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고급시계박람회 기념 시계 토크 1편

18개의 명품 시계 브랜드, 17개의 독립 시계 브랜드, 4일간의 일정, 고급 시계에 대한 이야기.

신기주(이하 신) SIHH가 뭔가요?
박찬용(이하 박) 살롱 인터내셔널 드 라 오트 오롤로제리(Salon International de la Haute Horlogerie)입니다.
신_ 무슨 말인가요? 오롤로지는 뭐예요?
박_ 프랑스어입니다. ‘고급 시계 국제 전시회’ 정도가 되겠네요.
신_ 그런데 고급 시계를 국제적으로 전시하는 곳은 바젤월드 아닌가요?
박_ 아, 좋은 질문입니다.
신_ 아유, 칭찬받으면 좋아.
박_ 시계업계에 큰 박람회가 두 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가 매년 1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SIHH고요, 3월 말에 열리는 게 바젤월드입니다. 둘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참가 브랜드 수입니다. SIHH가 참가 브랜드가 더 적어요.
신_ 몇 개인데요?
박_ 2018년 기준으로 ‘엑지비터(Exhibitors)’라고 하는 참가 브랜드가 18개였습니다. 각자의 공식 부스가 있는 브랜드예요. 그다음엔 ‘카레 데 오롤로저(Carre des Horlogers)’라고, 소형 부스에 있는 브랜드가 17개였습니다.
신_ 바젤월드는 어떤가요?
박_ 시계 산업에서 고급 시계는 산업 분야의 일부입니다. SIHH는 고급 시계 부문에서도 일부 브랜드가 모인 것이고요. 바젤월드는 고가 시계, 저가 시계, 시계 포장지, 벽시계, 뻐꾸기시계, 시계를 만드는 기계까지 나오는, 시계 산업의 모든 게 다 나온다고 봐도 무방한 박람회입니다. 분야의 차이가 있달까요.
신_ 바젤월드에는 시계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시계를 만드는 책상이나 걸상까지 나온다는 건가요?
박_ 네. 실제로 그런 전문 브랜드가 참여합니다. 반면 SIHH에는 고급 시계 중에서도 일부가 나옵니다. SIHH에 나오지 않는 고급 시계 브랜드도 있고요.
신_ SIHH는 주로 리치몬트 그룹의 시계가 나오는 거죠?
박_ 주로 리치몬트 그룹 소속 브랜드가 나오지만 이 그룹에 속하지 않은 독립 시계 브랜드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오데마 피게나 리차드 밀, 그리고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그루벨 포시 같은.
신_ 에르메스가 올해 처음 참가했다고 들었어요.
박_ 맞습니다. 작년까지는 바젤월드에 들어가다 올해 처음 SIHH로 왔습니다.
신_ 네, 그게 화제였죠. 저도 제네바에서 에르메스 담당자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박_ 페루 레스토랑에 가셨죠.
신_ 스위스에서 페루 음식을 먹었습니다.(웃음) 스위스에서 저와 박찬용 에디터가 행복하고 꿈 같은 시간을 보냈지요. 시계 박람회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박_ 아무렴. 네, 물론입니다. 시간이 멈췄으면 싶었습니다.

 

