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괴물 톰 하디 ‘베놈’으로 컴백

런던의 변두리에서 자라나 할리우드를 집어삼킨 섹시한 괴물 톰 하디.

네이비, 레드, 화이트 코튼 트랙 톱 1260파운드 구찌.

6월, 톰 하디와 런던 남서부에서 만났다. 펫츠앳홈 리치먼드점에서 그는 둥근 어항 뚜껑을 내 치마 속에 숨기고 매장을 나서자고 날 꼬드겼다. 우리는 “3개월 된 임신부로 보일 거예요”, “아무도 내가 뭘 훔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은 당신만 쳐다볼 테니까요”라는 이야기로 승강이를 벌였다. 2002년에 절도죄로 체포된 위노나 라이더가 떠올랐다.

“확실하게 해두죠. 물건을 훔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하고는 “어서 병원에 갑시다!” 하고 연기를 시작했다. 90%, 그때까지는 그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다. 75%, 그의 되도 않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설득의 기술을 발휘했다. 일명 그가 말하는 ‘사기의 기술’.

그곳에는 우리 말고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여성 한 명뿐이었다. 그녀가 경찰에 신고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치마 폭이 꽤 넉넉해서 어렵지 않게 어항 뚜껑을 숨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몇 초가 지나자 75%의 확신이 60%에 가깝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블랙, 화이트 코튼 티셔츠 185파운드 마크 자크 버튼. 네이비 폴리 코튼 컴뱃 바지 180파운드 크라이 프리시전. 레드, 실버, 레더 트레이너 165파운드 뉴발란스.

이런 대화를 나누기 전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애완용품 소매점 펫츠앳홈에 있다. 하디는 2년 6개월 된 자신의 아이에게 캡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방패를 만들어주기 위해 둥근 모형의 물체를 찾고 있었다(하디는 아이의 이름과 성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재료로 후보에 올린 건 쓰레기통 뚜껑, 애완견용 프리스비, 두꺼운 종이로 만든 고양이용 스크래치 매트 정도다.  지금은 어항 뚜껑 생각뿐이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두꺼운 접착용 테이프를 타월에 감싸고 몰래 가져갈 수도 있어요” 하고는 제품의 금액을 확인했다. “뭐? 이게 135파운드라고? 관두죠!” 대신 어항에 넣을 물고기를 사는 건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 “좋아요. 그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늘어나겠네요”라고 말하며 그가 구입한 건 5파운드짜리 고양이용 스크래치 매트였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런던 남서부에 있다. 그가 샬럿 라일리와 두 살배기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곳. 그는 전형적인 톰 하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두 편을 연달아 찍고 이제 막 이곳으로 돌아왔다.

연말에 개봉 예정인 영화 <폰조>는 악명 높은 시카고 갱단의 두목 알폰소 카포네가 죽기 전 마지막 이야기를 그린 범죄 영화로, 조시 트랭크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하디는 매독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게 된 알폰소 카포네를 연기했다.

두 번째 작품은 영화 <베놈>. 소니 픽처스가 마블에 대항해 내놓은 영화다. 하디는 외계 생물체에 빠진 저널리스트 에디 브록 역할이었다. 외계 생물체가 사람을 먹어치우는데, 숙주인 저널리스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트랙 톱 1260파운드 구찌.

이 두 작품은 전형적인 톰 하디 표 영화다. 하디가 원하는 캐릭터이면서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 마초 냄새 풍기는 터프 가이이거나 공부가 필요한 기묘한 캐릭터. 예를 들어 크레이 쌍둥이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가 1인 2역으로 열연한 영화 <레전드>, 음험한 모피 사냥꾼 존 피츠 제럴드를 연기한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그리고 대자본이 투입된 워너 브러더스의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맥스 로켓탄스키, <덩케르크>의 파리어  등이 같은 맥락의 역할이다.

집에 돌아온 하디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근처에는 전부인 사라 워드 사이에서 난 10살 된 아들 루이스도 산다고 했다. 촬영을 위해 협찬받은 빨간색 아우디 왜건을 타고 펫츠앳홈으로 가는 길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요즘 그레이비소스, 초콜릿, 콧물에 뒤덮여 살아요.”

최근 이틀을 아이의 배변 훈련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아이가 거실 카펫에 싼 대변을 확인한 후 굉장히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여줬다. 하디는 이 참사를 두고 매일 아침에 느끼는 극한의 공포라 했다.

