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의 절정

주지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시간 속에서 주지훈의 온도는 여전히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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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에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 홍보와 내년에 방영될 드라마 <아이템> 촬영을 병행하느라 최근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올해에만 주연을 맡은 영화 세 편이 개봉했으니 그 어느 해보다 바쁘게 보냈을 텐데 말이죠.
<신과 함께-죄와 벌>이 지난해 12월 20일에 개봉했으니까 사실상 올해 제가 출연한 영화 네 편이 상영됐어요. <신과 함께>가 속편까지 한 번에 촬영한 덕분이기도 하고, <공작> <암수살인>까지 개봉 시기가 연이어 잡힌 덕분이기도 한데, 다 운이죠. 개봉 시기는 배급사와 제작사에서 결정하는 거니까, 저는 그저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열심히 연기했고요. 아마 올해 같은 경우가 또 찾아오긴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오늘 <암수살인>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정말 다행이죠.

주연배우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걸까요?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서 흥행 결과가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결과에 책임감을 느끼는 건 조금 다른 의미일 거 같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책임감도 생기는 거 같아요. 배우로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관객들의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연배우로서 투자자에 대한 책임감도 일정 부분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빚을 갚아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제 입장에서 재미있게 느껴져서 선택하고 출연했는데 막상 많은 사람에게 흥미를 주지 못하는 영화로 평가돼서 흥행에 실패하면 속상해지는 사람이 생기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 누군가는 이 일이 생존과 직결되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정말 좋아해서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생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갈수록 책임감도 늘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생각이 구체화된 계기가 있을까요?
<좋은 친구들>에 출연할 때만 해도 배우는 연기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좋은 친구들>의 관객 수가 40만 명이 조금 넘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였고,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그 작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좀 슬프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제가 좋아서 선택한 작품을 더 많은 관객이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손익분기점은 상징적인 기준 같아요.

결국 내 선택을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걸까요?
제가 정확히 아는 건 아니겠지만 예를 들어, 이번 달에 <에스콰이어>가 엄청나게 팔렸다고 해서 당장 기자님 월급이 오르는 건 아닐 거예요. 반대로 매출이 떨어졌다고 해서 월급이 깎이는 것도 아닐 거고요. 하지만 판매 부수가 떨어지면 속상해지고,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지긴 하겠죠. 수입 여부를 떠나 공들여 만든 기사나 화보를 많은 사람이 좋아해줬을 때 느끼는 쾌감이 있잖아요. 저 역시 그런 쾌감을 계속 느껴보고 싶은 거죠.

그만큼 내 일과 그 결과물에 애정을 느낄 수 있느냐는 전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흥행성과 거리가 먼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해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출연한 작품이라면 흥행하지 않았다 해도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예상 밖으로 흥행하면 당연히 훨씬 기분 좋은 일이 되겠죠. 하지만 분명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드는 작품이 있거든요. 그런 작품을 선택하면 흥행 성적에 대해 확실하게 신경 쓸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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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암수살인>까지, 어쨌든 올해 공개된 네 편의 영화는 최소한 손해 보지 않은 작품이 됐습니다. 올해는 그런 면에서 슬플 일이 없는 해일 거 같네요.
관객 수만으로 영화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정말 축복받은 해죠. 심지어 <신과 함께> 두 편 모두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공작>으로 칸 영화제에도 다녀왔고, 영화마다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으니까요. 저마다 다른 장르의 작품들이라 배우로서 보다 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어요. 덕분에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고요. 좋은 연기란 무엇이고, 좋은 연출이란 무엇이고, 좋은 영화란 무엇이고, 너무 명확하게 규정하려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느낀 만족감과 저마다의 작품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과정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만큼 연기에 더 많은 재미를 느끼게 됐지만, 한편으론 연기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단순히 감정만으로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기술로만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하지만 다른 배우들과의 신뢰를 통해 얻어지는 것도 있고요. 결국 다 몸으로 겪어야 되는 거고, 그만큼 힘든 거죠. 사실 그래서 요즘 인터뷰하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스스로 정의할 수도 없는 걸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 같아서.

