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손목과 시계

까르띠에가 산토스로 그 둘을 만나게 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두 쇳조각 사이의 틈에서부터 시작한다. 원래는 스트랩이 끼어 있어야 할 빈자리다. 이 부분을 ‘러그(lug)’라고 부른다. 손목시계의 케이스 위로 조금 돌출되어 시계와 시곗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시계 디자인에서 러그의 역할은 아주 크다. 우선 미적으로. 러그의 실루엣이 베젤과 함께 디자인 전체를 결정한다. 러그는 착용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러그를 잘못 디자인하면 시계가 손목에서 헛돌 수도, 각진 러그가 손목에 닿아 아플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산토스에서 러그는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신형 산토스는 뒤편의 스위치를 누르면 간단하게 스트랩을 교체할 수 있다. 2018년형 산토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스트랩뿐 아니라 브레이슬릿 역시 똑같은 원리로 교체가 가능하다. 체결되는 느낌도 무척 좋다.

산토스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러그의 폭이다. 러그의 폭은 곧 시곗줄의 폭을 의미한다. 왼쪽과 오른쪽 러그의 폭에 따라 스트랩의 폭이 결정된다. 2018년 현재 보통 요즘 남성용 시계의 러그 폭은 20mm 안팎이다. 파네라이나 브라이틀링의 대형 모델 같은 건 26mm 정도로 넓기도 하다. 지금 보이는 까르띠에 산토스의 러그 사이즈는 아주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첫 산토스가 나왔던 1904년 당시 이런 러그 사이즈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러그 폭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산토스 디테일의 핵심이 러그이기 때문이다. 당시 산토스의 가장 혁신적인 디테일은 러그와 스트랩의 폭 그 자체였다. 산토스는 세계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산토스 이전에도 남성용 손목시계는 있었다. 하지만 산토스가 최초인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그 최초의 디테일 중 하나가 바로 러그의 폭이다.

왜 산토스 전의 남성용 손목시계는 러그 폭이 좁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남성용 기계식 시계라는 것이 손목에 차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옛날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듯 당시 남성용 시계는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옷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었다. 남성용 시계는 손목에 차는 것이 아니라 시곗줄에 매달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기계였다. 주머니에 넣는 시계라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그때의 흔적 기관이 아직도 남자 옷에 남아 있다. 청바지 옆에 달린 작은 주머니나 양복 조끼 앞쪽의 얕은 주머니 이름이 ‘워치 포켓’이다. 여기가 남성용 시계를 넣던 자리다.

질문을 이어나가보자. 왜 남자들은 시계를 손목에 차지 않았을까? 시계가 복잡하고 예민한 기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인간의 손목 위는 기계에 매우 가혹한 환경이다. 엔진 등의 기계장치 중 인간의 손목시계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빠짐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건 많지 않다. 자동차나 비행기의 엔진은 큰일이 나지 않는 한 상하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게 전부다. 지금도 기계식 시계는 정확도를 테스트할 때 여섯 가지 방향으로 둔 상태에서 각각 정확성을 확인한다. 기계의 안정적 운용이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 손목 위가 비효율적인 위치인 건 맞다.

기계의 효율보다 앞서는 게 고객의 편의다. 손님이 원한다면 뭐든 해주는 게 상업의 세계다. 반대로 손님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상업의 세계다. 남성용 손목시계가 퍼지지 않았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의 인식이다. 지금 대부분의 남자들이 치마나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처럼 당시의 서양 남자들은 손목에 시계를 차지 않았다. 그때는 ‘시계는 남자 손목에 차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지금이야 손목에 시계를 차는 게 당연하니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안 하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남자 손목에 시계를 차는 인식이 안 생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손목시계가 여성용 액세서리였기 때문이다. 산토스는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이지 최초의 손목시계는 아니다. 기록이 남아서 알려져 있는 최초의 손목시계는 모두 여성용 시계다. 최초의 여성용 손목시계는 모두 장신구 성격의 액세서리였다. 보석 팔찌 안에 시간을 보여주는 기계가 들어 있는 셈이었다.

