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아는 될 줄 알았다

놓았던 꿈이 다시 주어졌을 때, 원진아는 주저하지 않았다.

화이트 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

평소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을 즐긴다고 들었다.

사실 요즘 ‘배틀그라운드’를 너무 해보고 싶은데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편이라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다. <라이프>를 끝내고 나면 바로 시작할 생각이다.

<라이프>를 준비하며 체중 감량을 했다던데 먹는 걸 참는 게 더 힘든가, ‘배틀그라운드’를 참는 게 더 힘든가?

먹는 거. 게임은 잠깐이지만 먹는 건 항상이니까.(웃음) 사실 햄버거를 먹은 지 오래돼서 오늘 먹으려고 했는데 내일 아침에 또 촬영이 잡혀서 못 먹는다. 그래도 요즘은 운동하는 재미가 들려서 참을 만하다.

뭔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편인가?

맞다. 처음에는 운동도 억지로 했는데.(웃음)

배우가 되기 위해 4년 전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들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2년 정도는 아르바이트만 했다. 어떻게 오디션을 봐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생활은 해야 하니까 밤낮 가리지 않고 하루에 알바를 두 개씩 뛰었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도 상당했다. 알바하려고 서울까지 왔나 싶고. 그러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진행하는 배우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는데 영상으로 인사를 남겨야 한다고 해서 바로 촬영해 보냈다. 마침 알바를 마치고 돌아와서 화장을 지우기 전이기도 했고.(웃음) 그렇게 만난 게 <캐치볼>이라는 단편영화였다.

<캐치볼>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짧은 쇼트커트 머리던데 잘 어울리더라.

20대 초반에 갑자기 머리를 짧게 잘라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바로 미용실에 가서 잘랐는데 괜찮아 보이더라. 키가 작아서 짧은 머리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관리하기도 편했다.

<캐치볼>에서 연기한 장민영은 캐치볼을 즐기고, 경찰이 되길 희망한다. 심지어 머리도 짧다. 흔히 생각하는 여성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인물처럼 보인다.

연기를 시작할 때는 체구가 작으니까 연약하거나 여린 인물을 주로 맡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강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 역을 거듭 맡게 됐다. 운이 좋았다.

<강철비>의 려민경과 <그냥 사랑하는 사이>(이하 <그사이>)의 하문수는 험난한 운명에 휘말리면서도 밝고 단단한 성격을 잃지 않는 인물들이다. 원진아라는 배우가 그런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현실감 있게 잘 살려주었다고 느꼈다.

내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인물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다른 배우가 맡았다 해도 잘 소화했을 테고. 그저 다른 사람처럼 보일 뿐이겠지. 그런데 연기할 때도 성격이 묻어나는 거 같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성격은 아니다. 스스로 힘들다고 느낄 때도 ‘지금 힘들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야 돼’ 이렇게 채찍질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장녀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뭔가 어렵고 힘든 시절이 있었던 걸까?

특별히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건 아니지만 혼자 해결해내는 게 익숙한 편이긴 했다. 아르바이트도 일찍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용돈도 벌어서 쓰고 했으니까.

배우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서울만 올라오면 뭔가 될 줄 알았다.(웃음) 하지만 2년이 다 돼가도록 되는 건 없고, 지치고 힘들기만 하더라. 그래서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이게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캐치볼>로 만난 유은정 감독님이 여기저기 내 소개를 많이 해준 덕분에 기회가 이어졌다. ‘여기서 단역 필요하다는데 갈래?’ 이런 식으로. 장편영화 오디션에 프로필을 보내주기도 하고. 주변에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았고 실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도 오디션으로 알게 된 분이 추천해주신 덕분에 만났으니까. 정말 운이 좋았다.

그만큼 최소한의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믿을 수 없는 사람을 타인에게 소개해줄 리는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혼자서도 잘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히려 내버려둘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럴 거 같지 않으니까 누군가를 만나 좋은 방향을 찾을 기회를 주고 싶어서 자꾸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지. 그만큼 좋은 분들을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올라왔으니 생활비를 벌어야 했겠지만 기본적으로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진 않았나 보다.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부족하다고 하면 부족한 편이기도 했고. 동생이 둘이나 있고 첫째이기도 해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한테 뭐 사달라는 말을 잘 안 했다. 그러면 부모님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빨리 자라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성격 탓이지.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기학과 입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슨비가 부담돼서 입시 직전에서야 바짝 준비했지만 역시 ‘갑자기’라는 건 안 통하더라. 결국 다 떨어지고 재수를 할까 했지만 그럴 형편이 안 돼서 집과 가까운 대학의 문화기획학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1년 정도 다녀보니까 적성에 맞는 거 같지도 않고 시간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 그리고 빨리 돈이나 버는 게 낫겠다 싶어서 회사를 다니기도 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니트 톱, 니트 스커트 모두 코스. 귀걸이 밀튼스텔리.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잊고 살았던 시기인 거 같다.

다 접고 살았다. 그냥 최대한 벌 수 있을 만큼 돈이나 벌자고 생각하면서 뭐가 됐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반듯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기반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무의미하게 겉돌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미래를 생각하며 일할 여지가 없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서울로 올라오게 됐나?