어쩌면 주지훈이라는 배우의 세계관이 그만큼 팽창하는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게 다 주지훈이라는 배우와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한 제작자와 감독 덕분이겠죠. 그런데 <공작>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도, <암수살인>의 김태균 감독도 <아수라>를 보고 주지훈 씨에게 출연을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아수라>가 주지훈 씨의 경력에서 정말 중요한 작품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신과 함께> 촬영 중에 윤종빈 감독님한테 연락을 받고 만나서 <공작>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알고 보니 <아수라>를 제작한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님이 윤종빈 감독님에게 <아수라> 편집본을 보여줬는데 그걸 보고 연락했대요. 김태균 감독님도 <아수라>를 보고 <암수살인>을 제안하셨고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시상식에서 <공작>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 시상식 자리에서 (김)남길이 형한테 고맙다고 말했어요. <아수라>를 나한테 양보해줘서 고맙다고. 원래 그런 말을 하는 건 금기 같은 건데 워낙 친해서요. 그래서 장난도 자주 주고받는 사이라 “얘기한다?” 그랬더니 “그래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시상식 현장에 남길이 형도 있었고, <아수라> 팀도 다 있어서 그냥 얘기했어요.

<아수라>를 홍보할 때 배우들 사이가 돈독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한편으론 주지훈 씨가 나이 많은 형들과 참 잘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였고요. 그 이후로도 <신과 함께> <공작> <암수살인>에서 호흡을 맞춘 선배 배우들과 꽤나 돈독하게 어울리는 거 같던데, 어쩌면 출연작이 늘어날수록 사람을 얻는 재미까지 느끼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운이죠. 조금 다른 얘기가 될 거 같긴 한데, 사실 (김)윤석 선배나 (황)정민 선배, 정우성·이정재 선배는 저보다 한 시대 앞서 판을 이끌어온 배우들이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멋지게 이끌어가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후배로서의 역할도 중요해진 거 같아요. 그리고 여전히 굳건하게 대중과 호흡하시는 선배들이 있다는 건 후배로서 고마운 일이죠. 우리 밥벌이를 연장해주고 있는 거니까. 제 몫을 열심히 해내면 저 역시 저기까지 갈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거잖아요. 그래서 선배들이 길을 열고 나아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돼요. 물론 그가 간 길을 제가 갈 거라고 보장할 순 없다 해도 말이죠.

나이가 들고 경력이 늘어갈수록 존경할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게 귀한 일이 되죠.
10년 동안 연기해도 촬영장에 들어갈 때마다 매번 100여 명의 새로운 스태프에게 둘러싸여요. 처음 만나는 감독도 있고요. 처음 도전해보는 장르일 때도 있고. 그쯤 되면 베테랑처럼 여유롭게 연기할 거 같지만 굉장히 긴장되고 떨리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런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릴 때가 있죠.