여성용품이었던 손목시계를 남성용품으로 돌린 계기는 전쟁이었다. 현대전을 수행하면서 남자들은 시간을 바로바로 알아야 했다. 기계의 기능이든 사람의 인식이든 목숨만큼 귀하지는 않은 법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시계를 매달고 보기에 가장 편리한 신체 기관은 역시 손목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했을 때 초기의 남성용 손목시계는 지금의 군용 배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미군의 전투 배낭에는 물통과 빨대가 달려 있어서 행군하는 중에도 손을 쓰지 않고 물을 마실 수 있다. 지금 청담동에서 전투 배낭을 매고 다니면서 물을 마신다면 보통 사람 취급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초반에는 남자의 손목시계가 그런 물건이었다.

전쟁 시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가 까르띠에 산토스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분야의 경쟁자는 지라드 페리고다. 1879년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1세가 시계 제작자 콘스탄트 지라드에게 해군용 손목시계를 주문했다. 최초의 산토스가 나오기 25년 전이다. 이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계 다이얼 부분에 감옥의 창살 같은 쇠 격자가 쳐져 있다. 군용 시계인지라 충격에 강해야 하는데 당시의 유리는 충격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산토스가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가 아닌 건 아니다. 지라드 페리고의 해군용 손목시계는 일반 판매가 되지 않았다. 즉 민간에 판매한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는 역시 산토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지라드 페리고의 군납 손목시계 역시 러그의 폭이 좁았다. 결국 문제는 러그의 폭이다. 대체 러그 폭이 뭘 뜻하길래?

산토스의 폭 넓은 러그가 의미하는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안정성이다. 러그의 폭이 넓어야 폭 넓은 스트랩을 끼울 수 있다. 폭 넓은 스트랩을 끼워야 스트랩과 케이스가 튼튼하게 체결된다. 스트랩과 케이스가 튼튼하게 체결되어야 시계가 사람의 손목에 튼튼히 감긴다. 기존의 손목시계는 회중시계에 임시방편으로 좁은 러그를 만들어 붙인 개념이었다. 반면 까르띠에 산토스는 남자의 손목에 감기 위한 전용 케이스였다. 그렇게 보면 산토스의 러그는 고프로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고프로는 카메라 성능이 아니라 카메라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카메라를 붙이는 곳에 단단하게 체결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부등식으로 만들면 ‘하우징>카메라’다. 카메라의 기능만큼이나 카메라의 안정적 고정도 중요하다. 산토스도 마찬가지로 ‘케이스>시계’인 셈이다.

“산토스 뒤몽의 손목시계는 사실상 팔찌나 다름없는 외관을 감추려고 애쓰지 않은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였다.” 바로 이거다. 귀금속 전문가 에이자 라이덴은 <보석, 천 개의 유혹>에서 산토스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 말대로 산토스 손목시계는 굉장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회중시계에 선심 쓰듯 좁은 러그를 달고 스트랩을 매달았던 극초반의 손목시계에 ‘손목에 단단히 체결되는 기능성 기계’라는 디자인 언어를 제안한 것이다. 이 발상의 전환을 한 사람이 루이 까르띠에와 산토스 뒤몽이었다.

질문을 하나만 더 해보자. 발상의 전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원래 사람의 생각이란 비슷해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행동을 하기도 쉽다. 전구와 비행기가 처음 나올 때도 몇몇 지역에서 비슷한 경쟁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발상의 전환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세상에 허락을 받는 조건은 무엇일까?

산토스의 측면. 살짝 측면을 굴린 러그 덕분에 찼을 때 착용감이 좋다. 저렇게 미세한 디자인 디테일이 막연하지만 좋은 느낌을 만든다.

산토스의 경우에는 확실한 기능적 이유가 있었다. 시인성과 편리성이다. 1904년과 2018년은 비행의 성격 자체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100년 전의 비행기 조종은 1만m 안팎의 대류권에서 움직이는 지금의 비행기 조종과 전혀 달랐다. 당시의 비행은 GPS가 아니라 실제 지형지물을 보면서 운전했다는 점에서 자동차나 요트 운전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시간을 봐야 한다면 정말 후딱 봐서도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여야 했다. 시간을 보겠다고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건 운전 중의 스마트폰 사용보다 더 위험했다.