편집장이 뽑은 베스트 브랜드

신_ 일단 가장 궁금한 건 이겁니다. <에스콰이어> 시계 담당 에디터는 어떤 시계가 가장 흥미로웠을까? 베스트 브랜드는 뭐였을까? 참 좋은 질문이죠?
박_ 아, 맞습니다. 아까 질문보다 더 좋은 질문이네요. 제가 먼저 여쭤보고 싶은데요, 편집장께서 보시기에 가장 눈에 띄는 시계는 무엇이었나요?
신_ 저도 뜻밖이었어요. 이 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랑에 운트 죄네가 가장 눈에 띄었어요.
박_ 아! 여전히 랑에 운트 죄네군요.
신_ 저는 스토리텔링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데, 랑에 운트 죄네가 올해 보여준 스토리텔링에는 가슴 뭉클한 부분이 있었어요.
박_ 무엇이었나요?
신_ 발터 랑에라는 사람의 이야기였죠. 랑에 운트 죄네 창업자의 손자이자 이 브랜드를 다시 창업한 인물입니다. 발터 랑에는 독일이 분단되면서 동독에 있던 랑에 운트 죄네를 빼앗기고 서독으로 망명했죠. 1990년에 통일이 되자 동독으로 돌아가 회사를 돌려받았으나 껍데기밖에 없었어요. 그때부터 30여 년 가까이 회사를 일궈 지금의 랑에 운트 죄네를 재건했죠. 그리고 2017년 1월, 작년 초에….
박_ 세상을 떠났죠.
신_ 타계했고, 그 후 1년이 지난 올해 그를 기념하는 시계를 출시했어요. 그 시계조차도 특별해요. 보통 고급 시계는 골드나 핑크 골드처럼 고가의 소재로 만드는데 랑에 운트 죄네는 스테인리스스틸로 한정판을 만들었어요.
박_ 일반 판매하는 건 골드 버전인데, 딱 하나만 만든 특별한 시계가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였습니다.
신_ 맞아요. 그걸 보고 나서 ‘랑에 운트 죄네는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SIHH를 브랜드 메시지의 향연, 브랜드의 향연, 브랜딩의 향연이라고 봤어요. 아주 작고, 어쩌면 원가가 크게 높지 않을지도 모르는 제품을 고가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연금술의 현장이랄까요. 그게 바로 브랜딩이잖아요? 랑에 운트 죄네는 그래서 몹시 특별했습니다.
박_ 그렇군요. 이제는 제가 시계를 담당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신_ 무슨 소리예요, 지금?
박_ 아, 고가품 브랜딩의 본질에 대해 너무 잘 짚어주신 것 같아서요.

 

시계 담당 에디터가 뽑은 베스트 브랜드

신_ 크, 아무튼 시계를 담당하는 박찬용 에디터에게 가장 좋았던 브랜드와 시계는 무엇인가요?
박_ 가장 좋았던 브랜드는 말하기가 힘드네요. 다 잘했고 훌륭했기 때문에.
신_ 크, 뭐지? 다 잘했대. 난 뭐야 그럼.
박_ 아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파네라이였습니다. 앞날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신_ 왜요?
박_ 파네라이에서 지름이 38mm인 작은 시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신_ 사실 파네라이는… 음, 지름이 큰 시계가 파네라이의 상징인데 말이죠.
박_ 맞습니다.
신_ 그런 인상이었는데 작은 시계가 나왔어요. 예쁘더라.
박_ 예쁘죠?
신_ 네, 작아도 예쁜 파네라이.
박_ 그런 점을 노린 거였겠죠. 파네라이를 비롯해 많은 브랜드가 기존에 하던 것과는 다른 걸 선보였어요.
신_ 어떤 거요?
박_ 파네라이는 본래 하던 게 아닌 작은 시계를 선보였죠. 그 원칙을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스스로 깨버리기 시작한 거예요.
신_ 왜 그랬을까요?
박_ SIHH 2018과 관련해 CNN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헤드라인의 기사를 내보냈어요. 밀레니얼 세대를 유혹하는 시계 브랜드라는.
신_ 그 얘기는 밀레니얼 세대한테는 골드나 콤비보다는 실용적인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로 만들었지만, 해당 브랜드의 스토리와 브랜딩은 담겨 있는 시계로 어필할 수 있다는 이야기겠죠.
박_ 소재가 바뀌면 가격에도 차이가 납니다. 좋은 브랜드에서 금으로 시계를 만들면 2000만원이 넘어가기 십상이에요. 고가 시계 중에서도 고가죠.
신_ 부우우웅. 차 가격.
박_ 그런데 스테인리스스틸이라면 꽤 고급 브랜드라고 해도 1000만원대 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가격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지는 시계를 만들 수 있어요.
신_ 결국 더 큰 시장을 노린다는 거겠고, 그게 여러 브랜드에서 확연하게 드러났군요. 자신들이 구축해왔던 시장의 아성에서 벗어나 바깥 시장을 노리기 시작한 걸로.

 

SIHH 2018의 시작

박_ 저희가 스위스에 있는 동안 내내 비가 왔어요.
신_ 파리에도 비가 왔습니다.
박_ 서유럽 전역에 태풍이 불었대요. 암스테르담에서는 사고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_ 헐. 그 악천후를 뚫고 목숨을 걸고 SIHH를 취재한….
박_ 그러기엔 너무 박람회장 안에만 계셨잖아요. 팔렉스포 안에만.(웃음)
신_ 취재하려 했으나, 실내에서만 열려서 바깥 날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박_ SIHH는 공식적으로 기자들에게 주는 시간표가 있어요. 그 시간표대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죠.
신_ 네, 맞습니다. 1월 15, 16, 17, 18일, 나흘 동안 열린 고급 시계의 대향연!