“기어를 한 단 내렸어요.” 작품 활동으로 바쁘게 달려온 그가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여유를 찾았다는 이야기다. “사실은 전보다 기어를 다섯 단계 내렸고, 다시 다섯 단계를 힘껏 높인 참이에요. 차가 두 대 있는데 주차 공간은 하나뿐이죠. 완전히 다른 자동차 두 대는 모두 운전대를 잡을 사람이 필요해요. 아, 무슨 이야기냐고요? 자동차 한 대는 직업인으로서의 역할, 또 다른 한 대는 아빠로서의 역할을 말한 건데비유가 형편없죠?”

“내가 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부모 역할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은 없을 거예요. 군인, 경찰, 의사, 공무원그들을 한번 생각해봐요.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죠. 하지만 부모라는 직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흥분한 듯 말하고는 이내 크게 웃었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 방패다. “아빠가 만들었다고 보여주는 거죠. 비록 3분 동안 갖고 놀고 말 물건이지만어쨌든 그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한 거예요.” 요즘 하디가 좋아하는 게 아빠 역할 수행이다.

펫츠앳홈에서 구입한 고양이용 스크래치 패드를 팔에 끼고 옆에 있는 홈베이스 매장으로 갔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그가 편히 전자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는 작품 속에서 늘 그렇게 연기를 내뿜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의 모습이 <루이스 캐럴>에 나오는 애벌레같이 우스꽝스럽다.

네이비, 레드, 화이트 코튼 트랙 톱 1260파운드 구찌. 네이비, 레드, 화이트 코튼 트랙 팬츠 870파운드 구찌. 레드, 실버 트레이너 165파운드 뉴발란스.

갈색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회색 트랙 팬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쓰고, 모자 챙 위에 선글라스를 걸치고 있었다. 입고 있는 회색 티셔츠는 팬이 만들어준 거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작년에 하늘 나라로 간 그의 애완견 우디가 프린팅돼 있었다. 하디는 우디가 그립다고 했다.

주차장 주변에 돌덩어리가 한 무더기 있다고 그에게 말하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똥덩어리? 그건 누굴 부를 때 쓰는 말인데” 하고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큰 소리로 웃는다. 그의 웃음소리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 <베스트 키드>에서 학다리킥으로 명치를 맞은 후에 터진 쌕쌕거리는 고음의 웃음이고, 두 번째는 목이 쉰 듯이 ‘허허!’ 하는 웃음이다. 영국 드라마 <이스트엔더스>에서 팻 버처가 터뜨렸을 법한 웃음. 이번 웃음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여기가 제가 자란 곳이에요.” 리치먼드에서부터 이스트신을 가리켰다. 리치먼드는 부유한 지역, 반면 이스트신은 교외에 자리한 평범한 동네다. 그의 부모는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난 모트 레이크 출신이에요. 시체의 호수라 불리는 오래된 흑사병 구덩이가 있는 곳이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에 묻혔느냐고 물으니 그는 모르겠다고 답하고는 “흑사병 구덩이에 몇 명이나 들어가죠?”라고 되묻는 괴짜다.

하디는 1977년 9월 15일 광고 회사 임원인 에드워드 칩스 하디와 예술가인 앤 하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런던 남부 순환로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차를 몰고 그곳을 지나칠 때 그는 어머니 집에 들를 것처럼 장난쳤다. 하지만 내가 저널리스트라고 하면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거라고 했다. “사실 우리 엄마는 굉장히 유쾌한 분이에요.”

그는 인근의 유치원에 다녔다고 했다. “제일 싫어하는 곳이에요. 짧은 반바지에 에어텍스 셔츠와 버클공부는 지지리도 못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를 묻는다면 절대 아니죠.” 그의 부모는 명문 중학교에 그의 입학 지원서를 넣었는데 시험은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면접관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들은 이런 식이었죠. ‘정신 나간 아이 같아. 얘랑은 대화가 안 통해.’ 난 그때 그들이 말한 것, 그러니까 정신이 나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어떻게 고작 11살짜리 아이를 보고 그 아이의 장래를 100% 확신할 수 있는 거죠?”

그는 사람들이 소위 ‘양아치’라고 부르는 집단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 무리에서 ‘족제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거리를 배회하는 멍청이들 중 하나였어요.” 

동네 펍을 얼쩡거렸고, 모트레이크 역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등 전형적인 불량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때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하디의 부모는 그가 중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전에 자퇴시켰다. 재미있게도 언제가부터 그 학교는 자교 출신의 유명 인사 명단에 테니스 선수인 팀 헨먼, 유엔 인권 최고대표인 자이드 빈 라드 알후세인과 함께 하디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올려놨다.

