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일관 조진웅

조진웅의 시계는 늘 가리키는 곳으로 돌아갔다. 늘 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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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 도착한 건 지난 11월 10일 토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사직구장으로 가주세요.” 프로야구 정규 시즌은 이미 끝난 한가을에 사직구장으로 향한 건 배우 조진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최근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촬영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조진웅은 화보 촬영 시간을 내는 것도 빠듯해 보였다. 심지어 화보 촬영이 끝난 직후에는 영화 촬영지인 부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곧장 김포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해 부산으로 내려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11월 1일에 크랭크인한 영화 <퍼펙트 맨>에 출연 중인 조진웅은 당일 사직구장에서 촬영을 한다고 했다. 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아간다니 농부를 만나기 위해 바다로 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택시는 바다에, 아니 사직구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롯데 자이언츠 저지 유니폼을 입은 조진웅을 만났다. 야구공에 사인을 받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인터뷰 장소로 마련된 건 야구장 안의 실내 공간이었다. 그런데 야구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관중석에 멈춰 선 조진웅은 “그냥 여기서 할까요?”라고 물었다. 아주 짧은 순간, 몇 가지 물음표가 전두엽 앞에 일렬종대로 늘어선 기분이었다.

‘녹음이 잘될까? 바람 소리가 들어가지 않을까? 인터뷰를 망치는 건 아닐까? 인터뷰하기 싫은 걸까? 형, 나 싫어해요?’ 그런데 누차 말했듯이 여기는 부산 사직구장이었다. 지금까지 야구장에서 배우를 만나 인터뷰한 일은 없었고, 당연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 점 차로 뒤진 9회 말 공격에서 투 아웃 이후 타석에 선 타자가 기사회생의 동점 홈런을 쏘아 올릴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하지만 흥미로운 것이었다.

사직구장 1루 관중석에 조진웅과 함께 나란히 앉았다. 조진웅 뒤로 점심 식사를 하러 테이블이 있는 저편의 관중석으로 하나둘씩 들어서는 영화 스태프가 눈에 들어왔다. 야구는 없었지만 영화가 있는 사직구장에서 배우 조진웅과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가 만났던 게 정확히 몇 년 전이죠?” 조진웅이 물었다. 나는 6년 전이라고 답했다. 그 당시 조진웅은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가 6년 전과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라선 배우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의 출연작을 살피고 나열하는 데에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그가 6년 전과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6년 전의 그가 익살스럽고 친근하면서도 단호하고 명쾌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10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종종 질문지를 보지 않고도 대화가 이어졌는데 합이 잘 맞는 연극 무대에서 리액션하는 기분이었다.

지난 6년 동안 배우 조진웅의 시계가 가파르게 돌아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조진웅은 자기 삶을 비약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리를 오가는 시계추처럼 배우이자 자연인으로서 삶을 오가며 시간을 지나왔을 뿐이라는 것이 대화를 통해 느껴졌다. 인터뷰이기 전에 즐거운 대화였다. 녹음 걱정 따위는 잊고 대화만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기억될 거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럴 거 같았어요. 이럴 기회 없잖아.” 호쾌한 홈런 같은 답변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녹음된 파일을 재생해봤다. “우리가 만났던 게 정확히 몇 년 전이었죠?”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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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뵙는군요. 그런데 이렇게 부산 사직구장에서 인터뷰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야구장에서 배우 인터뷰를 진행할 일이 생길 거란 생각도 못 했고요.

그래서 일부러 관중석에 앉아서 인터뷰하자고 한 거예요. 게다가 지금 앉아 있는 1루석 자리가 롯데 자이언츠 응원석이거든요.(웃음) 저도 <퍼펙트 게임> 이후로 사직구장에 처음 왔어요. 아, 생각해보니 2013년 프로야구 개막전에 시구하러 온 적도 있었네요. 사실 올해에도 올스타전 시구 제의가 들어왔는데 롯데가 하도 못해서 그냥 됐다고 했어요.(웃음) 롯데가 잘해야 저도 할 맛이 나죠. 정말 내년에는 롯데도 좀 정신 차려야지.

