살라이트 글라스는 긁힘에 약하다. 더 많이 잘 긁힌다. 어디까지나 둘을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인데 투명도도 떨어진다. 둘 다 비춰보면 헤살라이트 쪽이 미세하게 노란빛을 띤다. 그래도 이 시계는 여전히 헤살라이트 글라스를 쓴다.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문 워치의 뒷면. 이 문구를 적어둘 수 있는 시계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중에서도 프로페셔널 문 워치뿐이다.

백케이스라고 부르는 시계 뒷면도 이 시계는 조금 다르다. 요즘 거의 모든 기계식 시계는 백케이스를 유리로 처리해 뒤를 보여준다. 기계식 시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냥 마케팅 포인트다. 무브먼트의 표면 처리가 시원찮은 저가 기계식 시계도 뒤를 보여주니까. 이 시계 안에 있는 무브먼트가 별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요즘 보기 힘든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다. 구조만 놓고 봤을 때는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시계는 그 아름다운 무브먼트를 안 보이게 해뒀다.

왜 이 시계는 요즘 시계가 하지 않는 방식을 고집할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시계 뒤에 쓰인 말이 실마리다. 스피드마스터를 상징하는 해마 위로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사의 모든 유인 우주 작전에서 비행 검증을 완료함.” 아래로는 더 확실한 선언이 있다. “달에서 착용한 최초의 시계.” 그 아래에 이 시계의 공식 이름처럼 되어버린 별명이 보인다. “프로페셔널 문 워치.”

이 시계의 이름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문 워치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달에 다녀온 시계이기 때문이다. 오메가가 헤살라이트 글라스나 스틸 케이스백 옵션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이유 역시 같다. 이때의 스펙이 달에 갔던 그 시계의 스펙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다.

오메가의 라인업을 생각한다면 이건 더 놀라운 일이다. 오메가와 더불어 스위스 시계업계 최고의 플레이어인 롤렉스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롤렉스의 라인업이 애플 앱스토어라면 오메가의 라인업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다. 다양한 대신 일관성이 떨어진다. 본사에서 이 많은 시계 라인업을 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사실은 이 시계 역시 비슷한 라인업이 여섯 개나 있다. 가죽 줄과 브레이슬릿 버전에 따라서, 똑같은 디자인인데 케이스백이 유리인지 스테인리스스틸인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원형의 문 워치 스펙에 가장 근접한 건 이 시계다.

오메가가 달로 간 배경은 냉전 시대였다. 1950년대부터 소련과 미국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었다. 우주 개발 경쟁은 실질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우주 개발은 로켓 기술 발전인 만큼 ‘내가 너희 본토에 이걸 쏴 보낸다’라는 무력 시위 경쟁이었다. 아울러 인간을 우주로 보낸다는 판타지에 먼저 도달하는 올림픽 같은 경쟁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안에 있던 시계는 콕피트에 내장된 시계 하나뿐이었다. 하나뿐인 시계가 우주에서 고장 나면 곤란하다. 그래서 나사는 일종의 비공개 우주 손목시계 오디션을 시작했다.

오디션은 아주 혹독했다. 총 11개 항목의 기록 중 만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71℃에서 48시간, 93℃에서 30분을 두는 고열 테스트. 0℃에서 4시간을 두는 저온 테스트. 71℃에서 0℃까지 45분씩 돌려보는 사이클 테스트.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습도 95%에서 20℃부터 71℃까지 250시간 동안 테스트하는 습도 테스트. 산소 농도 100%와 0.35atm의 저기압 상황에서 48시간 견디는 테스트. 다른 방향에서 다양한 강도의 압력을 가하는 테스트. 저압과 고압 테스트. 30분 동안 최고 2000Hz에 달하는 진동을 가하는 진동 테스트까지 합격해야 했다.

일부러 떨어뜨리려 하나 싶을 정도로 혹독한 테스트였으니 많은 시계가 탈락했다. 롤렉스 크로노그래프는 습기 테스트에서 불합격되고 고열 테스트에서는 바늘이 녹아내렸다. 론진도 여러 차례 글라스가 녹았다. 해밀턴은 처음부터 회중시계를 보내와서 바로 제외되었다고. 이 혹독한 테스트에서 살아남은 시계는 하나뿐이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였다. 이때는 달에 안 갔으니 문 워치라는 이름도 없었다.

장사 면에서 봤을 때 좋은 이야기는 영원한 매출의 샘이다.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수록 상품의 가치가 높아지고 제품의 수명이 길어진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시계 회사들이 유명인과 협업한 시계를 만들고 어떤 재단을 후원하고 역사 속의 자사 시계를 찾아내어 어떻게든 알리려는 이유는 결국 하나뿐이다. 좋은 이야기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럴듯한 이미지로 팔리는 것.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달에 갔다. 기계식 시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광스러운 에피소드다. 그 비결은 아무것도 없다. 마케팅 예산도 한 푼도 안 썼다. 튼튼한 시계를 만들었을 뿐이다.

1969년 1월 21일, 인류가 처음으로 달 표면을 밟은 날이었다. 사실 “제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한 걸음입니다”라고 말한 닐 암스트롱은 시계를 차지 않았다. 그 바로 뒤로 내려온 버즈 올드린의 왼쪽 손목에 스피드마스터가 감겨 있었다. 1인당 하나씩 시계가 지급되었는데 바깥으로 나가는 두 명이 모두 시계를 찼다가 고장이 나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메가 문 워치를 굳이 엄밀히 말하면 ‘인류 중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딛은 사람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다. 그러거나 말거나 처음으로 달에 간 시계지만.

