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이라는 인생-1

시간에 쫓기지도, 시간을 쫓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 위에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보고, 가야 할 길을 생각해왔다. 그렇게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푸르른 정우성은 정우성이라는 인생을 산다. 시간은 여전히 정우성 편이다.

스틸 케이스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까르띠에. 재킷 캘빈클라인 205W39NYC by 10 꼬르소 꼬모. 티셔츠 발렌시아가.

정우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불편하다.(웃음) 지리산에 등반을 간 적이 있는데 늦가을이라 추우니까 고글도 끼고, 마스크도 하고, 모자도 쓰고, 전신을 다 가렸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정우성이다” 그러는 거다.(웃음) 새벽에 일출을 보겠다고 천왕봉에 가서 사람들과 약간 거리를 두고 서 있는데 또 “정우성이다” 하고 사진을 찍더라. 그럴 때마다 깜짝 놀란다니까.(웃음)

일출도 이기는 존재감이라니.(웃음) 영화 <강철비>에서 연기한 엄철우처럼 항상 주변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인생인 걸까.

언제나 주변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20세기부터 봐왔던 사람이라 필연적인 익숙함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항상 조심하게 된다.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의 전작 <변호인>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많은 것까진 아니고.(웃음) <변호인>이란 작품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줄 알았던 어느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어느 정치인의 과거로만 바라보려는 이들의 관점에 휘둘리게 되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거 같았고, 그럼 영화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우석 감독과 그런 관점을 바탕에 두고 의견을 나누는 정도였다.

<변호인>이 한 사람의 신념이 증명하고자 했던 인간적 존엄성을 웅변하는 이야기라면 <강철비>는 단절된 사회에서 접점이 없었던 존재들의 만남을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권유처럼 보인다.

일단 시나리오가 좋았다. 대신 관객에게 강요하는 엔딩이 아니길 바랐다. 영화적 상상을 통해 주변 정세를 인지할 수는 있겠지만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선택한 결과가 관객의 동의를 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박근혜 정권 시절이라 생각이 많아질 수도 있었지만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 선택하자고 마음먹었지.

너트와 볼트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에크루 드 까르띠에’ 브레이슬릿, 못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스틸 케이스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모두 까르띠에. 코트 발렌시아가. 스웨터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검은색 바지 라프 시몬스 by 10 꼬르소 꼬모.

<강철비>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출연한 영상 인터뷰 중 “아시는 분은 아는 유명한 자세”라면서 장난감 총을 들고 우스꽝스러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격 포즈를 따라 한 것이라고 세간에 화제가 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인사가 된 뒤로 무서운 게 없어진 걸까?(웃음)

그냥 생각이 없는 거랄까. 그런데 그건 사실이잖아. 애초에 본인이 그런 자세를 취하지 말았어야지.(웃음) 만약 그걸 두고 내 사상이 불온하다고 공격하면 그게 더 문제 아니겠나.

지난 정권에서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딱히 정치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의아했다. 결국 그런 사실이 되레 정우성의 정치적 발언을 이끌어낸 계기가 된 것 같다.

<아수라>가 런던 한국영화제에 초청됐는데 런던의 한 대학에서 관객과의 대화 같은 걸 진행하던 중에 내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는 걸 알았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런던으로 취재하러 왔다가 우리가 런던에 있다는 걸 알고 그곳까지 찾아와 직접 질문을 했다. 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걸 알고 있느냐고. 깜짝 놀랐다. 내가 왜?(웃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사적인 자리에서 한 이야기가 수집된 게 아닌가 싶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지지하는 정치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나. 다만 도대체 어떻게 수집이 됐을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뭐, 웃긴 일이지.

<아수라> 특별 상영회 무대 인사 중에 “박근혜 나와!”라고 외친 것이 굉장히 화제가 됐다.

그 때문에 박사모한테는 완전히 좌빨로 찍혔다.(웃음) 사실 그게 <아수라>에서 내가 했던 대사를 패러디한 건데, 그로 인해 정치적 신념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다 해도 배우로서 대중에게 그런 성향을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참여한 영화나 연기하는 캐릭터에 조금씩은 반영할 수 있겠지.

박사모의 분노를 체감한 적 있나?(웃음)

<강철비> 촬영을 시작할 무렵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공판이 진행 중이었다. 대구 촬영 첫날에 내 출연 분량이 없어서 나는 둘째 날 현장에 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더라. 들어보니 박사모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거다. 촬영장 일대에 집회 신고를 하고 시위하면서 촬영을 방해했다더라. “정우성 나와! 양우석 나와!” 외치면서 욕하고. 그런데 탄핵 결심공판이 공표되면서 박사모가 다 서울로 상경했다. 덕분에 조용히 촬영할 수 있었지. 아마 안 그랬더라면 난리 났을 거다. 대구 촬영 분량이 북한 개성 공단 신이라 북한 군복 입고 있으면 ‘저 좌파 놈들 빨갱이 영화 찍고 있다’고 난리 칠 게 뻔했으니까. 어쨌든 박근혜 덕분에 살았다.(웃음)

스틸 케이스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까르띠에. 재킷 캘빈클라인 205W39NYC by 10 꼬르소 꼬모. 티셔츠 발렌시아가.

