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보검 2편

어느덧 20대 중반에 다다른 박보검은 겸허함과 뜨거움이 교차하는 청춘의 시계를 돌고 있다. 온전히 푸르르고, 완연히 화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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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출연한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그거 보고 박보검 씨가 <덱스터> 같은 작품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덱스터>는 너무 무서운데.(웃음)

<너를 기억해>를 보면서 박보검이라는 배우로부터 연상되는 선한 이미지를 배반했을 때 장르적으로 굉장한 쾌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론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웃음)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 자신의 윤리관과 어긋나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배우 박보검과 자연인 박보검 사이에서의 고민이랄까.

없지는 않다. 배우마다 다른 기준이 있겠지만 대체로 비슷한 고민을 할 거다. 내 입장에서는 역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표현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감독님이 좋고, 작품이 좋고, 배급이 좋아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거다. 비록 악역이라 해도 작품에 메시지가 있고, 그 역할을 통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바가 있다면 선택하고 싶을 거 같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나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너무 클 거다. 연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재미있지만 점점 더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어려운 법이니까.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땐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을 거다.

그때는 역할을 맡게 된 것 자체가 너무 즐겁고 영광이었으니까. 그런데 점점 분량이 늘어나고 인물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많아지면서 조금씩 배우게 되더라.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있을까?

<원더풀 마마>라는 주말 연속극이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역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웃음)

그래서 지금 보면 좀 쑥스럽다. 내 목소리가 하이 톤이 아닌데 감독님이 막내니까 조금 더 밝고 시끄러운 목소리를 내보라고 하셔서 사실 조금 힘들기도 했고.(웃음) 그래도 그 작품으로 좋은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고,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출연하는 캐릭터를 맡은 것도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인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연기에 대한 재미가 확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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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인 2015년에 <응답하라 1988>로, 2016년에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기쁜 일임에 틀림없었겠지만 급격하게 몰려드는 관심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거다.

가는 곳마다 알아봐주시고 반가워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부담감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인기는 영원하지 않다며, 그럴 때일수록 겸손하게 생각하고 고맙게 느끼라는 가족들의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 순간을 즐기면서도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했다. ‘이걸 끝까지 놓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열심히 하는 만큼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하고자 하는 바를 행복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기려 한다.

사실 지금까지 대화하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언급한 것 같다. 행복을 말한다는 건 지금 정말 행복해서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든 시절도 있었고, 아픔과 고충도 있었지만 특별히 행복을 갈망하고 갈구하며 살아오진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행복은 향수와 같다고 하셨다. 향수는 남한테 뿌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뿌리는 거다. 그런데 나한테 뿌린 향수가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다. 내가 지나온 자리에 남은 향기가 여운을 남길 테니까. 결국 행복이란 향수처럼 나에게 뿌리듯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의 자리에 만족해야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면 화가 생긴다는 것도 어릴 때 깨달았다. 어쩌면 가족들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 같다.

<구르미 그린 달빛> 이후로 작품 활동이 없다. 너무 큰 사랑을 받아 차기작 선택이 어려운 걸까?

사실 작년에 대학교 4학년으로 마지막 1년을 보낸 거라 학업을 잘 마친 후에 작품을 하고 싶었다. 둘 다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여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더 확실히 배우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뮤지컬학과를 포함해 작곡 수업도 듣고, 사진 수업도 듣고, 영상 편집도 배우고. 그런데 뒤늦게 아쉽더라. 1, 2학년 때부터 이런 것들을 배워서 부전공이나 복수 전공을 했다면 등록금이 아깝지 않았을 텐데.(웃음) 지난 1년 사이에 배움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다.

알고 싶은 게 그렇게 많은 걸까?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좀 더 넓게 관심을 갖는 정도? 그런데 모든 분야마다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음률로 표현하면 음악이 되고, 그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힘을 줄 수 있다. 연기도 마찬가지고. 결국 모든 분야에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혹시 지난 출연작을 다시 보는 경우가 있나?