지금 사직구장 관중석에서 인터뷰를 하는 건 조진웅 씨가 지금 여기서 영화 <퍼펙트맨>을 촬영하고 있는 덕분이죠. 영화 촬영차 온 것이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으로서 사직구장을 찾은 기분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직구장을 자주 찾진 못했지만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저기 외야석에 마스코트 인형 있는 자리 보이죠? 연극 무대 제작하다가 몰래 야구 보러 나오면 저 정도 자리에서 시끄럽게 응원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가끔 중계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선배한테 걸려서 혼나고. 사실 사직구장에서 처음 촬영한 영화는 안성기 선배님과 함께 나온 <마이 뉴 파트너>였는데 그때는 펜스에서 직접 뛰어내려서 야구장을 막 헤집고 다니고 뭐, 대단했죠.

사직구장에서만 세 번째 영화 촬영이네요.

그렇게 됐네요. 사실 여기 오면 촬영 끝나고 술 마시는 게 일이에요.(웃음)

고향인 부산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것도 반가운 일일까요?

부산이라 하면 뭐, 무조건 환영이죠. 내려오면 반가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부산에 내려와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사투리 억양이 살아나는 거 같습니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부산 깡패 역을 맡았거든요. 근데 사투리도 자주 쓰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서울에 있을 때도 방송이나 공식 석상이 아닌 자리에서는 웬만하면 사투리를 쓰려고 해요. 지금 찍는 영화 감독님도 부산 사람이라 “이게 맞나?” 하면서 계속 확인해봐요. 최소한 부산 사람 대여섯 명이 인정해주면 맞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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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맨>은 지난 11월 1일에 크랭크인했다고 들었는데, 불과 하루 전인 10월 31일까지 영화 <클로즈 투 유(가제)>를 촬영하던데요. 쉬지 않고 두 편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게 된 건데요. 심지어 올해 8월까지는 <광대들>이라는 작품을 촬영했고요. 스케줄이 쉴 새 없이 이어지네요.

남들 보기에는 바쁘게 작품만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여유 있게 해나간다고 느껴요. 제 입장에서는 컨디션이 가장 좋은 시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에는 설경구 선배님이 있어서 여러모로 걱정이 없어요. 에이스 투수의 공을 받는 포수 입장이죠. 잘 받기만 하면 될 거 같아요.

조진웅 씨도 이제 에이스군으로 분류되는 배우 같은데요.

과찬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지금도 선배님들 연기를 보면서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끔 술 마실 때는 “무슨 학원이라도 다녀요?”란 식으로 물어보기도 하고.(웃음) 너무 부럽고 샘도 나요. 집에 가서 아내랑 소주 한잔하면서 ‘나는 진작에 때려치웠어야 했다’며 신세 한탄이나 하는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분석해서 만들어온 연기를 해나가면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선배들을 보면 감탄하게 되죠. 그런 베테랑들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해도 다 받아내거든요. 저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항상 실패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가 됐으면 좋겠는데, 당장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이나 치고 있으니까.(웃음)

관객 입장은 조금 다를 거 같은데요. 특히 <끝까지 간다>는 배우 조진웅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준 역할이었다고 생각해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긴장감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큰 키와 체구를 통해 물리적인 위압감을 전달하는 방식도 탁월했고요.

그건 100% 운이 좋았던 거예요. 모든 악역은 리액션이 완성시킨다고 생각해요. 머리에 총을 들이대는데 상대가 가만히 쳐다볼 때와 무서워할 때 느낌은 완전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만약 리액션이 형편없었다면 그런 악역이 살 수가 없어요.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을 완성한 건 결국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리액션인 거죠. 선균이 형 아니었으면 그렇게 안 됐어요.

