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뜨거운 설경구 2편

이보다 간절할 때가 없었고, 이렇게 갈망한 적이 없었다. 설경구는 지금 가장 뜨거운 순간을 지나고 있다.

티셔츠, 바지 모두 우영미.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건 연기가 아니라 연출에 관심이 있어서였다고 들었는데,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쩌다 보니까 연극을 전공하게 된 거죠. 사실 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연기 공부하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학교 연극에서 어렵지 않게 주인공을 맡게 됐는데 그게 좀 재미있었나 봐요. 애초에 배우가 될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배우는 잘생겨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대학 원서 쓸 때도 선생님이 저한테 뭐 할 줄 아는 게 있느냐고, 여긴 재주가 있어야 가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써주시면 안 되냐고 하니까 미쳤다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나중에 합격했다고 하니 “뭐? 진짜?” 이러시고.(웃음) 학교에서 있으나마나 한 캐릭터였거든요. 눈에 띄지 않는 어중간한 애. 활발하지도 않고, 내성적이고, 낯 가리고, 여학생들 지나가면 고개 푹 숙이고 있고.

결국 한양레퍼토리와 학전에서 극단 활동을 하면서 직업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요.

대학로 나가서 포스터 붙이면서 연기하면 월급을 10만원, 20만원씩 받을 때였나, 그 무렵에 극단 한양레퍼토리 대표였던 최형인 교수님 연극에 출연했다가 대박이 나서 첫 개런티로 50만원을 받았어요. 매달 월급처럼 돈을 받게 됐는데 80만원까지 받은 적도 있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였는데 혼자 살던 때라 충분한 돈이었죠. 그런데 졸업하고 보니 대학교 5학년이 된 거 같더라고요. 한양대 졸업생이라고 한양레퍼토리에서 부대끼는 거 같기도 하고. 교수님이 극단을 못 나가게 하셔서 공무원 시험 볼 거라고 거짓말해서 겨우 그만뒀는데 막상 극단을 그만두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학전에서 포스터 붙이는 알바를 했어요. 그나마 아는 선배가 있어서.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민기 선생님이 “쟤 뭐 하는 애냐”라고 물어보시더래요. 한양레퍼토리 나왔다고 하니까 “쟤도 <지하철 1호선> 하라고 해” 하셨다는 거예요. 오디션도 안 보고.

왜 그런 제안을 하셨는지 물어본 적 있나요?

선생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대요.(웃음) 그렇게 <지하철 1호선>을 하다가 아침 드라마에도 출연하게 됐고, <처녀들의 저녁식사>에도 출연하고, 운이 좋았죠.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프로필 사진 한 장 찍어본 적도 없거든요. 적극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꽃잎>에 출연한 것도 먼저 오디션을 보러 간 게 아니었어요. 세컨드 조감독이 제 동기였는데 그 친구가 오디션 한번 보러 오라고 해서 갔죠. 배창호 감독님의 <러브스토리>도 당시 대학교 후배인 이한 감독이 와보라고 해서 갔다가 단역으로 출연하게 됐고요. 대부분 이런 식이었죠.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진희경 씨가 맡은 연이란 캐릭터와 하룻밤을 보내는 상대 역으로 적은 분량에 출연했던 것이 영화 관계자들에게 눈도장 찍히는 기회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끝나고 차승재 대표님이 차를 마시자고 하더라고요. 그때 차승재 대표님의 우노필름이 제일 왕성하게 영화를 제작하던 시기였거든요.

당시 흥행했던 <비트>나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작품도 다 우노필름 영화였죠.

