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우 씨

객관적 배성우 시점.

셔츠 준지. 바지 에스피오나지. 구두 바나나핏.

신기주(이하 신) 이렇게 불러도 되나요? 오양촌 씨.

김은희(이하 김) ‘씨’에 강세를 줘야죠.

배성우 그렇죠.(웃음)

오양촌 씨라고 부르면 이제는 낯선가요, 여전히 익숙한가요?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이고, 또 저도 애착이 많이 가는 캐릭터라.

왜 애착이 가요?

좀, 멋있잖아요.

크. 마지막에 제일 멋있었죠.

멋있었어요? 저는 오양촌 씨 같은 사수가 있으면 정말 싫을 것 같았는데.

다들 그럽니다.(웃음)

그래요? 저는 오양촌 씨 같은 사수가 못 된 제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정말로.

드라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끌고 가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라 한 4, 5부 정도까지는 대본을 미리 받아서 봤거든요. 그거 보고서 작가님이 어떻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랬어요. “너무 멋있는데요?” 처음에 이름만 듣고는….

양촌이.

네.(웃음) 얘는 뭘까, 그랬는데 그 이름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성격도 너무 멋있더라고요. 되게 멋졌어요, 그냥.

무엇이 멋있었는데요?

멋에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잘생겨도 멋있고.

잘생긴 배우들 부러워요.

많이 부럽죠. 큰 유산 받았죠.(웃음) 멋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양촌은 어떤 부분에서 되게 치열한데 그 치열한 게 그냥 ‘열심히 살아야지’ 해서 치열한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냉정하면서 치열했어요. <라이브>라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뭐, 사명감 이런 것이 있을 텐데, 그에 대해 ‘나는 뜨겁게, 사명감 있게 살 거야’가 아니고 굉장히 차가우면서도 뜨거워야 하는 부분에서는 뜨거웠거든요.

저는 그 장면이 좋았어요. 사명감 말씀하셨는데, 부당하고 불합리하다 생각해서 경찰학교를 중도 퇴교한다는 학생에게 오양촌이, 그런데 어디 다른 사회는 합리적이더냐 말하는 장면이 있죠. 오양촌은 알고 있는 거죠. 현장에는 모순이 가득하다는 것을. 그 안에서도 사명감을 지킨다는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차갑고도 뜨거운 게 같이 있는 거겠죠.

사실 공감이 잘 안 가는 부분도 있죠. 왜냐면 오양촌은 어떤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보였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 일에 서툰 사람에게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겠죠. 그런데 오양촌은 그러지 않았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사수 만나기 싫다고 말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오양촌은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는 인물이에요. 그 인물이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계속 깨달아가면서 성장해서 멋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등되었기에 성장하죠.(웃음)

그래서 더욱더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욕 내뱉으며 그냥 나자빠질 수도 있는데 그걸 계기로 오히려 성장한다는 것이…. 얼마 전에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 뢰브 감독이 월드컵 탈락하고 인터뷰하는 거 보니까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독일에 대해서 말이죠. 지금 지는 해 같아서 마음이 아픈데 젊은 선수들이 또 있을 것이고 이것을 계기로 변화해나가야 한다고.

그 마지막 경기 때문에 한국은 그냥 그대로 다 넘어갈 것 같고.(웃음) 한국 축구가 훨씬 더 문제가 많을 수도 있는데.

그렇죠.

독일 축구는 4년 뒤에 더 달라질 것 같고.

네.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나 나라가 진짜 무서운 것 같아요.

배성우는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인가요?

그러려고 노력하죠. 사실 배우는 좀 타고나야 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생긴 걸 타고나든가 연기력을 타고나든가, 어떤 예술적인 센스라든가 아니면 뭐, 분석력이라든가.

정우성 배우가 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잘생긴 게 최고야.

최고예요. 큰 유산이라니까.(웃음)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그런데 저는 뭐 하나 자신 있는 부분이 없어요. 지금도 없고 전에도 없었고. 그렇지만 제가 이 일을 좋아하니까 이 일로, 이 분야에서 어떻게 더 재미있게 더 오래 해나갈 수 있을까. 그 힘이라면 뭘까.