예거 르쿨트르 폴라리스 오토매틱

첫째 날

jaeger lecoultre

박_ 스위스 현지 시간으로 1월 15일 월요일 오후 1시부터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아침에 신_ 편집장께서 제네바 공항에 도착하셨죠. 그날 오후에 처음 보신_ 게 예거 르쿨트르입니다. 편집장님, 예거 르쿨트르 좋아하시죠?
신_ 그럼요. 제가 <닥터 스트레인지> 좋아하잖아요. 예거 르쿨트르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계이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예거 르쿨르트의 브랜드 홍보대사이기도 합니다.
박_ 그런 걸 보면 연예인 마케팅이나 영화 PPL이 할 만한 거구나 싶어요.
신_ 그럼요.
박_ 혹시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기 전에도 예거 르쿨트르를 알고 계셨나요?
신_ 알고 있었죠. 리베르소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오는 시계는 리베르소가 아니었죠. 리베르소는 배트맨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차고 나와요.
박_ 편집장님은 대부분의 고급 시계를 영화 속에 나오는 시계로 기억하는 건가요?
신_ 맞습니다. 저는 ‘사람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사람을 가장 좋아해요. 대표적인 게 아이돌 산업이죠. 어떤 제품을 팔려면 그 제품을 소개하는 것보다 그 제품을 사용하거나 착용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하는 게 더 빨라요.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제품을 추종하게 되죠. 그 사람 때문에 제품의 매력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남자에게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설득이 되어야 하죠. 시계처럼 스토리텔링으로 설득해야 하는 브랜드는 이런 속성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요. 시계 마케팅에도 이 논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하는데, 예거 르쿨트르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오는 시계 이미지로 저를 사로잡았죠. 게다가 닥터 스트레인지의 능력이 뭐예요. 아세요?
박_ 저는 손 돌리는 것밖에 생각이 안 나서….
신_ 뭐 비빔국수 만드는 겁니까? ‘미쳤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박_ 시간을 돌리는 것이었나요?
신_ 맞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지배해요. 시간을 뛰어넘기도 하고, 오늘 저녁으로 조절하기도 하는데, 예거 르쿨트르라는 시계 브랜드와 너무 딱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박_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해서 예거 르쿨트르 본사의 영화 마케팅 담당자에게 전해주고 싶네요.
신_ 예거 르쿨트르 담당자분들, 이 원고 꼭 봐주세요. 하나 덧붙이면, 편집장의 역할도 닥터 스트레인지 같다고 생각해요. 에디터들의 시간을 지배하잖아요?
박_ 그… 렇죠.
신_ 제가 “자, 이 시간부터 이 시간까지는 이거 합시다”라고 하고.
박_ 그러고 보면 닥터 스트레인지도 했던 말 또 하네요. “모르도르, 할 말이 있다.”
신_ 맞아요. 그렇습니다.
박_ 시계 이야기 해야죠. 올해는 신제품 폴라리스를 출시했습니다. 폴라리스는 빈티지 다이버 시계에서 영향을 받은, 본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품격과 모험을 모두 추구하는 남성에게 이상적인’ 41mm 스틸 케이스 시계입니다.
신_ 폴라리스에는 예거 르쿨트르의 헤리티지가 들어 있죠. 마음에 들었어요.
박_ 오, 시계 브랜드의 스토리 마케팅이 편집장님께 작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신_ 저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기자여서 시계 행사에서도 그것에 홀리곤 하죠.
박_ 그렇다면 각 브랜드의 스토리의 완성도라는 것이 다를 수도 있을 텐데요. 스토리의 완성도에 따라 갖고 싶은 시계가 달라질 수도 있을까요? 시계 디자인이 좋지만 스토리의 우열에 따라 갖고 싶은 시계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건가요?
신_ 그럼요. 랑에 운트 죄네에는 완벽한 스토리가 있었죠. 발터 랑에라는 실존 인물이 있었으니까요. 반면 모든 시계 브랜드가 그런 스토리를 갖기는 어려우니까 브랜드 홍보대사를 두고 그의 스토리를 빌려오는 거죠. 시계의 역사와 개인의 스토리를 결합시키는 건데, 예거 르쿨트르의 부스에 바로 그 사람이 왔죠?
박_ 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왔죠.
신_ <에스콰이어>가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박_ 맞습니다. 한국 단독입니다.
신_ 우리는 저녁에 이어진 예거 르쿨트르 파티장에서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호형호제했죠.
박_ 호형호제까지 했다고요? 저는 그냥, 파티장에 있기만 했던 것 같은데….
신_ 형! 형! 그랬습니다. 또 예거 르쿨르트에 대해서 하실 말씀 없어요?
박_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고급 시계’라는 가설을 세운다면 저는 예거 르쿨트르도 그 근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거 르쿨트르가 올해 내세운 신제품은 대부분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죠. 스틸 케이스는 고가의 시계 중에서도 금시계보다는 저렴하다는 이야기예요. 조금 더 넓게 본다면 밀레니얼 세대를 노리는 고급 시계 브랜드의 전략이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_ 밀레니얼이 대세구나.
박_ 그럼요. 이제 3년 후면 21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성인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을 아예 못 겪어본 거예요.
신_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시간을 뒤로 돌리고 싶네요.
박_ 어휴… 알겠습니다.
신_ 어쨌든 예거 르쿨트르에 대한 얘기는 이 정도까지일까 싶어요. SIHH의 첫 브랜드라 인상이 깊기도 했고,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이기도 했어요.