브라운 체크 모조 양모 칼라 코트 3550파운드 구찌. 블랙 데님 진 140파운드 허드슨. 화이트 레더 트레이너 80파운드뉴 발란스.

하디는 15살 때 임상 진단을 받은 이야기도 터놓았다. “‘반사회적 경향이 있는 가벼운 정신병, 정신분열 증상이 있음.’ 이게 의사의 소견이었어요.” 하디는 전자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황당하죠. 15살짜리 아이에겐 충격적인 꼬리표였어요. 그래요, 대마초를 피우기도  했고, 반사회적 행동이라 하는 행위도 했어요. 고통 받고 있었을 때라 나를 재단한다고 생각해 주치의 앞에서 도움을 요청하듯 꺽꺽 소리 내 울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때 그런 일로 내 인생이 엉망진창이 된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냐고요?”

해결책은 드라마 스쿨이었다. 처음에는 리치먼드에 있는 곳을 다녔고, 2001년에 방영한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캐스팅될 즈음에는 드라마 센터 런던에 재학 중이었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했어도 그의 방어 기제는 계속됐고 음주는 물론, 더 강한 약물 섭취 그리고 위법 행위가 이어졌다. 결국 2003년에 약물 중독 치료에 들어갔다.

우리는 지금 홈베이스의 샤워기 노즐 진열대 옆에 서 있다. “톰, 뜨거우니까 불에 손을 넣으면 안 돼!” 하디가 역할극을 시작했다. “난 불에 손을 덴 적 있는 꼬마예요. 한 번 데어봤으니까 얼마나 뜨거운지 알죠. 으아악, 난 새끼손가락이 없어요.”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칼을 갖고 장난치지 마세요. 내가 바로 그러다 상처를 입은 실수의 산증인이니까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자, 이제 문고리를 보러 갈까요?” 하고는 자리를 옮겼다. “영화 <베놈>에서 맡은 캐릭터는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과 비슷해요. 나는 내 경험을 통해 그들의 심리 상태와 행동  특징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기했어요.”

그는 아기 주먹만 한 C자 모양의 플라스틱 고리를 찾았다. 이게 손잡이로 제격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나가는 점원에게 접착용 테이프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페인트 코너 첫 번째 복도에 있을 거예요.” 점원의 표정을 보니 묻는 이가 누군지 아는 눈치다. “어디에 사용하게요?” “여기에 붙이려고요.” 그는 고리를 흔들었다. “빨리 마르는 페인트도 있나요?” 하디가 계속해서 물었다. “네. 전부 페인트 코너에 있어요. 물건 위치가 계속 바뀌긴 하지만요.” 마치 하디가 이틀에 한 번꼴로 이곳에 오는 것처럼 답했다. 물론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접착용 테이프를 찾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다. 사실 우리는 강변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갑자기 계획이 변경됐다. 카페에서 그를 봤을 때 근육질의 남자와 키가 큰 여자와 대화하는 중이었다. 얼핏 듣기로 여자는 하디에게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샬럿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러곤 스마트폰으로 하디와 사진을 찍었다. 그들과 헤어지자마자 다가온 하디는 “우리 여기서 빨리 나가요”라며 문밖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차로 5분 걸리는 이스트신에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요리를 먹는 동안 방패를 만들 수 있죠.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요? 모차렐라 샐러드 어때요? 아보카도와 베이컨 수란을 곁들여서요.”

이스트신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하디는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메뉴를 이것저것 주문했다. “아보카도, 버펄로 모차렐라, 수란, 발사믹 식초를 곁들여서요. 여기에 오렌지 주스와 에스프레소 더블도요.” 예리한 사람이라면 베이컨이 빠진 걸 눈치챘을 거다. 그는 지난 1월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난 동물 애호가예요. 그래서 이제부터 육식을 하지 않으려고요. 육식은 지구에도 해를 끼쳐요.” 그런 다음 재빨리 길 건너에 있는 문구점에 가서 금박 종이와 가위, 스프레이 접착제, 그리고 나의 둘째 딸에게 줄 유니콘 오려 붙이기 세트도 함께 구입해 왔다. 사실 하디와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에스콰이어> 인터뷰로 캐나다 캘거리에서 영화 <레버넌트>를 촬영 중인 그를 처음 만났고, 인터뷰 장소에서 도자기 공예를 하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하디는 더트 바이크를 타고 사막을 누볐다. 그의 고향 런던 남서부에서도 바이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하다.

