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이다희

이다희는 더 이상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다. 자신을 응시할 뿐이다.

슈트 유돈초이. 스틸레토 힐 스튜어트 와이츠먼.

인터뷰는 오랜만일 거 같다.

아무래도 오래 쉬었으니까.

공백이 길어진 이유가 궁금하다.

마음에 딱 들어오는 작품이 없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져서 선택하기가 점점 어려웠다.

3년 만에 선택한 <추리의 여왕 시즌 2>는 그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나?

일단 재미있게 봤던 시즌 1의 주연배우들과 스태프가 그대로 간다고 하니까 믿음이 갔다. 내가 연기하는 희연이라는 캐릭터도 뚜렷하게 느껴져서 잘 몰입해 연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후반부 상황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지난 시즌의 인기를 생각하면 새롭게 투입되는 입장에서 부담감도 있지 않을까?

시즌 2를 기다리는 팬들 중 새로운 캐릭터를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결국 내가 잘하는 게 중요하다. 내 캐릭터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그건 내가 연기를 잘 못하기 때문일 거다.

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된 일은 없었나?

사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걱정을 돌려서 표현한다고 느꼈다. 기존에 하던 연기를 보면 희연이와 잘 어울릴 거 같지만 한편으론 오래 쉬어서 감을 잃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가 감 떨어졌을까 봐 걱정된다는 말씀이시죠?”라고 물으니 쑥스럽게 웃으셨다. 그래서 믿어달라고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서 시청률이 안 나온 건 없었다고.(웃음) 사실 걱정하는 게 이해된다. 그만큼 현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막상 촬영 첫날에 너무 떨리더라. 그래서 상우 오빠랑 강희 언니한테 3년 만이라 그런지 심장이 너무 쿵쾅거린다고 하니까 자기라도 그럴 거 같다며 마음을 달래주셨다. 그 덕분인지 슛 들어가니까 괜찮아지더라.

셔츠, 스커트 모두 닐 바렛. 스틸레토 힐 스튜어트 와이츠먼.

대화를 나눠보니 솔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사실 작품에서의 이미지 때문인지 만나보기 전엔 말 붙이기 어려운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엄마는 내 연기가 항상 가증스럽다고 한다.(웃음) 사람들이 원래 내 성격을 알아야 된다고. 마음속에 있는 말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견딘다. 그런데 웃으며 얘기할 때와 웃지 않고 얘기할 때 크게 달라 보인다더라. 그래서 늘 밝게 웃으며 얘기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워낙 낯을 가리는 탓에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어색하다. 막상 함께 지내다 보면 잘 지내기도 하지만.

최근에 출연한 <아는 형님>이나 <런닝맨>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굉장히 적극적인 성격으로 보이기도 하던데.

주어진 건 최선을 다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물론 처음에는 언제나 어색하지만. 데뷔 초기에 예능에 출연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호동 오빠나 재석 오빠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 그 당시 슈퍼모델이 된 직후에 처음 출연했던지라 너무 어리기도 했고 쑥스러움도 많았다. 여전히 그런 면이 있지만 그때보단 여유가 생긴 거 같고.

좀 더 프로가 됐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나이를 먹은 거지.(웃음)

나이를 먹는 건 어떤가?

배우로서는 좋다. 어릴 땐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게 되니까. 옛날에는 생각 없이 대사만 쳤다면 지금은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며 연기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연기가 좀 더 재미있어졌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슈퍼모델이 된 이후에 갖게 된 걸까?

원래 배우가 꿈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반대했다. 다만 스스로 뭔가를 증명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셨지. 그런 큰 대회에 참여해 뭔가를 해내면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혼자 원서 쓰고, 대회에 나가서 본선 진출이 결정된 뒤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본선 붙었다고. 실제로 슈퍼모델로 무대에 선 건 몇 번 안 된다.

왜 배우가 되고 싶었을까?

강희 언니가 출연한 <청소년드라마 나>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 작품 때문에 방송반에도 들어갔다. 그 이후로 장래 희망란에 언제나 ‘배우’를 적었을 거다. 단 한 번도 다른 직업을 써본 적 없다. 친구들과 콩트를 짜서 연기하고, 학예회에 나가기도 했다.

결국 꿈을 이룬 셈인데, 벌써 배우로 활동한 지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부침도 있었을 텐데.

한때는 역량에 비해 욕심만 많았다. 소위 잘나가는 배우들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하나 좌절하고 힘들어한 적도 있다. ‘왜 쟤가 저걸 하고 있어?’란 식으로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고. 그런데 나이가 들어 20대 후반쯤 되니, 그런 생각을 한다 해서 내가 잘되는 게 아니라는 걸, 문제는 내게 있다는 걸 알았다. <폭풍 속으로>나 <슬픈 연가> 같은 작품에서의 내 모습을 보면 연기를 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런 나 자신은 보지 않고 위만 올려다봤던 거지. 그걸 깨닫고 나니 여유가 생기더라. 결국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내가 열심히 해야 했던 거지.

그 뒤로 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출연한 이후부터 연기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덕분에 욕심도 생겼고. 큐 사인이 나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느낌이라 배우로서 성숙해진 기분도 들었다.