까르띠에 산토스 오토매틱

CARTIER

박_ 그다음은 편집장께서 그에 못지않게 좋아하는 브랜드의 부스로 갔죠.
신_ 네, 까르띠에입니다. <에스콰이어> 2018년 1월호 커버가 ‘까르띠에와 함께한 정우성’이었어요. 탱크를 찬 정우성 씨.
박_ 그걸 보여주려고 가져가셨죠?
신_ 맞아요. 까르띠에 담당자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박_ 까르띠에 분들이 열렬히 환영해주는 걸 보니 서양 사람들 눈에도 정우성 씨가 잘생겼나 봐요.
신_ 멋있는 건 맞아요. 그걸 많은 남자들이 로망으로 생각하는 것도 맞고, 2018년을 정우성으로 연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게다가 그런 정우성 씨가 찬 시계가 까르띠에 탱크였어요.
박_ 제네바에서 본 까르띠에 시계는 어땠어요?
신_ 까르띠에가 왜 하이엔드 시계업계의 강자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더군요.
박_ 왜였나요?
신_ 강자의 조건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볼륨이 돼야 해요. 시계 판매량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 세그먼트마다 라인업이 하나씩 있어야 해요. 시계로 치면 여성, 남성, 드레스, 스포츠, 다이버 등이 되겠죠. 이렇게 각 세그먼트를 확장해놓았다면, 까르띠에가 가진 누구도 넘보지 못할 하나의 개성. 그게 마지막 승부수인데, 우아함이에요.
박_ 아, 네.
신_ 저도 <에스콰이어>가 남성적인 우아함을 추구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까르띠에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요. ‘매스큘린 엘레강스’라고 할 만한 이 우아한 요소가 까르띠에의 요소마다 드러났습니다. 그게 바로 까르띠에가 시장의 리더가 된 비결 아닌가 싶었어요.
박_ 까르띠에 부장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줄 알았네요.
신_ 네, 까르띠에에서 나왔습니다.
박_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실제로 볼륨이 크다고 매번 느끼기도 해요. 시계 부스에서 실제 시계를 보여주는 현장에 가보면 까르띠에가 가장 많은 시계를 보여줘요.
신_ 가장 오래 가장 많은 물건을 보여준다는 건 그만큼 많은 걸 선보일 수 있는 제품군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죠.
박_ 제품을 만들었을 때 판매할 수 있는 시장도 대규모라는 뜻일 거고요.
신_ 이번에는 까르띠에의 기술도 놀라웠어요. 오랫동안 만들어온 역사적인 탁상시계를 소개했어요.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시계’였죠. 그 시계 기술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박_ 아, 빈티지 탁상시계 전시 말씀이군요.
신_ 맞습니다. 보석으로 장식한 탁상시계 중에서도 상징적인 제품. 20점쯤 전시되었는데 그 시계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도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 소유자도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고요. 이 시계를 소유한 역사만으로도 20세기의 역사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시계는 스위스가 잘 만들지만 이걸 럭셔리로, 보석으로 만드는 건 파리의 까르띠에구나.
박_ 까르띠에에서 한 분 더 나온 줄 알았네요.
신_ 네, 까르띠에서 나온 또 다른 사람입니다. 워낙 인상 깊었어요. 박찬용 에디터는 어땠나요?
박_ 저도 비슷한 걸 느꼈는데요, 생산량이 많으니 매번 다양한 신제품을 내는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이제는 잘 하지 않는 기술적인 시도도 했구나 싶었고요.
