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이라는 사람 2편

조인성은 지금 좋은 상태다.

페어 아일 케이블 스웨터, 옥스퍼드 셔츠, 데님 바지, 드라이빙 슈즈, 캡, 양말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조인성은 마음이 약해요. 상처 주는 것보다 상처받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그래요. 

약한 모습이 분명히 있죠. 맞아요. 제 마음이 강하지 않다는 걸 아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강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약한 사람이에요. 

사실 마음이 약한 게 부끄럽거나 나쁜 게 아니잖아요. 

그런 걸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문화 탓이죠. 착하다는 말이 멍청하고 이용당하기 쉽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식이죠. 그래서 어머니가 어렸을 때 저를 많이 혼내셨어요. 나중에 사과를 하시더라고요. 

키 크고 허우대가 멀쩡한 남자아이들이 종종 받게 되는 상처 같아요. 덩치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마음도 강건한 건 아니죠. 그런데 부모와 세상은 덩칫값을 하라며 내몰기 일쑤죠. 

아들이 세상에 나가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더 단단한 상태로 나아갔으면 하니까요. 착하다는 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우리를 더 매몰차게 한 건 아닌가 싶어요. 무엇무엇답다는 말이 있잖아요. 장군은 장군답다거나 어머니는 어머니답다거나 리더는 리더답다거나. 남자이고 키 크고 건장하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답기를 강요받았던 거죠. 그게 전부 억압이고 상처인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 처음 살아본 인생이면서, 모르면서 말하는 거죠. 

조인성도 약한 마음을 숨기며 강한 척 살았어야 했군요.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도 많았죠. 잘 아시겠지만 세상은 녹록하지가 않으니까. 그렇다고 엄청나게 불행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세상은 원래가 이랬어요. 다만 내가 그렇지 않은 세상이라고 착각했던 것뿐이죠. 세상은 좋든 싫든 원래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마음 약함이나 착함이 조인성한테 장점이고 매력이 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권위적이지 않고, 마음 약하고, 상처 주기보다는 상처받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안시성>은 그런 조인성의 아우라가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영화였고. 

그런 아우라는 결국 내가 살아온 삶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살아온 것들이 모여서 아우라가 되는 거죠. 무엇무엇다워야 한다는 것을 내려놓고 그냥 인간답게 살아왔으면 그게 모여서 내 아우라가 되는 거죠. 배우답다, 뭐 그런 거 없어요.

조인성은 옛날 사람인가요? 

옛날 사람이죠. 저는 아직도 옛날 영화 현장에서 물씬했던 낭만이 그리워요. 

돌이켜보면 가장 그리운 현장이 있나요? 

<마들렌>이 생각나요. 촬영 끝나면 함께 술 마시면서 그토록 진지하게 영화 얘기를 하던 그런 시절. 지금은 그런 게 좀 없으니까. 동생들한테 강요할 수도 없고. 어쩌면 이게 저만의 낭만일 수도 있겠죠. 요즘 시대에는 안 맞는. 저는 그걸 낭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의 사람인 거죠. 

조인성의 롤모델이 정우성이라는 건 맞나요? 

그럼요. 무릎 꿇죠. 우성이 형하고 정재 형한테는. 작품을 보는 눈이나 생활은 다를 수 있지만 우성이 형이 가는 길이 저한테 롤모델인 건 맞아요. 주연의 몫도 하시지만 주연이 아니더라도 영화에서 캐릭터가 좋으면 어떤 역이든 하는 것도 멋있죠. 주연만 했던 분이잖아요. 그러면서도 그 배역이 작아 보이지가 않아요. 정재 형만 해도 <신과 함께>의 염라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잖아요. 그렇게 선배님들이 움직여주니까 저도 뭔가 길이 보여요. 우성이 형과 정재 형이 보여주셔서 보이는 거죠. 

9월호 커버스토리 주인공은 송중기 배우였어요. <쌍화점> 때부터 가까워진 사이죠. 

지금도 좋아하는 후배죠. 게다가 결혼도 했으니 이젠 저보다 훨씬 어른이죠. 

선배가 후배에게 길을 보여주고 후배가 선배의 등을 보며 길을 찾고. 사실 이런 것이야말로 참 낭만적인 건데요. 

