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향의 미래

지금 배우 임수향의 아이디는 높은 자존감이다.

핑크 퍼 손정완.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촬영이 그저께 끝났다고 들었어요. 아직도 ‘미래’인 기분인가요?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아요. 미래를 떠나보내는 것이 무척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해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공허해질 것 같아요. ‘미래’라는 역할에 정말 많이 몰입해서,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서 연기했거든요.(웃음)

예전에 경찰을 연기할 때 어느 순간 자신이 길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고요. 미래는 수향 씨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마치 미래처럼 더 소심해지고 남 눈치를 보기 시작했어요.(웃음) 원래 습관처럼 남의 눈치를 살피거든요. 상대방의 기분을 자꾸 파악하려 하고요. 그래서 주변에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 있으면 저도 같이 스트레스받아서 힘들어요. 사실 미래는 원래 제 성격이 가장 많이 반영된 캐릭터예요. 미래처럼 극도로 소심하진 않지만 평소 말투나 제스처 같은 것이 많이 비슷해요.

미래가 말꼬리를 흐리듯 둥글게 발음하는 말투가 귀엽더라고요.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설정한 건 줄 알았어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같은 경우 디테일하게 손동작, 눈빛을 설정하고 계산해서 연기하지 않았어요. 대사를 외우고, 상대방의 연기를 받아서 자유롭게 리액션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감정선에 충실했어요. 웃기면 웃고 눈물이 나면 울고, 그저 미래의 마음을 따라갔죠.

웹툰이 원작인 작품을 드라마로 제작할 때마다 여러 의견이 쏟아지잖아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나요?

원작 웹툰과 미래의 캐릭터를 무척 좋아했어요. 사실 성형 미인이라는 것도 작품 속 설정일 뿐이니까요. 처음에는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니 미래가 너무 잘 받아들여지고, 하고 싶더라고요. 정말 착하고 사랑스럽고, 확실한 성장 포인트가 있는 캐릭터니까요. 그리고 꼭 저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시는 제작진에 믿음이 갔어요.

블랙 점프슈트, 로퍼 모두 앤아더스토리즈.

사실 캐스팅 발표가 났을 때, 성형 미인 미래 역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엄청 쿨하고 멋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저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 모두 예측하면서 결정하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오히려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예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정말 다행이었죠.

그만큼 수향 씨가 캐릭터를 잘 살린 것이 아닐까요? 외모와 자존감, 성형 등을 다 같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드라마라고도 생각해요.

맞아요. 이 작품이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 청춘물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했기 때문에 저도 더 좋았어요. 성형 미인이라는 소재에만 국한되지 않고 주제 의식을 진중하게 다루었어요. 또 여성 시청자분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고요.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는 미래의 소심하고 어두운 면모는 자칫 너무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데 연기의 균형을 잘 잡았다고 느꼈어요.

처음에 밝고 통통 튀는 청춘물이라고 생각하고 대본을 읽었는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방향은 아예 달랐어요. 마냥 발랄한 캠퍼스 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아픔을 가진 캐릭터로 접근하길 원했죠. 그래서 처음 연기할 때는 너무 어렵고 힘들었어요. 미래의 분량이 가장 많은데 드라마 분위기까지 처질까 걱정이 많았죠. 감독님이 항상 과잉되지 않게 연기하라고 해서 믿고 그 방향으로 갔어요. 웹툰에 충실한 만화적 연기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으로요. 그래서 갈수록 미래의 성장과 감정의 변화가 잘 드러났어요. 캠퍼스의 밝음과 메시지의 진중함도 공존할 수 있었고요.

짐작컨대 수향 씨는 만약 성형으로 예뻐졌다면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미래는 전혀 그러지 못하잖아요.

사실 그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예뻐졌는데 스스로 예쁜지 모르는 미래가 사랑스러웠죠. 거울을 보고 예쁘다고 도취되기에는 주변으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주눅 든 아이라 쉽지 않았을 거예요.

화이트 시폰 드레스 YCH.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럼 본인은 ‘아싸’예요? 아님 ‘인싸’예요?

저는 완전 아웃사이더, 아싸예요. 학교 다닐 때도 똑같았어요. 저랑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면 사실 주위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에요. 저는 저한테 관심이 있어요.(웃음) 관심 밖의 일은 잘 모르는 스타일이에요. 만약 누군가 반장 선거 나가라고 하면, 내 일만 잘하면 되지 반장을 왜 하느냐고 되묻는 성격이죠.

인기가 많고,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고, 인맥의 여왕이 되고 싶은 그런 사람은 아니군요.

좋아하는 모임에서는 리더 역할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물 흘러가듯이 있는 게 좋아요. 어렸을 때는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기도 했지만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불필요한 말만 많이 나오고요. 그래서 정말 가까운 사람 몇 명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괜히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불필요한 말을 하고, 질투를 하며 미래를 괴롭히는 ‘한수아’ 같은 사람은 어느 조직에나 있을 수 있어요. 현실의 수향 씨라면 어떻게 대응할까요?

‘저 사람은 정말 힘들게 사는구나’ 무시하고 제 할 일을 찾아 할 것 같아요. 저를 대상으로 한다면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왜 그렇게 구는지 직접 물어볼 거예요. 눈치가 빨라서 바로 느끼거든요. 쉽게 말해 여우 같은 사람과는 둘이서만 얘기하지 말고 증인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억울한 상황을 피하죠. 좀 센 언니 같나요?(웃음)

배우에게 외모라는 것이 자존감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나요?