선배들 입장에서는 당돌하더라도 솔직하게 다가오는 후배가 편하게 느껴질 거 같아요.
저는 먼저 다가가는 쪽이에요. 낯설거나 민망한 걸 잘 견디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촬영 전부터 감독님이나 선배들과 충분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괜히 내가 부담스럽게 만들거나 뭔가 방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낯설고 두려운 마음을 떨쳐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선배들이 쌓아온 경력 자체가 어마어마한 후광이라 만나기 전부터 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다들 부드러운 사람들이에요. <암수살인> 촬영할 때에도 윤석 선배님은 알고 보면 카스텔라 같은 사람이라고 했어요.(웃음) 다만 선배들이 조심하는 이유는 알죠. 아무리 경험이 많은 선배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낯설 거예요. 그리고 연기라는 게 유리를 만지듯이 섬세한 작업인데 자칫 잘못 조언하면 깨진 유리처럼 복구가 안 되니까. 그래서 다들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거고. 그리고 사실 저한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잖아요.(웃음) 다들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어요.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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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 여러 배우와 함께 현장에 있는 것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런 분위기를 정말 재미있게 여기는 타입이죠. 그런데 그게 꼭 중요한 거 같진 않아요. 이를테면 <신과 함께>에 같이 출연한 (김)향기 같은 경우는 정말 조용한 편이었어요. 물론 다들 삼촌뻘 되는 배우들만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조용히 할 일 하면서도 잘 적응하더라고요. 다들 자기 스타일에 맞게 집중하는 방식이 있는 거죠. <공작>의 (이)성민이 형은 술을 전혀 못 마시는데 술자리에는 와요. 술은 안 마시지만 같이 있는 게 좋았던 거죠. 그만큼 다들 잘 맞았던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지기 어려운 배우도 있을 거예요.
있죠. 그리고 제 입장에서의 선의가 모두를 위한 선의는 아닐 거예요. 저는 함께 연기할 때 서로 친해지는 게 편하지만 어떤 배우들은 그게 꼭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방식을 밀어붙이거나 강요할 수는 없죠. 만약 제가 선배라면 먼저 다가가서 중간 지점을 찾을 거예요. 현장에서는 적당히 농담하는 사이가 되지만 현장 밖에서는 굳이 만나서 밥 먹자는 얘기까진 안 하겠죠. 그런데 그 순간에 노력하는 게 저만은 아닐 거예요. 그도 나름대로 저와 함께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겠죠.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결국 그런 게 관계니까요.

어쩌면 그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야말로 배우로서 프로가 됐다고 느끼는 때 아닐까요?
그건 너무 거창한 의미 같은데요.(웃음) 그런데 예전에 비해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형들과 있을 때에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지만 후배들과 있을 때에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그랬던 거구나 싶을 때가 있죠. <마왕>에 출연할 때 제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엄)태웅이 형이 저한테 정말 잘해줬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선배가 좀 어렵게 느껴졌는지 제가 편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때의 저를 떠올리면 저라는 사람 역시 어떤 후배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사람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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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에서 김윤석 씨와 단둘이 자리한 투 숏으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대부분이었으니 자기 몫을 확실히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진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전작들에서는 출연하는 배우가 많았고, 신을 견인할 만한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니까요.
어떤 작품이든 촬영에 들어갈 때에는 나름대로 나사를 꽉 조이듯 임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긴장을 늦춘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압박이 덜하다고 느껴질 때는 확실히 있죠. 일말의 안도감이 들 때가 있다고 할까요. 방금 내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다 해도 누군가가 막아줬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최소한 숨 쉴 구멍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단둘일 때에는 확실히 좀 더 큰 압박감이 느껴지죠.

한편으로는 <아수라> 이후로 <공작>까지 많은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연기하는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다가 김윤석 씨와 일대일로 마주하는 신이 대부분이었던 현장 자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궁금하네요.
<암수살인> 무대 인사를 다니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간만에 단둘이 다니니까 외롭다고.(웃음) 단체로 있을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행사 끝나면 다 같이 밥 먹고 술 한잔해도 왁자지껄해지는 에너지가 있죠. 반대로 단둘이 있으면 좀 더 진지해질 수 있고, 밀도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죠. 그런데 사실 영화를 촬영할 때에는 그런 정서를 느낄 여유가 없었어요. 사투리를 소화하는 것부터 너무 힘들게 느껴졌고, 접견실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계속 다른 감정이 진동한다는 느낌을 전달해야 하니까. 그래서 마치 연극하듯이 연습했어요. 이를 테면 “하다 보니까”라는 대사를 칠 때 ‘하다 보니’에서 고개를 내리고 ‘까’를 할 때 고개를 들자, 이런 식으로 대사와 행동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맞추듯이 연습했죠. 두 달 동안 그렇게 해도 불안하니까 촬영 끝나고 식사하러 가기 전에 감독님과 함께 한두 시간 동안 맞춰보고, 현장에 한 시간 일찍 가서 맞춰보고, 그렇게 앞만 보고 가느라 뒤돌아볼 여력도 없었죠.

