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해제 이준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의류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사님 느낌 좀 나는데요?

아, 겸손하게 갈게요.

직함이 되게 거창하던데.

JYP 대외협력홍보이사라고, 말만 이사예요.

<기름진 멜로>에서 중식 셰프였어요. 이제 중식은 질렸죠?

반대로 ‘이렇게 맛있구나’ 눈을 떴죠. 그런데 요리는 다시는 안 하고 싶어요.

원래 요리에 관심이 있었어요?

전혀요. 음식도 배달 음식만 먹었어요. 중식집을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방송 들어가기 전 한 달 내내 웍질, 칼질 배우고, 또 양파 냄새가 손에 배어서 안 빠지더라고요. 고양이들도 곁에 오지 않더라니까요. ‘대체 여기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었는데 많은 것을 배웠어요.

음식점 가면 어른들이 많이 알아보지 않아요?

<김과장> 때부터 그랬어요. 자주 가던 음식점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갔더니 여긴 웬일이냐고 하더라고요. 드라마를 통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은 더 살갑게 대해주시는 느낌이에요. 서비스도 챙겨주시고.

슈즈 반스. 의류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물이 말쑥해서 조금 놀랐어요.

2012년부터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애크러배틱 하다가 어깨를 다쳐서 수술하고 그때부터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무언가 해보자는 마음이 그 시작이었어요. 아, 캐리비안베이 광고 찍을 때였다. 한창 육체미, 짐승돌

아, 짐승돌너무 까마득하다. 짐승이란 말도.

맨날 찢어대고 했죠.(웃음)

9월 4일이 데뷔 10주년이었어요. 이 직업으로 10년을 보낼 거라고 예상했어요?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고요. 다만 좋게 맞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죠. 10주년이 됐다고 하니 마냥 쉬운 일도, 절대 당연한 일도 아니더라고요.

배역은 다 처음이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상하게 전문직 역할이 많았어요. <기름진 멜로>도 편하게 생각했는데, 서풍이는 요리계의 전문직이었어요. 레시피를 달달 외우는.

로맨틱 드라마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분명 중식집을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작가님이 처음에 우리 드라마는 멜로가 아니라 철저한 직장 생존기라고 못 박더라고요. 또 대사량이 얼마나 많던지, 이렇게 공부하면 되게 잘했겠다 싶더라니까요.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워요?

밥도 안 먹고 외웠어요. 다들 밥 먹으러 갈 때 봉구스밥버거 하나 사서 혼자 차 안에서 먹으면서. 예민 보스. 원래 예민해요. 감정 기복도 크고요. <김과장> 들어가기 전에는 투피엠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다음 작품도 정해진 게 없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조금 불안했구나.

조금이 아니라 너무 심했어요.

그룹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아쉽다고 했는데 늘 쉼 없이 일해왔어요.

복 받은 거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솔직히 이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해요.

눈에 띄는 멤버는 아니었는데, 지금 보면 홀로 묵묵하게 탄탄대로를 걸어온 거 같아요.

성격이죠 뭐. 이 일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타고났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나서는 게 두려운데 항상 그걸 숨기고 도전했어요. 특히 예능을 잘 못해요. 잘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치고 나가는 건 없지만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고 싶었어요. 대신 하나를 잡으면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컸죠.

그 의지를 계속 키웠던 게 뭐였어요?

꿈요, 욕심.

의류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동안의 인터뷰를 보면 늘 “난 욕심이 많아요”라고 하던데.

그래서 팬들이 ‘야망 준호’라고 했어요. 정작 난 야망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렇게 불리게 된 것도 예능 때문이에요. 잘하고 싶으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열심히 해서.(웃음) 그리고 막말로 대충 한 적은 없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망친 적은 있어도.

여우가 아니어서 그래요. 진짜 여우인 사람들은 티도 안 나는데.

여우이고 싶지도 않고 여우도 못 돼요. 여우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 같긴 한데, 타고난 게 아닌걸요.

대신 대기만성형이 되고 있잖아요. 2009년 데뷔 초 인터뷰를 보면, ‘어떻게 하면 원하는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이준호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어요.