뭘까요?

일단은 계속 자기 객관화를 해야 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그것을 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고치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거든요. 지금도 그런 중인 것 같고요.

제가 오양촌 씨 같은 사수가 있으면 정말 싫을 것 같다고 말한 이유는 오양촌은 차갑고 무섭고 가차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나중에는 저도 참 멋있는 인물이다, 저런 사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점이 이유였던 것 같아요. 오양촌은 언제나 객관적이었어요. 누구에게나 언제나 똑같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정다감한데 그걸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야 정 많은 모습을 보여주는 ‘츤데레’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항상 솔직하고 충실한 사람인 거예요, 순간순간에.

맞아요. ‘츤데레’라는 말이 나온 배경은 잘 모르겠어요. 누구에게 친절하다는 게 좀 쑥스럽잖아요. 저는 그런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게 ‘츤데레’라고 생각하는데 오양촌은 그게 아니라 늘 가장 정확하고 필요한 행동을 하는 사람 같더라고요. 그래서 멋지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무엇보다 오양촌은 권위 의식이 없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그 정도 위치가 되면, 또 가뜩이나 거기는 조직 사회잖아요.

그렇죠. 경찰 조직이죠.

계급이 명확한 집단인데도 그 안에서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 아니면 솔직한 마음에 의해서 행동하는 거지 권위 의식을 가지고 ‘내가 너보다 위니까’ 하는 모습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 좀 찾아보고 싶은데.(웃음)

그러니까요. 회사든 경찰이든 계급이 있는 조직이라면 상하 관계가 명확하고 군기가 들어 있잖아요.

<에스콰이어>는 안 그래요.

그런가요?

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 없네요.(웃음)

여기서 맞장구치면 이상해집니다.(웃음)

그런 조직이 있겠죠. 그러지 않은 조직도 있겠고. 작가님이 그에 대한 바람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어요.

로브 이미스. 티셔츠 리트. 반바지 hiltl by 킹 오브 그린 스트리트.

노희경 작가님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요? 오양촌이라는 인물을 들고 배성우라는 배우를 찾아왔을 때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아마 캐스팅할 때 고민하셨을 거예요. 누가 좋을 것 같으냐고 주위에 의견을 구하기도 하잖아요. 물론 결정은 본인이 해야겠지만. 어쨌든 조인성 씨한테 그냥 물어보셨는데 제 이름을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조인성 배우와 노희경 작가님은 <괜찮아, 사랑이야>를 같이 했죠?

많이 했죠.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했고 <디어 마이 프렌즈>도 했고. 어쨌든 괜찮을 것 같다고 제 이름을 말했다는데….

괜찮아, 배성우야.

예….

네….

나 왜 자꾸 아재 개그 치지.

저 그런 거 좋아해요. 많이 해주세요.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해주세요.

아재들.(웃음)

그런데 “에? 안 어울릴 것 같은데?”라고 하면 그냥 넘어가는 건데 “어, 그래?” 하면서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대요. 그러다 제가 선택된 거죠. 감사하게도.

오양촌에 대한 설명을 해주진 않았나요?

말로 설명 들은 것보다 시놉시스부터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 뵈었을 때 저는 오양촌이란 인물과 노희경 작가님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어떤 부분에서요?

솔직한 부분? 그리고 괴팍한 부분. 그렇게 괴팍한 분은 아니에요. 그런데 잘 모르고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어떤 지점에서 자기 색과 주장이 있는 거죠.

작가님도 오양촌이란 인물이 자기한테는 좀 재미있었다고, 쓰면서 재미있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노희경 작가님 드라마라는 이유로 <라이브>를 보기 시작했는데 첫 화의 이광수 씨, 정유미 씨 에피소드 보면서 청년 실업 이야기인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오양촌과 배성우의 드라마가 되어 있더라고요.

