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은 지금

이제 정지훈에게 최고의 선물은 성공이 아니다.

트렌치코트 마스터 넘버. 셔츠 김서룡. 반지 저스틴 데이비스.

신기주(이하 신) 저를 기억하시는 거죠?

(웃음) 그럼요. TV에도 나오시는데.

– 예전에 인천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기억이 나요. 그때 해외 공연을 나가실 때였을 텐데, 인천공항에 앉아 있는 거 발견하고 다가갔어요. 보디가드분한테 잠시 저지당함. 하지만 뚫고 들어감. 반갑게 맞이해줌.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차 한잔 함께 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게 벌써 꽤 오래전 일이죠.

– 10년이 넘었죠. 그동안 뵐 기회가 어디 있나 싶었는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이긴 하지만, 솔직히 보고 싶은 사람 얼굴 보러 왔어요.

신은지(이하 은) <자전차왕 엄복동>은 2월 27일 개봉 예정이던데요. 삼일절을 며칠 앞두고.
원래는 지난해 광복절에 개봉하는 거였어요. 그걸 올해 광복절로 옮겼다가 3월 1일이 적당할 것 같다고 해서 개봉일이 당겨진 거예요. 저도 <에스콰이어>를 통해 <자전차왕 엄복동>도 알리고 반가운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 (엄복동의 사진을 가리키며) 실존 인물보다 너무 잘생기신 거 아니에요?

제가 엄복동 선생님보다 키가 더 크죠. 평균적으로 요즘 사람들이 다 키가 많이 크잖아요. 제 키가 185cm니까요. 사실은 엄복동 선생님을 구현하려고 하체 운동을 꽤 많이 했어요. 엄복동 선생님 사진을 보면 허벅지에 잔근육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두꺼워요. 어떻게 두껍게 만들까 고민했거든요. 자전거를 많이 탔고, 스을 하면서 허벅지를 더 두껍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옷은 다 스키니하잖아요. 그래서 다시 빼느라 고생을 좀 많이 했네요.

– 촬영은 2017년에 진행했죠? 자전거는 어디서 타셨어요?

실내에서 먼저 자전거 타는 법부터 훈련을 했어요. 일반 자전거랑 경주용이 다르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조금만 타도 지쳐요. 자전거라는 게 일단 사타구니가 너무 아파요. 이게 나중에는 피멍이 들면서 소변에 피도 섞여 나오거든요.

– 정말 그 정도였어요?

나중에는 아예 선수촌에 들어갔어요. 두 시간 동안 훈련받고 집에 와서 밤낮으로 자전거 타고. 그러니 음식을 얼마나 먹었겠어요. 하루에 예닐곱 끼는 먹었는데, 모든 칼로리가 허벅지로 가는 거예요. 나중에는 허벅지 근육이 너무 커져서 팔자로 걸었어요.

– 역시 무엇이든 치열하고 열심히 하는 비, 정지훈답네요. <자전차왕 엄복동>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예요? 언제 시나리오를 처음 보셨어요?

제가 이범수 선배와 친해요. 어느 날 갑자기 선배가 사무실로 와서 시나리오를 주셨어요. ‘자전차왕 엄복동’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저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추천해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엄복동이란 이름이 낯설잖아요. 저는 허구의 인물인 줄 알았어요.

– 저도 이 영화를 알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시나리오를 쭉 읽어봤는데, 너무 슬프고 박진감 넘치고 또 감정적으로는 억울하고 그런 거예요.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지? 작가가 누구야?’ 했더니 실화라는 거예요. 엄복동 선생님은 손기정 선생님이랑 비슷한 분이에요. 손기정 선생님만큼 자랑스러운 인물이고 영웅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거예요. 총칼로 싸우는 것보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게 훨씬 무섭다, 우리 민족이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계셨던 분이고요. 그래서 이범수 선배한테 물어봤어요. 왜 하필 엄복동이 저냐고.

– 대답이 궁금하네요.

촌스럽게 생겨서 그렇대요. 잘생기지 않아서.

– (당황) 어떻게 반응해야 되나요?

제가 무대에 설 때는 화려한 모습만 보여줬잖아요. 그런데 이범수 선배는 저한테서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주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꼭 알아야 하는 인물을 세상에 알려보자 하셨던 거죠.

– 이범수 배우님의 통찰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도 같아요.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달려가는 멋 같은 게 정지훈한테 있죠. 그것이 엄복동이라는 인물과 맞닿아 있는 것도 같고.

– 엄복동 선생님과 관련한 노래가 유명하던데요.

