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의 1막

요즘처럼 이종석이 이종석다운 적도 없었다.

티타늄과 탄탈룸, 세드나 골드 소재를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리미티드 에디션. 재킷 김서룡.

이 인터뷰는 실패했어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마음이 기울었으니까.
다시 무로 돌아가요.

젊은 남자 배우라면 2월호 매거진 커버는 꽤 욕심날 거예요. 하지만 이종석 씨는 너무 몇 년에 걸쳐, 여러 매거진의 표지 모델이었죠?
딱히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의미 부여를 하자면 특별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그래요. 드라마가 시작할 때랑 맞물리기도 했고, 2019년엔 군대에 갈 테니까요. 촬영이 끝날 때마다 은연중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가 나왔는데,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말줄임표가 유독 길던데, 괄호 안에 담아둔 말은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요’ 이런 거예요?
팬미팅 투어 마지막에도 ‘기다리지 말고 좋은 사람이 생기면 가세요’라고 했어요. 기다려달라고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미안해서. 물론 팬들을 사랑하고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제가 팬들에게 받는 것에는 비할 수가 없으니까요. 군대라는 게 기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림으로만 보내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래서 저 스스로는 어느 정도 마무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종석 1막의 마무리?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지난 팬미팅 투어 타이틀도 크랭크업이었어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저를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2018년, 그러니까 서른 살에요?
스물여섯 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스물여섯 살이면 커리어의 정점을 그려갈 때네요. 드라마 <피노키오>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고, 스물일곱 살 때 <더블유>로 MBC 연기 대상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20대에 유독 열등감이라는 말을 많이 했더라고요.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겠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나는 그런 재능과 센스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계속 확인해요. 그렇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니까 열등감이라고 많이 이야기한 것 같아요.

열등감이라고 하지만 자신감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했어요.
말을 뱉어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겠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약속의 의미로, 나한테는 지켜야 한다는 압박인 거죠. 그런데 사실은 계속 힘들긴 했어요.

그래도 늘 잘해왔잖아요. 그러니 이렇게 또 <에스콰이어>의 얼굴이 됐고요.
늘 잘해왔는데… 여기까지인가 봐요.(웃음)

여기까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정말 끝내는 사람 없어요. ‘난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요.’ 솔직한 마음은 그거야, 그렇죠?
잘하고 싶어요. 정말 잘하고 싶은데…(한숨) 이게 참, 기준이 다르고, 연기라는 게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려워요.

오늘 모드가….
새해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지난 인터뷰를 보면 서른 살을 앞두고 지독하게 고민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이종석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종석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도요. 그래서 2018년은 그동안 못 해본 것들 하자고,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지금 잠 못 자고 촬영해도 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1년을 잘 쉬어서.

티타늄과 탄탈룸, 세드나 골드 소재를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리미티드 에디션. 재킷 김서룡.

작품 활동 대신 개인적으로 확실하게 세운 게 있잖아요. 이종석의 카페와 이종석의 회사.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좋은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회사를 만들었는데, 요즘 딸린 식구가 많아져서 책임감이 많이 생겨요.

가장이 된 기분이에요?

사장님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나에게 카페는 취미 생활 같은 건데, 이 사람들한테는 생계가 달렸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체계를 갖춰야 하고, 수익이 발생해야 하고, 그렇게 가더라고요. 처음에는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면서 하자’였는데, 내가 생각한 이상과는 다른 거지. 그들에게는 현실이니까. 쉽게 생각할 게 아니구나, 내가 열심히 일을 해야겠구나, 이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게 필요하겠다, 내가 벌어야 무너지지 않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게 인터뷰에 적합한 답인지 모르겠어요.(웃음)

최근 들어 인터뷰를 조심스러워하더라고요. 그리워지는 지난날 이종석의 패기.

팬들도 요즘 내 인터뷰가 재미없대요. 회사를 만들고 난 뒤부터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말실수를 하면 마케팅 담당하는 사람이 힘들잖아요. 이 사람이 내 식구인데, 내가 이런 실수를 하면 수습을 해야 하니까. 전에는 내가 한마디 뱉음으로써 어떤 파장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어요. 다만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뿐, 이게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에 대한 후폭풍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거지. 조심스러워졌어요.