사실 예전에 (황)정민이 형이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고 했는데 <라이브>의 오양촌 같은 경우는 숟가락으로 떠먹여주기까지 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소화제도 챙겨주시고.(웃음) 정말 그냥 뭐랄까, 진짜 얻어먹은 느낌이에요.

차려준 밥상에서도 어찌 보면 가장 식성 좋은 배우가 많이 먹게 된 것이 아닌가….

그냥 계속 먹은 거죠.

소화가 되는 거죠. 막 떠먹여주는데 막 소화가 되는 거예요. 특히 마지막에 정말 모든 게 다 실려 있는 대사 있잖아요. 제가 읽으면 그냥 읽게 되는 건데,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라는 대사 있잖아요. 이게 발연기죠?

입연기죠.

명쾌한 연기입니다. 연기는 그렇게 해야 해요. 팩트잖아요.

사실 저는요,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배우분들 만날 때 연기에 대해 말하기가 정말 죄송스러워요. 그런데 배성우 배우 인터뷰를 읽어보면 호흡에 대해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배우 배성우가 말하는 호흡, 대사에 대한 리듬감, 이런 것이 이 대사에 다 드러나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이 대사를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보려고 열심히 해본 것도 있는데 18부작을 하는 동안 오양촌이 조금씩 제 안에 묻어 들어왔던 것 같아요. 대사나 감정,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스스로에게도 있으니까 조금 마음을 놓고 ‘이게 맞나’ 하는 의심이 아니라 ‘그래, 이거’, ‘진짜 이래’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18부작을 지나온 거죠. 그러다 보니까 마지막 장면 찍을 때 막 ‘이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는데!’라고 생각한다든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이 하면 막 소리지르겠죠. “누가 감히!” 하면서 책상도 치고.

그렇게 하면 그때는 또 그게 말이 돼요.(웃음)

셔츠 준지. 팔찌 불레또.

사실은 그렇게 감정 누르고 배어 있는 대로 호흡하면서 말하는 대사 자체에 어마어마한 울림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저 같은 40대 아저씨한테는 더.

그렇죠, 아무래도.

40대는 아니지만 저도 울림을 느꼈어요.

신, 배 (웃음)

그런데 저는 노희경 작가님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적이 드물어요.

왜요?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잖아요. 아까 오양촌과 노희경 작가님이 비슷한 것 같다고 하셨는데, 딱 그런 느낌이에요.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숨겨놨던 감정이 후벼 파이는 것 같아요.

원래 사람이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지 않거든요. 끄집어내지를 않아요. 그냥 갖고 있지.

맞아요. 특히 <라이브>는 첫 화부터 너무 보기 힘들었는데, 이광수 씨와 정유미 씨를 통해 보여주는 청년 실업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거든요. 그 마음을 잘 아니까 그게 힘들더라고요.

내가 TV로도 이 꼴을 봐야 되나….

(웃음)

저는 청년 실업 드라마인 줄 알았다니까요.

저도 처음 대본 볼 때 그랬어요. 나 언제 나오는 거야?(웃음)

나 광수의 미래 모습인 거 아니야?(웃음)

아니 분명히 주연이라고 했는데?

근데 안 나와.(웃음) 개인적으로 저도 첫 화를 보기가 힘들었는데, 알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첫 화부터 되게 재밌게 봤는데요, 저 나온 다음부터는….(웃음) 배우는 원래 본인 모습이 꼴 보기 싫거든요. 다 보이니까. 그래서 그전까지 재미있게 봤어요. 그리고 제가 모든 한국 드라마를 본 건 아니지만, 평소 많이 못 보던 전개나 촬영, 연출 부분이 보였거든요. 일단 첫 화에 음악이 없었어요. ‘브금’이라고 하죠.

굳이 브금이라고.(웃음)

브금. BGM이 거의 없었어요. 경찰학교에서 운동할 때 조금 나왔나. 하여튼 초반에는 드라이하게, 촬영이나 연출도 그냥 상황을 툭툭툭 보여줬어요. 저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그게 사실은 정서적으로나 상황으로나 스토리가 탄탄하게 정공법으로 설득이 안 되면 그렇게 못 가거든요. 그래서 효과를 넣는 거고. 그런데 MSG 없이 재료의 맛만 가지고 했죠. 저는 그래서 첫 화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특히 제가 안 나온 부분들이 너무 좋았어요.

