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은 진짜

변요한은 욕심이 커서 괴롭고, 그래서 행복하다.

코트, 티셔츠, 데님 바지, 벨트 모두 우영미. 운동화 아식스×키코 코스타디노브. 캡 아크네 스튜디오.

코트, 티셔츠, 데님 바지, 벨트 모두 우영미. 운동화 아식스×키코 코스타디노브. 캡 아크네 스튜디오.

어제 <미스터 션샤인> 20회가 방영됐다. 촬영을 끝내고 시청자 입장에서 작품을 보는 기분이 궁금하다.

촬영이 끝난 지 이제 열흘쯤 됐는데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시청자 입장으로 보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끝났다고 하니 미묘한 기분이 든다. 수염을 깨끗하게 밀면 속이 시원할 거 같았는데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남은 거 같다.

면도는 얼마 만에 했나?

한 1년 만에? 그런데 수염을 미는 순간 ‘시원섭섭’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실 ‘모 아니면 도’인 성격이라 그런 말을 잘 안 쓰는데, 이번에는 1년 반 동안 쉬다가 들어간 작품이라 그런지 여전히 시원섭섭하게 느껴졌다. 오늘 역시 수염이 없는 나한테 적응하는 시간 같다.

과거에는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나?

1년 반 동안 쉬어보니 그동안 작품에 들락날락하는 데에만 바빴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캐릭터를 빨리 끝내는 데 급급했다. 덕분에 <미스터 션샤인>에 들어가는 마음가짐은 이전과는 달랐다. 캐릭터에 너무 빠져 있기만 하지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려고도 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랐다.

셔츠 카모 by 비이커.

<미스터 션샤인>에서 연기한 김희성은 부유한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시대에 편승한 기회주의자가 될 수 있었지만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는 반항아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아를 실현하고자 방황하는 로맨티시스트 같다. 겉보기에는 유쾌하고 낙천적이나 안으로는 뜨겁고 여려서 연민이 가는 사내랄까.

지금도 김희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웃고 있다고 웃고 있는 게 아닌 걸 아니까. 그래서 나는 김희성이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봤다. 유진 초이(이병헌)나 구동매(유연석)나 고애신(김태리)은 저마다 적극적인 선택을 하며 시대에 맞서는 인물이지만 김희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시대에 반항하니까. 물론 마지막 4회 동안 적극적으로 움직일 예정이지만.

혹시 그 시대에 김희성 같은 인물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봤나?

했지. 그런데 대답하기는 어렵다. <미스터 션샤인>을 찍기 전에는 당연히 독립운동을 할 거라고 얘기했을 텐데, 막상 작품을 마치고 나니 정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 시대에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김희성의 한량 같은 삶이 부러웠다.(웃음) 사실 집안이 부유하다고 해서 한량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한량 기질이 있다는 말처럼 그런 기질이 중요하다.

사실 작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량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냥 기질만 있으면 되더라. 사실 나한테도 한량 기질이 좀 있거든. 1년 반 동안 쉴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만 들으면서도 일주일을 지낼 수 있다. 물론 한량이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김희성도 뭔가를 한다. 다만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갖고 진득하게 할 수 있는지의 문제겠지.

극 중 대사처럼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낭만주의자일 수도 있지만 끝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변요한 씨도 배우가 되길 반대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끝내 배우가 됐다. 그런 면에서는 김희성과 실제로 닮아 보인다.

꿈이 배우라고 하는데 유학을 보내시니 한국에 돌아오지 말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군대에 가야 한다고 해서 그걸 빌미로 들어와 군대에 갔고. 결국 배우가 되고 싶어서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김희성은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비록 집안의 뜻대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됐지만 책도 많이 읽고,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 잘 아는 친구였던 거 같다. 그래서 조선의 현실도 잘 알았고. 다만 그 모든 걸 떨어져서 보고 있었을 뿐이지.

김희성이 사랑하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어쩌면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한량이란 그런 것들을 보며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듣다 보니 오히려 나보다 기자님이 김희성 같은데?(웃음) 이미 김희성이 보는 걸 다 이해하고 있으니.

한량처럼 살고 싶은데 이번 생은 망했다.(웃음) 어쨌든 김희성은 자신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두 사내 사이에서 뻔뻔하게 술을 얻어 마실 정도로 낙천적인 사내다. 그런 낙천성을 변요한이라는 배우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칼을 찬 채로 나를 반으로 가를 수 있다며 “가로로 할까요? 세로로 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 앞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게 김희성의 매력 같다.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다고 죽음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산다. 김희성은 그렇게 표현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김희성보다 두려움이 더 많은 사람 같다. 그 인물이 어떻게 살았길래,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길래 이렇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궁금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무지 웃을 수가 없을 거 같은데 김희성은 웃고 있고. 사실 총칼 들이미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웃겠나. 그런 부분이 항상 고민스러웠다. 덕분에 많이 배우기도 했고.