어마어마하죠. 대부분 주위에서 예쁘다, 잘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고 배우의 길에 들어서는데 세상에, 이 업계는 예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죠. 그러다 나를 나노 단위를 나눠서 보는 제작진, 감독, 연예계 관계자 등을 만나요. 눈, 코, 입은 어떻고 얼굴형은 왜 이렇고, 피부 톤이 아쉽고 이렇게 하나하나 평가당하면 정말 자존감이 땅바닥까지 떨어져요. 분명 그런 시기가 와요. 데뷔 후에 대중과 만날 때도 댓글을 통해 또 흔들리죠. 이때 스스로 지켜낼 수 있어야 해요. 다시 끌어올려야죠. 배우는 특히 자존감이 중요해요. 자꾸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만 자존감을 굳건히 지켜야 더 사랑받을 수 있어요. 멘탈 케어가 꼭 필요한 직업이에요.

퍼프 소매 블라우스 YCH.

데뷔한 지 10년이 되었는데요,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어떻게 극복했어요?

반대로 제가 자신감이 치솟을 때는 저희 대표님이 항상 눌러주셨어요.(웃음) 뜬구름 잡는 식의 칭찬이 아니라 정말 저의 위치, 현실을 정확히 얘기해주셨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을 정도로 좋은 얘기는 일부러 안 하셨어요. 사실 제 주위 친구들, 부모님,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예쁘다’, ‘잘하고 있다’ 좋은 얘기만 하잖아요. 그런 말만 들으면 진짜 잘하는 줄 알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개선해야 할 점도 분명 있고요.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으려 하는군요.

항상 스태프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물어봐요. 단순히 ‘좋다’, ‘예쁘다’ 하는 말은 와닿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싶어 물어보는 게 아니니까요. 어떤 방향으로 하면 더 나아질지 객관적인 평가를 원하는 거죠.

미래가 극 초반에 70점, 80점 하면서 다른 여자들의 외모 점수를 매기잖아요. 구체적인 숫자만 없을 뿐 우리도 은연중에 흔히 하는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예쁘다’, ‘못생겼다’ 말하면서요. 한데 미래도 어느 순간부터 점수 매기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더 이상 하지 않아요. 속만 끓이고 할 말을 못하다가 속 시원하게 하고, 나중에는 ‘얼굴 천재’라 불리는 남자 친구와 공개 연애도 하고요. 미래가 성장하면서 연기하는 저도 조금씩 성장했어요. 저의 자존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기분이에요. 사랑 많이 받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니까 큰 힘이 됐어요.

여전히 본인의 기사에 달린 댓글은 열심히 보나요? 이번 드라마 관련해서 가장 기분 좋았던 댓글은 뭐예요?

너무 많아서 모르겠어요.(웃음) 물론 상처 주는 댓글도 있었어요. 한데 부정적인 댓글에는 감사하게도 팬분들이 열심히 ‘실드’ 쳐주셨어요.

엄청난 자랑인데요. 15회에 방송된 화제의 키스 신 영상에는 ‘임수향 국가 유공자설’이라는 댓글이 있던데요?(웃음)

사람들이 저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냐고 하는데, 이 말을 좋아해야 되나, 싫어해야 되나 싶어요.(웃음) 아니 왜 차은우가 나라를 구했느냐는 사람은 없는 거냐고요. 친구마저 정말 부럽다고 메시지가 왔길래 “차은우는 안 부럽냐?”라고 되물었어요.(웃음) 그제야 “와, 차은우 부럽다”라고 말을 바꾸더라고요. 여자 사람인데, 나랑 뽀뽀하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블랙 원피스 유돈초이. 올리브 그린 벨벳 스트랩 슈즈 렉켄.

수향 씨 SNS를 보니까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배우들의 호흡도 정말 좋아 보였어요.

처음에는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과 나이 차가 있어서 저를 불편하게 여길까 봐 먼저 다가갔어요. 서로 어려워하면 연기할 때 다 티가 나거든요. 상대역인 은우는 열정도 있고 저에게 많이 물어보겠다고 다가와서 나중에 정말 친해졌어요.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앙상블이 깨지지 않고 그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 연기도 튀지 않으려 했어요. 주위 캐릭터가 살 수 있도록 미래가 받쳐주는 거죠.

주연배우다운 멋진 말이었습니다.(웃음) 자신의 출연작을 자주 다시 본다고 들었어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얼마나 꺼내 볼 것 같아요?

엄청 자주 다시 볼 것 같아요. 전 지금도 모든 작품을 다시 꺼내 봐요. 과거와 현재의 연기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요. 제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도 보이고, 잘한 부분은 계속 가져가면 되니까요. <신기생뎐> 끝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도 들어요. 정말 스무 살 때 생각도 나고, 풋풋한 대학 생활을 경험하면서 현장이 정말 설레고 재미있었어요.

보는 사람에게도 설렘을 주었지요. 그럼 지금 수향 씨의 아이디는 무엇인가요?

미리 얘기해주셨으면 재미있는 답변을 생각했을 텐데요.(웃음) 제 SNS 아이디는 ‘Hellopapa11’인데, 다들 이유를 물어봐요. 어릴 때 문득 아빠가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맨날 엄마만 찾고요. 울어도 엄마를 부르며 울고, 영화나 드라마에도 엄마 이야기가 많고요. 아빠는 매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엄마한테 열 번 전화할 때 아빠한테는 한 번 하고요. 반성하는 의미에서 ‘Hellopapa’라고 지었어요. 미니홈피 시절부터 쓴 진짜 제 아이디랍니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