티셔츠 위캔더스. 청바지 하이드아웃. 운동화 반스. 실버 뱅글, 가죽 팔찌 모두 불레또.

본인의 어떤 게 보이길래 ‘꼴 보기 싫다’고까지 말하신 걸까요?

음, 배우들은 자기 모습을 볼 기회가 많잖아요. 스크린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런데 보통 분들은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잘 못 듣거든요. 본인한테 본인 목소리가 객관적으로 들리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저는 제가 이병헌 목소리인 줄 알았어요.

비슷한 것 같은데요? 있어요, 있어.

들었어? 나 믿어버릴래.

녹음 파일 지우겠습니다.

통편집인가요.

본인 객관화가 잘 안되죠.

그래서 녹음한 목소리를 듣는다든가 그러면 ‘어, 내 목소리가 저랬단 말이야?’ 싶은데 그게 아직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얼굴을 본다든가 목소리를 듣는 게 낯설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처음 영화에 나왔을 때, 큰 스크린으로 본인을 보았을 때 그 느낌은 어땠을까요?

솔직히 처음 보면요, 연기나 이런 게 아니라 얼굴만 보여요. 살을 더 빼야 되는구나, 이런 뻔한 것들.

단점이 먼저 보이는군요.

내 모습이 가장 민망했던 순간이나 반대로 좋았던 순간이 있나요?

다 비슷비슷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영화마다의 차이보다는 신마다의 차이를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신은 좀 설득력 있게 보인다’라든지. 사실 연기라는 게 거기서 생활하는 걸 찍는 거잖아요. 그 인물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니까. 여러 가지 목소리라든지 표정, 몸을 다 써서 하는 게 연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거기에 딱 들어가 있을 때는 보기도 편하고 ‘이 괜찮다, 다행이다’ 하고 넘어가게 되는데, 뭔가 좀 튀어나오거나 덜 가거나 그런 게 보일 때는 식은땀 나는 거죠. 그런데 할수록 잘 덜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덜어낸다.

네. 연극할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한 공부가 영화에도 도움 되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그때 느낀 게 사람이 에너지를 쓸 때 많이 밀어붙인다고 에너지가 커지는 게 아니라 보여줘야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딱 보여줬을 때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발휘한다는 것이거든요. 다른 게 안 보이는 게 중요하지, 보여줘야 할 것을 심플하고 정확하게 꽂는 게 중요하지, 뭐가 많아진다고 해서 에너지가 세지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대사를 할 때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감정, 다른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효과가 있다는 것을 연극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왜냐면 연극은 관객 반응이 바로바로 오잖아요.

어디서 들었는데 아동극 하면 반응이 더 세다면서요.

아동극은 극대화되죠. 실망감도 극대화되고. 우리나라 관객들이 야유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무반응이 있죠.

그렇죠. 무반응이더라도 어른들은 일단 봐줘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걸 표현해버리니까. “꺼져!” “재수 없어!”

역시 아이들은 솔직하네요.(웃음)

저는 배성우란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은 선악이 공존하는데 그 간극이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미묘한 느낌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표정 하나 안에 그게 다 있고 순식간에 휙휙 바뀌죠. 그게 지금 말씀하신 것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아주 미니멀한 연기. 아주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을 표현하는 것.

그럴수록 관객 입장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참 편안한 신이구나’라는 게 아니라, 아무리 긴장되는 신도 관객들이 다른 생각 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받아들여야 그 긴장감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표현하는 입장에서도 ‘뭔가 불편해, 뭔가 생각이 복잡해’ 그러면 제가 있는 힘껏 연기하더라도 도달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최소한의 에너지라는 게 게으르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여건을 만드는 거죠. 가장 적은 에너지로도 효과가 날 수 있는 여건을. 물론 영화나 드라마 작업에서는 스태프들과 같이 공유하고 편집으로까지 이어져야 하지만 연극할 때는 배우가 좀 더 직접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때 그런 재미를 알게 되면서 이 직업에 대해 뭐랄까….