와, 야망 장난 아니다. 그런데 그때 제 성격이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흐지부지됐을 것 같아요. 이렇게 다 못 했을 것 같아요, 절대.

왜요?

그만큼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잘 해내고 싶었던 거죠. 여전히 그런 마음이라 그때의 말이 이해가 돼요.

한결같은 사람이네. 그때의 욕심 많은 이준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만족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은 긴장을 놔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때의 준호가 지금의 나를 봤으면 더 큰 꿈을 꿨을 거 같아요. 몰라요, 전 어렸을 때 꿈이 더 컸어요. 진짜 심하게 컸어요.

할리우드 진출?

아유, 그건 무조건 하는 거였고. 그게 건방지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꿈이니까.

오글거릴 법한 10년 전 인터뷰를 이렇게 재빠르게 인정하다니.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아니면 내 가치관을 바꿔야 하나?

한결같아서 좋은데요, 뭐.

그런데 진짜 한결같긴 해요. ‘이준호라는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싶다’가 조금 오글거리긴 한데, 아직도 마음은 그대로예요.

슈즈 컨버스. 의류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일본에서 발매한 첫 솔로 앨범 판매량이 8만3000장이었다고 했나? 회사 사람들 반응이 ‘준호 인기가 이 정도였어?’ 놀라는 눈치였다면서요.

그런 반응마저 뿌듯했어요. ‘네가 날 알아?’ 이런 마음이요. 겸손하게 반응했지만 자신감이 넘쳤죠.

언제부터 그런 내공이 쌓였을까요? 팬들이 ‘야망 준호’라고 했을 때는 그런 내공이 없어서 놀림당했던 걸 테고.

바로 그때부터요. ‘너희가 날 야망 준호라고 놀려? 내가 어떤 야망인지 보여줄게’ 하고.(웃음)

최근 SNS 계정에 “나무에서 숲으로 눈을 옮겼다. 아마 새로운 시작이 될 듯”이라고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어요.

요즘 이것저것 답답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요. 원래 고민이 많아요. 드라마도 끝나고 일본 투어도 마지막이었고. 예전부터 여유롭게 시간 보내는 걸 잘 못했어요. 그냥 두려워요.

항상 스케줄이 있어서 그런가?

그렇죠. 다들 짠하다고 하면 ‘난 그게 좋은데’ 했어요. 다 그렇진 않지만, 그게 연예인으로서의 값어치이기도 하잖아요. 나이도 그렇고, 최근에는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죠.

작품 활동을 하며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감시자들>에서 죽어야 하는데 어떻게 죽는지 모르겠다고 (설)경구 형님에게 물었더니 “나도 몰라 인마.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시더라고요. 그게 너무 명쾌했어요.

의류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할 땐 배짱 있게 해요?

그러려고 해요. 그게 가장 컸을 때는 <김과장> 때였어요. 안하무인 싸가지 악역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도 됐겠네요.

양해를 많이 구했어요. 선배님 멱살 잡고 벽에 내리치려면 손이 벌벌 떨리는데, 작품할 때만큼은 그러면 안 되니까 기합 넣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기름진 멜로>에서 윙크하는 연기는 왜 그렇게 못한 거예요? 방송 사고 난 줄 알았어요.

원래 못해요. 이런 눈에서 윙크 잘하면 되게 재수 없을 것 같지 않아요?(웃음) 감았을 때랑 떴을 때랑 차이 안 나는 작은 눈이 윙크하면 막 짜증 날 것 같아요.

자신이 ‘아재’ 같다고 느낄 때 없어요?

없을 리가 없죠. ‘형이’ 혹은 ‘오빠가’라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건 상관없는데 나는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예요. 얼마 전 스트레이 키즈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놀러 갔는데 “형이 말이야”가 튀어나와 악 소리를 질렀어요.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 싫더라고요.

10년 전에 비해 달라진 건요?

사소한 것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했어요. ‘소확행’이라고 하는 그런 재미를 찾기 시작했어요. 미세먼지가 없어서 한  달 동안 집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면서.

원래 이렇게 여유 있는 사람이었나?

이게 저예요. 그러니 이 모습만 기억하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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