사실 내가 도와야만 했던 집안 사정이 있었는데 다 같이 열심히 산 덕분에 그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이었다. 스물두 살 무렵이었는데 그때 엄마가 “이제 너 하고 싶은 거 해도 될 거 같아. 이제 엄마 안 도와줘도 되니까 지금이라도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서 연기해도 되느냐고 물어봤고,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해서 그 덕분에 올라오게 됐다. 결국 그 말들이 내 인생을 바꿔준 셈이다.

집안에 금전적인 부채가 있었나?

맞다. 사실 부모님이 도와달라고 먼저 요청한 건 아니었는데 첫째라 그런지 집안이 조금만 어려워 보여도 큰 문제처럼 느껴지더라. 그런 책임감 때문에 어떻게든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그리 큰일이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인생이 끝난 것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매달려서 해결해야 할 것처럼 느꼈는지 모르겠다. 어린 나이라 가늠이 안됐던 거 같고. 아무래도 20대 초반에는 어려서 겁도 많이 났던 거 같다.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다.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면 서울로 올라오지도, 배우가 될 수도 없었을지 모르니까.

사실 그 전까지 너무 힘들어서 엄마가 가라고 했을 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안 된다고 하기 전에 가야겠다고, 이때다 하고 후다닥 움직였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그사이>에서 문수가 목욕탕 청소를 하는 신이 있는데, 배우가 정말로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웃음)

얼마 전 조승우 선배님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 “<그사이>를 보니까 네가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목욕탕 청소를 하는데 진짜 그 사람처럼 하고 있더라”라고. 아무래도 아르바이트 경력이 많아서 청소도 많이 해본 덕분인가. 불과 1년 전만 해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문수가 아니라 내 현실을 보여준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지금껏 했던 아르바이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천안에서 산후조리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지하실에 있는 세탁실에서 아기 기저귀와 수건을 빠는데 양이 엄청났다. 정리하고 나면 또 그만큼 나오고. 게다가 건조기에서 꺼내면 바로 개야 하는데, 축축하고 뜨거운 걸 맨손으로 계속 만지니까 손이 다 텄다. 그래서 너무 아프기도 하고, 지하실에 혼자 있다 보니 무섭기도 하고. 물리적인 고통으로만 보자면 그 일이 제일 힘들었다. 서비스직 알바도 많이 했는데, 고객 응대하는 업무를 할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클레임을 거는 고객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실 아르바이트는 다 힘들었던 거 같다. 안 힘든 게 없었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무렵이었을 거다. 원래 어릴 때부터 춤추라고 하면 춤추고, 학교에서도 동아리 활동하면서 축제 때마다 무대에 올라가고, 뭔가 보여주는 건 늘 좋아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연기학원에 다니게 됐는데 남들 앞에서 대사를 읊으며 연기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 화내는 연기를 하는데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다들 집중해서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좋고,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무대 체질인가 보다.

대학 시절에도 ‘논문 쓸래, 발표할래?’ 하면 발표하겠다고 했다.(웃음)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리액션이 크기도 하고, 주목받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연기도 하고 싶었나 보다.

배우가 되고자 서울로 올라온 지 4년 만에 드라마 주연까지 맡았으니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꿈을 이룬 셈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도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늘 무섭다. 지금 이걸 해도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걸까? 늘 겁이 난다. 상황만 바뀔 뿐이지. <그사이>를 할 때도 내가 이걸 해도 되는지 대표님한테 몇 번씩 물어봤다. 감독님에게도 ‘잘하는 거 맞냐’고 계속 물어보고. 불안했다. 좀 더 경험이 많았다면 뭘 잘하고 있는지, 뭘 못하고 있는지 알았을 거 같은데 그걸 잘 모르니까.

경쟁률이 120 대 1에 달하는 오디션을 거쳐 <그사이>에 캐스팅됐다. <라이프>에 출연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때와는 달랐을 거 같다.

이번에는 오디션을 보진 않았고 바로 감독님을 만났다. <그사이>를 보신 작가님이 내가 <라이프>의 이노을과 닮아 보인다며 만나보자고 하셨다더라. 그렇게 만나서 리딩도 해보고, 결국 캐스팅됐다.

<라이프>는 <비밀의 숲> 대본을 쓴 이수연 작가의 신작이다. 국내 최고의 사립대학 병원 의사들과 병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장 측과의 대립과 갈등이 <라이프>의 서사적 줄기라고 들었다.

어쩌면 병원이 배경일 뿐이지 우리가 사는 곳 어디에나 있을 법한 대립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정치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어디에나 대립 관계는 있으니까. 서로 다른 각자의 상황이 있고, 좁혀질 수 없는 관계의 이유도 있는 거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문제도 있고. 다만 그걸 어떻게 눈에 보이게 만드느냐의 문제인데, 작가님이 이번에는 의학과 병원이라는 소재로 그걸 명확하게 만들어낸 거 같다.

대본이 꽤 많이 진전된 상황이라 들었는데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의 감상이 궁금하다.