지금까지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의 캐릭터가 다 만만치 않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암수살인>의 강태오만큼 힘들게 느껴지는 캐릭터가 없었을 거 같기도 하네요. 어쩌면 그만큼 배우로서 아는 게 많아지고, 채워야 하는 부분들을 더 주목하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갖고 있던 모든 걸 쏟아부어야 했거든요. 다 쥐어짜내야 됐죠. 그런데 어차피 매 작품마다 양날의 검을 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작>에서는 성민이 형, 정민이 형, 진웅이 형이 있으니까 기댈 데가 많다는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반대로 제가 삐끗하면 그 베테랑 배우들과 너무 비교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때는 그런 면에서 제 자신을 쥐어짜야만 했죠. 기댈 데가 많은 만큼 제 실수가 잘 보일 확률은 세 배로 늘어나는 거니까요. 반대로 <암수살인>에서는 윤석 선배 한 명이라 상대적으로 비교 대상이 적은 거니까. 물론 그만큼 기댈 데는 없어졌지만. 그래서 요즘은 상대적으로 뭐가 더 어렵다거나, 더 쉽다거나, 그런 느낌을 받진 않아요. 매번 제 안의 무언가를 즙처럼 짜서 뽑아내는 수밖에 없죠. 스릴러 한 편 했다고 해서 다음에 만날 스릴러가 편해지는 것도 아닐 거고요.

모든 작품이 언제나 절대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일인 셈이군요.
그렇죠.

<암수살인>에서 주지훈 씨가 시종일관 맹렬한 기세로 주먹을 날리는 것 같은 연기를 펼친다면 김윤석 씨는 그 맞은편에서 강건한 기운으로 묵묵히 견뎌내는 역할을 해내는 인상입니다. 김윤석 씨가 앞에서 단단하게 자리해주지 않았다면 주지훈 씨의 연기가 넘치는 느낌을 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김윤석 선배가 그렇게 잘해주지 못했다면 제가 소리만 빽빽 지르는 역할처럼 보였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저라면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더 두드러져 보이고 싶은 욕심이 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배우로서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종교에 귀의해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런 연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실제로 느꼈다는 것도 행운이고 영광이었죠. 단순히 예우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정말 좋은 선배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암수살인>에서 삭발을 감행한 건 제작 과정에서 요구된 것을 반영한 것이었나요, 아니면 캐릭터를 표현하는 배우의 개인적인 선택이었나요?
일단 대본상에는 삭발했다는 직접적인 묘사는 없었고 감옥에 들어간 이후 신에서 ‘짧은 머리로 나타난다’는 지문이 있었어요. 사실 요즘 감옥에서 강제로 머리를 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강태오는 범법자들 무리에서 남들보다 기가 세 보이고, 꿀려 보이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고심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기본적으로 허세가 강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씻는 것도 귀찮아하는 편일 거 같아서 세수하면서 머리까지 함께 감아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감옥에서는 더더욱 그럴 테니 삭발하는 게 본인에게도 편한 선택이었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삭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더니 감독님도 바라는 바였지만 배우에게 강요하는 거 같아서 정확히 요구하진 않았다고, 먼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 외에도 숙제가 많았어요. 대본에 ‘특유의 걸음걸이’라고 묘사된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나서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보여줬더니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렇게 표현하게 됐고요.