맞아요.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었더라고요. 우여곡절이 많은 분이에요. 사실 영웅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못 받고, 제가 알기로는 객사하셨어요. 아무도 모르게. 엄복동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인데, 이런 분을 알려야겠다 싶었어요.

– 사망 연도가 1951년이니까 한국전쟁 중에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네요. 그것조차도 명확하지 않군요.

솔직히 처음에는 자극적이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전거 영화, 스포츠 영화, 누가 좋아해요. <국가대표> 빼고는 스포츠 영화 중에 잘된 게 없어요. 자전거 경주하고 지루하겠다 싶었는데, 대본을 읽어보니 단순한 자전거 영화가 아닌 거예요. 자전거 영화를 가장한 우리나라 독립투사 영웅들에 대한 얘기였죠.

– 함께 연기한 강소라 배우가 맡은 역할이 독립투사죠?

김형신이라는 캐릭터인데 독립투사죠. 독립을 위해 전쟁을 하는 사람이에요. 강소라 씨도 영웅으로 나오는데 허구의 인물이에요. 고창석 선배와 강소라 씨는 자전거가 웬 말이냐, 총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죠. 반면에 저를 포함해서 이범수 선배, 이시언 씨, 민효린 씨는 민족의 정신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죠. 자전거를 이용해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 세우자고 하는.

– 이른바 자전차파.

생각보다 박진감이 넘쳐서 좋았어요. 자전거를 타면서 ‘이게 어떻게 나올까, 잘 나올까’ 걱정스러웠거든요. 특수 촬영 장비를 써서 굉장히 박진감 넘치게 촬영이 됐어요. 경주 장면만 해도 진짜 차량 경주 장면처럼 스릴이 넘치죠. 특수 효과도 많이 들어갔고, CG도 많이 들어갔어요. 앵글의 동선도 화려하고.

– 그 한 장면 찍는데 자전거를 몇 번이나, 몇 시간이나 타셨어요?

저는 당연히 편집점이 있을 줄 알았어요. 시작! 컷! 그런데 일단 자전거를 타고 돌아야 해요. 계속. 저기 멀리 카메라 서너 대를 놓고 계속 클로즈업을 잡으면서 돌리는 거예요. 당시에는 아스팔트 같은 매끈한 바닥이 없고 그냥 울퉁불퉁한 모래 바닥이었어요. 그래서 코너를 잘못 돌면 바닥이 밀려서 무조건 넘어져요. 저는 코너를 돌 때 무조건 넘어진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탔어요. 굉장히 많이 넘어졌죠. 모든 배우가 상처도 많이 나고 꽤 힘들었어요. 여기에 화면이 전환되면서 강소라 씨가 연기한 김형신이 총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까지 교차 편집이 돼요. 거기에다 이시언 배우가 나와서 너무 웃겨주니까.

– 짐작해보자면, 엄복동이라는 사람은 원래 평택 물장수였는데 어쩌다 보니 자전거를 타게 돼요. 자전거 타는 게 그저 좋았어. 알고 봤더니 내 어깨 위에 짊어진 무게가 작은 게 아니더라. 민족의 자긍심이 실려 있더라.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이겨야 된다는 걸 깨닫는 것. 그런 걸 깨달으면서 개인이 성장한다. 이런 걸까요?

그렇죠. 하지만 엄복동 선생님은 자서전이나 남겨진 자료가 없어서, 정말 본인이 이기고 싶었던 건지 민족의 자긍심을 갖고 달린 건지까진 사실 잘 모르겠어요.

– 그건 결국 배우 정지훈의 해석에 달린 거죠. 정지훈이 보기에 엄복동은 왜 그렇게 열심히 달렸을까요?

이분은 일단 원초적으로 자전거를 너무 좋아하셨던 분이에요. 자전거 아니면 죽겠다.

– 자전거 아니면 죽겠다고요?

선천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위해 태어난 몸인 것 같아요. 딱 보면 아시겠지만 허벅지가 거의 웬만한 사람 허리둘레예요. 그 당시에 이런 허벅지인 거예요. 분명히 잘 못 먹었을 시대인데. 그러다 나중에는 정말로 민족을 위해서 달리셨던 것 같아요. 수많은 사람이 응원을 했으니까요.

– 기록을 보면, 1913년에 한 번 우승하고, 1920년에도 했고. 중국에 가서도 우승했어요.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니까 일본 선수들이랑 탔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엄복동 선생님이 1등이면 갑자기 경기를 멈추는 거예요, 심판이 강제로.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엄복동 선생님이 단상에 올라가서 일장기를 부러뜨리고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뻔한 상황에서 조선인이 둘러싸서 막아줬대요.