하지만 어떤 물건이 보급되는 데에 기능적 우위가 전부는 아니다. 특히 몸에 걸치는 의복과 장신구가 보급되는 데에는 기능보다 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자신감이다. 시장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든 사람도, 그걸 굳이 구해서 쓰는 손님도 모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최근 별세한 <파이낸셜 타임스>의 전설적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탕도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산토스 주변에는 바로 그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최고의 보석 제작자였던 까르띠에가 자신 있게 전에 없던 카테고리의 기계를 만들었다. 당시 모두의 사랑을 받던 영웅적인 남자 산토스 뒤몽이 자신 있게 바로 그 기계를 착용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키노트를 하자 샌프란시스코의 테크 힙스터들이 떼 지어 아이폰을 산 것 같은 일이 100여 년 전 파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올해 또 새로 나온 산토스의 슬로건 중 하나는 ‘두려움 없음(fearless)’이다. 산토스 자체가 ‘두려움 없음’이었다.

114년이 지난 지금도 까르띠에와 산토스 뒤몽의 합작 같은 일이 반복된다. 셀러브리티와 자신감이 붙으면 새로운 카테고리의 물건이 나올 수 있다. 거의 완성된 고급 시계업계 대신 운동화업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에어 조던이다. 당시 신예 스타였던 마이클 조던을 위한 기능성 농구화가 에어 조던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21세기 초반에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 가장 전위적인 팝 음악계의 히어로인 카니예 웨스트는 자신의 취향과 자신감이 듬뿍 들어간 신발을 만들었다.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는 그렇게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산토스의 디자인 디테일은 이 사진처럼 일부만 찍어도 확연히 드러난다. 특유의 케이스 디자인, 폴리싱 처리한 베젤, 나사 장식.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까르띠에 산토스’라는 아이콘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지금의 산토스는 2세기 동안 까르띠에가 공들여 키워온 마이크로 브랜드다. 모든 고급 시계 회사가 까르띠에처럼 상징적인 시계를 잘 관리하지는 못한다. 위대한 유산을 내다 버리듯 해서 영광스러운 과거가 있었음에도 지금 산토스 같은 마케팅을 못 하는 곳도 많다. 산토스는 역사와 라인업을 잘 관리한 덕분에 114년 전에 첫 산토스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최신형 산토스를 만들어 팔 수 있다. 2095년에 맥스 95 100주년 한정판이 나올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신형 산토스에도 까르띠에만의 것이 그대로 스며 있다. 까르띠에만의 것이란 디자인 언어이기도 하고 원숙한 금속 세공 기술이기도 하다. 사각 형태이면서도 베젤과 러그에 곡선을 양껏 도입한 케이스 디자인, 브러싱과 폴리싱을 자유자재로 섞은 금속 세공 기술, 획은 가늘고 크기는 큰 까르띠에의 로마자 인덱스. 베젤의 디자인 포인트가 되는 나사 장식. 산토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산토스다’라고 할 만한 아이코닉한 디자인 요소들이다.

우연히도 신형 산토스의 혁신 역시 러그에 있다. 러그 뒤에 있는 버튼만 누르면 쉽게 스트랩을 떼어 다른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과 바꿔 낄 수 있다. 까르띠에는 맘에 드는 걸 바꿔 끼라는 듯 총 16가지 색상의 다양한 스트랩을 함께 출시했다. 스테인리스스틸 브레이슬릿 버전 산토스를 사면 가죽 줄을 하나 끼워 주기도 한다.

이건 고급 시계업계에 드리운 불경기와 관련된 혁신이다. 고가 시계업계는 포화에 이르고 있으며 시계업계는 각자의 방법으로 재빠르게 변화에 대응하는 중이다.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스트랩에서 두 가지 요소를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시계를 두 개 살 수는 없는 사람들에게 줄이라도 몇 개씩 팔겠다는 소망이다. 다른 하나는 체결 장치에 관한 특허를 출원해 외부 업체가 줄을 파는 걸 막겠다는 의지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이콘이 아니라 살아 있는 화석일 뿐이다. 까르띠에는 이야기를 지키고 물건을 가꾸며 산토스라는 미니 브랜드를 유지시켰다. 유지와 보수와 개선을 딱 적당한 정도로 진행하며 100년 넘게 물건의 매력을 지켜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고? 어떻게 되긴, 사고 싶어진다. 나온 지 100년 넘은 물건을 또 사고 싶어지게 만드는 거야말로 시계회사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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