조심성이 생기니까 어때요?

진짜 힘들어요. 나는 휘느니 부러지겠다 하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그렇습니다. 먹고살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최근에 ‘내가 세상 물정을 몰랐구나’ 하고 생각한 적 있어요?

항상 생각해요. 내가 정말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정말 연예인으로서의 애티튜드를 철저히 지키면서 살았을 거예요. 그래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런데 여전히 모르는 거 보면…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태어났어요. 가식적인 걸 못 해요. 불편하고 막 그래요. 얼굴이랑 귀가 빨개지고 땀이 나고. 안 그러고 싶어도 어쩔 수 없어요. 아, 왜 이렇게 태어났지?(먼 곳을 바라본다.)

그랬다면 기자들 사이에서 이종석 괴담이 돌지도 않았겠죠. ‘이종석은 인터뷰하기 어려운 배우다’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편한 부분도 있어요. 막상 만나서 이야기하면 아니라는 걸 알아주시기도 하잖아요.

정작 이종석을 겪어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연예인이라고 했어요. 표현이 서툴 뿐이라고. 그렇지만 모든 책임은 이종석의 몫, 이종석이 감내해야 하는 일. 인지도 있는 사람들의 고충이겠죠.

그래서 저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특히 인지도 있는 연예인들은 더더욱. 마음에 안 들면 매니저를 통해라’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돼요.

그러고 보면 이종석은 데뷔 후 9년 동안 한결같았네요.

맞아요. 전 진짜 한결같이 살았어요.

스틸과 세드나 골드 소재 케이스에 블루 다이얼, 블루 러버 스트랩을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티셔츠 T by 알렉산더 왕. 데님 바지 발렌티노.

<로맨스는 별책부록> 촬영은 재밌어요?

힘들지만 재밌어요. 이 드라마를 택한 건 정현정 작가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예요. <연애의 발견> <로맨스가 필요해>를 보면서 작가님 작품은 단순하게 사랑 이야기를 하지만 되게 현실적으로 그리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보통 드라마에서 사랑 이야기를 할 때 8부가 넘어가면 소재가 없어지는데, 작가님 작품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인물들 간의 관계와 그 사이 감정의 문제로만 16부작을 풀어가고. 그래서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처음이던데.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그걸 확인한 거예요. 나는 정말 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구나. 이번 작품이 특히 어려운 게 큰 감정선이 없어요. 그동안의 역할은 항상 과거부터 그려지고, 과거의 커다란 사건에서 파생되는 감정을 끌고 갔거든요. ‘이런 과거가 있었으니까’를 되뇌면서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붙잡고 갈 전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낯설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본 작품이 <관상>이었어요. 이종석을 굉장히 괴롭힌 작품 같아서. 그 후 이종석의 필모그래피에 사극이 없는 걸 보고 후유증이 꽤 오래 가는구나 했어요. <관상>을 촬영한 게 <학교 2013>을 마친 후였는데, 데뷔 초에 그만큼 연기한 거면 나름 선방한 거 아니에요?

내가 무언가를 인지하면 그게 되게 오래가는데, 부족함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 그때 제 역량으로는 다시는 사극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저에게 벌을 주는 거예요.

<관상>이 2013년도에 개봉했으니까 5년이 넘었잖아요. 벌이 너무 길다.

최근 들어 ‘이제 사극을 한번 해봐도 좋겠다, 나도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야 내가 조금 익었다고, 연차가 찼다고 느끼나 봐요. 되게 매력있는 작품이 많이 들어왔는데, 사극이라면 시나리오를 아예 펴보지도 않았어요. 최근 <로맨스 별책부록>을 촬영하기 전까지도.

그레이 다이얼에 블루 베젤과 블루 러버 스트랩을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셔츠 베드포드 by 무이.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 <사의 찬미>를 보고 이종석이 시대극에 발을 들였으니 이제 사극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두 번째로는 <노브레싱>을 봤어요. 오늘 차고 있는 시계가 다이버 시계여서, 물속에 잠기는 이종석의 모습을 상상했거든요. 이종석을 물에 빠뜨려도 괜찮을까 하고. 그런데 수영 천재 정우상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제 이종석이 이러지 않을까 했어요. 재미 삼아 연기하는 것 같은데, 뒤에서는 엄청 지독하게 노력하는 스타일. 그동안의 인터뷰를 보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연습 벌레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맞아요.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이종석은 베짱이처럼 연기한다고 생각했어요. 쉽게 쉽게.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라는 건 무형의 것이니까. 모두 내 탓이죠, 뭐.