– 그런 장면이 이 영화에 나와요?

그건 보셔야 될 것 같아요.

– 소름 돋았어.

웬만한 장면이 다 실화거든요. 저 사건 이후 몇 년 동안 사라지셨대요. 그리고 다음에 중국에 나타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영화가 잘되면 <자전차왕 엄복동 2>가 나오는 건데.(웃음)

– 그렇죠, 중국에서 있었던 일도 공개가 돼야 하니까.(웃음)

실화다, 아니다. 정확하게 얘기는 못 하지만 엄복동이라는 인물이 2000만 조선인을 위해 열심히 경주한 건 맞으니까. 영화에 나온 웬만한 거사는 거의 실화예요.

– 그러니까 배우 정지훈의 해석으로는, 엄복동 안에는 무언가 뜨거운 게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군요.

– 강소라 씨나 이시언 씨, 다른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강소라 씨는 되게 장군 같은 스타일이에요. 오히려 저보다 어른스럽고요. 당연히 열심히 하고. 그리고 이시언 씨는 저랑 티격태격하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찍기 전에는 서로 몰랐고 영화를 찍으면서 친해졌는데 아주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이경영 선배님은 제 아버지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셔서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요. 꼭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었던 분이라 정말 좋았고요. 악역으로는 김희원 선배가 나오세요.

– 이범수 대표님 겸 제작자님 겸 배우님은 여러 역할을 하셔야 해서 굉장히 중책이셨던 것 같아요.
이번에 굉장히 힘드셨을 거예요. 제작자면서 연기도 해야 하고. 요즘 대작은 찍으면 100억이 넘어가잖아요. 사실 저희는 100억을 안 넘기고 싶었거든요.

– 그런데 100억을 넘겼나요?

욕심이 너무 많으시니까. 제일 좋은 환경에서 찍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 아무래도 배우이기도 하니까.

배우의 마음을 아니까. 감독님이 오케이 사인을 했는데도 배우가 하고 싶으면 다시 해보자고 하시고. 이범수 제작자님 때문에 영화가 잘 마무리됐는데, 현장에서는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어요.

– 짊어진 짐이 많으니.

다들 의기투합해서 영화는 잘 만들어냈고, 심판의 날만 기다리고 있죠.

– 심판의 날.

저는 그런 것 같아요. 모든 결과물에는 심판의 날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안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하고, 안되면 실망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이게 잘되고 안되고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래서 심판의 날이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서 찍었고 최선을 다해서 홍보하고 있어요. 제가 데뷔한 지 거의 20년이 되거든요.

 

 

가죽 코트, 실크 셔츠 모두 김서룡. 청바지 . 운동화 골든 구스 디럭스 브랜드.

– 1998년에 데뷔하셨죠.

꽉 채우면 21년 정도 되는데 망하기도 해봤고 잘되기도 해봤고 원하는 것보다 훨씬 잘되기도 해봤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뭐가 어떻게 되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 멋있네요.

배우나 가수 중에 심판의 날이 너무 힘들어서 은퇴하는 분도 있잖아요. 시골에 가서 사는 분도 있고. 근데 저는 이 심판의 날 때문에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그냥 삼시세끼 먹을 수는 있잖아요. 일도 할 수 있고요.

– <라디오스타>에서는 요즘 인생 모토가 ‘대충 살자’라고 하셨는데, 방금 들은 얘기랑은 너무 다른 말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계획을 세우는 게 되게 중요했거든요. 저는 늘 3년, 6년, 9년, 이런 식으로 계획이 있었어요. 그런데 단점이 있더라고요. 배우로 따지면, 대사를 그대로 하는 배우가 있고 애드리브를 치는 배우도 있잖아요. 저는 애드리브를 못 치면서 산 거예요.

–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했군요. 여유가 없었고.

그렇죠. 제가 왜 대충 살자고 하냐면, 칼을 갈고 연습에 몰두하고 이런 게 역효과가 날 때가 있더라고요.

– 이를 악물면 이가 깨지고 독기를 품으면 독이 되더라.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2~3년 전 인터뷰 때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좀 더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일했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저는 결과물이 안 나오면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안 왔어요. 그럼 그 독이 어떻게 되겠어요. 저만 스트레스받는 거죠.

– 나를 괴롭힌다고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괴롭히죠.