사실 조진웅 씨는 선악을 오가는 데 능한 배우처럼 보여요. 야구에 비유하자면 다양한 수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 같다고 할까요?

정확히 말하면 색깔이 별로 없는 거죠.(웃음) 그게 좀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작품에 들어가면 온갖 생각이 다 사라지고 오로지 캐릭터만 보여요. 결국 저라는 인간이 반영된 모습이 나오죠.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가진 색깔이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그걸 최대한 배제하려고 해요. 그래도 매번 똑같다는 얘기도 듣게 되고 그런 댓글을 보면 상처받기도 하죠.

사람인 이상 댓글을 보고 화가 날 때도 있을 거 같아요.

뭐, 어떡해요.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닌 이상 ‘맘대로 씨부려봐라’ 하고 마는 거죠.(웃음) 가끔 댓글에서 “조진웅, 살쪘네” 이러면 ‘니가 한번 빼봐라, 어디 쉽나’ 이런 생각 정도는 해요.(웃음) 나름대로 그런 상황을 즐기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거 같아요. 사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 그러는 건 아닐 거예요. 경제도 안 좋다고 하고 먹고살기 힘드니까 괜히 화가 나서 누군가를 붙잡고 화풀이하는 거겠죠. 하지만 가능하다면 적절한 수위를 지키는 댓글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의 배우 조진웅은 6년 전에 만난 배우 조진웅과는 다른 배우처럼 느껴져요. 작품 경력도 많이 늘었고, 그만큼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몫도 커졌을 거 같거든요.

꼭 그렇진 않아요. 이번에 <완벽한 타인> 홍보차 무대 인사를 돌 때 행복했던 게 (유)해진이 형, (이)서진이 형, (염)정아 누나, (김)지수 누나 전부 다 하나씩 칼자루를 쥐고 있는 분들이라 저는 칼을 뽑을 필요도 없이 같이 있기만 해도 됐어요. 굳이 뭘 할 필요가 없었죠. 그만큼 부담이 없었고요.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저는 여전히 그냥 현장에 나가서 작업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사람일 뿐이에요. 선배들 몫을 대신할 만한 입장이 아니죠.

지난 10월 31일에 개봉한 <완벽한 타인>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좋은 흥행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출연한 배우 입장에서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겠죠.

음식을 내놓았는데 맛도 없고 냄새도 이상하다고 하면 만든 사람은 괴롭잖아요. 맛있게 먹어주면 당연히 좋죠. 그런 기대감 때문에 현장도 치열해지는 거고요. 지금도 무대 인사 전날에는 잠이 잘 안 와요. 상영관에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해도 어쩌겠어요. 제가 찍은 작품이니까 내 새끼라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수밖에 없죠. 새로운 각오도 생기고. ‘이번에 맛없었죠? 다음에는 진짜 맛있게 만들어드릴게’란 식으로. 물론 각오를 다질 필요 없게 작품을 잘 만들어야겠죠. 그래서 시나리오도 면밀하게 살피고, 감독과도 치열하게 상의해야 해요. 그런 과정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고 느꼈을 때 결과물을 보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늘 차 놓친 기차역 같죠.

<완벽한 타인>은 전형적인 부조리극 형식의 연극적인 영화라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차라리 무대처럼 넓게 풀샷으로 펼쳐놓고 찍는다면 몇 시간이든 놀겠는데, 반복되는 테이크 속에서 컷과 컷의 연결을 고려하며 영화적인 신을 만들어나간다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신마다 요구되는 밀도가 엄청 높거든요.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서 쇼트마다 많은 테이크를 가야 하고요. 그냥 찍으면 되겠지 싶지만 막상 찍어보면 만만치 않았어요. 그만큼 예민해지는 지점도 생기고요. 상대 배우가 중요한 대사를 하는데 호흡을 잘못 뱉으면 그 친구 리듬이 망가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삐끗하면 신 전체가 어그러지고, 결국 신과 신끼리 잘 붙지 않게 되죠. 그런 사소한 실수로 엉망이 될 수도 있는 영화였어요. 핸드폰 하나를 만진다 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간일 수밖에 없으니까 다들 컷과 컷 사이의 합을 계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기의 균형을 맞춰나가야 했어요. 그러면서도 정말 리얼하게 일상을 표현한다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선수라 할 만한 배우들이 모인 만큼 서로 합을 맞추는 재미도 있었을 거 같아요.