신_ 어떤 거요?
박_ 저희가 본 시계 중에 미세한 금 구슬로 표범 얼굴을 표현한 시계가 있었죠.
신_ 아, 네. 아주 작은 구슬이 흘러내리는 듯했죠.
박_ 사실은 몇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신기한 시계를 하나씩은 다 만들었어요. 특이한 기계식 기술을 뽐내는 시계. 이번 SIHH에는 그런 시계가 많이 없었죠.
신_ 새로운 도전이 없었다는 건가요?
박_ 도전의 방향이 달라졌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신_ 그건 어떤 거죠?
박_ 아까 파네라이의 이야기처럼 브랜드가 자기 원칙을 깨기 시작했어요. 아주 리스크가 큰 도전입니다. 한번 바꾼 브랜드 이미지는 다시 바꾸기가 쉽지 않아요. 소재를 바꿔서 단가를 낮추고 단가를 낮춰서 판매가를 낮추고 판매가를 낮춰서 더 넓은 시장을 노린다는 건 굉장히 도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기술적 도전은 예전보다는 줄어들었고요. 이게 지금의 세태 아닌가 싶었어요.
신_ 기술적 도전은 독립 브랜드에서 찾을 수 있었죠. 우리가 흥미롭게 본 독립 브랜드도 있으니까. 더 열심히 들어주세요. 채널 고정!
박_ 방송인 다 되셨네요.
신_ 정말 몸이 고정되는 듯하다. 까르띠에에서 중요한 걸 이야기해야죠. 남성 시계의 신제품.
남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 산토스를 새로 선보였죠.
신_ 최초의 손목시계? 그 이야기가 뭔가요? 이전에는 손목에다 안 하고 머리에 이고 다녔나? 등에 지고 다녔나?
박_ 진짜 방송인 같은 멘트네요. 전에 남자 시계는 회중시계였죠.
신_ 회중시계가 뭐죠?
박_ 박물관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줄 달린 시계 있잖아요.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그 시계.
신_ 왠지 박찬용 에디터는 그런 시계 어울릴 것 같아.
박_ 그런 것까지 갖고 다니면 너무 코스프레 같지 않을까요? 21세기에. 그리고 현대판 회중시계가 있죠. 스마트폰.
신_ 아, 그렇구나!
박_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손목에 시간 표시기를 두지 않고 자기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보죠.
신_ 하지만 덧붙이면, 시계는 시간을 알기 위해서만 차는 것이 아닙니다. 실용적 목적은 시간에 있겠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죠.
박_ 뭔가요?
신_ 시계는 나를 말해주는 도구죠. 패션과 마찬가지.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계는 특히 남자한테, 바로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물건이에요.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이기도 하고.
박_ 귀금속이죠.
신_ 맞아요. 그런 면에서 까르띠에는 작년에 여성 시계 쪽에서 펜더를 굉장히 강하게 홍보했는데 올해는 산토스예요. 왜일까요?
박_ 까르띠에에는 펜더나 탱크, 산토스처럼 유서 깊은 시계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몇 년에 한 번씩 아이콘의 새로운 버전을 발전시켜서 선보입니다. 그게 올해는 산토스고요.
신_ 산토스가 투박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그 안에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이 분명 있어요.
박_ 까르띠에 특유의 곡선이 여기저기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신_ 그렇죠. 남성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우아함이 녹아 있는 시계라 호시탐탐 노리게 되더군요.
박_ 예거 르쿨트르를 갖고 싶다더니 까르띠에도 갖고 싶으시면….