그냥 먹고 놀면 스트레스라도 풀 수 있거든요. 미국에서 영화 찍을 때, 술자리에서 프로듀서를 소개받으면 “오디션 볼래?” 하면서 엮이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술자리를 다 마다했어요.

– 왜요?

‘나는 일만 해야 돼. 몸을 더 만들 거야.’ 저를 너무 쫀 거예요. 근데 그냥 술자리 가서 그들과 네트워크라도 쌓아놓았으면 지금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을 거잖아요. 저는 오직 한길만 본 거죠.

 

스팽글 재킷 에트로.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목걸이 모두 프리카.

– 우리가 10년 만에 만나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멀찌감치 바라보면서도 정지훈이라는 사람이 성숙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거고요. 예전에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내려놓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앨범도 내려놓고 낸 거예요. 전부 내려놓고 실험적인 걸 해봤어요. 앨범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요. 앞으로 저는 계속 신선한 시도를 해보고 싶거든요. 사실 매일 새로운 재능이 나타나잖아요. 저는 그런 새로움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가수로서도 요즘 나온 신인들이 훨씬 예쁘고 좋아 보여요. 아이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돌은 진짜 인기 있는 음악을 해야 돼요. 근데 저는 이미 제가 어렸을 때 해본 거라 아직도 그런 음악만 할 이유는 없거든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서 욕을 먹을 수도 있고 잘될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늘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로맨스만 할 이유도 없어요. 저는 진짜 나쁜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근데 그런 게 안 들어와요.

– 엄복동처럼 순박한 마스크라서?

(웃음) 저는 정말 다음에는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정말 웃긴 역할이나.

– 저는 이게 궁금했어요. 왜 정지훈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했을까. 왜요? 누가 쫓아와요?

다시 배고프고 싶지 않았고 무시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밀어붙인 거죠. 이게 어느 정도까지는 저를 만들어줬어요. 근데 내려놓고 즐길 줄을 몰랐어요. 어느 정도가 되면 다른 목표로 가야 되는데 그걸 못 놓았어요.

– <자전차왕 엄복동> 하신다는 얘기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자전거가 그렇잖아요. 페달 안 밟고 멈추면 넘어져요. 밟아야 돼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밟을 수는 없잖아요. 힘들잖아요. 정지훈은 넘어질까 봐 더 세차게 페달을 밟아만 왔던 거겠죠.

어렸을 때 힘들었던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건 맞아요. 하지만 이제는 좀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때인 것 같아요.

– 오래전이지만 저와 인터뷰를 두 번인가 했어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때인 것 같은데, 그때 가족 이야기와 몇 가지 사적인 얘기를 들려주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정지훈이라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냥 인간적 진심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그 이후에는 이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정지훈이라는 사람 편이 된 거예요. 반면에 멀리서 보면 안타까운 지점도 있었죠.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니까. 그런데 10년 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또다시 인상 깊은 말씀을 들려주시네요. 이젠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던 자기 자신까지도 돌아볼 수 있게 된 거네요. 힘들었던 시절의 정지훈을 놓아준 것 같달까.누구나 시행착오가 있잖아요. 근데 그걸 누가 가르쳐주기보다 꾸준히 겪으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은 겪어봐야 돼요. 결국 인생에는 각광연도라는 게 있어요.

– 각광연도?

– (핀잔) 선배, 그것도 모르세요? 가장 각광받는 시기.

(웃음) 정말 주목받는 시기, 하이라이트. 뭘 해도 될 때.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수가 있나 싶은 때.

– 비의 각광연도는 언제였을까요? 앨범을 낼 때마다 잘되고 할리우드에서 영화 <스피드 레이서>를 찍고 그러던 때일까요?

저의 각광연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라고 생각해요. 가수 비, 배우 정지훈이라는 인물로는요.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지금이 저의 각광연도인 것 같아요.

– 멋있다.

물론 돈 중요해요. 돈 많이 벌고, 사회에서 성공하고, 존중받고 이런 거요. 하지만 저는 우리 회사 가면 사람들끼리 농담하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저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요. 저는 이게 저한테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제가 이미 결혼을 했잖아요.

– 그래요? 누구랑 결혼을 하셨는지 잘 몰라서요.

(웃음) 역시. 프로페셔널하셔. 정말 지금이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기예요. 행복해요. 일이 잘 안될 때도 있죠. <자전차왕 엄복동>도 제 마음 같지 않을 수 있어요. 정말 흥행에 참패할 수도 있고, 생각 외로 흥행할 수도 있고요. 근데 그건 제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만 배우로서 혹은 직업적으로 돈을 받았고 일을 했으니 제 나름대로,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요. 어쨌든 가족, 회사 사람들, 식구들은 한결같이 웃으면서 얘기하고 삼시세끼 밥 먹는 거 똑같고. 그게 저는 제일 행복하고 좋은 것 같아요. 내려놓음의 미학. 그래서 ‘대충 살자’인 거죠.