사명감을 느꼈다?

사명감이라고 하니까 뭔가 좀 이상하네요.(웃음) 노는 직업인데 사실.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더 즐겁게 놀게 되었다.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술맛을 알고 술을 먹게 되었다.(웃음) 아직 많이 부족하죠. 그리고 사명감은 누구나 다 있을 거예요.

있는 척해요. 너무 진실을 이야기했나.(웃음)

저도 있는 척해요. 누구나 다 있진 않죠.

어떤 모양새로든 있는 것 같아요. 있는 척한다고 겸손하게 말씀들 하셨지만. 저도 명쾌하게 이야기하라면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오양촌 대사에 이런 게 있었거든요. “밥값은 하자. 받은 것만큼은 하자.” 그런데 또 뭐랄까, 너무 넓은 범위를 이야기한 것도 같고….

받은 만큼 하려면 30분 정도만 하고 가야 했는데요? 또 너무 진실을 이야기했나.(웃음)
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 분야가 다 비슷한가 봐요.(웃음)

특히 그 친구가 <정글의 법칙> 촬영하러 갔을 때, 아나운서는 개런티가 없거든요. 있긴 있는데 만원인가 몇천원 정도예요. 그러니까 다들 정글에서 열심히 밀짚으로 집 만드는데 제 동생은 귀찮아하더라고요.(웃음) “성재야, 이거 좀 해” 그러면 “저 원래 퇴근해야 해요. 제 개런티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러고.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확 와닿아.(웃음) 역시 사명감은 받은 만큼 나오는 거죠.(웃음)

굉장히 공감 가는 말이기는 한데(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 연극할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매일 똑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일상인 거예요. 어떤 날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빨리해서 빨리 가야지 생각도 했어요. 연극은 대사 빨리 하면 공연 시간이 줄어드니까.(웃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관객들은 그날 회사도 다녀오고 학생이면 학교도 다녀왔을 것이고 여러 가지 하루를 겪고 돈을 내고 대학로까지 찾아와서 연극하는 두 시간 동안 꼼짝도 못 하고 앉아 있는데 어떤 의미를 주지 않으면, 우리가 느끼게 해주지 않으면 너무 미안한 거예요.

관객을 보는 순간 대충 하려던 마음이 줄어드는 거죠.

네. 저 사람들한테 내가 진짜 잘하는 사람처럼 보여야지 하는 욕심도 있어요. 그것도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완전 확 보내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하는.(웃음) 예전에 코미디를 하는데 다른 팀 공연 카피가 “웃으면 지는 거다”였거든요. 우리 팀 할 때는 바꾸라고 했어요. “똥 싸면 지는 거다”로.(웃음) 코미디니까 웃는 건 당연한 거고, 그보다 더 잘해보자 그런 욕심이었죠. 욕심이지만 나쁜 욕심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것도 원동력이 될 수 있죠. 사명감이라는 게 그 직업을 선택하고 겪기 전까지는 몰라요.

그렇죠.

기자들도 웃겨요. 처음에는 직업이라고 그냥 들어오지만 몇 년 지나고 나면 “이 기사 꼭 써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막 주장해요. 자기가 뭐 언제부터 그랬다고.(웃음)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직업에 어떤 가치관이나 무엇이 몸에 배면서 그 사람화되고 그 사람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거죠.

그렇죠. 말씀하신 것처럼 직업에 젖어들수록, 내공이 쌓일수록 사람이 릴랙스되잖아요. 처음에는 막 ‘열심히 잘할 거야!’ 그러지만 점점 ‘해봐야 똑같아’ 이렇게 되는 게 있는데도 불구하고(웃음) 뭔가 더 깊어지고 다른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걸 느끼게 된 나이는 언제쯤일까요? 지금 30대니까…. 30대 아닌가?

에이.

차라리 10대라고 이야기하시지. 솔직하신 분이야.

