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는 자이언티가 아니라 해도

자이언티는 자이언티보다 더 나은 가능성을 기다리고 있다.

트렌치코트 버버리. 재킷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웨터 펜디.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지난 10월 15일에 EP 앨범 <ZZZ>를 공개했다. ‘음원 깡패’라 불리는 자이언티도 새로운 앨범이나 노래를 발표할 때 긴장감을 느낄까?

차트 때문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인다. 어떤 가수가 앨범을 내도 다 똑같은 곳에 진열하니까. 내용물은 다 다르지만 가격도 같고, 하나같이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파일에 불과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하나의 상품이 돼서 얼마나 잘 팔릴까 생각하면 긴장된다.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나는 상품을 파는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목적이라면 무료로 음악을 공개하면 된다. 하지만 소속된 레이블도 있고, 내 노래 하나 팔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잘 팔리도록 도와야 한다. 차트의 부조리함을 알지만 나를 돕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도 느낀다. 그런 입장을 인정하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여덟 곡이나 수록된 <ZZZ>를 정규 3집이 아니라 EP로 규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정규 앨범 발매를 목표로 작업했는데 만들다 보니 정규 3집이라 하기엔 성이 안 찼다. 앨범다운 앨범을 내고 싶어서 정규 3집은 나중으로 미루고, 기다리신 분들을 위해 어서 결과물을 내놓자는 마음으로 낸 거다. 지금 와서 보니까 잘 만든 샘플러 같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이런 걸 하고 있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물이랄까. 원래 ‘하고 있다’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는데, 결국 ‘할 수 있다’까지 갔다는 게 느껴진다. 아직 뭔가를 증명하려는 마음이 조금 남아 있는 거 같다. 뭔가를 증명하려고 소리치는 게 근사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필요한 일인 것도 같고.

지난 앨범이나 싱글에서는 대부분 힙합 기반의 뮤지션들이 피처링에 참여했는데 <ZZZ>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참여한 것도 이색적이다.

내 노래와 어울리는 사람을 찾은 결과다. 내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보다 이 음악에 훨씬 더 어울리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뮤지션들을 섭외했다. 내가 만든 곡의 이미지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레드벨벳의 슬기가 ‘멋지게 인사하는 법’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참여는 ‘Complex’를 함께한 지드래곤 이후로 두 번째다. 여성 뮤지션과의 첫 협업이기도 하고.

일단 레드벨벳 팬이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웃음) 그리고 정말 이보다 친절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대중가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자이언티가 오랜만에 내는 앨범에 슬기 씨가 참여한 곡이 있다고 하면 다들 들어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해준 덕분에 정말 훌륭한 상품이 된 거 같다. 간혹 다른 여자 아티스트도 많은데 왜 슬기 씨를 선택했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별로 없었다. 대부분 알거나 친한 사람들이라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색다른 조합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슬기 씨 입장에서도 새로운 음악적 세계관이 열리는 계기가 되는 작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비롯해 ‘My Luv’,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등 지난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사랑 노래 비중이 높아졌다. 그런데 자이언티의 사랑 노래에는 내 입장에서의 사랑을 표현하는 적극성보다 “이렇게 말하면 싫어하겠지만 미안해”라는 가사처럼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릴까를 고민한 배려의 흔적이 느껴진다.

사실 ‘멋지게 인사하는 법’은 정말 캐릭터를 정해놓고 만든 곡이다. 다른 사랑 노래 중에는 진짜 내 얘기인 것도 있고, 진짜 만나는 사람을 생각하며 쓴 곡도 있다. 나는 연애할 때 상대에게 높임말 쓰는 걸 좋아한다. 사실 나이 어린 사람을 만나도 말을 잘 못 놓는 편이다. 상대가 말씀 편하게 하라고 하면 지금이 편하다고, 진짜 편해지면 편하게 하겠다 그러고.(웃음) 나는 그냥 존댓말을 쓰는 게 예쁜 거 같다.

연민이 느껴지는 가사도 담백하게 잘 쓰는 것 같다. 연민이라는 감정과 친한 편일까?