하디가 문구점에 간 사이, 매장 뒤쪽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할 것 같아 그가 사람들 눈에 덜 띄도록 입구를 등지고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비워뒀다. 그런데 정작 돌아온 그는 매장에 누가 들어오는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수국이 담긴 꽃병 뒤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이곳이 이스트신이라는 것만 빼면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 마지막 회에서 저녁을 먹는 토니 소프라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그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분명한 건 하디가 평범한 삶을 사는 게 어렵다는 거다.  사람들은 유명인을 절대로 평범하게 대하지 않는다. 홈베이스의 점원이 보인 지나친 친절함도 그렇다. 카페의 웨이터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웨이터는 하디가 문구점에서 돌아오지 않자 커피가 식었다며 기어이 새로 갖다 주겠다고 지나친 친절을 표했다. “에스프레소는 30초가 넘도록 두면 안 되거든요”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원래 만나기로 했던 강변의 카페에서 나와 하디의 차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나일강으로 미끄러지는 악어 떼처럼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하디는 익숙한 듯 낯선 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의 카메라에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캐나다 교외의 쇼핑몰에서 그와 처음 인터뷰했을 때 그는 배역 때문에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고작 몇 명만이 그를 알아봤으니까.

소호에서 그를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제작한 BBC의 시대극 <타부>의 에피소드를 편집하는 중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전문가적 자부심에 취해 있다. 세 번째 만남인 오늘은 그러고 보니 금요일 오후이고, 런던의 공공장소다. 

“이해해요. 그들이 마주한 나는 거리를 활보하는 기린을 목격하는 셈이죠.” 하디는 점심을 먹으면서, 고양이용 스크래치 매트에 흰색 플라스틱 고리를 접착용 테이프로 붙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어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무작정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요. 이해하는 것과 경계심을 갖는 건 사실 한 끗 차이 같아요. 나를 두고 무얼 해도 괜찮은데 내 아이한테만큼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내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할 때 굉장히 화가 나요. 그때는 나도 다른 아빠들처럼 대처하죠. 내가 누구건, 그들이 누구건 간에 말이에요.”

할리우드의 어느 배우들이 그러는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차단된 집에 가족을 격리시키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서레이힐 정도에.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요. 그러면 내 아이는 현실이 아닌 환상 속에 살게 될 테니까요.”

그가 참여한 영화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10월 소니 픽처스가 10년에 걸쳐 제작한 영화 <베놈>이 개봉한다. 마블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베놈은 스파이더맨의 대표적인 숙적 중 하나다. 베놈은 ‘심비오트’(이하 ‘심비’)라는 외계 생명체로, 인간 숙주와 합체하기 전에는 미끌거리는 검은색 유체 상태로, 이번 영화의 인간 숙주는 에디 브록(이하 ‘에디’)이다. 그는 기삿거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규칙을 어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터사이클족 저널리스트다. 사악한 외계 생명체 심비에게 삼켜진 에디는 종유석같이 길고 뾰족한 이빨과 고양이 꼬리처럼 긴 혀를 지닌 검은색 괴물로 변한다. 괴물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에디는 그를 통제하지 못한다.

“<베놈>은 촬영 내내 흥미진진했어요. 에디의 몸에서 심비가 기생해 태어난 존재가 베놈이잖아요. 서로 완전히 다른 인격체 두 개가 한 사람의 몸에서 활동하는 콤비가 되는 일이고. 그리고 주인공에게는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있어요. 우주에서 온 강력한 외계 생물체는 그런 걸 모르죠. 둘은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하기에 손발을 맞춰요. 에디는 자신의 몸에 공짜로 세 들어 사는 괴물을 지니게 됐는데 그 모습이 미친 사람과 비슷할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의 행동과 비슷하죠. 중독에 관한 정신 질환을 겪어봤잖아요. 그래서 아주 잘 알게 되었어요. 그때 느낀 경험을 이번에 제대로 써먹었어요.”