– 그걸 스스로 깨달은 거군요.

– 그걸 깨닫게 해준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이 있었나요?

살아보니까 가족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가수로서 대상도 타봤고, 나름대로 미국 시상식에서 배우로서 상도 한 번 받았잖아요. 근데 마셔도 마셔도 더 마시고 싶더라고요.

– 바닷물처럼.

놀러도 가고 파티도 가고 해야 하는데 다음 목표를 찾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가 부러지는 거예요.

– 이를 악물다가.

독을 더 세우고 독기 있게 나가면 다 잘될 것 같았거든요. 근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기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매번 대상 타는 느낌이에요. 제가 가족 얘기는 잘 안 하지만 그냥 딸아이와 아내,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 이런 것이 행복한 거죠. 저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멋있어.

– 이기려고 치열하고, 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멋있는 나이가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 더 양보해야 되고 조금 내려놓고 패배도 받아들일 줄 알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런 게 멋있는 나이가 있거든요.

욕심이 화를 불러요.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보잖아요. ‘저 사람은 꼭 이길 거야’ 하면서. 제가 물론 천주교 신자지만 제 나름대로의 철학은 이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 연결돼 있다는 거예요. 언제라도 만나게 돼 있고, 언젠가 어떻게든 연결이 되고. 사건과 사고는 나려면 어떻게든 나요. 욕심을 안 부리면 지금의 내가 되게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전 <자전차왕 엄복동>이란 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게 잘 안되면 불행할까? 안 불행해요.

–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옛날 같았으면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안 알아줘?’ 20대나 30대 초반의 정지훈이라면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어요. 저는 버스가 잘 가게끔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어주는 것뿐이에요. 버스가 종착지까지 잘 갈지는 아무도 몰라요. 내려놓고 기다리면 돼요. 가수나 배우한테도 우울증이 많이 오잖아요. 저는 그런 게 한 번도 안 왔거든요.

– 저는 한편으로 정지훈이라는 사람이 맷집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정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계속 페달을 밟는다, 쉴 때는 쉰다, 그게 오래가는 사람인 거죠. 갑자기 ‘깡’이 생각나는데.

그 노래는 좀 아쉬운 게 있어요. JYP에서 독립하고 나서는 제가 다 프로듀싱했거든요. 근데 그 앨범만 리쌍의 길 씨가 프로듀싱을 해줬어요. 저도 너무 획기적인 실험을 한 거죠. 이런 것도 할 수 있겠구나, 이런 건 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경계선을 알았어요. 근데 후회하진 않아요.

 

 

트렌치코트, 바지 모두 도조. 운동화 골든 구스 디럭스 브랜드.

– 춤추는 거 좋아하시나요? 이 질문 이상하다. 비인데 당연히 좋아하겠지?

– 아니요. ‘당연히’는 아닌 것 같아요.

이제는 춤추는 걸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아요. 무대에서 춤을 즐기기만 할 수 있는 나이는 이제 지난 것 같아요. 요즘 춤 잘 추는 친구가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춤을 절대 쉽게 포기하지는 않아요. 저는 계속 생각했어요. 꾸준히 사랑받으려면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인물이 돼야겠다는 거였어요.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오는 순간 내 상품성은 없어지겠구나. 근데 꾸준히 많이 나와요. 그래서 저도 꾸준히 연습해요. 그때는 직업적으로, 전투적으로 열심히 해서 하거든요. 미쳐서. 그런 말 있잖아요. 연습하는 놈이 즐기는 놈 못 이긴다고. 근데 즐기는 놈을 이길 수 있는 게 미친놈이거든요.

– (웃음) 명언이다.

미쳐 있지 않으면 이 업계에서 버틸 수가 없어요. 춤에 미치든 연기에 미치든 노래에 미치든. 미친놈을 어떻게 이겨요. 미쳐서 칼 들고 싸움을 즐기는 놈을 어떻게 감당해요. 저는 지금도 뭘 할 때 그냥 제가 미쳤다고 생각해요. 나는 무식하다. 머리 굴리지 말자. 그래서 <자전차왕 엄복동> 찍을 때도 진짜 무식하게 자전거만 탔어요. 어쩌면 엄복동 선생님도 당시에 그랬겠죠. 지금 또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미친놈처럼 하려고 해요. 안 그러면 신선한 친구들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어쨌든 승부를 보려면 미쳐야죠.