예전에는 안성기 선배님을 필두로 모임이 있었어요. 송강호 선배와 최민식 선배도 계셨고. 저는 막내여서 말석에서 폭탄주를 말고. 지금은 그렇게 모이지도 못해요. 

지나고 보니까 그런 모임에서 진정 중요한 요소는 큰형님만 아니라 막내더라고요. 사실 그런 모임을 이어주는 건 막내예요. 양만춘한테 사물이 중요한 것처럼요. 

그래서 예전에는 술 먹으면 제일 큰형님 옆에 막내를 앉혔어요. 그때 중훈이 형이 저를 굉장히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런 낭만의 시절이 있었네요. 

그렇게 옆에서 보고 배웠으니까 그걸 후배들에게 또 보여주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 마음을 <안시성>에 넣은 건데 관객들이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추석 영화 시장은 경쟁이 과열되는 것도 같던데. 

그런 치열함은 큰 영화를 하는 사람한테는 숙명 같아요. 받아들여야죠. 제작비가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흥행은 더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지만, 반대로 더 확실한 바늘구멍이 되고 있는 것도 같아요.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하다는 거죠. 그걸 충족시키는 게 어려운 거지. 그게 현실인 거죠. 영화의 가치를 흥행의 성패로만 구분하는 프레임은 위험해요. <더 킹>은 저한테는 자부심으로 남아 있는 영화예요. 흥행 성적도 좋았지만 자꾸만 언론이 비교를 하죠. 그런 비교가 경쟁을 과열시키고. 

<안시성>이 흥행하면 고구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걸 원하는 관객도 많아요.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진짜 끝도 없을 거예요. 중국의 동북아 공정 얘기까지 나와야 하니까요. 적어도 우리 스스로는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에서만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안시성>을 시작으로 을지문덕 이야기 같은 역사적 사건이 더 많이 영화화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한국 영화도 살아요. 고구려로도 가고 우주로도 가야 해요. 이미 우주로 가잖아요. 

<안시성> 이후에 배우 조인성은 더 무거운 시나리오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앞으로 더 판을 키운다면 특정 배우한테만 의존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220억원짜리 영화를 다시 한다? 저한테도 이런 작품은 마지막이 아닐까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생각해봤어요. 거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요?  

트위드 재킷, 케이블 스웨터, 체크 셔츠, 데님 바지, 운동화, 캡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조인성이라는 존재는 후배 배우들한테도 영향을 줬지만 지금 패션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패션 에디터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줬어요. 모든 패션 브랜드가 조인성한테 ‘신상’을 입히려고 하던 때가 있었죠. 

아마 <발리에서 생긴 일> 즈음이었을 거예요. 강윤주라는 훌륭한 스타일리스트를 만나서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제가 패셔니스타라는 이미지를 얻은 거죠. 하지만 솔직히 제가 스스로 알아서 입는 수준은 안 됐어요. 저는 오히려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었거든요. 철저히 분업화돼 있었달까. 저 스스로 더 많이 알면 더 좋았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어요. 지금은 윤주 누나 동생이었던 분과 계속하고 있어요. 요즘은 클래식에 더 관심이 많이 가요. 새로운 패션을 제시하는 역할은 이젠 제가 아니라 젊은 배우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전 진정한 패션은 이번 시즌의 신상품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요즘 <에스콰이어>가 좁지 않아서 좋아요. 사람들은 패션지라고만 생각하는데 그 이상이거든요. 사회와 문화를 관통해서 비로소 표현되는 게 패션이니까요. 

편집장으로서 고마운 말씀이네요. 독자 여러분도 그렇게 느껴주셨으면 좋겠고. 

진짜 멋진 것 같아요. 물론 타협할 부분도 있겠죠. 상업적으로 팔려야 하니까. 

그런 순간에는 조인성의 유연함을 배워야죠. 배우로서, 광고 모델로서, 매거진의 커버 모델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리더로서, 참 유연하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래야 저한테 좋더라고요. 그게 깊은 깨달음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내가 좋은 거구나. 인생은 타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 대 영은 없어요.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사는 거죠.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조인성은 분명히 영화배우이면서 동시에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상징성까지 얻은 드문 존재였어요. 