IWC ‘폴 베버’ 150주년 헌정 에디션

IWC

신_ 어떡해. 이제 겨우 두 브랜드 했는데, 다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박_ 아휴, 아무튼 까르띠에가 끝나고 나서 또 흥미로운 시계 브랜드로 갔습니다.
신_ 어디로 갔죠?
박_ IWC에 갔죠.
신_ IWC 저도 참 좋아합니다. 이제까지 안 좋아하는 시계가 없어서 민망한데, 어쨌든 참 좋아해요.
박_ IWC도 훌륭한 스토리를 많이 만들어낸 회사죠.
신_ IWC에는 무슨 스토리가 있죠?
박_ IWC에는 굉장히 강력한 브랜드 일관성이 있었어요. 지금은 조금 약해졌지만. 6개 라인업만 있고 남자 시계만 만든다는 굉장히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있었죠. 그 6개 라인업에 각각 스토리가 있었고요.
신_ 굉장히 자신감 있는 선택인데요.
박_ 리스크가 있는 선택, 리스크를 껴안겠다는 자신감이 있는 선택이었죠.
신_ 그런 브랜드 좋아하는데. 우리는 남자 시계만 만든다.
박_ 지금은 이 원칙이 조금 약해지긴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훌륭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물건도 예쁘고요.
신_ 그리고 IWC는 특유의 타이포그래피를 굉장히 많이 강조하던데요. 그게 디자인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더군요. 우리가 IWC 세션에 두 번 들어갔죠. 타이포그래피 설명은 두 번째 세션에서 들었습니다.
박_ IWC는 SIHH에서 ‘디자인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별도 설명회를 엽니다. IWC의 디자인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알려줘요.
신_ 네, IWC의 디자인 통일성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말해주더군요.
박_ 실제로 IWC는 디자인 통일성이 굉장히 잘 유지되는 브랜드입니다. 케이스의 색과 모양도 굉장히 비슷하고, 폰트를 이용해 특정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도 뛰어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숫자를 표시한다 해도 드레스 시계의 숫자와 파일럿 시계의 숫자는 크기와 폰트가 달라요.
신_ 파일럿 시계가 당연히 크겠죠.
박_ 더 크기도 한 건 물론이려니와 더 굵어서 더욱 잘 보입니다.
신_ 맞아요. 그게 IWC의 인상을 결정하더군요. 그 시계의 숫자가 놓인 다이얼 색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색깔을 내기 위해서 여러 번 색칠 작업을 했다는군요. 또 하나 흥미로운 게 올해 나온 신제품이었어요. 예전의 회중시계를 손목시계로 다시 만들어 내놓은 시계인데, 이 시계는 시간을 시침이나 분침이 아니라 숫자로 알려줘요.
박_ 숫자를 보여준다는 뜻으로 ‘디지털 디스플레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디지털의 ‘디지트(digit)’는 숫자라는 뜻이니까요.
신_ 어쨌든 중요한 것, 시계 브랜드들이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에 도전하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더군요. 시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바늘로 보여줄 것인가, 숫자로 보여줄 것인가. 아니, 뭐 안 보여줄 것인가. 편안하게 보여줄 것인가,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인가. IWC는 마침 150주년이라서 부스에 150이라는 숫자도 명확하게 쓰여 있었죠. 자, 다음은 어디였습니까?

보메 메르시에 보우매틱

BAUME ET MERCIER

박_ 보메 메르시에였습니다.
신_ 네!
박_ 보메 메르시에는 별로 안 좋아하셨나요? 처음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라는 말을 안 하셨네요.
신_ 박찬용 에디터는 어땠나요?
박_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신_ 네, 설명해주세요.
박_ 보메 메르시에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보우메틱이라는 신제품 때문입니다. 보우메틱은 무브먼트 성능이 굉장히 좋습니다.
신_ 무브먼트.
박_ 기계식 시계에는 파워 리저브라는 성능 지표가 있는데요, 태엽이 다 차 있는 상태에서 시계가 얼마 동안 동력을 유지하느냐를 파워 리저브라고 합니다.
신_ 보통 몇 시간쯤 되나요? 72시간 얘기도 하고.
박_ 다 다른데요, 보통 48시간, 50시간, 72시간 정도 됩니다.
신_ 72시간 파워 리저브라면 시계를 풀어놓고 깜빡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게 3일 안이면 시계가 살아 있다는 뜻이겠군요.
박_ 보통 72시간 파워 리저브를 강조하는 시계는 ‘금요일에 퇴근할 때 벗어놓은 시계가 월요일 출근할 때도 시간이 간다’는 개념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보우메틱의 파워 리저브는 120시간입니다. 5일이에요.
신_ 네, 인상 깊군요.
박_ 게다가 기계식 시계의 가장 큰 적인 자성에도 잘 견딥니다. 무브먼트 스펙상으로는 굉장히 좋은 시계를 출시했는데, 더 놀라운 부분은 가격이 안 비싸다는 겁니다.
신_ 크.
박_ 물론 이 시계는 300만원 정도 할 것이니 싸다고는 할 수 없어요. 상대적으로, 스펙에 비해 저렴한 시계라는 의미입니다.
신_ 결국 보메 메르시에는 기술적 진보를 이뤘고, 그걸 명확하게 자신의 스토리로 보여주었군요. 부스 안에도 보우메틱을 설명하는 코너가 있었으니까요.
박_ 기술적 성취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보메 메르시에의 경우에는 한정된 단가라는 기술적 한계 안에서 최대한 훌륭한 걸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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