그런 우노필름의 대표님이 저한테 지금 한 세 작품 들어갈 예정이니 경구 씨가 못해도 두세 작품은 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너무 좋더라고요. 그 사람이 하자고 하면 하는 거죠. 역시 대표가 최고야.(웃음) 그렇게 <유령>을 했어요. 당연히 그때는 주인공은 생각지도 못했고, 1년에 두세 작품이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죠. 박종원 감독님의 <송어>도 <처녀들의 저녁식사> 덕분에 캐스팅된 작품이에요. 아침부터 불려가서 오디션을 보는데 연출부 애들만 있고, 계속 사진 찍자,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이러면서 놀이터까지 가서 캠코더로 찍는 거예요.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데 쪽팔리잖아요. 그래서 “이제 가면 안 돼요?” 그랬더니 감독님 곧 오시니까 감독님 보고 가래. 그러니까 갈 수도 없고, 구석에 앉아 있었죠. 나중에 감독님이 왔는데 저한테 눈길이나 한 번 주나. 그런데 그날 감독님이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왔대요. 임상수 감독님이 박종원 감독님 아카데미 후배였거든. 그러고는 일단 여진이 얘기를 하더니 그다음에 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깁스하고 잠깐 나온 남자애가 있는데” 이러면서. 그러니까 조감독이 “그분이 저분인데요” 하면서 저를 가리킨 거죠.(웃음) 그러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사실 임상수 감독님이 몸무게를 10kg 정도만 줄이면 정말 좋을 거라고 해서 그때 살을 좀 뺀 상태라 인상이 조금 달라졌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나를 보면서 무슨 역이냐고 물어보더니, 그냥 하라는 거예요. 어차피 감독이 얘기하면 끝이니까 기다리길 잘했다 싶었죠.(웃음)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참 희한한 영화예요. <박하사탕>도 그 덕분에 출연했으니까요.

<박하사탕>은 보기 드물게 신인 배우 오디션을 통해 주연배우들을 선택한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덕분에 이창동 감독님을 뵐 기회도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는 감독님 뵙기가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때 감독님이 이번에는 당신이랑 못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꼭 같이 하자고 하면서 <박하사탕> 시나리오를 주셨어요. 집에 가면서 지하철에서 다 읽었죠. 그러고는 잊어버렸는데 갑자기 이창동 감독님이 신인 배우 오디션을 본다는 거예요. 캐스팅이 원하는 대로 안 됐는지 주연배우를 신인으로 뽑겠다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오디션 볼 생각을 못 했어요. 왜냐면 저랑 못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감독님이 최종 후보 두세 명 정도 남았을 때 제 생각이 났대요. 그래서 저한테 전화를 주시고는 저희 집 앞까지 오셨어요. 해볼 생각이 있냐고 하시길래, 하고 싶은 거랑 할 수 있는 건 다른 거 같다고, 하고는 싶지만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양재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파티션 있는 책상 옆에서. 그때는 감독님이 없었는데 나중에 거기서 녹화된 화면으로 보셨대요. 감독님이 집에서 오디션 영상을 볼 때 그 뒤로 지나가던 사모님이 “쟤가 김영호네”라고 했대요. 정말 소름 끼치는 순간이죠. 감독님도 속으로 ‘그래’ 하는 마음이 생겼대요. 그때 차승재 대표님은 그냥 운명이라고 하셨어요. 네가 해야만 하는 운명이라고. 심지어 오디션도 다 봤는데 제 생각이 나서 보자고 하신 거고. 마치 모든 것이 <박하사탕>을 비켜 가서 저한테 온 것 같잖아요. 물론 감독님 말로는 오디션도 잘했다는데, 본촬영에서는 오디션보다 못했다고 하셔서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웃음)

<박하사탕>은 1999년에 열린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상영됐습니다. 어쩌면 그 자리가 배우 설경구를 알리는 진짜 데뷔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힘들다고 느껴지는 게, 배우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꺼낼 카드가 없다는 거예요. 계속 나를 써먹어야 되는데 써먹을 게 줄어들잖아요. 익숙해 보이는 것도 점점 두렵고. 관객분들도 그렇게 느끼는 거 같고. 쟤는 맨날 똑같아, 이런 말씀하시잖아요. 저도 인정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르게 보일까 고민하고 별짓 다 해보지만 그래 봤자 나인 걸 어떡해요. 근데 <박하사탕> 때만 해도 모르던 놈이 툭 튀어나온 거잖아요. 덕분에 되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거 같아요. 뭔가 어려운 연기를 해내는 거 같으니 ‘쟤 뭐야?’ 이렇게 된 거죠. 게다가 첫 장면부터 강렬하잖아요. “나 돌아갈래!” 그 덕을 본 거죠. 그렇게 개막작 상영 2시간 10분이 지나고 나니 인생이 바뀌어 있더라고요. 상영이 끝나니까 관객들이 저를 보면 함성을 지르면서 에워싸는 거예요. 인생이 달라지는 기분이었죠.

영화계 내부에서도 반응이 굉장했을 거 같은데요.