사실 그런 선수들이 모인 게 아니었으면 ‘아사리판’이었을 거예요.(웃음) 저희끼리도 그랬어요. 이 멤버가 아니었다면 이 기간에 이런 촬영을 마칠 수 있었을까? 서로에게 고마웠죠. 나중에 합이 잘 맞아간다고 느껴지니까 애드리브 치고 들어갈 타이밍도 생기더라고요. 그걸 이재규 감독님이 놓치지 않고 잘 잡아내고, 그런 재미가 있었죠. 그래서 연극 한 편 진하게 한 느낌도 있어요. 제작 초반에는 촬영장과 비슷한 장소를 섭외해서 다 같이 모여 리허설도 했거든요. 그런데 연습 3일 만에 그만하자고 했어요.

왜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니까 오히려 기계적으로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연습한 티가 나는 거 같았어요. 연습을 너무 안 해도 안 되겠지만 연습을 너무 많이 해도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거기까지만 하고 각자 알아서 준비해 오기로 했어요. 원래 연습 일정을 일주일 정도 잡았는데 과감히 4일을 날린 거죠. 그 뒤로 촬영 시작할 때 모여서 맞춰보니 좀 더 날것 같은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나중에는 대본도 안 봤어요. 너무 외워서 하는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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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완벽한 타인>으로 오랜만에 조진웅 씨의 생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가웠어요.

아마 제 모습이 정말 많이 반영됐을 거예요. 그럼에도 쉽지가 않았어요. 물 한 잔 마시는 연기가 어려워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죽겠다고 하니까 다들 자기도 그렇다는 거예요. 다들 되게 편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처럼 절고 있었다니 나만 뭐 되진 않겠구나 안도했죠.(웃음) 심지어 해진이 형은 어느 날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더라고요. 조금만 움직여도 잘못하면 지저분해질 거 같다고. 일상 연기가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사실 <아가씨>도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영화였어요. 그런데 <완벽한 타인>은 그 곱절이었던 거 같아요.

<아가씨>에서는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인 코우즈키 역을 맡았어요. 외모는 분장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적인 각오도 필요했을 거 같아요.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했어요. 역할은 속여도 나이까지는 속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이 많은 배우를 쓰시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이경영 선배님을 추천하기도 했거든요.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님이 저랑 해보고 싶다고 하시니까 넘어갈 수밖에 없었죠.(웃음) 그런데 코우즈키는 생각하면 할수록 좀 아까워요. 사실 코우즈키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코우즈키만 따로 빼서 영화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거든요. 감독님도 그 캐릭터에 애착이 있었던 거 같긴 하지만 그럴 감독님은 아니니까요. 그럴 일도 아닌 거 같고요.

<완벽한 타인>은 예기치 않게 폭로되는 비밀로 인해 관계의 균열과 진동을 겪게 되는 인물들에 관한 영화예요. 혹시 누군가가 영화와 같은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면 어떨 거 같아요?

싫죠. 물론 핸드폰에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어서 보여주기 싫다는 건 아니에요. 나 자신만을 위한 소통 수단이라 생각하니까 보여주기 싫은 거죠. 지극히 사적인 공간까지 다 공개하며 살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완벽한 타인>이 21세기 판 잔혹 공포 영화라고도 하던데, 동의해요.(웃음)

유명한 배우로 사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그런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질 거 같기도 한데요. 가끔은 타인의 관심이 자신만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처럼 다가올 때도 있을 거 같아요.