– 정지훈은 살면서 경험해본 거죠. 춤에 미쳤을 때, 음악에 미쳤을 때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가. 그래서 미칠 수 없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무엇가 하려면 미쳐서 하는 것이고.

얼마 전에 <아는 형님>에 영화 홍보를 하러 나갔어요. 제가 춤을 추거나 가족 얘기를 하면 <자전차왕 엄복동> 대신 제가 검색어에 올라가니까 영화사도 싫어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춤은 무조건 못 춘다고 했어요. 누가 시켜도 안 할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갔는데 보여달라니까 또 30분 동안 춤을 춘 거예요.

– 왜요?

– 그게 정지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정지훈이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절실하게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춘 거죠. 할 때는 미쳐서 해야 되니까. 오랜만에 무릎이랑 허리가 아프더라고요. 그 정도로 열심히 췄어요.

– 전 열 살 때쯤 공연하는 걸 본 적 있어요.

열 살? 어떤 공연요?

– 예전에 시골에 놀러 갔는데 축제에 오신 거예요. ‘It’s Raining’이었어요. 진짜 아직도 뚜렷이 기억해요, 춤추시는 거. 그때 보고 너무 놀랐거든요. 시선을 강탈당하는 경험은 그때 난생처음 해봤어요.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웃음) 옛날에는 진짜 지방 공연을 그렇게 다녔어요. 밴을 타고 다니면 주행거리가 막 20만 km가 나와요. 밴이 가다가 서요. 그럼 다른 차로 바꿔 타고.

– 비 같은 춤꾼은 쉽게는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진심 미쳐서 추는 춤이니까.

열정이 있었거든요. 춤을 즐겼고요. 저는 제가 잘 추는 춤이 있고, 요즘 나오는 친구들은 또 그들이 잘 추는 춤이 있고. 저는 꾸준히 배우려고 해요. 꾸준히 노력하고. 그냥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춤으로는 그냥 지기 싫어요. 그래서 지금도 필살기를 연습해요. <아는 형님>에서도 애드리브인 것 같지만, 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레퍼토리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이번에 나올 앨범도 사실은 되게 준비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가수로서 몸이 옛날 같지 않으면 무조건 은퇴할 거라고 늘 얘기했어요. 근데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 춤은 그렇고, 연기는요? 옛날 작품이지만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가 배우 정지훈의 시작이었잖아요.

일단 그 기회를 주신 PD님이나 작가님께 너무 감사해요. 마침 어제 작가님한테 갔다 왔거든요. 지금이야 아이돌이 연기하는 게 당연한데, 당시에 가수가 연기를 하는 건 그냥 욕먹으려고 하는 거였어요.

– 색안경 끼고 봤거든요. 근데 그 길을 열었죠, 비가.

원래 연기가 전공이었고 연극을 몇 번 올리기도 했어요. 근데 회사에서 반대가 심했죠. 제목이 또 <상두야 학교 가자>야. 상두가 뭐냐고.

– 그러네, 또 제목이. 비는 복동이나 상두면 대박인 게 아닐까요?

(웃음) <상두야 학교 가자> 이게 뭐지, 하고 읽어봤어요.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비 역할이 저한테 딱 맞아요. 제 옷 입은 것처럼. 진영이 형은 되게 반대하셨어요. 가수로서 자리도 잡았고 해외 진출도 목전에 뒀는데 무슨 연기냐. 이거 잘못했다가 역효과 나면 어떡할 거냐. 자신 있다고 했어요, 한 번만 믿어달라고. 진짜 잘할 수 있다고. 모두가 반대했는데 진영이 형이 시켜보라고 해서 된 거예요. 근데 그때 <대장금>이랑 붙은 거예요.

– (놀라며) <대장금>!

첫 주에 저희가 이슈가 됐어요. 근데 <대장금>이 딱 들어오는 순간 뭐 시청률이…. 거기는 30%까지 빵 치고 올라가고 저희는 15~16%였거든요. 그런데 KBS 사장님이나 모든 PD님이 좋아해주시는 거예요. <대장금>이 30% 넘게 나오는데 15%가 넘는 건 대단하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더라고요. 18%까지. 그때 저는 진짜 상두에게 빙의된 것 같았어요. 공효진 씨를 보면 애틋해지고 딸로 나왔던 보리 양을 보면 안타깝고 애처롭고, 삼촌으로 나왔던 이영하 선배님을 봐도 가슴이 아프고요. 제가 그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때도 미친 거구나.