한 다리를 절 듯이 걷는 모습 말이죠. 그리고 말하는 중간마다 코를 세게 들이켜듯이 소리를 내기도 하고. 강태오라는 인물의 행위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설계된 결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쉽지 않았어요. 대사하면서 ‘킁’ 하고 코를 들이켜는 게 막상 해보면 제 입장에서는 이상한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이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태오처럼 몸을 막 굴리고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체 기능이 떨어지게 돼 있다고요. 건조하다고 해서 가습기 같은 걸 틀어놓고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사투리가 정말 힘들었죠. 단순히 사투리를 따라 익히는 게 아니라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작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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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오는 굉장히 센 억양의 사투리를 능글능글하게 구사하다가도 종종 흥분을 억누르며 또박또박 일갈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강태오의 사투리는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단 인물의 음흉함과 날 선 기질을 드러내는 데 일조하는 장치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영화에 반영한 거니까 대체할 수 없는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셈이지만 사투리라는 게 명확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경상도 내에서도 동서남북 사투리가 다 다르고, 같은 부산 사람끼리도 각자가 생각하는 진짜 부산 사투리 억양에 대한 의견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럼에도 진짜 아닌 건 아닌 거예요.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를 말할 때도 개인마다 억양이 다 다르지만 ‘하’를 올려서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걸로 바꿀 수는 없지만 언어의 특성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이질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기본적으로 사투리 연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는 어쩔 수 없는 평가 대상이 되니까요.
경상도 사투리의 허들이 되게 높더라고요. 전 국민이 경상도 사투리를 대충은 알잖아요. 심지어 제가 하면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될 때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제 입장에서도 익숙한 사투리의 톤이 있다 보니 그만큼 익숙하게 발음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는 불안하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어요. 이를테면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를 희화화한 방식에 익숙한 거죠. 보통 경상도 사투리라고 하면 높은 톤으로 지르듯이 말하는 데 익숙하지만 부산 사투리는 오히려 톤이 낮더라고요. 처음 연습할 때는 낮은 톤으로 툭툭 던져야 했는데 자꾸 톤이 높아지는 거예요. 아무래도 사투리로 연기하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제 자신의 선입견부터 무너뜨려야 했어요. 그걸 무너뜨리고 다시 쌓고, 그런 과정이 어려웠죠.

<공작>에서는 북한 사투리를 썼는데, 그때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나요?
부산 사투리보다는 낫더라고요.(웃음) 사실 북한 말은 저도 잘 모르니까요. 물론 북한 사투리도 두 달 동안 어마어마하게 연습하긴 했죠. 그런데 제가 맡은 캐릭터는 평양 사투리를 구사해서 우리가 뻔히 아는 북한 사투리의 억양보다 부드러웠어요. 그래서 제가 북한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자칫하면 서울말처럼 들릴 거 같다고, 그 부분에 대해 윤종빈 감독님과 정말 많이 상의했어요.

강태오는 능구렁이처럼 사람을 떠보다가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인물입니다. 굉장히 비상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날짐승처럼 사나운 인물이죠. 그런 인물의 감정적 편차를 드러내면서도 그 편차를 조율하는 것이 과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정말 연극을 연습하듯이 두 달 동안 하나하나 다 잡아야 했어요. 어떤 말을 할 때에는 이 단어에서 손을 뻗고, 이 단어에서 다시 손을 빼자, 이런 식으로. 등을 기대는 각도까지 하나하나 다 계산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정말 연습밖에 답이 없었어요. 게다가 라이브 톤으로 연출하고자 한 영화였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는 카메라 앞에서 정말 미쳐서 날뛰는 것처럼 보여야 했어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죠.

