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감독은 그래서 아파트에 주목했다

정재은 감독은 아파트가 품은 다양한 삶과 도시 생태계를 들여다 본다.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홀’에 이어 ‘아파트 생태계’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 현재 둔촌주공아파트와 그곳에 남은 길고양이를 탐색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작업 중이다.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홀>까지 두 편의 건축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고, 아파트로 시선을 돌리셨네요.
사람이 태어나서 살고 늙고 죽을 때까지 자기 소유의 집, 건물을 가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도서관, 시청, 공원 등 시민들이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건축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한데 어느 시점부터 주거 공간에 관심이 생겼어요. 개개인에게 의미가 있고 성장하는 공간인데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부의 수단이 됐잖아요. 그렇다면 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특히 한국인에게 집이라 하면 아파트를 다루지 않을 수 없죠.

건축이라는 미디어를 영화라는 미디어로 다시 소개할 수 있어서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인터뷰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도 미디어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아파트는 돈과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비판적인 시선 일변도입니다. 그 외에 특별한 감정이 없는 거죠. 기억이 축적되는 삶의 공간이라는 가치는 전혀 조망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파트 생태계>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파트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도시의 형성 초기에 어떻게 아파트가 들어왔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1990년대 이전까지의 아파트를 통해 알아보고, 기업형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다루었어요. 그 당시 아파트를 만들고 아파트에서 자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공 건축을 주로 다루다 아파트로 시선을 옮기면서 하고 싶은 말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시청 건설 과정을 잘 모르면서 일단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봤어요. 한데 아파트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 주제와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도 볼 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파트에 대해 잘 모르니까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텍스트를 만들고 교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시청을 다룰 때도 그렇고, ‘다큐멘터리가 왜 이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요.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모두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아파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고요. 서울이 아파트로 뒤덮여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매사 복잡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한 프레임에 갇히는 데 공간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보통 아파트를 구입할 때 모델하우스를 보고 계약하는데, 이게 사람들 머릿속에 아파트 공간에 대한 개념이 협소해지는 제약을 만든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파트 관문을 닫고 들어가면 주로 그 공간 안에서 머물며 시선이 좁아질 수 있다는 거죠.
맞아요. 거금을 주고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모델하우스에 가서 내부만 보고 결정하는 방식은 사실 매우 특이해요. 모델하우스와 실제 살게 될 환경은 너무 다른데 말이죠.

<아파트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손정목 선생입니다. 이분의 입을 통해 과거의 서울이 전부 그려져요.
이 영화의 출발은 손정목 선생의 저서 <서울 도시 건축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을까, 공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첫 번째 길이었죠. 서울이 허허벌판이었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출신이거든요. 도시를 누군가 계획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떤 이유와 계기가 있었는지를 인식하는 순간 마치 도시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확 와닿아요.

여의도 시민 아파트, 목동주공아파트 등을 담는 동안 재개발을 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었나요?
목동에서 쫓겨난 목화아파트 주민들의 인터뷰를 들으면 정말 갈 곳이 없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해요. 그렇게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건 당시에도 큰 딜레마였을 거예요. 지금은 그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재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이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서라도 재건축, 재개발 관련 정책이 탄력적으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무 일괄적으로 도시를 새로 만들겠다는 관점은 답답하죠.

아파트 재건축 관련 조합원 설명회 장면도 흥미로웠어요.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른 다음 새 아파트를 1+1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더라고요. 종교 부흥회인가 싶었어요.
고가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재건축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추가적으로 얻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해요. 다만 아파트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는 것이 보편적인 시대정신이 된 것이 문제죠. 젊은 친구들도 건물주를 꿈꾸고 제 주변 친구들도 어떻게든 건물을 사요. 불로소득과 임대 소득을 얻어 편하게 살 궁리만 하는데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아파트 문화에서 얻은 정말 부정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즐거움도 분명 있잖아요.

경제 교육의 스펙트럼이 좁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단시간에 쉽게 돈 버는 수단으로 아파트를 보는 시각이 아파트 키즈들에게도 익숙한 거죠.
도시를 계획하고 만들고 다시 수정해서 재개발하는 과정이 한국처럼 급속하게 이뤄진 경우가 흔치 않아요. 우리 이전 세대, 정말 전후에 개발해왔던 세대는 자신의 일과 한국이라는 나라에 애정이 깊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렇게 도시 형태를 갖추기까지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앞으로 이전 세대와는 다른 형태의 도시를 꿈꿀 것이냐를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은 꿈을 꿀 수 없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기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정신이죠.

저도 제 일을 좋아하지만 건물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파트 주인은 꿈꿔봅니다.(웃음)
우리가 살던 공간과 존재를 잘 정리해서 잘 사라지는 것도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좋은 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이든 만들고 형성하는 것만 아니라 소멸과 폐허에 대해서도 고심하는 거죠. 자꾸만 개발과 더해지는 것만 꿈꾸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균형을 잘 못 잡고 있는 거겠죠.

그래서 사라짐이 예정된 잠실 둔촌주공아파트에도 관심을 갖고 <고양이들의 아파트> 작업공공을 시작했나요?
아파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봤더니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만든 이인규 씨가 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둔촌주공아파트를 알아가면서, 저는 요새 도시에 사는 비인간, 고양이를 포함한 다른 존재에 관심이 가요. 아파트 생태계처럼, 아파트를 둘러싼 환경과 동물 등에 말이죠.

아파트가 철거되는 과정까지 담을 예정이라고 했는데요, 궁극적으로 어떤 기록이 될지 궁금해요.
삶의 공간이 파괴되고 폐허가 되었을 때도 분명 미학이 있어요. 해외여행에서 만나는 유적지도 결국 폐허잖아요. 남은 생활의 흔적을 보고 즐기는 거죠. 마찬가지로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지고 폐허가 되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아파트가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는 어떻게 다가갈까 상상하며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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