연민은 오히려 잊고 사는 감정 같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연민했다면 이렇게 놔두지 않을 거다. 좀 더 세심하게 나를 돌아보겠지. 나는 관대한 사람도 아니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나를 정말 가까이서 봐온 친구들은 좋은 면을 많이 봐주지만 대외적으로는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면이 도드라진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일 때도 많다. 그래서 연민, 위로 같은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표현을 음악으로 풀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갈망해서 그런 노래를 한다?

외로운 남자 집에 걸린 여자 그림 같은 것처럼, 가질 수 없는 걸 소유하고 싶은 마음인 셈이다. 자동차를 살 돈이 없으니 모형이라고 갖는 것처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싶어서 그런 표현이라도 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 같지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하는 얘기지만 동시에 내게 하는 말이라고.

재킷, 이너 재킷, 셔츠, 타이 모두 프라다.

작년 12월에 공개한 ‘눈’도 이번 앨범에 수록됐다. 처음으로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뮤직비디오 제작에도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 아는데 드라마타이즈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자연스럽게 이뤄진 작업인데 가난한 청춘의 사랑을 담고 싶었다. 원래 생각한 스토리는 좀 더 판타지적이었지만 공감대를 높이고자 보다 현실적인 서울 도심의 호텔로 공간을 변경했다. 적합한 배우와 세계관을 찾다가 안재홍 씨와 이요섭 감독을 섭외하게 됐고, 좋아하는 광화문시네마 단골 배우인 백수장 씨도 출연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내 뮤직비디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눈’은 자이언티의 노래 가운데 가장 빈티지한 결과물 같다. 이문세와의 작업은 어땠나?

말 그대로 이문세니까. 이문세 선배님을 생각하며 쓴 곡이라 그분 목소리로 ‘눈’을 불러준다면 정말 완전할 거 같았다. 나는 감기에 걸려서 코맹맹이인 채로 녹음했는데 노래 속에서도 코맹맹이 같은 역할이었다. 나는 젊은 청년이고, 선배님은 그 청년의 미래인 남자고. 그래서 내가 “약속해요”라고 할 때, 선배님은 “약속했죠”라고 하는 거고. 사실 녹음은 따로 진행했다. 선배님이 자기 파트를 녹음해서 보내주셨다. 아마 집에서 하신 거 같은데 녹음할 때 눈이 왔다고 하더라. 그리고 노래가 공개되는 날에도 눈이 왔다. 펑펑 쏟아졌다. 스케줄 소화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길에 눈이 펑펑 내려서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서 눈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눈’은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오랜만에 듣게 되면 많이 울게 될 거 같은 노래다.

‘눈’에서 내리는 눈이란 희망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슬프고 힘든 것들을 관망하면서도 끝내 희망적인 결말을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눈’은 이뤄지길 바라는 것을 기다리는 노래다. 실제로 만날 때보다 만나기 전의 설렘이나 긴장감처럼 무언가 닿기 전에 가질 수 있는 감성이 있다. 기다리면서, 상상하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다. 막상 눈이 오는 걸 보는 것보다 눈이 오길 기다릴 때의 설렘 같은 거. 눈을 보지 않았지만 이미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코트 디올 맨. 트랙 톱 아디다스 풋볼. 셔츠 폴로 랄프 로렌. 바지 버버리.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규 1집 <Red Light>의 1번 트랙 ‘O’에는 “가끔 보면 난 너무 시각적이야”라는 가사가 있다. 생각해보면 자이언티의 노래는 늘 시각적인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양화대교’나 ‘꺼내 먹어요’처럼 전개가 확실한 곡이 있긴 하다. 그런데 영상으로 변환한다고 생각하면 개연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점프가 심하다. 스토리 전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니까.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 장면을 보여주길 좋아한다. 좋은 영화의 인트로 같은 느낌? 그런 취향이 반영되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자이언티의 노래를 들을 때 묘하게 장기하를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가사를 발음해서 뱉는 방법으로 노래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

내 말투가 그분과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구어체로 가사를 쓴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장기하 씨의 노래가 가진 느낌 자체도 좋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을 노래에 그대로 옮겨놓는 가사가 재미있게 들린다. 게다가 한글 가사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뮤지션이 지금 시대에는 몇 없다고 느끼기도 하고.