마치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조율하듯 연기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군 복무 시절에 만난 친구 중에 보컬 트레이너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R&B 장르의 보컬이라 소위 꺾는다는 걸 잘했는데 한번은 어떻게 그렇게 기교를 부릴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형, 이게 감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목에 건반을 박아놨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니까 정확한 음계를 알고 감정을 입히는 거지, 무작정 느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야 음악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거고요. 이번에 사투리로 연기하면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됐어요. 사투리로 대사를 하면서 라이브 톤에 연기를 맞춰야 하니까 정말 모든 신이 몸에 배도록 연마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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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이나 <아수라> 같은 작품에서도 악인의 유형에 속하는 인물을 연기하긴 했지만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이었던 반면 <암수살인>의 강태오는 극 중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정신 분석도 불가능한 악인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악인을 연기한 건 처음이었죠.
그래서 과거 인터뷰에서는 악역이라고 하지만 한 번도 악하게 연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저 이야기 안에서 악역을 맡게 돼버린 인물들인 거죠. 그런 면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악인을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인 거예요. 그런데 쉽게 접근했어요. 이 친구가 치밀한 계획 범죄를 일으키거나 복수를 감행하는 인물이라면 좀 더 공부를 했을 거 같은데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을 바탕에 두고 그려낸 인물이라고 하니까, 어떤 캐릭터를 참고하거나 분류할 만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뉴스를 보면 이런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저는 단순하게 ‘왜’가 없이 이런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이미 있는 놈들이니까 제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된다는 건 이미 의미가 없는 거니까요.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극악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문제처럼 느껴지진 않던가요?
분명히 그런 부분은 있어요. <아수라>를 찍을 때에도 사적인 자리에서 편한 사람들과 있다 보면 평소보다 육두문자를 좀 더 많이 쓰게 되는 경우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 정도 영향은 있는 거 같아요. 사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행동도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좀 더 거친 친구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거칠게 행동하게 되고, 얌전한 친구를 만나면 좀 더 얌전해지고.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 그런 면에서 강태오를 연기하는 데에서 고충은 있었지만 심하게 빠져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현실과 연기의 구분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건강한 타입이라 할 수 있겠군요.
옛날에 <마왕>을 찍던 당시에는 작품을 끝내고 나서도 좀 힘들었던 경험이 있긴 해요. 그런데 요즘은 워낙 일을 열심히 했으니까요. <암수살인> 끝내고 나서도 2주 정도 쉬고 바로 <킹덤> 촬영에 들어갔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킹덤>은 사극이니까 의상이나 전반적인 외형도 많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만큼 새롭게 적응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죠.

<킹덤>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스트리밍 서비스하는 오리지널 시리즈예요. <시그널> 각본가인 김은희 작가와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만남으로도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드라마 대본은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작품을 이해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촬영은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 <킹덤>은 드라마 대본의 장점과 영화 촬영의 장점을 살려서 만든 작품이라 재미있었어요. 프리 단계도 길었고요. 물론 그래서 감독님은 힘드셨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190개국에 서비스된다는데 세계가 하나라는 말이 정말 실감 나는 일이죠. 그런 작업에 참여한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는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일종의 책임감도 느껴져요. 잘됐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배우의 역할이 작품 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배우로서 지녀야 할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제 몫을 다해서 연기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연기 외적인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할까요.

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종종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때는 없을까요? 마치 비현실의 세계를 연기하는 일처럼 말이죠.
영화의 원작인 소설 <링>은 공포 소설인데 2권은 <매트릭스>와 비슷한 세계관을 그리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책을 보면서 가졌던 호기심이 있었는데 배우가 됐으니 그런 상상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입장이 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저는 모델을 꿈꾼 적이 없었는데 운 좋게 우연한 기회로 모델이 됐어요. 그런데 모델로 일하다 보니 배우가 됐고요. 돌이켜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종종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보면서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이해해야만 하죠. 그런데 오히려 <신과 함께> 같은 작품을 찍다 보면 어느 때보다 더 현실감이 느껴져요. 영화를 보는 관객과 달리 배우는 그린 스크린 앞에서 와이어를 매달고 연기해야 하니까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영화가 나온다는 걸 오히려 더 잘 알게 되는 입장이잖아요. 아이러니하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린 스크린 주변에서 CG로 채워질 허상을 상상하며 연기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리액션해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 같아요.
그래서 김용화 감독님에게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미스터 고> 촬영할 당시에도 그린 매트에 막대기 하나 세워놓고 찍었다는데, 그동안의 촬영 경험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굉장히 정교한 디렉션을 주거든요. 동시에 감독으로서 신뢰할 만한 눈빛을 주고요. <신과 함께>에서 보여준 제 연기가 괜찮게 보였다면 100% 김용화 감독님 덕분이에요. 감독님이 제가 신뢰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의심하고 연기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영화는 연출의 예술이기도 하고요.