자신이 김희성과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 변요한이라는 배우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 바가 있는 걸까?

사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집안이 유진 초이에게 저지른 잘못을 알게 된 김희성이 유진 초이에게 사과하고, 부모님을 만나 그 사실을 고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나라면 어땠을지 궁금했다. 늘 웃기만 하던 김희성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래서 힘들었다. 부모님 앞에서 무덤덤하게 우리 집안의 과거를 알게 됐다고 말하는 김희성과 달리 변요한은 용기가 없고 겁이 많아서 눈물을 흘릴 거 같은데 김희성은 눈물이 맺힐 수는 있어도 흘리진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 김희성이 돼서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렇다면 내 삶도 달라질 수 있을 거 같았다.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는 김희성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잘 살고 싶어서 인물에 몰입한 거 같다. 좀 더 진중해지고 싶고, 좀 더 예의 바르고 싶고, 오래 연기하고 싶기도 하고. 결국 그래서 행복했다. 예전에는 쫓기듯이 연기한 거 같은데 이번에는 더욱 차분해지려고 노력할 수 있었으니까.

재킷 김서룡.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 청바지 토니웩. 운동화 컨버스. 안경 뮤지크.

<미스터 션샤인>은 제작비가 상당한 대작이다. 그런 사실이 연기에 임하는 배우에게 영향을 미친 바는 없었을까?

현장에 가는 마음가짐은 언제나 별반 다르지 않다. 설레고 즐거운 건 동일하다. 그런데 예전에는 겁이 없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겁이 생기는 거 같다. 두려운 만큼 준비를 잘하면 설렘이 커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두려움이 더 커지는 거 같다. 이걸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마칠 수 있을지, 점점 더 두렵다. 배우로서 책임감이 커지는 거 같다. 한편으로는 끝없이 방황해보고 싶기도 한데 눈치 보다가 그렇게 멈춰버릴까 봐, 그게 무섭다.

배우로서 경력이 쌓이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늘어나면서 책임감도 커지는 반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커지는 걸까?

맞다. 바로 그거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도 자유로울 거다.

결국 배우 변요한으로서도, 자연인 변요한으로서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어쩌면 연기 외적인 영역에서 그런 고민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는 편이다. 진짜를 보고 싶어서. 정말 웬만한 다큐멘터리는 다 봤을 거다. 이미 지구를 떠나 우주까지 갔다.(웃음) 그 안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정말 많이 본다. 한번은 친구 아버지께서 진짜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보시는 드라마가 있느냐고 하니까 없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왜 안 보시느냐 하니까 이러시는 거다. “가짜잖아.” 결국 믿음이 중요한 거 같다. 진짜 두려움을 느끼고 싶어서 공포 영화를 보지만 그게 가짜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덜 무섭다. 반대로 진짜라고 느끼면 너무 무섭고.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확실히 진짜니까, 진짜 믿고 보게 된다. 스포츠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니까 궁금해지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 같다.

자신의 연기가 진짜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는 걸까?

예전에 <헤드윅>을 공연하면서 속으로 오늘 연기 완전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되게 좋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게 뭔가 싶은 기분이랄까. 반대로 나는 진짜 같다고 느꼈는데 다른 사람이 가짜 같다고 하면 정말 답이 안 나오는 기분이고. 그런 딜레마가 계속되는 거 같다. 마치 끝없는 끈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물론 아직 연기를 오래 하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고민이 가당한가 싶지만 내 입장에서는 진중해질 수밖에 없다. 선배들한테도 이런 고민을 많이 털어놓는 편이고.

최근에 본 <파이널 포트레이트>라는 영화는 거장으로 꼽히는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 관한 작품이다. 그 영화에서 자코메티는 자신이 지금까지 미완성 작을 전시해왔다며 스스로를 사기꾼이라 말한다. 세상이 그를 대가라고 말하는데 자코메티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그렇게 비하한다. 그건 스스로 닿고자 하는 성취의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 변요한도 연기에 대한 욕심이나 열망이 너무 크거나 뜨거워서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아닐까.

과감하게 말해보자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큰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 연기를 보는 사람들과 내가 느낀 진짜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싶다. 어느 정도 말고, 진짜로. 그래서 나 역시 진짜를 느껴보고 싶고. 그런 느낌을 정말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문제는 연기에 큰 욕심을 갖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은 거 같다는 거다. 그래서 삶이 중요한 거 같다. 삶이라도 확장시키면 그릇이 넓어질 거 같아서. 그래서 평소에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배우는 진짜처럼 표현하는 존재이지 결코 진짜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리고 배우가 진짜가 되길 바라는 건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고. 감정을 입고 벗는 게 아니라 그 감정 자체가 돼버린다는 거니까.