<강철비> 촬영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진행됐다. 겨울 배경의 영화라 계절의 변화로 고충이 있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두꺼운 모직 의상을 입고 촬영하다 보니 여름으로 접어든 촬영 후반에는 더위 때문에 고생했다. 물론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니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다른 영화도 대부분 그렇다. 한겨울에 여름옷 입고 촬영하고.(웃음)

<강철비>는 현재 남북 관계를 비롯해 한반도 주변 국가의 정세를 대단히 현실감 있게 잘 녹여낸 작품처럼 보인다. 관객은 물론이고 배우 입장에서도 현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을 거 같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로 열강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북한과 남한이 각각의 정부로 독립하게 됐지만 정작 대다수의 국민은 정치적 이념이 없었다. 무엇을 선택해야 먹고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지. 그 뒤로 민족주의적 관점이란 것이 완전히 말살되고, 그러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된 것 같다. 독재 정권이 국민들에게 ‘좌익’, ‘빨갱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북한이 총을 겨누고 있으니 다른 생각하지 말라는 식으로 강요된 화합을 만드는 시대가 계속됐다. 이젠 그런 시대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거다. 게다가 우리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짚어볼 여유도 부족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현실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기 때문에 <강철비>가 던지는 화두가 반가웠다.

남북 분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글쎄, 그냥 우리 얘기니까. 어쨌든 우리는 같은 민족이지 않나. 어쩌면 정치인들이 분단 상황을 비뚤어지게 악용하는 것이 의아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강철비>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북한의 엄철우(정우성)와 남한의 곽철우(곽도원)가 차를 타고 가는 두 번의 신이었다. 무엇보다도 두 배우의 호흡이 잘 맞는 게 느껴졌다.

(곽)도원이와 <아수라>를 촬영하면서 서로 신뢰가 생겼고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진 덕분에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되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들이다. 굉장히 긴박한 상황을 그리던 영화가 갑자기 두 주인공을 차 안에 가둬두고 시답잖은 얘기나 하게 만드는 거니까. 평소 같으면 상대 배우와 많은 상의를 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고, 뚜렷하게 대비되는 두 인물의 개성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았다. 덕분에 그 신에 대한 만족감이 상당했다.

핑크 골드 케이스의 ‘탱크 루이 까르띠에’ 워치, 못 모티브의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가죽 블루종 Z제냐. 티셔츠 발렌시아가.

방금 곽도원 씨를 도원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두 사람이 동갑이라는 게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러게 말이다. 우린 별생각 없었는데 사람들이 그걸로 웃더라.

아무래도 정우성 씨가 나이에 비해 너무 젊어 보이니까.(웃음) 어쨌든 배우 정우성도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힘든 점이 있을 텐데.

젊어 보인다고 하지만 내 나이에 비해 어린 역할을 연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액션 연기가 중요한 작품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 아무래도 운동을 일상으로 여기게 된 것 같다.

<강철비>에서도 액션 신이 많았다. 특히 타격감이 느껴지는 격렬한 액션 신이 많아서 만만치 않았을 거 같은데, 액션 신의 주요 상대역이었던 조우진 씨와의 합이 중요했을 거 같다.

우진 씨는 액션 연기가 처음이었다는데, 처음 연기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연기가 딱딱해지듯이 액션 연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타격을 하다 보면 부상 위험도 커진다. 순발력도 떨어지고. 그런 상대와 합을 맞추면 체력 소모가 두세 배로 커진다. 그의 힘을 내 힘으로 제지하면서 방향을 틀거나 다음 합으로 옮기는 과정을 이끌어야 하니까. <강철비>에서는 총을 들고 펼치는 액션 신도 있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우진 씨가 잘 버텨냈다. 본인도 몸에 자꾸 힘이 들어가서 많이 지쳤을 텐데 잘 따라와줬다. 덕분에 파괴력 있는 액션 신이 완성된 거 같다.

감독이나 제작자들은 정우성이란 배우를 어떤 고난에 빠뜨려야 하나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만 같다. 그건 아무래도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멋진 얼굴에 일상적인 드라마를 입히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어쩌겠나, 부모님이 이런 외모를 물려주셨는데.(웃음) 사실 옛날부터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영화배우 같다고들 하지 않나. 어쩌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생각하는 배우의 자격 조건이 그랬다는 말인 거지. 하지만 잘생긴 외모가 배우 당사자에겐 어떤 한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다양한 역할을 입히기 어려운 제약처럼 느껴지니까. <강철비>에서 엄철우를 연기할 때 첫 번째로 넘어야 할 허들이 북한 사투리였다고 얘기했지만, 이미 그 전에 대중이 아는 정우성이라는 이미지부터 넘어야 했던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도 이런 반응이 있었다고 들었다. ‘정우성이 어떻게 북한 사람이냐. 현실적인 캐스팅을 해라.’

배우에게 잘생긴 외모는 어쩌면 선천적인 재능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중요한 능력이니까.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잘생긴 외모란 배우로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상대일지도 모르겠다.

와닿는 말이긴 하다. 캐릭터를 운반할 때 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들어가는 작업이 선행되니까. 그런데 결국 내가 잘하면 되는 거다. 관객들이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빠져들게끔 안내를 잘하면 된다. 그러려면 다른 배우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거지.

그런 면에서 <감시자들>은 경력의 전환점이라 여길 만한 작품처럼 보인다. <감시자들>을 통해 처음으로 악인을 연기했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쾌감이 있었을 거 같다.

나쁜 사람들은 그냥 행동해버린다. 고민이 없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충실하면 되니까. 그래서 악인을 연기할 때 오히려 더 편하다는 배우도 많다. 악역을 맡으면 일반적인 캐릭터에 비해 표현의 제약이 줄어들기 때문에 한편으론 내가 몰랐던 표정과 감정을 발견할 때도 있다. 확실히 악역이 편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는 결국 좋은 가치관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잘 아는 만큼 일상에서 숨 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판타지로만 도망칠 순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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