하디는 이번 작품에서 에디와 심비의 목소리를 모두 연기했다. “에디는 우디 앨런과 코너 맥그리거를 뒤섞은 존재로 생각했어요. 신경증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거죠.” 외계 생물인 심비의 목소리를 연기할 때 그는 1990년대의 래퍼 중 멋진 목소리를 지닌 레드맨, 메소드맨 그리고 제임스 브라운을 흉내 냈다고 했다. “내 노력과는 달리 목소리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소니에서 그가 만든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 몸속에 있는 외계 생물이 바깥세상에 보이지 않을 때도 에디는 그와 씨름한다. 하디의 말에 따르면 “내부 정책을 끊임없이 협상하는 중이지만 누구도 이런 상황을 알 수 없어요. 결국 그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에 불과하죠.”

내가 간혹 제 3의 인물이 되곤 해요. 여러 캐릭터가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는 그들이 운전석에  앉는 것을 허락하죠. 결국은 모두 다 나이니까요.

그에게 익숙한 역할일 수 있다. “<레전드>에서 놓쳤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어 좋았어요. <레전드>에서는 혼자서 쌍둥이를 연기했는데, 쌍둥이는 별개의 인격이니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할 수는 없었거든요.” <레전드>에서 그는 대역과 CG 작업으로 로니와 레지 크레이 1인 2역을 연기했다. 2013년 작 영화 <로크>(에서 하디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과 스피커폰으로 대화하는 장면만 나온다.)와 <타부>의 각본을 공동 집필했던 스티븐 나이트가 이번에도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참고로 그는 BBC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의 각본도 맡았는데 그중 세 편에서 하디는 유대인 갱단의 두목인 알피 솔로몬스를 연기했다. 

영화 <폰조>도 마찬가지다. 그가 스마트폰으로 보여준 영상에 따르면 하디의 말마따나 카포네의 정신 상태가 따뜻한 물에 넣은 각설탕처럼 분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환각이 찾아오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포함된 것 같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폰조> 감독 조시 트랭크와 공들이고 있는 모션 캡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바다에 관한 오래된 책이자 고전인 <오디세우스>, 여기서 그는 8명의 주요 인물을 모두 연기할 예정이다.)

하디는 이런 역할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그의 남다른 사고 회로와 유사해서일 거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면 하디의 내부에서는 그와 또 다른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분열하는 것 같다.

“내가 간혹 제3의 인물이 되곤 해요. 여러 캐릭터가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는 그들이 운전석에 앉는 것을 허락하죠. 결국은 모두 다 나이니까요.” 

모든 면에서 하디의 터무니없는 모습이 드러난다. 물론 그에게도 중심이 되는 자아가 있다.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 스튜디오 임원 등 그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의 자아를 크게 바꿔놨다. 또는 박스 오피스 순위도 될 수 있다. 그건 하디의 직업에서 큰 장점일 수도 있다. 반면, 하디 또한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얼마나 이상한지 알고 있는 듯했다.

하디는 책에 실릴 화보 사진을 직접 골랐다. 자신의 두카티에 올라탄 사진(거기서도 짐머 보조기에 의지한 늙은 여성이 자기 뒤를 지나가는 버전을 골랐다), 조폭처럼 빡빡 민 머리에 트랙 슈트를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때도 손에 쥔 줄의 끝에 있는 개는 그의 애완견 ‘블루’였다). “사람들은 블루를 프렌치 불테리어라고 생각하지만, 같이 지내보니 리투아니안 불테리어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죠? 잡종이라고요. 더치 마운틴 도그!”

올해 영국 여왕의 생일을 맞아 3등급인 대영제국 사령관 훈장(CBE)을 수여받은 일에 대해 “얼마나 영광인지 몰라요!” 하다가 ‘누나’라고 부르는 로드 매니저인 나탈리가 훈장 수여를 거절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안 돼~ 훈장을 받고 싶다고!’ 소리쳤어요. 그런데 영국 아카데미상 수상을 두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왕실 결혼식에 참석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해리와는 아우디가 주최한 폴로 경기에서 만났다. 하디는 폴로를 하지 않지만 잘 안다고 했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폰조> 촬영을 제때 끝내려고 무리했어요. 그러곤 곧장 뉴올리언스에서 비행기로 윈저로 갔죠. 그래서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고, 지금도 너무 피곤해요. ”

카페 안이 후텁지근해 선풍기를 우리 테이블 쪽으로 돌렸다. 그가 자르고 있던 금박 종이가 바람에 날아갈까 봐 양해를 구하면서  ‘작품’이라 칭하자 포복절도했다. “허허! 작품이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죠. 특히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요. 허허!” 