부산국제영화제 측으로부터 10일간 숙소를 제공받았는데 일주일 만에 손들고 도망 나왔어요. 처음에는 신났죠. 개막식 뒤풀이 자리에 안성기 선배님도 있고, 유명한 감독님들이 내 옆에 쫙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박하사탕>이랑 내 얘기를 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더라고요. 다음 날부터 강수연 선배가 밤마다 저를 불러서 나가면 박중훈 선배나 온갖 배우들이 다 거기 있고, 여기저기서 부르고. 그렇게 매일 새벽 다섯 시까지 술을 마시니까(웃음) 여기 더 있다가는 간암으로 죽겠다 싶어서 몰래 짐 싸서 김해공항으로 가는데 또 전화가 오는 거예요. 그냥 조용히 끊고 서울로 왔죠.(웃음) 어쨌든 그때 영화인들도 정말 많이 만나고 명함도 많이 받고 작품 같이 하자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안성기 선배님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영화 계속할 거지? 아니다. 어차피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이창동 감독님처럼 <박하사탕>을 다시 보진 않았나요?

저는 못 보겠더라고요. 워낙 힘든 영화이기도 했고, 경험이 없을 때 찍은 영화라 다른 작품보다 강렬하게 각인돼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보기 힘들어요.

<박하사탕>이 설경구의 연기적 세기를 알린 작품이라면 <공공의 적>은 설경구라는 배우의 대중적 인지도를 넓힌 작품입니다. 그리고 <공공의 적>이 개봉한 2002년도는 배우 설경구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이창동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인 <오아시스>가 개봉했고,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공공의 적>과 강우석 감독이 기획한 <광복절특사>도 그해에 개봉해 각각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니까요.

그때 상도 많이 받고 좋았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운 게 그런 분위기를 잘 즐기지 못했다는 거예요. <공공의 적>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는 미안하다고도 했어요. 영화제마다 상을 받아버려서 죄송하다고. 정말 기대도 못 했거든요. 그래서 작년 대종상 때 <불한당>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한번 뻘짓을 해본 거죠. 10초 동안 폼 좀 잡아보겠다고. 지금껏 한 번도 폼을 못 잡아봐서.(웃음)

이젠 그런 순간을 즐길 여유가 생긴 걸까요?

작년 인터뷰에서 이 영화로 상을 딱 하나만 준다면 뭘 받고 싶느냐는 질문에 변성현 감독이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남우주연상이라고 했거든요. 저는 희원이나 혜진이가 조연상 받을 거 같다고 했고요. 정말 제가 받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터뷰에서 만약 받게 되면 제대로 폼 한번 잡아보겠다고 했다가 그렇게 된 거죠.(웃음)

국내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실미도>에 출연했고, <해운대>로 또 한번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배우가 됐습니다.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었겠지만 ‘흥행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담 될 때는 없었나요?

사실 <실미도>나 <해운대>는 제가 단독 주연을 맡은 것도 아니고 투톱, 스리톱 영화도 아니었잖아요. 정말 많은 배우들이 나오니까요. 그래서 천만 관객을 제 힘으로 모았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부담이 될 일도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내 식대로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순 없을까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다행히 그 이후로 좋은 작품을 만나긴 했죠. <감시자들>도 있고 <소원>도 있고. 지금도 계속 그런 방향을 갈망하는 거 같아요. 어차피 제가 상업적으로 내세울 만한 배우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 나이에도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그 역시도 저일 테지만.

연기를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커진 걸까요?

작년에 <불한당>과 <살인자의 기억법>이 차례로 개봉했잖아요. 두 작품에서 제 얼굴이 좀 달랐다고 보거든요. 그냥 캐릭터에 대해 고민했지 얼굴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궁금해지더라고요.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품의 크기보다는 그런 발견이 가능할 것 같은 작품에 관심이 생겨요. <우상>에서는 되게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색다르게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전혀 알 수 없었던 이상한 얼굴이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배우로서 스스로의 인상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 됐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그렇죠. 사실 <역도산>이나 <오아시스>에서의 얼굴도 다른 얼굴이지만 그건 젊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20년이 지나서는 그렇게 보여주기가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사실 설경구 씨는 일찍이 한국 영화계에서 변신의 귀재로 꼽히는 배우였는데요.