늘 학구적이고,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연기한다고 했는데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이건 곧 본능적으로 연기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단호한 목소리로) 난 본능적으로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건데, 늘 결과물을 보면 자책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현장에서 캠코더로 촬영하고 확인한 다음 반성해요. 풀 샷의 경우 서 있는 모양새부터 보고요. 상대 배우가 연기할 때 뒤통수만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에도 내가 어떤 동작을 하는지까지 봐야 해요.

지금도 캠코더로 촬영하고 모니터링해요? 영화 <브이아이피> 촬영 때부터 뗀 줄 알았어요. 박훈정 감독님의 지령이 었었잖아요. 촬영장에서 캠코더 촬영 금지, 모니터링 금지령.

불안하니까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면서 내가 편해질 때가 있을까 싶어요. 카메라가 풀 샷에서 웨스트, 바스트, 사이드 바스트로 들어가는데, 카메라 앵글 사이즈가 좁아질 때마다 숨이 막혀요. 앵글이 널널할 때는 편하게 연기하는데, 갇힐수록 강박이 있어요. 타이트하게 앵글을 잡는다는 건, 대본에 있는 지문을 얼굴 표정,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건데, 그에 대한 표현을 내가 충분히 못 할까 봐 불안한 거죠.

이제는 그만 불안할 때도 된 것 같아요. 세 번째로 본 작품이 <브이아이피>였어요.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자신에게 그제야 후한 점수를 줬죠.

역할도 매력적이었지만 선배들에게도 배우는 게 많았어요. <관상> 찍을 때 기억이 있어요. 너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니까 시선을 돌릴 때마다 배울 것 투성이였거든요. <브이아이피>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래서 선배들하고의 작업을 좋아해요. 확실히 선배들하고 하면 마음이 편해요.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 역할이 너무 멋있어서 영화는 내가 해보지 않은, 결이 다른 역할을 찾는 편이에요.

이종석이 나오는 드라마는 믿고 본다고 해서, 청개구리처럼 이종석이 출연한 영화만 보고 왔어요.

뭐가 제일 좋았어요?

네 번째로 본 <피 끓는 청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는데 본인이 우겨서 한 작품이라고 했죠? 제목만 보고 ‘왜 이런 작품을…’ 했는데, ‘이래서였구나’ 했어요. ‘드라마 덕후’ 이종석의 안목은 영화에서도 통하던데요?

그때 진짜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왜 좋았어요?

그 시절을 연기한 이종석이 부러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즐거워 보였거든요. 팔딱이는 게 물 만난 활어 같은 느낌이었달까.

유일하게 카메라 앞에서 쫄지 않고 했던 작품이 <피 끓는 청춘>이었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 끝난 직후였는데, 드라마가 너무 잘됐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좋았어요?

너무 겁이 났어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나한테 쏟아지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망가지려고 뛰어든 작품이에요.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망가지려고 했어요?

<피 끓는 청춘>에 연기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장치가 되게 많거든요. 배경도 과거고 사투리도 있고. 그러니까 외형적으로나 연기를 뱉는 말투 같은 것이 내가 해온 것들과 완전히 달랐어요. 그래서 그 작품을 통해서 ‘얘가 단순히 스타가 아니라 연기 욕심을 내는 애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스틸과 세드나 골드 소재 케이스에 블랙 다이얼, 블랙 러버 스트랩을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카디건 앤 드뮐미스터 by 분더샵. 티셔츠 T by 알렉산더 왕. 바지 김서룡.

7년 전 촬영장에서 어시스턴트로 만난 적이 있어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한창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을 때. 그때만 해도 종석 씨가 이렇게 진지하게 배우 활동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반짝 연기하는 연예인이겠거니 생각했죠.

지금도 나를 온전히 배우로 인정하는 사람이 많이 없을 거예요. 박훈정 감독님이 ‘디카프리오가 그랬듯, 양조위가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되려나.(웃음)

눈물 연기를 참 잘해요. 남자 배우에게 강력한 무기잖아요.