가끔씩 저라는 사람은 항상 웃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걸 느껴요. ‘진웅이는 항상 웃고 있잖아’라는 느낌을 받죠. 그런데 저도 어떤 날은 심각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 가끔씩은 ‘기분 나쁘면 안 되나?’ 싶기도 해요. 답답할 때가 있죠. 그런데 사실 답은 하나예요. 그런 게 싫으면 그만두고 나가든지, 아니면 아무 소리 말고 그냥 웃고 있든지. 저 자신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거죠. 정말 그 정도로 하기 싫다면 그만둬야 하는 거라고. 그 정도로 싫으면 감당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감당할 수 있으니까 아직은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을 거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을 감당한다는 의미인가요?

100%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회피하는 순간 많은 것이 망가져요. 그러면 안 되죠. 한편으로 대우를 받고 있으면서 그런 불편함을 참지 않으려고 하면 눈엣가시처럼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싫다면 완전히 떠나는 게 맞고요.

최근 <완벽한 타인> 언론 시사회나 무대 인사 자리 같은 데에서 항상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공식 석상에 설 때마다 달았던 것으로 아는데, 주변에서 걱정하거나 만류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제작사나 투자사 입장에서는 걱정하죠. 괜한 여론몰이가 될 수 있으니까. 심지어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배우가 <공작>이라는 북한 관련 영화까지 해버리니까 더더욱.(웃음) 그런데 상관없어요. 그래서 저를 안 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소신이나 신념을 가질 수 없다면 살아갈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제 차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는데 한번은 누가 차에 돌을 던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큰 돌 던지시라고 했어요. 이 정도면 흠집도 안 난다고. 그러니까 도망가더라고요. 만약 제가 은퇴해서 배우가 아니었다면 정말 가만 안 뒀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혼자만의 입장이 될 수 없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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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결혼한 아내와는 연애 기간이 길었다고 들었어요. <완벽한 타인>에서 연기한 석호는 굉장히 배려심 많은 남편이잖아요. 조진웅 씨는 어떤 남편일지 궁금하더라고요.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면 좋은 성정을 닦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 전에 아내한테도 잘 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최근 며칠째 감기가 안 떨어져서 몸이 안 좋다고 하는데 저는 이렇게 부산 촬영장에 내려와 있잖아요. 너무 미안하죠. 심지어 어제가 결혼기념일인데 이러고 있으니.(웃음) 서로 맞추며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그나마 아내가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거 같고요. 제가 보기엔 아내가 도인 같거든요. 저는 화가 나면 끝까지 싸우는 편인데 아내는 “됐다. 그만하자” 이래요. 저보다 많이 낫죠. 저를 많이 참아준다고 생각해요.

결혼이 삶에 변화를 가져다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오랜 시간 동안 여자 친구였던 사람이 가족이 됐잖아요. 하나의 정체성을 찾은 거죠.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장인어른, 장모님이 됐고 제 식구가 됐으니까요. 삶에서 좀 더 당당해질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저는 그게 되게 좋더라고요.

아까 “아버지가 된다면”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조진웅은 실제 아버지 이름을 빌린 예명이잖아요.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배우로 살아온 셈이니 그만큼 배우로서 잘 살아온 것이 자랑스러울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아들 잘 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할 정도는 됐으니 다행이죠. 사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정말 큰 산 같았어요. 그런데 IMF 외환 위기 때 대한민국 집안 대부분이 날아가다시피 했잖아요. 저희 집도 힘들어졌고 아버지도 많이 무너졌죠. 그 뒤로 아버지가 늙는다는 게 느껴졌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지금껏 쌓아온 모든 인생이 날아가는 느낌일 텐데 그걸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저라면 정말 돌아버렸을 거 같아요. 그걸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독전> <공작> <완벽한 타인>까지, 올해 조진웅 씨가 출연한 세 편의 영화가 개봉했어요. 그만큼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원하는 이가 많다는 의미겠죠. 게다가 세 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관객과 평단에서도 괜찮은 반응을 얻었어요. 배우로서 올해만큼 뿌듯한 해도 없었을 거 같은데요.