장기하의 노래가 연극의 독백이나 방백 같다면, 자이언티의 노래는 뮤지컬의 송스루 같다. 그리고 장기하의 가사가 어떤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거 같다면 자이언티의 가사는 적극적으로 다양한 신을 묘사하며 인물의 동선이나 심리적 변화를 추측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흥미롭게 들린다. 뮤지션 중에는 노래를 받아서 가창만 하는 가수도 있고, 곡을 직접 쓰는 가수도 있다. 그런데 곡을 쓰는 가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스트레스가 있다. 자기 복제, 즉 자기 자신이라는 염증을 계속 복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노력하면 글씨체를 바꿀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 글씨체가 있다. 곡을 쓰는 뮤지션들은 같은 글씨체로 매번 다른 내용을 적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 글씨체가 지겨워져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간혹 대중으로부터 자꾸 왜 그렇게 똑같은 글씨체만 쓰느냐는 말도 듣게 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씨체를 부러워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내 글씨체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쓰는 글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과정이 필요했다.

내가 좋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낄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

열등감이 상당한 편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알았겠나. 내가 음악으로 인정받고, 앨범 한 장이나 낼 수 있을지. 정말 몰랐다.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면 시끄럽다는 소리나 들었는데 내 노래가 좋다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기분 좋겠나. 그런 반응을 계속 듣고, 찬사도 받으면서 자존심이 생긴 거 같다. 사실 처음에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닐 거라 생각하고 피해 다녔거든. 그러다 점점 내가 가치 있는 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다음부터 좀 더 나를 아끼게 된 거 같다.

처음에는 왜 피해 다녔을까?

의아했지. 나를 왜 좋아하나.(웃음) 사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희소성 때문인 거 같다. 나 같은 캐릭터가 없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포지션의 음악가가 없었으니까. 그런 희소성의 가치를 깨닫게 됐을 때 비로소 놓치지 않으려 한 거다.

어쨌든 유명한 사람이 됐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과 유명해지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는데, 유명인이라는 게 견딜 만한 혹은 즐길 만한 것이던가?

유명하다는 게 재미있는 거 같다. 이런 걸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이용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간지럼 많이 타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쟤네들은 어떻게 저렇게 손만 대도 웃을 수 있지?’ 싶은. 온몸의 세포가 다 엄청 예민한 것 같은 사람들. 내가 너무 무감각한 건가, 아니면 기준이 너무 높은 건가, 이상할 때도 있고. 가끔은 나도 좀 들떠보고 싶다. 처음 내 음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걸 느낄 때에도 조금 얼떨떨했고,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게 끝이었지. 파티 한번 해본 적 없고, 생일이라고 친구들을 모아본 적도 없다. 기분 좋은 날에는 그냥 구름 지나가는 거나 보고,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는 구나 생각하고.(웃음) “내가 한 거 봤어?” 이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행복할까, 궁금하고. 아마 이번 생에는 안 될 거 같지만. 만약 내가 어디선가 엄청 즐기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목격한다면 알아줬으면 좋겠다. ‘정말 노력하고 있구나, 한번 해보고 있구나’라고.(웃음)

사실 자이언티라고 하면 대부분 힙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재미있게 여기고 있다. 나는 힙하다는 말과 거리가 먼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사는데. 진짜 힙한 친구들은 저기 모여 있는데.(웃음)

일단 굉장히 힙한 레이블에 소속돼 있고, 주변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많지 않나? 나름대로 학습 효과가 생길 법도 한데.

그냥 본질적인 문제 같다. 좀 야한 비유가 될 거 같은데, 못 느끼는데 소리를 내는 건 거짓말인 거니까.

무대 위에서의 자이언티는 굉장히 준비된 아티스트처럼 보인다. 능숙한 퍼포먼스의 안정감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무대에서는 확실히 즐긴다는 느낌을 준다.

그건 즐긴다기보다 반응하는 거 같다. 무대 위의 환경과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서 내 노래가 나오고 있고. 그냥 그 상황에 내 몸이 반응하는 거 같다. 단지 그 정도.

음악을 하게 된 것이 음악과 무관한 삶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 바가 있을까?