그다음 <풀하우스>가 초대박이 났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처음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준.(웃음) 그 드라마로 광고도 정말 많이 찍었고. 해외에 이름을 알린 것도 그 때문이고.

– 그런데 개인적으로 해외 무대로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좀 아쉬웠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만큼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니까 자연스레 작품 수도 줄 수밖에 없잖아요. 실제로 발표되는 영화, 드라마, 앨범 수가 줄었고.

저도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저는 직업이 두 개잖아요. 앨범 하나 내면 1년 훅 가고, 거기다 투어 공연하고 그러면 더 빨리 지나가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연기 작품이 2~3년에 한 번씩 나왔거든요. 정말 배우에 올인하면 어땠을까. 근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가수인데. 또 가수로 올인하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저한테 그래요. 저의 단점은 너무 둘 다 하려고 한다. 욕심이 많다기보다는 길이 두 가지가 있으니까 이거 아니면 저거, 저거 아니면 이거 한다는 거죠. 근데 그건 아니에요.

– 저는 가수 비와 배우 정지훈이 더 많은 앨범과 작품을 통해 더 많이 성장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것도 일리는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가수만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이 그나마 좀 덜 질려하신 것 같아요. 사실 그렇잖아요. 연애도 시간이 흐르면 감정이 무뎌지는데 대중과 저는 오랜 기간 만나고 있잖아요. 거의 20년 된 연인 관계인데, 제가 배신하면 저를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때로는 봐주기도 해요. 때로는 너무 사랑해주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시기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계속 저의 매력 어필을,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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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와서 새삼스럽긴 한데, 비라는 예명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1999년도였나, 약간 추워지려는데 가을비가 오는 거예요. 진영이 형이 막 달려오더니 “야, 비 어떠니? 비”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슬플 비요, 우 비요?” 진영이 형이 저한테 데모로 주신 곡에 발레랑 팝 댄스를 섞어서 무용처럼 안무를 짜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대요. 하지만 좀 특이하게 ‘슬플 비’가 아닌, 내리는 비로 간 거예요. 제 노래 들어보시면 태양도 나오고 자연과 많이 어우러져요.

– 그 이후로 JYP가 많이 자연 친화적이 됐죠.(웃음)

제가 성공하면서 자연적인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계속 나왔어요. 별도 있고, 노을도 그렇고.

– 정지훈한테 비라는 이름은 또 다른 자아잖아요. 그런데 특이한 게 앨범 제목이 다 <It’s Raining> . 비라는 예명을 적극 활용했어요. 그렇게 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간 건, 의도한 거죠?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1집 <나쁜 남자>는 대중적으로 흥행하지는 않았어요.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있던 는 너무 좋았고. 3집 때는 진영이 형이 전 세계에 비를 내리겠다고 해서 <It’s Raining> 앨범을 쓴 거죠. 그다음에 4집 때 해외 투어 끝나고 들어와서 <Rain’s World> 앨범. 거기까지 진영이 형이 프로듀싱한 거고. 제가 독립을 한 이유는 프로듀싱 때문이었어요. 형한테 프로듀싱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나가서 한번 해보라고 한 거예요. 저도 여러 작곡가들 만나고 의뢰도 하고 했는데 곡이 안 나왔어요. 계속 고민하다가 레인 신드롬, 레인 임팩트, 레인 이펙트 등 여러 가지를 생각했어요. 니즘, 이런 게 잘 떨어지는 거예요. 레이니즘. 그러고 나서 가사를 쭉 적은 거죠. 그렇게 비트를 만들고 음정을 맞춰봤어요. 그랬더니 춤을 잘 출 수 있겠더라고요. 미리 또 안무를 짜놓고. 그게 진짜 잘 맞아떨어졌어요.

– 비와 정지훈이라는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건 엔터테이너로서는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지금도 원하면 가수 비였다가 배우 정지훈이 될 수도 있으니까. 또는 자연인 정지훈이나 남편 또는 아빠 정지훈일 수도 있고. 정지훈은 그걸 잘 오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20년 넘게 엔터테이너로서 활동을 계속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면에서는 아예 본명조차 알려지지 않으면 좋은데 저야 뭐, 제 본명은 너무 잘 알고 계시니까. 배우로 활동할 때는 일부러 본명을 쓰는 거예요.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 저도 제 나름대로 전략과 노력이 숨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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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에서는 작품 활동 계획이 있나요?