저는 단순하게 몸무게를 찌우거나 빼는 것으로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공공의 적>과 <오아시스>에서는 20kg 넘게 차이 나니까 달라 보이긴 했죠. <실미도> 때는 65~70kg이었고 <역도산> 때는 98kg이었으니 그때도 당연히 달라 보이죠. 그런데 그게 몸무게가 아닌 다른 뭔가로도 가능하더라고요. 외형적인 변신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었어요. <살인자의 기억법>을 끝내고 바로 <불한당>을 시작했는데 사실 <불한당>이 쉬운 영화가 아니었어요. 근데 거기서 또 다른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몸무게 변화 없이도 다르게 보이는 게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열혈남아>에 이런 대사가 있죠. “테크닉으로 하는 게 아니다. 눈빛으로 하는 거지.” 사실 저는 이게 배우 입장에서 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사실 그건 재문의 허세죠. 입만 살았지.(웃음) 때로는 친절함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관객들이 알아채줬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방통행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스태프들끼리는 그런 부분을 두고 회의를 많이 하나 봐요. 이런 부분은 좀 더 친절해야 되지 않나. 여기서는 넘어가도 관객이 알아챌 거다. 그게 섞이는 것 같아요. 모든 걸 눈빛으로 막 알아서 하는 불친절한 영화는 오히려 싫어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관객이 원하는 바를, 다는 아니더라도 보여줘야 되지 않나. 친절할 필요도 있고.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연기한 병수는 냉혈한에 가까운 원작과 달리 감정적인 파고가 크게 느껴지는 사람처럼 보여요. 그런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친절하게 표현하려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딸에 대한 묘사가 원작과 달라졌으니까요. 혈육에 대한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시나리오를 두 개로 만들었어요. 원작에 가깝게 병수가 끝까지 냉혈한으로 가는 버전이 하나 더 있었죠. 그래서 영화도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고요. 저는 원작에 가까운 게 낫지 않나 싶었는데 내부 의견이 엇갈렸어요. 그러다 병수가 좀 더 인간적인 게 정서적으로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우세해져서 결국 그 버전을 개봉했죠. 나중에 다른 버전도 <살인자의 기억법: 새로운 기억>이란 제목으로 30개관 정도에 개봉했는데 그게 더 좋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차라리 둘을 동시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알아서 선택하시라고.

개인적으로 저는 설경구 씨 출연작 가운데 <소원>이 제일 좋더라고요. 특히 끔찍한 참변을 당한 딸 소원이(이레)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코코몽 탈을 쓰고 따라다니는 아버지가 비로소 탈을 벗고 딸과 마주하는 순간의 얼굴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식 앞에서 누구보다 마음이 넓어지는 동시에 마음이 약해지는 존재가 아버지일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이준익 감독님이 그 신을 정말 잘 표현해준 거 같아요. 특히 그때 소원이(이레)가 정말 어른스러웠어요. “니 아빠 맞재?” 하는데 애가 다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잖아요. 그러고는 아빠 땀을 닦아주고. 그때 정말 어마어마하게 감정을 건드리더라고요. 사실 <소원>은 저도 좋아하는 영화예요. 그리고 현장에서 모니터하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꼭 없어져요. 그래서 찾아보면 구석에서 울고 있어요.(웃음) 그리고 오히려 되게 밝게 찍으려고 노력하셨어요. 현장에서도 계속 장난치고. 그래서 배우는 몰입하는데 감독이 자꾸 장난치면 어떡하느냐고 하면 “나까지 그러면 현장이 뭐가 되냐” 그러고. 저는 그게 <소원> 같더라고요. 가족들이 어떻게든 애쓰잖아요.

실제로 딸을 가진 아버지라서 더 와닿는 작품이 아니었을까요?

부모라면 다 그랬겠죠.

그런데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고민했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하겠다고 하고 나서도 되게 두려웠어요. 이걸 할 수 있을까. 괜히 피해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과 작품에 대해 얘기했을 때, 적어도 이준익 감독님과 이 작품을 하면 저도 피해자 가족들도 보호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준익 감독님 영화 중에 <라디오 스타>를 정말 좋아하는데 <소원> 이후로 감독님의 작품 색깔도 변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고요. <사도>를 보고 나서 “감독님! 연출이 많이 늘었는데?”라고 하니까 감독님이 “<소원>부터 그랬잖아! 디테일의 재미를 알았다니까”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소원> 찍을 때 자주 그러셨어요. 지금까지는 디테일에 신경을 안 쓴다기보다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촬영 끝나고 순댓국집 가서도 계속 얘기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동주>도 그렇고, <박열>도 그렇고, 이전 작품들과 다른 느낌이 있어요. 물론 진심도 여전하고요. 그런데 언제나 회차를 낭비하는 양반은 아니에요. <소원>도 계획보다 회차를 줄여서 끝냈고요. 48회차인데 43회차로 끝났으니까. ‘벌써 끝났어?’라고 생각한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심지어 그게 시나리오순대로 찍은 영화였거든요. 하여간 희한한 감독이에요.