가끔씩 챙겨 본다. 그리고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 결과일 테니 아쉬움은 없지만 결국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포인트로 찾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순간에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 가훈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자’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충실히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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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지금까지 ‘감사’라는 단어를 몇 번 들었는지 궁금해지는데.(웃음) 데뷔 초기에 출연한 작품을 보면 박보검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비극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 위해 마련된 장처럼 보이는 출연작이 꽤 있다. 데뷔작인 영화 <블라인드>에서도 초반부에 비참한 사고로 죽는 역할이었고, 드라마 <히어로>에선 삶에 하도 치여서 냉소적인 인물로 나오는데 등장하는 내내 피 칠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각시탈>에서도 일제강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물론 그저 연기를 하는 것뿐일지 모르지만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타인의 비극을 연이어 감당하는 기분이 들진 않았을까 궁금하다.

사실 <블라인드>도 그렇고, <히어로>나 <각시탈> 같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건 그 자체로 소중한 기회였다. 그래서 크게 힘들다고 느낀 건 없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가족이나 감독님에게 피드백을 구했다. 오히려 <구르미 그린 달빛>에 출연할 때 캐릭터에 대한 갈피가 안 잡혀서 어려웠다. 또 <차이나타운>에선 극 중에서 내가 연기한 ‘석현’이 혼자만 밝은 역할을 하다 보니 내가 잘못하면 홀로 튀지 않을까 고민스러웠다.

까만 벽지에 붙어 있는 흰 타일 같은 캐릭터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렵더라. 하지만 석현이는 확실하게 이해가 되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였다. 아버지 때문에 빚이 많이 쌓여서 어렵게 살아가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나와 닮은 점도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안아주고 토닥거려주고 싶은 기분이었지. 그런데 어두운 영화에서 혼자 빛처럼 선한 역할을 맡게 되니 뭔가를 더 표현하면 너무 튀고, 표현을 죽이면 너무 어두워지는 거 같아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느낀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원작이 있는 작품이니 원작 팬들도 설득할 수 있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는 ‘이영’이 도도하고 까칠한 캐릭터인데, 드라마에서는 까칠함도 있지만 18세 특유의 천진난만한 장난기가 더해져 더 매력적인 인물이 됐다. 하지만 원작 캐릭터를 생각할 때 내 연기가 적당한 건지 확신이 안 섰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표현이 안 됐다고 할까? 감독님이나 작가님을 뵐 때마다 리딩을 하는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구덩이에 빠지는 신을 찍고 나서 캐릭터에 확실히 공감하게 됐다. 구덩이 속에서 흙냄새를 맡고 공간이 피부로 느껴지면서 ‘내가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됐고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확 올라오더라.

어쩌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는 쾌감도 상당했을지 모르겠다.

맞다. 내가 느낀 감정을 감독님과 작가님이 똑같이 느꼈다고 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초반에는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서 (송)중기 형이나 (임)주환이 형한테도 자주 의견을 구했다. 내 입장에서도 해보고 싶었던 사극에 출연하는 기회였고, 스물네 살의 청춘을 담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주변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싶었고. 그런데 생각처럼 잘 안 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러다 회사 대표님이 하는 말을 듣고 부담이 덜어졌다. “(정)유정이가 더 많은 인물을 만나야 되는 역할이니 너보다 더 힘들 거다. 주인공은 네가 아니다.” <응답하라 1988>을 찍을 때 신원호 감독님이 모든 역할이 다 주인공이니까 비중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모든 역할이 중요하고,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선을 이뤄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배우로서 캐릭터를 소화하다 보면 그 심리나 감정에 몰입하기도 하지만 기술적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들도 생긴다.

배우는 ‘배우는 직업’이라고도 하는데 정말 그런 거 같다. <내일도 칸타빌레>에 출연할 때는 첼로랑 지휘를 배웠고, <명량>과 <차이나타운>을 할 때는 액션을 배웠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거문고랑 승마를 배웠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에서는 바둑을 배웠고. 그래서 감사함이 컸다. 내가 살아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는 거니까. 덕분에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 고충을 이해하고 설득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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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패션 에디터권지원
사진김희준
헤어이 일중
메이크업이 준성
스타일링공 지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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