벌써 14화까지 나왔는데 사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사회적인 관심이 지대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도 많았고. 그런데 실제로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심각성을 받아들이게 됐고, 그러니까 작품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이런 사실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반응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사이>도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고, <강철비> 역시 이념적 대립이 지속되는 한반도의 현실과 밀착된 작품이었다. 어쩌면 배우라는 삶이 원진아라는 개인에게 사회적인 관심을 권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웃음)

나한테 메시지를 주고 있나 보다. 평소에 사회에 관심이 없었지? 이젠 좀 가져라. 그럴 나이도 됐다.(웃음)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우리 삶과 밀접하고 진실된 감정이 전해지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 시나리오나 대본을 보면 출연하고 싶고, 오디션을 보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지금까지 실제 나이와 비슷한 20대 캐릭터를 연기해왔는데 <라이프>의 이노을은 35세로 설정돼 있더라.

그래서 너무 어려 보일까 봐 걱정됐다. 어른인 척하는 게 아니라 어른으로 보여야 하니까. 화장이나 의상과 관련해 많은 논의를 했는데 결국 애초에 갖고 있는 모습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겉으로 아무리 변화를 줘봤자 달라 보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살을 좀 뺐다. 얼굴이 동글동글하면 어려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최대한 마른 얼굴을 만드는 것밖에 답이 없더라. 지금도 살을 빼고 유지하는 중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라 위급한 수술 장면을 촬영할 일은 없었겠지만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처음에는 소아과 의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진짜 소아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참고하기도 했고. 그런데 어린이를 진료하는 소아과 선생님이기 전에 의사라는 집단에 속한 한 사람인 만큼 특별한 차이를 둘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 자체에 집중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의사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신입 의사도 아니고 연령대가 높은 인물이라 이미 다양한 경험을 했을 테니까 큰 사건이 터져도 비교적 담담해도 될 거 같고. 그래서 자문을 받은 의사 선생님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을 최대한 배우고 익히려 했다. 전문성은 그런 데서 느껴지는 법이니까.

이노을은 상반된 신념을 지닌 예진우(이동욱)와 조승우(구승효)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그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노을이라는 사람은 배려심도 많고 남을 잘 이해하는 편이다. 이쪽 말도 맞고 저쪽 말도 맞으니까 중간에서 만나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휩쓸리거나 이편, 저편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니다. 양쪽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그렇지만 오지랖 넓게 나서는 편은 또 아니다. 그 안에 속한 인물이니 나름의 갈등도 있고.

백리스 슬리브리스, 롱스커트 모두 코스. 블랙 스트랩 샌들 스튜어트 와이츠먼.

지금껏 연기해온 캐릭터들과 달리 인생에 큰 부침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의사가 됐고, 여러 사람과 거리낌 없이 잘 지내는 인물이다. 심한 결핍도 없고.

<그사이>의 문수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밝고 건강한 성격을 유지하며 주변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는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이노을과 하문수는 닮아 있으면서도 결국 다른 사람이어야 할 거 같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비슷한데 문수는 다른 사람에게 이입을 잘한다. 그래서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누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노을이는 아니다. 문수는 상대가 울면 따라 울지만 노을이는 같이 우는 게 상처라고 생각할 거 같다. 배려하는 행동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원진아는 하문수에 가까울까, 이노을에 가까울까?

노을이. 내가 울 때 누가 울어주면 같이 지치는 거 같다. 내가 얘까지 힘들게 했나 싶고. 그래서 나도 누가 울 때 달래주는 편은 아니다. 우는 애 달래면 더 운다고, 울고 싶으면 일단 울게 두는 편이다. 빨리 털어내야 마음도 편해지니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느낀 시기가 있을까?

사실 지금도 너무 힘들다. 대선배들 사이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만약 잘 못하고 있다면 어떡할지. 다들 내공이 상당한 분들이라 나만 잘하면 되는 판이구나 싶어서. 선배들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나 될까 걱정되고. 게다가 <비밀의 숲> 애시청자로서 조승우 선배님이랑 유재명 선배님이 앞에 있다는 상상만 해도 긴장된다. 혼자 하는 신을 찍을 때는 마음이 편한데 선배님들과 함께 찍을 때는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런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잘 정도다.

그래도 대단한 선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기분이 들진 않나?

그게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선배님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이 몸에 배어 있어서 똑같이 대사를 한다고 같은 연기가 되는 게 아닌 거다. 그래서 현장에서 스태프와 어떻게 교류하고, 다른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 그런 걸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결국 나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다.

어쨌든 갈망해오던 일을 하게 됐다는 만족감과 그만큼 더 잘하고 싶다는 갈망과 불안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좋은 갈망이고, 불안이지 않을까?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루는 게 아직까지는 좋다. 내가 내 일을 잘하기 위한 걱정을 하는 거니까. 물론 그러면서도 힘든 건 힘든 거지만. 어쨌든 즐기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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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이정훈
사진목정욱
헤어한수화 BY 제니하우스
메이크업도이 BY 제니하우스
스타일링김효성
출처
36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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