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은 참지 않는다

해야 할 말은 한다. 하고 싶은 것도 한다. 유준상은 그렇게 살아왔다.

유준상 - 에스콰이어

재킷 우오미니 by 에디토레.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림락. 시계 미도.

유준상 - 에스콰이어

슈트 브리오니. 셔츠 로드앤테일러.

민용준(이하 민) 얼마 전 토크쇼 <인생술집>에 출연해서 국정 농단과 관련한 청문회에 대해 언급했다. 배우의 관점에서 청문회에 대한 감상을 털어놓는 게 흥미로웠다.

유준상(이하 유)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선 그들이 진실과 진심을 어떻게 숨기며 이야기할지 궁금하더라. 그런데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아무래도 악인을 연기하는 패턴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민_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연기한 한정호도 후안무치한 인물이었다.

유_ 사실 한정호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민_ 그가 악인이라서?

유_ 그건 아니고, 한정호 같은 악인이 평범한 얼굴로 우리를 현혹하니까 이런 인간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전해주고자 연기했는데, 다들 한정호를 좋아해서. 솔직히 한정호 덕분에 CF를 찍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민_ 미움받고 싶었나?

유_ 그렇지! 물론 내 연기를 좋게 봐주신 것만큼은 고맙게 생각한다.

민_ 다행히도 <조작>을 통해 비로소 정의 구현이 가능해졌다.(웃음) 드라마 <조작>에서 연기하는 이석민은 보수 언론사의 소신 있는 기자다. 어떤 음모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던데.

유_ 탐사 보도를 주로 해온 기자인데, 어떤 사건을 심도 있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조직의 제재를 받게 되고 거기 반발하다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시스템의 장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거지. 지금 모 방송국의 현실처럼. 하지만 그런 상황이 이 인물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자기 소리를 내보려 노력하게 만든다.

민_ 단순히 정의감이 넘치는 인물일까?

유_ 마냥 정의로운 친구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작>을 본 기자들도 처음 기자가 되고 싶었을 때의 소신을 돌아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이 사회를 위해 애쓰는 기자가 많을 거다. 정권이 바뀔 수 있었던 것도 한 기자가 태블릿 PC를 발견한 덕분이었으니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은 누군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조작>은 그런 깨달음을 툭툭 밀어 넣어주는 작품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우리가 지난 몇 개월 동안 겪었던 일련의 사태를 연상할 수 있어서 재미있게 느낄 거다. ‘이렇게 연관이 되네?’ 하면서.

민_ 구체적으론 국정 농단 같은?

유_ 아직 대본이 끝까지 안 나와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드라마보다 현실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모 기업인 리스트나 모 선수의 도핑 조작 사건이 연상되는 에피소드도 등장하고, 심지어 그분이 째려보던 그 시선도 생각날 거다.(웃음) 굉장히 현실적이다. 전 정권이 유지됐다면 제작될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래도 만들어졌을 것 같다. 후폭풍이 생겼을지는 몰라도 이 정도 완성도와 의지였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준상 - 에스콰이어

슈트 라마르쉐 나폴리 by 링재킷. 셔츠 브리오니. 타이 AD56밀라노 by 라마르쉐.

민_ 사회적 관심이 상당해 보인다.

유_ 정치나 사회와 관련한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덕분에 <조작>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그래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웃음)

민_ 지금만큼이나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을까?

유_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너무 힘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무심코 넘어가선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건 분명 다른 결과일 거라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시민의 의무를 생각하다 보니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것이 잘못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져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공부하게 됐다.

민_ 지난 얘기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대검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직접 검찰의 태도를 일갈하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유_ 실명으로 써야 해서 이름을 걸고 썼지만 특별히 누가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 기자 분이 내가 쓴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아니라고 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알려진 것뿐이다. 그저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민_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걱정을 사거나 하게 되진 않았나?

유_ 그래서 오히려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정확히 알아야 되니까. 세월호 참사 때도 이게 어떤 상황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이들이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회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덕분에 회사에선 근심하고.(웃음)

민_ 혹시 그런 관심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유_ 없진 않았다. <풍문으로 들었소>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사회적 의미가 느껴지는 작품에는 확실히 관심이 생겼으니까. <조작>도 시놉시스만 보고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정권이 바뀌기 전이라 더욱 불타올랐는데 정권이 바뀌니까 조금 걱정되더라. 다시 안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회복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까?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많은 상황이라 <조작>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시청자가 많을 것 같다.

유준상 - 에스콰이어

셔츠, 바지, 타이 모두 까날리. 시계 프레데릭 콘스탄트.

민_ 뮤지컬 <벤허>의 주인공 유다 벤허 역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드라마 촬영과 뮤지컬 준비 시기가 겹칠 텐데, 일정이 고될 것 같다.