대형 시계 브랜드가 케이스 표면을 마감한 솜씨는 정말 훌륭하다. 폴리싱과 브러싱의 완성도와 밸런스, 태키미터 스케일의 미세하면서도 정확한 인쇄. 확대해서 봐도 실수가 없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계에 그때의 디테일이 모두 들어 있다. 처음에 묘사한 구식 디테일은 모두 그때 그 시계의 재현이다. 헤살라이트 글라스. 막혀 있는 백케이스. 오메가 특유의 넓고 뾰족한 시침과 분침인 브로드 애로 대신 쓰는 가는 시침.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

이 모든 디테일이 오메가의 비석이다. 오메가 판 진흥왕 순수비다. 기계식 시계 역사상 최고의 마케팅 이벤트가 발생하던 그 순간에 오메가가 지금 바로 그 시계로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하나도 안 변한 물건을 만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세계가 계속 달라지므로 어떤 물건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물건이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절대 스펙 역시 그렇다. 시계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 워치를 그 시간에 잡아두고 있다.

플레이스토어라고 표현한 오메가의 복잡한 라인업이 문 워치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스피드마스터 라인업이 워낙 많고 난잡하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변한 모델을 하나씩 남겨둬도 브랜드에 고루한 이미지가 생기지 않는다. 오메가라는 특수한 대형 브랜드에서만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사에는 “이기고 있는 팀을 바꾸지 말라”는 금언이 있다. 그래서 오메가는 그 이후에도 여섯 번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적도 있다. 영화화되기도 한 아폴로 13호 미션에서였다. 아폴로 13호 탐사선의 산소 탱크가 폭발해 안에 있던 잭 스와이거트는 궤도를 수정해야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궤도를 수정하려면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다. 그때 의지할 수 있었던 시간 계측기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뿐이었다. 스와이거트의 오메가는 정확했다. 탐사선은 무사히 돌아왔다. 오메가 덕에 우주 비행사가 살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사는 감사의 뜻으로 오메가에 또 하나의 소중한 마케팅 상징물을 주었다. 스누피 그림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스누피 그림은 우주 개발에 공헌한 업체와 개인에게 나사가 공식적으로 수상하는 ‘스누피 어워드’의 표식이다. 그 이후로 오메가는 몇 년에 한 번씩 꾸준히 스누피 에디션 스피드 마스터 문 워치를 출시한다. 대부분 나오자마자 매진되고 프리미엄이 붙는다. 은혜 갚은 까치 같은 이야기다.

시계를 비롯한 모든 애호는 궁극적으로 팬 문화다. 아무리 멋진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시계를 그 이야기에 걸어둬도 사람들이 매료되어 모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시계는 본사에서 만들 수 있는 행사가 적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탈 수 있다. 오디오로는 음악을 듣고 카메라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해당 기계를 통해 기계의 매력을 느끼는 것 말고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본사나 판매사가 이벤트를 만들기도 쉽다. 반면 시계로 할 수 있는 건 차서 시간을 보는 것(과 은근히 자랑하는 것)밖에 없다. 시계 안에는 작은 개조부터 대대적인 수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취미가 있지만 그런 건 규모도 작을뿐더러 본사에서 좋아하는 이벤트도 아니다.

스피드마스터 문 워치라는 아이콘 역시 팬들이 만들었다. 물론 오메가가 시계를 만들고 나사가 그 시계를 채워서 사람들을 달로 보냈다. 하지만 이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계속 즐긴 건 결국 시계 애호가들이다. 팬들이 ‘문 워치 신화’를 계속 유지하고 보수하며 어떤 물건을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가장 극적인 경우가 스피드마스터에 끼우는 나사 나토 스트랩이다. 우주복은 두꺼웠기 때문에 나사는 오메가의 브레이슬릿을 떼고 별도 규격의 아주 긴 나사 나일론 스트랩을 장착했다. 그때 그 사양의 스트랩을 그대로 재현해서 파는 사람이 있다. 이름도 안 밝히고 스스로를 ‘40년 동안 스피드마스터를 가져온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아폴로 프로그램에 쓰인 거랑 똑같은 스트랩을 쓰면 쿨할 것 같아서’ 스트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블로그에서 그 스트랩에 대한 나사 규격 문서를 본 후 군 장비 스펙 수준의 나일론과 벨크로를 구해서 똑같은 스트랩을 만들었다. 세상에 나토 스트랩은 많다. 오메가 문 워치를 사도 하나 들어 있다. 하지만 나사 기준과 100% 일치하는 스트랩을 만드는 사람은 이 개인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물건을 둘러싼 문화를 만든다.

오메가에게 달은 영원한 영광의 에피소드다. 혹독한 테스트를 견디는 시계를 만들었다. 그 시계의 원형을 50년이 지난 후에도 바꾸지 않았다. 사람은 물건을 만든다. 시대가 그 물건을 고른다. 물건이 들어간 이야기가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와 물건을 계속 쓰면서 신화에 살을 붙인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 워치는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순환되는 이야기의 구심점이다. 사람과 이야기와 물건과 소비로 이어지는 그 선순환은 모든 기업의 소원이기도 하다. 그 꿈 같은 순환을 위해 오메가가 한 일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좋은 시계를 만든 것. 그 시계의 원형을 유지한 것. 나사의 금언과도 일치한다. 이기는 팀을 바꾸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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