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똑같은 권상우 2편

권상우는 거리낌 없었다.

감각적인 문페이즈 디자인에 연도, 월, 요일 모두 확인 가능한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IWC. 터틀넥 톱, 바지 모두 김서룡.

“당연히 중요하죠. 남들의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죠!” 타인의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권상우는 확고했다. “우리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상업 영화를 하는 사람이고 상업 드라마를 하는 사람인데. 당연히 그 숫자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게 다는 아닐지언정. 그래도 80~90%는 되지 않나 해요.” (흥행) 뭐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저의작품성이나 예술 세계 같은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의무감이 없는 것 같고요. 모든 작품은 누군가에 의해 투자가 되고, BEP점(손익분기점, 권상우 본인이 이 약어를 썼다)이 있고, 당연히 BEP를 넘기는 정도로 해야죠. 그건 당연한 거죠.” 이 관점에 대해 더 의견을 붙이기 전에, 그가 ‘배우=예술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다른 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서 물어보았다. 대답은 이번에도 짧고 분명했다. “글쎄, 모르겠어요. 남의 생각은 잘 몰라서. 저는 그래요.”

혹시 슬럼프는 안 올까? 여기서마저 권상우는 확실했다. “자기가 굉장히 좋은 컨디션으로 했어도 그 작품이 사랑을 못 받으면 슬럼프예요. 슬럼프는 대중이 결정해주는 거지 개인이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권상우의 말은 대중 예술과 문화 산업의 핵심을 찌른다고 볼 수도 있다. 많은 창작자가 대중을 무시한 작품을 만들었다 실패한 후 대중을 비난한다. 적어도 권상우는 남 탓은 안 했다. “그렇다고 제가 감정 기복이 심해서 되게 힘들고 막 그런 적은 없거든요.” 그는 어디까지나 심플한 사람이었다. “작품으로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건 내 행보의 결과이기 때문에. 작품이 잘되면 뭐 기분 좋고, 안되면 다운되고.” 

공백기를 안 둔다. 배우는 흥행에 의무가 있다. 슬럼프는 남이 정하는 거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이런 말을 듣다 보니 권상우 같은 삶에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운동 열심히 해서 튼튼한 몸으로 일하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결정과 남의 결정을 비교하지도 않고. 한번 정한 일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안 받고. 건강한 삶 아닌가.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IWC. 슈트 캘빈클라인 205W39NYC by 분더샵맨.

그렇게 권상우는 성공했다. 튼튼한 몸을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 몸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인기가 생겼다. 국제적으로. 재키 찬, 리차드 밀과 함께 파리에서 밥도 먹었다. IWC 같은 명품 시계 브랜드와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의 커버 모델로도 섰다. 권상우는 그 전부터 IWC를 갖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IWC 시계는 막 화려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이 있어요. 회중시계 같은 느낌? 그 느낌 때문에 IWC가 좋았어요. 사실은 제가 처음 산 고급 시계가 IWC였어요.” 

“시도 때도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잖아요.” 성공한 권상우도 시계를 살 때는 고민했다. “굉장히 오래 지켜보고, ‘아’ 하면서 막 봤다가 다시 내려놨다가,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 같기도 하고. 남자들은 티셔츠 하나 잘 못 사잖아요. 똑같아요. ‘아, 아냐, 지금 내가 무슨’ 그런 고민을 하다가 사죠.” 좋은 시계를 사본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그러면서도 왜 우리는 시계를 살까. 권상우는 여기에서 의외의 명답을 들려주었다. “요즘 처음으로 그런 걸 느꼈어요. ‘내가 IWC를 얼마나 갖고 있었지?’라고 생각해보니 10년이 넘은 걸 오늘 깨달은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제게는 새 걸로 느껴지거든요.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요. 아들이 있잖아요, 제가. 그래서 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입은 옷을 줄 수는 없는데 시계는 그게 가능하니까요.”

더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IWC. 스웨터 아크네 스튜디오. 바지 몽클레르.

이날 진행한 영상 촬영 중에는 인터뷰 형식의 영상이 있다. 권상우가 독백을 하는 설정인데 영상 구도상 그의 맞은편에 누군가 마네킹처럼 앉아 있어야 했다. 내가 권상우 맞은편에 앉았다. 권상우가 내 눈을 바라보며 IWC가 준비한 대사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음함께한 것은 10년쯤 되었나? 그런데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어요.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죠. 뭐랄까,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이 더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함께한 세월이 만든 추억도 저한테 의미가 있죠.”

이 말을 듣다 보니 권상우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그는 결국 살아남아 성공했다. 가족이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좋고(큰 건물을 사고 거기에 아들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의 커버 화보도 찍었다. 대중문화계에 저렇게 탄탄하게 나이 드는 사람이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은 일 아닐까? 모든 배우가 예민한 아티스트처럼 산다면 그것도 곤란하다. 비스듬히 누워 TV 채널을 돌리다가, 혹은 연인과 “영화나 보러 갈까?”라고 말하며 극장에 갔다가 권상우 같은 사람이 나왔을 때의 안도감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분과 초 단위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 워치 IWC. 재킷, 조끼 모두 맨온더분. 바지 아크네 스튜디오 by 10 꼬르소 꼬모

순간적인 불꽃같은 아티스트도 위대하지만 꾸준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권상우도 나름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권상우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는 <말죽거리 잔혹사>로 2000년대 초반의 눈금 같은 게 되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자신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권상우와 성동일이 출연한 <탐정: 리턴즈>도 무난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프로 배우 권상우의 프로 정신은 조금 더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그는 이제 성숙해졌다. “빨리 잘 잊혀가는 사람이 되는 것도 제 목표예요. 제가 에너지가 넘쳐서 일할 때는 좋은 배우로 활약하는 게 맞는데, 대중과 서서히 멀어지는 게 제일 좋을 때도 있겠다는 생각을 좀 하죠. 40대가 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제가 연기를 하는 데에서 분명히 전환점이 있겠죠.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 몇 년, 그 이후에 어떻게 탈바꿈해서 다른 캐릭터의 배우로 가느냐, 아니면 거기서 잘 잊히느냐. 그런 생각을 하죠.”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스위트룸은 힐튼 사람들에게도 각별한 객실이다. 대우그룹이 한국 3대 재벌이던 때는 김우중이 애용하던 객실로도 알려져 있다. 남산 중턱에 있는 23층 객실에서는 서울의 곳곳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밤이 되면 더 멋지다. 어둠이 도시의 낡은 지붕을 가리면 그 사이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빛의 띠를 이룬다. 촬영이 끝날 때쯤 비도 그쳤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 서울로 7017이 정맥처럼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혼자 남아 방을 정리하며 권상우의 말을 생각했다. 그도 젊을 때와는 조금 변했다고 했다. 

“더 불같은 성격이었는데, 그게 조금 줄어들긴 했죠. 욱하고, 잘 부딪치고, 어떤 안 좋은 상황이 되면 충돌할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그냥 ‘아우~’ 하고 넘기는 횟수가 많아졌어요. 많이 변한 거죠. 사실은 무일푼으로 배우가 되려고 올라왔다가, 지금은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도 많이 이뤘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죠. 열심히 살았으니까.” 마지막까지 권상우의 등이 생각났다. 아주 성실한 등이었다. 앞뒤로 성실하게 살고, 잡생각 없이 줄곧 노력한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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