내가 진짜 게으른 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엉덩이를 안 뗀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이 일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악은 정말 일 벌이기 쉬운 일이더라.(웃음) 작업 약속을 잡으면 가야 된다.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모두 다 프로인데 만약 하지 않는다면 나는 매장되는 거다. 해야 할 수밖에 없지. 그런 식으로 해온 거 같다.

재킷, 바지 모두 김서룡.

뮤지션으로서 인정받고 명성을 얻을수록 음악적인 야심도 팽창하거나 확장되지 않았을까?

나는 위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이제 뭘 해내야 하는가’란 식의, 음악가로서의 위치 같은 거 말이다. 뭔가를 이룬 사람이 가질 만한 기준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내 커리어를 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걸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뭘 해야 할지, 여전히 활동 중인 가수로서의 고민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내가 이뤄온 것을 돌아보면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잘 해냈다는 게 느껴지면 다음으로 갈 수 있겠다는 안도가 되니까.

자이언티와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이 정말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뮤지션으로서 나름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나?

나는 다른 아티스트들이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내가 표현한 결과물로 자극이나 영감을 주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죽고 싶다. 그러려면 일을 얼마나 벌여야 할지 모르겠지만.(웃음) 그런데 요즘은 과연 내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자극을 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일종의 쇼를 한다는 기분인데, 점점 재미있는 쇼를 못 보여준다는 게 느껴진다. 그럼 내가 이걸 왜 계속해야 하나 싶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그게 고민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올 정규 3집에서는 지금과 또 다른 자이언티를 보여주고 싶은 걸까?

그 앨범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를 거다. 내 노래는 대부분 자세히 봐야 예쁜 것 같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버릴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앨범은 몰입할 필요 없는,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이 순서대로 흘러가는 느낌으로 채우고 싶다. 드라이브하면서 틀어놓고 쭉 들을 만한 음반을 내고 싶다.

샘플러를 극대화시킨 버전처럼 느껴지는데.

트랙의 러닝타임이 좀 더 길어지고, 호흡도 더 길어질 수 있겠다. 확실한 건 <ZZZ>가 나를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는 거다. 일단 다양한 장르의 곡이 있지 않나. 트랩과 같이 요즘 유행하는 힙합도 있고, 발라드도 있고, 미디엄 템포의 R&B도 있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뭘 내든 상관없을 거 같다.

언젠가 프로듀서로서만 참여한 앨범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내 곡에서도 내 목소리보다 피처링한 뮤지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게 좋다. 그래서 일부러 믹싱할 때도 피처링 파트의 사운드를 더 크게 조절한다.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선수보다는 감독으로서, 즉 프로듀서로서의 야심이 더 커지는 걸까?

나는 자이언티로서 할 수 있는 것만큼 하고 사라질 거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이 하고 싶은 걸 다 이룰 수는 없을 거 같다. 물론 나를 통해 이루려는 욕심은 그리 크지 않다. 나도 내 한계를 아니까. 만약 능력이 된다면 정말 대단한 아티스트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게 분명 나는 아닐 테니까. 물론 아직 그게 누군지, 지금 어디 사는지도 모르지만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대단한 아티스트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기여하고 싶다.

자이언티 노래의 주인공이 꼭 자이언티일 필요는 없다는 건가?

나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내 노래가 불려진다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멋지게 인사하는 법’도 내 앨범이 아니라 인지도 있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면,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유명한 아이돌 보컬이 솔로로 부른 곡이었다면, 생각해봐라. 내가 불러서 대중적인 존재감이 없었던 노래가 훨씬 팝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내 살을 깎아 먹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 곡들한테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러니 분명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 거다.

하지만 자이언티로서 이룬 성취를 무시할 수 없을 거 같다. 앞으로도 그럴 거 같고.

나는 진짜 운이 좋았다. 적절한 때에 기회가 왔고, 그게 잘 맞아떨어져 여기까지 왔다.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생겼고. 모두가 이렇진 않을 거다. 노력한 만큼 꼭 성과가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의연한 마음을 갖고 싶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플레이리스트를 뒤져볼 때, 그때가 돼야만 알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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