꾸준히 오디션을 봤어요. 제의도 있고, 계획도 있고요. 근데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려고요. 그러면 제가 해야 할 일을 못 하더라고요. 만약 집착했으면 <자전차왕 엄복동>도 못 했어요.

– 다시 말씀드리지만 작품 수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일단 얘기 중인 작품이 하나 있어요. 코미디 영화거든요. 그게 된다면 그걸 7~8월까지 찍고 바로 드라마를 또 하나 들어가기로 했어요. 저는 다작을 하고 싶어요. 이것도 보여드리고 저것도 보여드리고. 중간에 앨범 계획도 있고요. 올해는 한국에서만 올인하려고요.

– 그 시작이 <자전차왕 엄복동>이네요.

이게 젊은 세대의 취향은 아니에요. 마음 편히 웃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보시면 돼요. 무겁지 않아요. 독립투사 얘기지만 굉장히 코믹해요.

– 그런데 왜 당시 조선 민중은 엄복동을 응원했을까요? 엄복동을 응원한다고 해서 떡이 나와, 밥이 나와.

피는 못 속이잖아요. 하다못해 축구 대항전을 하더라도 수십만 명이 광화문에 나와서 응원을 하는데. 심지어 핍박받던 시절에 조선인이 1등을 하는데 흥분이 안 되겠어요?

– 그래서 대중은 참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엄복동을 응원했던 그 시절 조선 사람들이나, 비가 해외 무대에 섰을 때 자랑스러워한 대한민국 대중은 연결되는 지점이 있죠. 그런 게 설명할 수 없는 대중심리 같은 거죠.

지금 해외 나가서 활동하는 가수나 배우분들은 정말 박수 받아야 돼요. 방탄소년단 같은 친구들은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래미까지 가고. 꿈의 무대죠.

– 마침 오늘이네요.

그건 하늘이 내려준 기회예요. BTS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를 떠나서 활동하는 모든 배우와 가수들은 박수 받아야죠.

– 그럼 정지훈 씨는 해외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게 뭐예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거나.

제가 정말 힘들었던 건 향수병, 외로움 이런 거였어요. 사실 지금도 영어로 대화하는 건 불편해요. 공부를 해보니까 이건 습관이 돼야 해요. 말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야 되잖아요. 근데 조합을 하고 생각을 해야 되니까. 지금도 갑자기 마주치면 대화가 안 될 때가 있어요. 못 알아들을 때도 있고요. 일단 언어가 불편하니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힘들고. 그러면서 많이 외로워했어요.

– 해외 무대에서 무수한 한류 관객 앞에서 공연한 선구자도 비였죠.

그때는 모 아니면 도였어요. 끝나고 뭐 했는지 모르겠으면 잘한 거예요.

– 그게 진짜 미친 거구나.

‘내가 뭐 했지?’ 이런 생각이 들면 잘한 거예요. 근데 ‘왜 실수했지? 아, 이렇게 할걸’ 그럼 못한 거예요. 생각이 안 나야 돼요. 결국 제가 미쳐 있었던 거고요.

– 그런 걸 경험한 사람은 뭘 겪어도 이겨낼 수 있죠.

이제는 뭐가 와도 이겨낼 순 있으나, 안 오면 좋죠.

– 그러네요. 엄복동 역시 그저 죽도록 달리겠다고 하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거든요. 선생님이라면 어땠을까 꾸준히 생각하면서 대사를 했어요. 근데 제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대사를 했는지 모르게 컷이 끝났어요. 저는 되게 좋았거든요.

– 그동안은 가수 비여서, 또 배우 정지훈이여서 이룬 게 많잖아요. 앞으로 어떤 단계를 이뤄나갈지 궁금해요.

사실 저한테 큰 기대를 안 하시면 좋겠어요. <자전차왕 엄복동>도 딱 그래요. 저는 기대하지 말라고 해요. 저는 제 갈 길을 갈 테니 그러다 괜찮으면 머리 한번 쓰다듬어달라, 이 정도예요.

– 어쩌면 이게 대중과 오래 연애한 자의 노하우 같은 거네요.

– 듀오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지훈 씨는 행복하세요?

제 인생의 각광연도는 지금이에요. 전성기라거나 일이 잘된다는 게 아니라 행복 지수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훨씬 잘될 때가 있었겠죠. 하지만 그때는 스스로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 적도 없거니와,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제가 되게 불쌍해요. 근데 지금은 작은 것도 소중하고 행복하거든요. 지금이 제일 행복한 시기. 그러니까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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