원 숄더 톱, 스커트 모두 준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출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에도 2년 동안의 공백이 있었는데.

미팅도, 오디션도 많이 봤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키가 너무 커서인지, 연기적인 문제가 있어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결국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제 작품에 들어갈지 모르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몸 관리를 했다. 그러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제작진과 미팅할 기회가 생겨서 꼭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때는 정말 절실했으니까. 그 덕인지 캐스팅됐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감독님 시선이 왠지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져 조금 힘들었다. 그런데 연기를 보신 뒤로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고, 그때 알았다. 결국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걸. 그런 과정을 지나오니 기회가 왔을 때 좀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서도연과 <미세스 캅>의 민도영을 비롯해 도회적이고 이지적인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추리의 여왕 시즌 2> 팀이 회식을 했는데 감독님이 <런닝맨>을 보고 너무 의외의 모습이라 놀랐다고 하더라. 꼭 한 번씩 그런 얘기를 듣는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어색하다. 누구보다 내 모습을 잘 아니까.

괜히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도 있었을 거 같다.

사실 키가 큰 게 싫었다. 키가 크다는 것이 어떤 선입견을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키가 조금 작았다면 내면이 좀 더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나?

내가 하고 싶은 역할과 남들이 내게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역할이 다르다. 내 성격과 어울리는 밝은 역할을 하고 싶은데 자꾸 차갑고 도도하고 전문적인 도시 여성 역을 제안받게 돼서 속상할 때가 있었다. 물론 역할을 맡으면 최선을 다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도 생기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역할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그러면 이 캐릭터에서만큼은 내가 최고로 느껴지게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밝은 역할을 맡고 싶은 건 스스로가 밝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맞다. 그래서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엉뚱하게 일이나 저지르고 다니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메이크업도 별로 안 하고, 편한 옷 입고 다니고.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 넘버21. 스틸레토 힐 스튜어트 와이츠먼. 시계 로즈몽.

어쨌든 3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니 의욕이 상당할 거 같은데.

너무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과열돼서 망칠까 봐 하던 대로 하자고 생각한다.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관대한 편은 아니라서.

스스로에게 가혹한 편인가?

엄마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너한테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라고. 데뷔 초기에 나름 좋은 배우들과 대작 드라마에 출연했던 걸 보면 기회가 빨리 왔는데 네가 못 잡은 거라고.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그런 작품 하나 못 만나는 배우도 많을 텐데 내게는 그런 기회가 비교적 일찍 왔던 거지. 그럼에도 그 기회를 못 잡은 거다. 결국 내가 준비가 돼 있어야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거다.

결국 어머니가 가혹한 사람이었던 건데.(웃음)

그런 부분에 대해 되게 냉정하다. 상대 배우와 연기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을 때 작품을 보며 그걸 귀신같이 알아낸다. 나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주로 집에 있는 편이라 했는데 쉬는 동안에도 집에 있는 날이 많았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언니가 결혼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족과 함께 꼭 외식을 한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가족으로부터 얻는 행복이 커 보인다.

친한 친구라 해도 결국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항상 내 옆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가장 친한 친구가 가족이라면 정말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항상 옆에서 큰 힘이 돼주는 존재와 함께 있는 거니까. 실제로 내 속마음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까?

그런데 결혼하면 오히려 가족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니까, 이런 걱정이 있다. 엄마와 떨어져서 어떻게 살지? 그래서 동생한테도 장가 갈 거냐고 물어보곤 한다.(웃음)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게 결혼의 첫 번째 조건일 거 같다.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로서의 욕심이 연애나 결혼에 대한 관심보다 앞서는 시기일 거 같다.

만약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서 좋은 감정이 생기면 당당하게 연애할 수 있다. 그러다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할 수도 있고. 그런데 결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날 생각은 없다. 배우로서 뭔가를 더 이루기 위해서 제쳐두고 싶다는 말도 아니다. 연애든 결혼이든 억지로 찾아가면서 하고 싶진 않다는 의미다. 그러다 노처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웃음)

가장 좋아하거나 인상적으로 본 영화나 캐릭터가 있다면?

<번지점프를 하다>가 기억에 남는다. 이은주 씨 역할이 항상 아프게 다가온다. 인생에서 한 번쯤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고등학생 때 봤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느껴지는 캐릭터로 남고 싶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맞다. 누군가 제일 애착이 간다고 얘기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 그렇게 나를 생각해줄 수 있는.

배우 외에 다른 인생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

다른 일을 하는 걸 생각해본 적은 없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거나 그런 특수한 경우를 빼면 연기를 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최소한 나를 찾는 사람이 있고, 기회가 계속 온다면 말이다. 내가 먼저 이 일을 놓고 싶진 않다.

혹시 롤모델로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

롤모델은 없지만 최근에 <흑기사>에 나오는 장미희 선생님을 보고 언젠가 내가 중견 배우로 활동할 때 저런 모습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소화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싶더라.

배우로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영화. 꼭 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기회가 안 생기더라. 그래서 신인의 마음으로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3년 정도 쉬었으니 3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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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이 정훈
사진KIM HYUK
헤어현석
메이크업문 지혜
스타일링윤 은영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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