지난해에 <1987>에 재야인사 김정남 역할로 특별 출연했는데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렇기도 했고, 그래서 어떤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갖고 선택한 건 아니냐고 물어보는 분도 많은데 사실 장준환 감독이랑 술 먹다가 하게 됐어요. 사명감까진 아니고 그냥 해야 되는 영화 같았어요. <네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촬영할 때였는데 그 이후에 이수진 감독과 찍기로 한 <우상>에서 머리를 짧게 자를 예정이었거든요. 두 작품 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기 때문에 그사이에 <1987>을 찍으면 이 역할을 위해 진짜 삭발을 해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김정남이 스님으로 위장한 채 은신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네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촬영할 때와 겹치는 바람에 삭발을 못 하고 가발을 썼어요. 그게 아쉬워요. 가발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실제로 삭발을 하고 가발을 쓰면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좀 창피하게 느껴지는 영화예요. 만약 삭발을 했으면 급박한 상황에서 뒤집어진 가발 사이로 삭발한 민머리가 보였을 거고, 그럼 그 캐릭터가 더 위태롭게 느껴졌을 테니까. 그리고 <우상>에서 짧은 머리로 나오니 자연스럽게 두 달 정도만 기르면 된다고 계산했거든요. 작은 역할이지만 꼭 그렇게 하고 싶었죠.

관객의 몰입도를 방해했다는 죄책감이 드나 봅니다.

일단 제가 아니까요. 그런데 관객들도 알면서 눈감아주는 거 같아서 싫어요. 스케줄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해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사랑을 놓치다>라는 멜로물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물론 설경구 씨가 출연한 최고의 멜로는 <오아시스>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는 <오아시스>가 진짜 멜로라고 생각해요. 거기서는 진짜 연애를 하거든요. 데이트도 하고, 진짜 진한 멜로죠. 결말부에서 종두가 경찰서에서 도망쳐서 고작 한다는 게 공주(문소리) 집 앞 나뭇가지를 잘라주고 나무 위에서 춤추는 건데, 이 여자가 제일 무서워하는 걸 제거해주고 마음 편히 교도소에 가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진짜 사랑이죠.

<사랑을 놓치다>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멜로물은 어쩌면 배우 입장에서는 평범한 일상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일상 연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이 투영될 때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그렇게 해도 되죠. 장르 영화에서도 감정을 쓰지만 일상 연기를 할 때는 진짜 감정에 집중해야 되니까 다른 모습이나 다른 목소리로 연기하기보다는 제가 느끼는 그대로 뱉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그대로 보고 듣고, 그만큼 일상처럼 연기하는 게 맞는 거 같을 때는 그냥 제 모습대로 가기도 하죠. 하지만 일상 연기가 편하다는 건 아니에요. 감정이입이 안 된 상태에서 뱉으면 오히려 불편해지거든요. 차라리 뭔가를 만들고 덧붙이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어요. <불한당>의 한재호도 외형적으로 뭘 많이 만들잖아요. 극악무도한 캐릭터인데 천박하게 웃고, 그런데 말은 또 부드럽게 하고. 그런 게 다 뭘 하는 거거든요. 뒤트는 재미가 있는 거고. <소원>도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부분이 있죠. 무엇보다도 관객이 느낄 몫까지 배우가 다 해버리면 안 돼요. 일상을 연기하더라도 계산을 해야 돼요. 이 신에서는 너무 들어가면 안 되니까 그 선을 지켜서 하는 거죠. 참을 때 참아주고, 감정 조절도 해가고.

재킷 김서룡.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바지 우영미.

지난 필모그래피를 보면 흥행 여부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한국 영화계의 다양한 상업적 시도를 온몸으로 겪은 배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공의 적> <광복절 특사> <실미도> <역도산> <열혈남아> <싸움> <그놈 목소리> <해결사> <타워> <감시자들> <스파이> <나의 독재자> <서부전선> 등 정말 다양한 상업 영화에서 활약해왔습니다.