쉽진 않지만, 많이 어려운 건 아니에요. 오히려 눈물을 참아내는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눈물 흘리는 연기는 슬프다는 감정을 눈물이라는 장치로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단순해요.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눈물 연기를 얼마나 몰입해서 본다고요. 눈물방울은 어떤 크기로 떨어뜨리는지, 얼굴은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얼마나 섬세하게 관찰하는데요. 그래서 언제 연기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없어요. 연기로 승부를 보겠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요, 전.

그럼 연기를 왜 해요?

업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고 기자님이 기사를 쓰는 것처럼 하는 거예요.

그래도 연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확실히 잘하고 싶고, 항상 잘하고 싶어요. 물론 제가 잘하는 부분이 있기는 할 거예요. 감정을 기쁨, 슬픔, 두려움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슬픔과 분노 연기는… 솔직히 내가 조금 잘하긴 해요. 한이 많아서.(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우와, 얘 좀 봐라’ 기가 차게 멋있었던 부분.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데뷔 초에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후로 여기저기서 다들 대체 불가한 배우가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진부한 대답은 하기 싫고 그래서 생각한 게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배우였어요. 그게 정말 명확한 답변이잖아요. 연기도 잘하고 인기도 많아야 하고 선택도 항상 옳아야 하고, 그 모든 걸 아울러야 가능한 타이틀이니까.

그래서 지금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고 싶었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잠깐의 정적) 그래도 그런 편이라고 할게요.

씨마스터 컬렉션 70주년을 기념하는 시계로 씨마스터 최초 모델을 복각한 오메가 씨마스터 1948 리미티드 에디션. 재킷 김서룡.

지금 이종석에게 주고 싶은 건?

사랑이 필요합니다. 팬들의 사랑은 너무 고맙지만 정말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필요해요. 나 너무 외로워요. 진짜 너무 외로워요. 사는 게 너무 외로워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사람이 필요해요.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행복했는데…. 그래도 늘 사랑이 필요해요. 욕심일까요?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종석 씨가 되게 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쓸쓸한 사람일 줄….

전 강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죠. 지난달에 처음으로 시계추에 메달린 기분이 들었어요. 시계추가 엄청 매서운 칼날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베일 거 같아서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종석 씨도 드라마 촬영 중이니까 굉장히 쫓기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음, 기자님도 일을 잘하고 싶은가 보다. 사실 그렇게 일을 성의 있게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전 배우가 된 뒤로 항상 쫓겨 살았어요. 어렸을 때 했던 인터뷰에서 ‘열등감’으로 표현했던 것이 사실 누군가랑 비교하기 때문에 열등감이 드는 거잖아요. 그걸 해소하려고 나를 더 다그치고 작품을 해왔던 거예요. 쫓기듯이. 계속 욕심이 생기니까 잘해야지 하고.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뭘 좀 버려야 할 것 같은데… 서른 살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버리고 싶은 건 뭐예요?

누나는요?

…욕심?

잘하고 싶은 욕심이요?

네. 그런데 나의 한계를 너무 잘 안다는 거죠.

저도 딱 그래요. 저도 제 한계를 분명히 알아요. 숨기려고 노력할 뿐이죠.

맞아요. 또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내 또래에서는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요. 종석 씨도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고 웃는 이종석)

또 선배들만큼은 못 하겠고.

(또 끄덕이고 웃는다.) 저랑 똑같은 사람이 여기 있네요. 저도 정말로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데… 가만 보면 저보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요. 이건 객관적으로 보이잖아요. (생각에 잠긴 이종석) 그런데 이 인터뷰 쓸 수 있을까요? 우리가 너무 대화만 했잖아요. 인터뷰니까 저도 어느 정도 소스는 줘야 할 텐데, 그게 충당이 안 될까 봐 신경이 쓰여요. 너무 틀에 박힌 이야기를 안 해서.

틀에 박힌 이야기로, 우리가 촬영하다가 2018년의 마지막 해가 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요?