패션을 실제로 이해하고 체득했던 1세대는 이정재 선배님과 우성이 형인 것 같아요. 두 분은 확실히 달라요. 저는 그것보다는 좀 촌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게 나쁜 건 아니니까. 좀 더 땅에 붙어 있는 쪽인 것 같아요. 취향이 좀 더 생활 밀착형이랄까. 저만의 촌스러움이 있어요. 그게 대중이 절 응원하는 포인트일 수도 있고요. 물론 화려한 자리에서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태도를 보일 줄도 알죠. 그 정도는 나이를 먹었어요. 하지만 대체로는 미니멀하고 심플하게 생활해요.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죠. 요즘 차는 볼보를 타요. 그게 딱 좋아요. 그 브랜드가 주는 느낌이 뭔지 아시겠죠? 

편하고 실용적이고 그래서 세련되고. 

그게 저인 거예요. 그렇게 저를 표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 차를 선택하는 순간 이게 나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조인성이다. 많은 걸 선택할 수 있지만 진정 나다운 걸 선택하는 것. 전 이것이야말로 가장 품격 있는 취향인 것 같아요. 

조인성이 누구와 어디를 가고 싶어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네요.

그러게요. 과거에는 연애를 해도 집에서만 했어요. 이 나이에 연애를 안 해봤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옛날에는 알려져 있다 보니까 집에서만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여자 친구가 생기면 그렇게는 안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나이고요. 내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그럴 이유가 있나 싶어요. 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말자 싶어요. 지금까지 충분히 그랬으니까요. 집에서 연애하는 거, 엄청 지루해요. 그래서 연애가 재미가 없어져요. 헤어짐의 가장 큰 이유가 되죠. 저는 여자한테 100% 맞춰주는 타입은 아니고 ‘따로 또 같이’를 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배우의 상태에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힘든 연애를 하면 나를 파괴하는 쪽으로 가기가 쉽죠. 

스리피스 체크 슈트, 드레스 셔츠, 비니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넷 탓에 십수 년 전 인터뷰도 검색이 되죠. 전 사실 기자보다 인터뷰의 선수는 배우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한 사람이 동시에 수많은 기자를 상대하니까. 그런 인터뷰의 조각들로 대중에게 조인성의 이미지가 완성되는 거겠죠. 거기에 영화와 드라마의 이미지가 큰 줄기를 이루고. 

말씀처럼 배우들도 인터뷰를 많이 하죠. 게임을 많이 뛴달까. 그래서 저는 인터뷰를 슬슬 안 하고 싶어요. 제가 저를 볼 때 진짜 꼴 같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내가 뭘 안다고. 나이가 서른여덟밖에 안 됐는데. 모르지도 않지만 많이 알지도 못하는 나이예요. 배우라는 갑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게 솔직히 민망해요. 그래서 갈수록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인터뷰를 나중으로 미뤄보자. 미뤄서 내가 진짜 알게 됐을 때 그때 진짜로 아는 걸 얘기해보자. 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살아보니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더라는 얘기를 할 수 있을 때 그때 인터뷰를 하자. 그런 생각도 자주 해요. 물론 지금은 그냥 내가 아는 수준으로 얘기하자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지만요. 모르면 모른다 하고. 그러나 책이나 어디서 본 걸 마치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은 얘기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죠. 그것이야말로 진짜 재수 없는 거니까. 대중을 민망하게 하는 거니까. 어떤 순간에도 대중을 민망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만큼은 확고하거든요.  

그럼에도 영화 홍보에는 배우 인터뷰만 한 바이럴 수단이 없으니까 수많은 기자들의 말을 상대하도록 인터뷰의 전장으로 내몰잖아요. 

그게 주연배우의 책임감이라고 하긴 하는데, 참 민망해요.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될 때쯤이 되니까, 이젠 배우라고 얘기하는 게 민망해졌어요. 예전에는 배우라고 인정을 안 해줬는데, 이젠 배우라고 불릴 즈음이 되니까 배우라고 내색하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그냥 사람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전 기자로서 인터뷰도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어로서 배우들을 만나다 보면 답답한 순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듣는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잖아요. 맥락을 잘못 짚은 대답을 할 때면 답답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 좀 더 열심히 하게 돼요. 내가 뭐라도 돼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반대로 인터뷰어로서 배우에게 조심하는 건 있어요. 대답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거죠. 이건 취조가 아니니까. 내가 원하는 정보를 내놓으라고 닦달해서는 안 돼요. 저도 내가 뭐라도 돼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들으러 온 거죠. 그리고 점점 듣는 게 좋아져요. 

