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집에서 만난 가면극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만든 초현대적 가면극.

호텔로 낡은 사과 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호텔 직원은 방문 너머에서 궁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가면이 들어 있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가면이 초대장이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늘 이런 식이다. 허망하게 웃었다. 구찌가 오랜만에 고향 밀라노로 돌아왔다. 밀라노 외곽 공장 단지에는 구찌 본사인 구찌 허브가 있다. 구찌가 탄생하는 곳, 구찌의 집. 미켈레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가면을 한 손에 들고 쇼장에 들어서며 비극적인 17세기 이탈리아 가면극 무대 정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먼지가 내려앉은 퀴퀴한 벨벳 커튼 같은 건 없었다. 크롬 컬러와 거울로 뒤덮인 미래적인 무대였다. 다분히 미켈레다운 트위스트였다. 다양한 콘텐츠와 시공간이 혼재하는 미켈레적 세계관. 곧 맹수의 하울링이 신경질적으로 공간을 메웠다. 섬광 같은 조명에 눈이 저릿했다. 미켈레는 관객의 신경을 자극했다. 위태로운 분위기에서 가면을 쓴 모델들이 걸어 나왔다.

 

남녀 모델을 구별해내는 건 이번에도 집중이 필요했다. 하지만 곧 부질없게 느껴졌다. 미켈레가 양성성의 상징 헤르마프로디토스의 가면을 방으로 보낸 건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어떤 시즌보다 테일러링이 눈에 들어왔다. 반 뼘쯤 넓고 편편한 어깨와 활짝 편 라펠이 특히 예쁜 그런 재킷이 아름다웠다. 이 재킷에 통이 풍성한 바지나 밑단을 잔뜩 조인 조거 바지, 밑위가 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를 남녀 구분 없이 입었다. 위협적인 스파이크 장식을 두르기도 했고, 난데없는 액세서리를 더하기도 했다. 1940년대풍의 훌륭한 테일러링은 이질적인 조합 속에서 더욱 돋보였다. 가봉의 흔적을 살린 재킷과 바지의 장식은 명백한 미켈레식 유머였다. 레이스와 프릴, 리본, 피에로 칼라 등 무대 의상적 요소는 스트리트와 스포츠 룩, 유년기의 향수와 뒤엉켰다. 시대의 맥시멀리스트는 이번에도 새로운 장르의 옷을 탄생시켰다.

 

제이슨 부히스풍의 가면, 손가락 길이의 스파이크 장식 액세서리, 귀 모양의 귀걸이 등 압도적 액세서리는 쇼 내내 서늘한 뉘앙스를 더했다. 페티시와 로맨티시즘, 잔혹함과 기이함을 오갔다.

 

결국 가면을 쓴 모델은 배우였고 런웨이는 무대였다. 미켈레는 초현대적 하이패션 가면극 한 편을 써 내려갔다. 가면을 쓰고 타인이 되는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페르소나에 관한 메시지였다. 미켈레와 구찌의 형이상학적 가면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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