그래서 그는 ‘똥덩어리’에 웃음이 터졌을 거다. 그래서 홈베이스에 가고 싶어 했던 걸 거고. 이런 만남은 여느 배우들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럭셔리한 호텔 클라리지스에서 커튼이나 침구를 두고 이야기 소재를 찾으려 한다. 하디가 선택한 쪽이 훨씬 인간적이다. 대걸레와 화분, 주방용 강력 흡수 스펀지 사이에서 논하는기린과 연예계의 삶이라니, 어찌 재미있지 않을까.

히어로 역할을 맡는 게 마냥 좋아 보이진 않는다. “<베놈>을 찍는 네 달 동안 엄청 두들겨 맞았어요.” 찢어진 그의 무릎 반월판을 보고 흠칫 놀랐는데, 그는 치료할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40살이 되자 더 센 액션 히어로가 됐어요. 하지만 내 몸은 완전히 망가진걸요. 왜 10년 전에는 이런 역할을 주지 않았던 거지?”

하디도 안다. 당시에는 스스로도  준비가 안 됐고, 사람들도 그걸 알았을 거라는 걸. “미국인들은 <브론슨>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죠. ‘오, 제대로 걷어차네? 난폭한 친구구만? 그러니 자네여야 해!’ 내 몸이 워낙 남자다웠으니, 내가난폭하지 않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강한 척했을 뿐이지 난 매우 예민하고, 연약해요. 사람들에게 나의 불안정함을 설명했죠. 성질머리가 더럽다는 것도”

정신적으로는 단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무릎은 맛이 갔고, 심적으로 초조하고 그리고 흰머리는 자꾸 늘어가고엉뚱한 곳에 코를 들이밀고, 엉뚱한 사람들과 멱살을 움켜잡고, 고생이든 뭐든 하면서 온몸에 여러 상처가 생겼죠. 이제 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알아요. 누군가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온다면 같이 해결책을 찾거나 무엇을 만드는 걸 도울 수 있어요.  더 이상 예전의 불량스러운 내가 아니에요.”

열대어를 구입하진 않았지만 책임져야 할 일은 산더미다. 당장 올해 연말까지 영화 <베놈>과 <폰조> 홍보 일정이 잡혀 있다. 그다음에도 영화 <매드맥스> 속편, 미국 드라마 <타부>의 두 번째 시즌 등 여러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타부>의 몇몇 에피소드에서 감독을 맡게 될 것 같아요.” BBC에서 방영될 <크리스마스캐럴>은 스티븐 나이트가 각본을 맡는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제작자 딘 베이커와 함께 운영하는 ‘하디 선 앤 베이커’를 통해 준비하는 다른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넘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베놈> 시리즈가 더 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스튜디오들은  늘 종신 계약을 맺으려 하죠. 하지만 그건 작품의 성공 여부에 달린걸요. 물론 나와 그들은 모두 승산 없는 일은 하지 않지만요.”


당장 그는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완성해야 한다. 접착제가 발린 플라스틱으로 겉면을 덮었다. 방패는 꽤 그럴싸했다.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며칠 뒤 그는 파란색 털모자에 흰색 천으로 된 알파벳 A(캡틴 아메리카 로고)를 붙여 직접 만든 듯한 캡틴 아메리카 마스크 사진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왔다. 그가 직접 착용한 사진이었고 눈이 보이지 않는 마스크였다.(눈 부분을 만들지 못한 게 분명하다.)

카페에서 나와 하디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자신의 어머니의 집을 지나칠 때, 로드 매니저 나탈리의 차가 진입로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린애처럼 몸을 숙였다. 도중에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하디가 영화 <레버넌트>를 촬영할 때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의 유품인 반지를 늘 엄지손가락에 끼고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어릴 적에 알았던 그라피티 예술가도 추억했다. 이제는 쉽게 할 수 없는 여행이 됐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은 듯 천천히 역의 이름을 읊었다. “리치먼드, 터넘 그린, 해머스미스, 배런스 코트 역모두 디스트릭트 라인에 있어요.”

“너무 두서없이 말한 거 같은데 기사에 쓸 만한 게 있어요?” 이제야 걱정이 됐나보다. 그래도 우리는 네 시간을 이야기했으니 무언가를 써보겠다고 했다.

열차가 모트레이크 역을 떠나자마자 하디에게 메시지가 왔다. “앤디 & 디 오드 삭스를 기사에 넣는다면 당신의 능력을 인정할게요.” 내가 그 말에 따를 거라고 60~75% 확신한다. 영화 <베놈>은 10월 3일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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