무슨 의미인지 안다. 위험하겠지. 하지만 나는 메소드 같은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 이런 고민을 많이 해야 나중에 요령이 생겨서 그런 위험함도 피해갈 수 있을 거 같고. 포괄적으로 보자면 결국 공부 중인 셈이지. 연기도 인생도. 늘 인생이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나왔고.

스웨터 골든구스 디럭스브랜드.

<미스터 션샤인> 촬영이 끝나자마자 단편영화를 한 편 찍었다던데.

<미스터 션샤인> 촬영이 끝나고 3일 후에 대본을 받았고 이틀 뒤쯤 촬영에 들어갔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라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실험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예산도 시간도 빡빡한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체감하고 싶었고, 결과적으로는 제발 잘 완성되길 기도하면서 찍었다. 이건 잘 나올 거라는 낙관이 아니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지금 배우 변요한이 단편영화를 찍었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경계를 없애고 싶었다. 나한테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일로 다가오니까.

단편영화 <토요근무>가 공식적인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 그대로 주말 근무를 하게 된 인터넷 설치 기사 역을 맡았는데 굉장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종종 찾아 본다.

오래된 출연작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영화가 완성됐을 당시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봤던 게 기억났다. 내 연기를 보고 ‘아,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다. 데뷔와 동시에 은퇴인가 싶었고.(웃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서툴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보이지만 왠지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대체 뭘까 싶을 정도로. 너무 깨끗한 느낌이라 지금보다 그때의 연기가 더 좋게 느껴진다. 몰라서 진짜 같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했다. 걸으라고 해서 걷고, 트렁크에서 물건 빼라고 해서 빼고, 유일하게 덥다는 것 정도나 느꼈나.

과거에 스스로에게 선물한 금반지를 끼고 다닌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 반지는 아직 갖고 있나?

물론이다. 그 당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겨우 연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집안 사정도 그렇고, 내가 좀 이기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연기를 하는 게 맞는지 종종 생각하게 됐고. 그때 나한테 선물한 게 바로 그 반지다. 그 반지가 내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그 뒤로 팬들이 선물해준 반지가 하나 더 늘어서 지금은 같이 끼고 있다.

만약 그때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판단해서 이기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지금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 현실적인 선택을 할 뻔했을 때 나한테 연기해야 한다고 말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한테 정말 고맙지. 오빠는 꼭 연기해야 한다고 말해준 여동생도 마찬가지고.

결국 원하는 삶을 살게 됐지만 그토록 원하던 삶에도 괴로움이 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괴롭지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풀어내고 싶은 마음도 드는 거 같다. 이를 통해 재미있게 살고 싶고.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 많은 건가 싶지만. 사실 오늘 인터뷰에서 한 답변들이 있어 보이려고 뱉은 말처럼 들릴까 봐 걱정된다. 솔직한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오늘은 정말 최대한 솔직해지려고 노력한 거 같다.

어쩌면 결국 그런 고민이 배우 변요한을 끝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감정에 갈증이 많은 건 그래야만 내가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 구석구석에 있는 감정을 다 찾아내고 싶은 갈증이 있으니까. 그런 갈증을 풀어야만 행복할 거 같고.

터틀넥 니트 김서룡. 베레모 밀리어네어햇.

1년 반 만에 <미스터 션샤인>을 선택했다. 차기작은 좀 더 빨리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오래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한 작품씩 해나가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떻게 연기할 수 없는 순간이 올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서 그걸 예방하고자 최대한 노력하는 거고. 그야말로 하루살이 같은 삶이다. 안전한 길이 없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모 아니면 도’였던 배우 변요한이 김희성을 연기하고 나서 시원섭섭한 감정을 알고, 중간을 알게 됐다고 했으니 이젠 ‘개, 걸, 윷’ 같은 선택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근데 알고 보니 ‘빽도’가 될 수도 있고.(웃음)

그럼 다시 한번 던지면 되지.(웃음)

그냥 자코메티처럼 사기꾼이라 푸념하며 살 수도 있고.(웃음) 물론 자코메티는 언제나 진정성을 갖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본인과 타협한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를 사기꾼 같다고 여긴 거지. 그래서 스스로에게 ‘웃픈’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에 비하면 나는 ‘빽도’가 나와도 고마운 인생일 거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이 ‘빽도’라고 여기는 작품들도 나한테는 하나같이 ‘모’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다시 한번 느끼지만, 모든 작품을 끝내고 나서 돌아보면 늘 행복한 순간이었고, 되게 많은 걸 깨닫게 되는 시간이더라.

아무래도 연기라는 것이 정답이 없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서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얼마나 익었는지 몰라서 고개를 숙일 수도 없고, 들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나는 아직 한창 익을 때니까 그냥 앞만 보고 가도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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