그만큼 많이 노출된 배우라 대중의 피로감이 큰 배우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연기적 관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많이 해봐서 더 절실해요. 상업적으로든 연기적으로든. 그래서 얼굴에 관심이 생기는 거 같기도 하고요. 작품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좀 색깔이 다른 영화를 해보고 싶고요. <불한당>이 참 좋은 게, 원래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했던 영화였어요. <프리즌>도 언더커버 설정이고, <신세계>도 그렇고, 그러니까 <불한당>은 뭐가 다르겠느냐는 거였죠. 변성현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단둘이 두 번째로 만났을 때 확신이 드는 거예요. 다른 영화가 나올 거라고. 현장에 갈 때도 오늘은 또 어떨지, 매일 궁금했어요. 콘티 단계부터 만화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이제 세 번째 장편영화를 찍은 감독이고, 촬영감독도 조명감독도 경력이 짧았지만 이 사람들과 하는 작업이 재미있더라고요. 완성되면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얘기가 나올 거 같고. 그런 재미가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려면 모험이 필요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한국 영화계가 설경구라는 배우의 개성을 끊임없이 활용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필모그래피를 봐도 범상한 캐릭터가 드물기도 하고요. 그런데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거 같다는 강박은 어쩌면 배우 스스로가 그런 요구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의미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늘 결핍이 있죠. 배우라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걸 갈구하잖아요. 그런데 항상 새롭지 않은 거 같아서 미치겠고요. 결국 제가 다 해야 하는데 저라는 사람이 ‘뿅’ 하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철중도 제가 하는 것이지, 제가 강철중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배우란 예술하는 직업이 아닌 거 같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하고 싶은 걸 얼마나 비슷하게 표현하느냐의 싸움인데, 저는 그걸 100으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한 거 같더라고요. 얼마 전에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은퇴했다면서요. 어쩌면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처럼 완벽하게 보여줄 자신이 없어졌다거나. 그렇다면 정말 양심적인 배우인가 싶기도 한데, 저는 배우의 표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려 할 뿐이죠. 그리고 그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계속 해나가는 게 결국 배우라고 생각하고요.

그만큼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도 중요하겠죠. 변성현 감독을 만났기 때문에 <불한당>의 한재호를 만난 것이니까요.

저는 감독한테 많이 의지하려는 사람이에요. 제가 끌고 가는 건 잘 못하니까요. 변성현 감독도 그런 틀을 만들어줘서 좋았어요. 저한테 그랬거든요. 불편하겠지만 말도 안 되는 걸 하라고 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 화내지 말라고. 멋있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니까 참아달라고. 결과적으로 변성현 감독은 <박하사탕> <공공의 적> 이후로 저를 바꾼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오십이 넘은 사람을. 타성에 젖어 살고 있던 한참 선배를 변성현 감독이 바꾼 거죠. 그래서 저는 불한당원들한테 변성현은 설경구 아버지라고도 해요. 예전에는 그냥 받아들이려고만 했는데 덕분에 정말 뭔가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은 게 많이 생겼어요. 좀 더 해볼 게 없나 싶고. <불한당> 이후로는 이제 그런 재미를 좀 찾아보고 싶어요.

1994년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큰 언니>라는 TV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아침 드라마였죠. <밀회>와 <풍문으로 들었소> 대본을 쓴 정성주 작가님 작품.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지만 그 뒤로 방송 드라마를 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얼굴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오히려 드라마 캐스팅이 안 됐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만큼 기회가 간절한 시기였던 거 같아요.

그럼요. 그런데 그때는 그냥 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를 찾아주길 바란 거죠. 근데 제가 뭐라고 찾아와요. 지레 자신 없어지고 적극적이지도 못 했던 거죠. 작품을 받고 싶다고 직접 찾아가보지도 못했어요. 비겁한 거죠. 선후배들이 와보라고 하면 갔던 거고. 그러니 감독님들 눈에 띄기가 쉬웠겠어요. 그런데 얘기 들어보면 다른 배우들은 부단히 노력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거죠. 난 평범하니까, 이렇게 자위했던 거니까요. 상처받기 싫어서.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그 간절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간절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물론 지금도 꾸준히 일하고 있지만 이젠 제 나이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흥행보다는 작품에 대한 간절함이 커지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물론 관객 수도 중요해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제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생각만 해도 화끈거리는 작품도 있거든요. 그중에는 흥행작도 있고요. 그래서 요즘은 자꾸 검열을 하게 돼요.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정말 맞을까? 그래서 감독님한테도 자주 물어보고. 오히려 지금이 더 간절해요. 그래서 잘나갈 때 왜 더 즐기지 못했나 한이 되고.(웃음)

어쩌면 지금이라도 즐기라고 세상이 설경구 씨를 아이돌로 만들어준 것일지도 몰라요.

비현실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지만 팬분들 덕분에 즐기고 있어요. 희한한 일이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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