내비타이머 8 크로노그래프 43 600만원대 브라이틀링. 가죽 재킷, 재킷, 셔츠, 바지, 구두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석상에 설 때마다 객석을 향해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 편 손을 들어 올린 모습이 자주 포착됐어요. 알고 보니 하정우 씨에게 배운 하와이 인사라고 하던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하와이를 가서 실제로 보기도 했는데 차를 양보해주거나 하면 이렇게 인사해요. 고맙다, 사랑한다, 이런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인사인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거라고 해서 관객 중에는 어린 친구도 있고 어른들도 있으니까 고개 숙여서 인사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대신 이런 식으로 인사하게 됐어요. <신과 함께>로 홍보 활동할 때부터 썼는데 이젠 습관이 됐어요.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 방식인 거 같더라고요.

내일 아침 일찍 드라마 <아이템> 촬영차 지방에 내려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고된 스케줄이지만 배우로서 연기할 기회가 꾸준히 찾아온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겠죠.
현장은 애증 같은 곳이에요. 현장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그 덕분에 느낄 수 있는 성취감도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연기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러면서 뇌를 계속 굴려서 좋은 연기 방식을 고민해야 하고, 그런 일련의 작업이 재미있어요.

어쩌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주지훈이라는 배우가 계속 연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르겠어요.
맞는 말 같아요. 그게 100%는 아니겠지만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일 거예요. 작품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다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좋든 싫든 함께해야만 하니까요. 군대가 아니라 상하 관계가 지나치게 엄격한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는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내비타이머 8 오토매틱 41 400만원대 브라이틀링. 재킷 김서룡. 터틀넥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늘 화보 촬영에 착용한 시계는 브라이틀링의 제품들이었어요. 1884년에 역사가 시작된 브랜드이니 3세기에 걸쳐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죠. 배우라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연기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을 통해서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겠죠. 혹시 배우로서 자기 자신에게 주문하고 싶은 바가 있을까요?
대단한 청사진은 없고, 그냥 계속하고 싶어요.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내 일을 열심히 잘하면 역사에 기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 일이 좋아서 열심히 해나가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게 목표인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이 작품에 열심히 임해도 실패할 수 있겠지만 항상 그렇게 살아간다면 전반적인 인생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후회한다 해도 성실하게 이행한 뒤에 남는 후회는 괜찮을 거 같아요. 그렇게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운이 더해질 때도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기억될 만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과 함께> <공작> <암수살인>에서 연이어 좋은 연기를 보여준 만큼 배우 주지훈에 대한 기대감은 분명 늘어났을 거예요. 이 역시 배우 주지훈에게 주어진 양날의 검일지도 모르겠어요.
선배님들을 통해 진짜 많이 배웠어요. 저마다 ‘열심히 했어’라고 이야기하는 기준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누가 봐도 열심히 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열심히 하면 최소한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렇게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면 말이죠. 그런데 매일 유혹에 흔들려요. 귀찮고 피곤하니까. 그래서 정말 이 악물고 해야만 해요. 그렇게 해도 항상 좋은 결과가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야만 최소한 나빠지지는 않을 거 같아요. 저는 ‘열심히’라는 말의 힘을 믿어요.

그렇다면 주지훈 씨에게 연기란 언제나 열심히 스스로를 이기는 일일까요?
나를 이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거든요. 태어난 지 1만3000일이 넘었는데 1만3000번 이상 진 거 같아요.(웃음)

대화를 나눠보니 주지훈 씨는 무슨 일을 했다 해도 잘 해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배우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음, 배우가 아니라 매니저가 됐을지도? 진짜 잘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럼 귀인이 돼서 지옥을 다 통과한 다음에 환생하면 매니저로 살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 전에 환생을 하는 게 맞는지 고민부터 해야겠는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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