(차)태현이 형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라디오 스타>를 찍다가 그랬어요. “나는 듣는 게 좋더라. 재미있어.” 우리는 늘 말하기에 급급하잖아요. 그런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는 건 대단한 경지라고 생각해요. 

수준 높은 인터뷰란 결국 밀도 높은 대화죠. 결국 좋은 인터뷰는 한 사회에서 제시될 수 있는 좋은 대화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인터뷰나 좋은 대화나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마감 시간에 쫓길 텐데도 <안시성>을 보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반가웠어요.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는데 이걸 내가 대충 하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8년 10월호 <에스콰이어> 커버의 최종 후보 두 가지를 내보이면서) 어떤 커버가 좋을까요?

잘 골라주시면 되죠. 

이번만큼은 같이 고르려고 해요. 둘 다 선택해서 투 커버로 할까, 아니면 소파에 누워 있는 커버 하나만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소파에 누워 있는 커버가 저 같아서 더 좋아요. 딱 저 같네요. 또 제가 너무 도드라지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코듀로이 슈트, 옥스퍼드 셔츠, 운동화, 비니, 양말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추석은 가족과 보내나요?

전국으로 무대 인사를 돌 것 같아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남동생이 있죠? 

경리단길에서 카페 하면서 저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요, 다행히.

부모님은?  

아버지는 제가 데뷔하고 나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지셨어요. 뇌출혈이 와서. 그때 이후로 일하지 마시라고, 즐기시라고, 골프도 배우고. 제가 돈 버니까 그거 관리하고 그렇게 저를 위해서 사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회복은 되셨는데 아들로서는 불안한 거예요. 그때가 외환 위기 시절이었는데 그 무렵 연세가 지금 제 나이보다 조금 위이려나. 당시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요. 그 무렵의 아버지 모습이 이제야 좀 이해가 돼요. 저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게 이해도 되고. 제가 살가운 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과 서로 불편해하지는 않아요. 제 과거와 화해하는 마음 같은 게 느껴지고. 이젠 아버지의 인생이 궁금해요. 친할아버지의 인생도 궁금하고. 친할아버지는 목수셨대요. 외할아버지의 역사까지. 외할아버지는 만주에 형님을 남기고 홀로 내려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번 인터뷰로 조인성의 조각이 하나 더 늘겠네요. 10년 뒤에는 지금 한 말로 오늘이 기억될 수도 있겠고요. 그렇게 기억되고 기록되는 건 배우의 숙명이자 특권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록에 어떻게 남을지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내 삶을 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상 사람들이 누군가를 다시 찾아보기에는 너무 바빠요. 세상 사람들은 그만큼 저한테 관심이 없을 수 있어요.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는 각자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한 거죠. 저는 오늘 제 일을 했을 뿐이에요. 어떤 식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건 제 욕심일 뿐인 거 같아요. 설사 기억되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해할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든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거네요. 

없죠. 

건강하네요. 건강하기 어려운 직업을 갖고 있는데도. 

후배들이 이런 고민으로 힘들어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요. 다만 확실한 건 사람들은 너에 대해 그 정도의 관심이 없다고 꼭 얘기해줘요. 지금 지나가는 사람을 봐라. 너보다 자기 인생에 더 관심이 크다. 단지 가끔 네 얘기가, 우리 얘기가 나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이미지가 그렇게 나빠진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다들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다. 아주 잠깐 우리 이야기가 사람들 대화에 안줏거리로 올라올 순 있다. 그게 우리의 몫이고 삶이지만 거기까지다. 결국 소비하고 버릴 거다. 괜찮다. 잊어버린다. 네가 그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존재가 아니듯 네 인생에도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마라. 

조인성은 건강하다. 

전 지금 좋은 상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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