작업할 때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아요. 지금 촬영하는 작품이 언제 개봉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사실 올해 세 편이 다 개봉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해요. 개봉만 할 수 있게 하자고, 그럴 수 있게 뭐라도 보여주는 연기를 하자고. 개봉을 해야 욕을 먹든 박수를 받든 무슨 말이라도 듣든 하잖아요. 사실 다 만들어놓고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가 꽤 많아요. 그래서 개봉 날만 확정돼도 다행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개봉해서 손익분기점이 넘었다고 하면 이제 좀 편히 자자 싶고.(웃음) 그런 과정의 연속이죠.

사실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배우도 많은데, 주연배우로서 작품에 대해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는 편인 거 같아요.

빨리빨리 소화돼야 하는데 언제나 개봉은 공포스러워요.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무대 인사를 하는데 영화가 이상하다고 하는 분이 있었거든요. 그럼 밤에 술 마시면서 울어요.(웃음) 진짜. 물론 영화 찍고 나면 배우는 할 일 다 한 거라고 하는 선배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제 영화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해줘요. 물론 투자 팀이 더 간절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제 입장에서도 더 각별하게 인지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록해둬야죠. 연기 톤이 어땠는지, 데이터를 확보해서 개인적인 자료를 만들려고 해요.

코트 보스 맨.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청바지 맨온더분. 연도, 월, 날짜, 요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레드 골드 케이스 & 화이트 다이얼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IWC.

방금 기록해둔다고 하셨는데, <아가씨> 촬영을 준비하면서 일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조진웅 씨가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는 노트를 꾸준히 쓰면서 학습했다고 들었어요. 기록하는 습관이 있나요?

일종의 습관 같아요. 자연스럽게 습득하거나 체득하기 위해 기록하거나 영상을 찍는 편이에요. 그리고 몇 마디 끄적거린 노트를 다시 보면 그때의 심리 상태도 기록돼 있는 거 같아요. 마치 일기 같죠. 본래 배우 일지가 그런 느낌이거든요. 대학생 때 배우 일지를 썼는데 그게 쌓이면 어떤 교과서보다 나아요. 결국 제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어야 돼요. 스타니슬랍스키가 메소드 연기를 뭐라고 했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무리 연기를 배워도 연기가 이상한 건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어떤 각도로 서는지도 모르면서 왜 자기는 햄릿이 될 수 없느냐고 하면 어떡해요. 누가 봐도 햄릿이 될 수 없는데. 그러면 또 상처받죠. 정작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 배우인지 인식도 못 하면서 말이에요.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에요. 자기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 조언을 해주는 거나 다름없죠.

결국 좋은 연기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연기란 말인가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해요.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그걸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는 거죠. 배우 일지에 썼던 많은 감정이나 심리가 결국 자신의 반영이거든요. 물론 지금은 쓰지 않죠. 젓가락질 배우는 단계는 지났으니까요. 그때 쓴 일지를 찾아보면 웃길 거예요. 내가 젓가락질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묘사돼 있을 테니까. 찾을 수 있다면 찾아보고 싶네요.

결국 배우 일지라는 게 배우로서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사실 저는 자신을 냉정하게 보는 편이에요. 스스로를 굉장히 꾸짖거든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좋으면서도 가장 지독한 선생님 같기도 해요. 가끔은 스스로에게 벌도 줘요. 금식이나 외출 금지, 아니면 오늘은 운동만 네 시간 더,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패배자가 된 것 같거든요. 스스로 능동적인 편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런 환경을 만들어놓는 거죠. 그러다가 가끔씩 울고.(웃음)

남자가 운다고 하면 나약하다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어쩌면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인 거 같아요.