요즘 들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매일 후회를 해요. 어제, 그저께, 작년 이맘때 이렇게 후회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열심히 사는 게 정말 답인지, 시간을 유익하고 열심히 알차게 보내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인지, 내 시간을 일에 모두 할애하는 게 맞는 일인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20대를 정말 열심히 보냈다고 뿌듯하게 생각하고 자부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놀걸, 더 막 살걸, 연애도 더 열심히 할걸 후회가 돼죠.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일만 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또 그런 생각을 해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번엔 결혼해야지.

이게 이종석이 지독하게 겪고 있는 서른 병의 증상인가?

아뇨. 스물다섯 살 때부터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했는데 요즘은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외로워도 외로워할 겨를이 없어요. 그럼에도 막연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이가 차서 그런가. 그런데 저… 진짜 장가갈 수 있을까요?

갑자기요?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기보다 나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냥 같이 있을 사람, 같이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할 사람. 나를 객관적으로 봐주고, 고민을 같이 터놓고, 필터 없이 대화할 사람.

스틸과 세드나 골드 소재 케이스에 블랙 다이얼, 블랙 러버 스트랩을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카디건 앤 드뮐미스터 by 분더샵. 티셔츠 T by 알렉산더 왕.

분위기를 급히 바꿔서 오늘은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의 한국 대표로 <에스콰이어>와 만났어요. 이종석에게 시계는 어떤 의미예요?

멋지게 나설 채비. 왜, 근사하게 차려입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대중 앞에 설 때, 예의를 갖춰야 하는 상대를 만날 때, 어려운 자리에 참석할 때. 그러니까 꿀리기 싫을 때. 언제부터인가 슈트를 딱 갖춰 입어도 시계를 차야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 공식 행사에 참석했는데 뭔가 허전하다 싶어 봤더니 시계를 두고 온 거예요. 그래서 급히 스태프에게 시계를 빌린 기억이 있어요.

이 시계는 수심 300m까지 방수가 된대요. 25주년 한정판라고 하니, 25년 전후 어디든 가볼 수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과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항상 힘들었으니까. 굳이 가야 한다고 하면 올해 초? 저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편이거든요. 초현실주의자예요. 원래 2018년 계획은 네 작품을 하고 마무리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겁이 났던 것도 있고, ‘20대 때 여행도 안 다니고 너무 일만 했으니까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머리를 좀 채워서 작품을 해야지’ 하고 합리화하는 바람에 작품을 많이 못 했어요.

그게 후회가 돼요?

지난 시간은 항상 후회로 남잖아요. 저는 흘러간 시간을 작품으로 기억하거든요. 그동안은 매년 최소 두 작품씩은 남겼어요. 그래서 작품을 다시 보면 그때가 그려지는 거지. 카메라 뒤에 있을 때 나의 모습들이 일기처럼요. 그게 내가 기억을 저장해온 방식이에요. 그런데 서른 살이 된 올해는 작품이 없으니까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대신 다른 것들이 있잖아요.

다른 것들이 있죠. 여수, 통영, 거제, 제주도….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거든요.(웃음)

스틸과 세드나 골드 소재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에 블루 다이얼과 블루 베젤을 조합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재킷 김서룡.

지금 이종석의 시계는 언제를 향하고 있어요?

12월 31일 오후 9시. 서른한 살이 되기 3시간 전이네요. 올해 알차게 보냈고… 이제 나를 부르는 시간은,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콜 타임이 제일 가깝거든요. 늘 그랬듯 이번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뭐 하나는 얻고 가는 게 있었으면 해요. 그럴 수 있을까요? (생각에 잠긴다.) 행복을 얻고 갔으면 좋겠어요.

행복하려면 뭐가 필요한데요?

행복을 이야기하는 조건이 통상적으로 몇 가지가 있잖아요. 돈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나는 충분히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랑도 많이 받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요. 그런데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인가 싶어요.

이종석은 행복하다고 쓸게요. 그래도 돼요?

(정적) 네. (또 정적)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초콜릿 좋아해요?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엄지손가락만 한 초콜릿을 건넨다.) 이건 행복하라는 뇌물이에요.

감사합니다. 행복할게요. 뭐 먹을 때는 정말 행복하거든요.

이종석이라는 사람은 로맨스에 가까워요, 별책 부록에 가까워요?

어느 쪽에도 가깝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로맨스에 가까운 사람으로 보였으면 해요.

이종석의 매력에 빠지면 어떡해요?

큰일나신 겁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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