유_ 일단 <조작> 촬영은 9월 초에나 끝날 거 같고, <벤허> 공연은 8월 말에 올라간다. 병행하는 만큼 허투루 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 무대에서 조금이라도 티가 나면 관객들은 바로 안다. 한두 번은 속일 수 있지만 오래 못 간다. 답은 연습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_ 뮤지컬 배우로서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유_ 작품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년에 한 편 정도 하는 것 같다. 다만 지방 공연도 돌고, 앙코르도 하니까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게 되어서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일 순 있겠다. 사실 배우로서의 시작점이 뮤지컬 무대였기 때문에 그 의미를 지켜나가고 싶다.

민_ 과거에 했던 인터뷰에선 대부분 유준상을 두고 ‘열심히 산다’고 이야기하더라. 뭔가 하는 게 많기 때문일 거다.

유_ 아무래도 배우는 걸 좋아하니 하는 게 많다. 요즘은 테니스 레슨을 받는다. 원래 좋아하던 운동이었지만 레슨을 받다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실수를 알게 된다. 정확한 스윙과 폼을 익히면서 힘으로만 밀어붙였던 걸 바로잡고 있다. 그런 배움을 삶이나 연기에 대입시키려 한다. 그런 마음으로 영화도 만든 것 같고.

민_ 지금 말한 것처럼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이란 작품을 연출했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도 초청됐다. 그런데 극장 개봉 계획은 아직 없는 건가?

유_ 극장 상영도 해볼까 했는데 말았다. 그냥 DVD로만 출시했다. 누군가는 찾아보지 않을까 싶어서.

민_ ‘제이앤조이 20(J n Joy 20)’라는 밴드 활동과 관련된 영화다.

유_ 뮤직비디오 촬영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자동차가 고장 나서 4시간 동안 동네에 머무르게 됐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번지점프장을 찾아가 언젠가 뛰고 싶다고 생각했던 번지점프에 도전했다. 그런데 점프를 하는 순간 이걸 이야기로 풀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때부터 4박 5일간 촬영을 했다. 밴드 멤버인 (이)준화와 함께 여행하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담아보려 했다.

민_ 밴드 활동은 일종의 취미 생활인가?

유_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벌써 앨범을 다섯 장이나 냈다. 올해에 두 장 더 낼 계획이다. 심지어 EBS의 <스페이스 공감>에도 출연했다. 잘 알겠지만 <스페이스 공감>은 인기로 로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먼저 제안을 받게 됐으니 우리 음악이 조금이나마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계속해보고 싶다. 물론 종종 힘들긴 하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하고.

유준상 - 에스콰이어

재킷, 셔츠 모두 에트로.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계 프레데릭 콘스탄트.

민_ 오래전부터 일기를 써왔다고 했다. 요즘도 쓰나?

유_ 요즘은 음악이나 영화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내 얘기를 담아내다 보니 예전만큼 쓰진 않는다. 그래도 여행하면서 얻은 느낌은 항상 기록한다. 1년에 한 권씩? 평상시엔 공연하거나 대본 연습을 하며 얻은 단상을 공연 일지처럼 쓴다.

민_ 결국 음악을 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유_ 그럴 거다. 내 마음과 감성에 대한 기록. 이때의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확인하면서 지금의 내가 너무 흐트러지거나 옹졸해진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꼰대는 되기 싫으니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반성하고 계속 나 자신을 꾸짖는 거지. ‘아직 멀었어.’ ‘생각이 좀 짧구나.’ 그리고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고, 상처를 주지도 않으면서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거지.

민_ 혹시 지금도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유_ 이젠 지금 하고 있는 걸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실현했으니 그 연장선을 생각하는 거지. 그런 활동이 다행히도 배우로서의 역할에 도움이 된다. 만약 연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느꼈다면 못 했을 거다.

민_ 그 어떤 것보다도 연기만큼은 치열하게 한다는 의미일까?

유_ 당연하다. 야구 선수들이 매일 반복 스윙을 하고 반복 투구를 해도 삼진을 당하고 사사구가 나온다. 쉽지 않은 거지.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배우 역시 그렇다.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이나마 새롭고 나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

민_ 마치 인생을 수련하듯 사는 사람 같다.

유_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늙어가면서도 그런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을 만난 덕분일지도 모른다. <토지>에 출연할 때 박경리 선생님을 뵀는데, 80세가 다 된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삶이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러니 나 역시 연기의 장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이 들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배우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임해야 마음이나마 늙지 않을 것 같다. /글_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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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김 신영
사진KIM S. GON
헤어이 순철
메이크업효정
스타일링정 주연
출처
20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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