자주 울어요. 물론 아무 때나 운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면 화도 나고, 그러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퍼펙트 맨> 이전에 촬영을 마친 배우 정진영 씨의 감독 데뷔작 <클로즈 투 유(가제)>는 정확히 10월 한 달 동안 촬영했다던데 촬영 회차가 많은 작품은 아니었나 봐요.

한 19회차 정도 됐던 거 같아요. 찍는 데 한 달이 안 걸렸거든요. 예산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이야기 규모가 큰 영화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에 묘한 매력이 있었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정진영 선배한테 원작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거든요.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가기로 했죠.

예전에 작품에 대한 고민이 부담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재미있을 거 같다면 할 수 있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여전히 그 생각대로 사는 거 같군요.

그 말에 좀 더 추가할 게 있다면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해야 한다’ 정도? 스스로 잘했다고 느끼는 작품은 몇 개 안 되는데, <대장 김창수>는 제가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작품을 제가 짊어지길 잘한 거 같거든요. 사실 <대장 김창수> 같은 경우는 거의 3~4년 고사한 작품이었어요.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는 안아야 할 이야기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왜 알려야만 하는 것인지 제게 피력하는 감독님 말씀이 저를 설득시킨다고 느꼈어요. 그런 영화가 생기더라고요.

티셔츠 에피그램. 연도, 월, 날짜, 요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레드 골드 케이스 & 그레이 다이얼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IWC.

사실 <대장 김창수>는 그리 좋은 평가나 반응을 얻지 못한 작품이라 그 작품을 언급한 것이 솔직히 조금 의외네요.

그 작품에서의 제 연기에 만족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배우로서의 선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거죠. 어차피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작품이 정말 별로 없었던 거 같거든요. 사실 연기가 마냥 행복한 일인 건 아니에요. 가끔씩은 재미있어서 선택한 시나리오를 보다가도 종종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맨날 후회하니까요.

그래도 배우로서 지금껏 살아온 시간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신감을 느낄 때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거 안 했다면 뭘로 먹고살았겠어요.(웃음)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 거예요. 다들 지치지 않아서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관객들 반응을 보고 ‘아, 이제 안 해야겠다’라고 생각할 지경까지 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제 연기가 싫어지는 수준까진 가지 않아야죠.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 화보 촬영에서 IWC 시계를 착용했어요. 1868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죠.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온 IWC처럼 배우로서도 무언가 증명하고 싶은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들이 저를 통해 뭔가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좋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혹시라도 제가 뭔가를 잘못 전달해서 누군가가 잘못된 마음을 갖게 만들면 안 되니까 스스로를 채찍질해야죠.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연기를 하는 데에서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거든요.

결국 배우로서 긴 호흡을 갖고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생각일까요?

사실 오늘 새벽에 부고 문자를 두 개나 받았어요.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껴요. 뭐든 영원한 건 없잖아요. 종종 주변에서 이젠 슬슬 정리할 때가 된 거 같다고 하면서 오랫동안 해온 일을 정리하는 지인들을 보기도 하는데, 그런 걸 보면서 인정하는 거죠. 언젠가는 저도 그런 선택을 해야 할 테니까.

그런 유한함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나이도 있고, 어차피 많이 늦었으니까 여유 있게 가고 싶어요. 여기서 뭘 타고 간들 빨리 갈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자고, 그렇게 한 땀씩 만들어가자는 생각뿐이에요. 그리고 다가올 시련을 어른답게 맞이하고, 약자한테 강한 사람이 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살자고 항상 다짐해요. 언제 이 일을 그만둬야 할지에 대해서도 늘 생각하고 살아요. 영원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보여줄 수 있을 때 보여줘야죠. 그러고 나서 때가 왔다는 게 느껴지면 인정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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