제가 좀 소심해서.(웃음) 저는 어찌 보면 그게 느껴지는 단계가 진정한 배우가 되든 경찰이 되든, 그런 존재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경험상 그건 기억해요. 내가 어느 순간 그걸 느꼈다. 가령 무대에 올랐을 때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순간이구나’ 느끼는 것들 말이죠.

정확한 나이로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서. 그런 마음은 30대 초반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30대 초반에서 중반 이 사이에는 힘으로 많이 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파이팅 있으니까. 힘으로 어떻게든 밀고 나가려고 하다 보니까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컨디션 안 좋을 때는 그냥 쭉쭉 빨리하다 무대 내려오면 그게 또 관객에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한 거예요.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힘이 없으니까(웃음) 힘으로 못 하니까 다른 것으로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거고.

관객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도 같은데요.

관객이 아예 없어서 공연이 취소된 경우도 있었죠. 그런 경험에 비해 이제는 관객이 많이 와주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다? 이건 아니에요.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시간 내서 돈 내서 뭔가를 느끼고 싶어서 오신 건 똑같은 거죠. 제 경험으로 치면 저도 어릴 때 연극이 좋아서 혼자서도 많이 보러 다니고 그랬거든요. 요즘 혼자 영화 보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혼영.

그건 유행이 아니라 늘….(웃음)

아, 혼밥, 혼술, 혼영, 유행 아니에요? 여하튼 저는 ‘혼연’도 했었거든요.(웃음) 어릴 때 돈도 별로 없고 그래도 연극은 할인이 많았으니까 어디서 할인권 얻으면 가서 보고 그랬어요. 또 대부분 젊은 시절, 어린 시절은 암담한 경우가 많으니까….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마음에서 내가 이걸 너무 좋아하고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연극을 보다 보면 현실을 잊게 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 마음을 아는 거죠.

그렇죠. ‘그냥 이거나 보지, 뭐’ 해서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무 좋아서 보러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200명 오셨으면 200명이 다 다르겠지만 그 마음을 아니까. 그런 마음들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배우 배성우는 계속 이 길을 걸어왔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사실 하는 동안에는, 예를 들어 ‘더 이름을 알려야 해. 지금은 갈고 닦는 기간이야’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왜냐면 그거 하기도 바빠요. 물론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유명해지면 좋겠죠. 그런데 작품에 들어갔을 때는 딴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운 좋게도 역할 자체도 굉장히 매력 있는 역할, 좋은 텍스트(대본)를 많이 받았고요. 무언가 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기분 좋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난 아직이야. 앞으로 잘될 거야’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재밌게 하고 있는데 왜? 뭐?’ 이런 거죠.

그러다 보니까 훅 20대 가고 30대 가고.

그렇죠. 그렇게 된 거죠.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던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그때 별로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고생을 했을 수도 있는데.(웃음) 장성한 아들이 집안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일만 하고 있으니까. 뭐, 저는 거기에 빠져서 계속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배우 배성우 나름의 생존 방식, 긍정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네요.

네. 막연하게 잘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하고요,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최대한 잘 찾아보자는 편이에요. 물론 고민도 있죠. 그런데 스스로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다고 굳이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지 않나. 힘들 때 술 막 먹는다고 하나도 안 풀리거든요. 물론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엔 간이 스트레스받겠죠.(웃음) 어쨌거나 일부러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려고 해요.

데님 재킷 바스통. 티셔츠 브루먼. 선글라스 스틸러.

영화 <안시성> 개봉 앞두고 있죠? 엄청난 대작 같던데요.

그렇더라고요.

농담이지만 코미디 영화 <평양성>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코미디인가 했어요.

성 하면 코미디 같아. ‘감수성’ 뭐 이런.

어머.(웃음)

(무표정)

그 개그 코너 있잖아요.

개그 코너 ‘감수성’ 모르세요?

모를래요.

저런.(웃음) 어쨌든 <안시성>은 액션 대작이에요.

연기는 타고나는 것 맞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느 정도는.

배성우란 배우는 타고난 부분이?

있긴 있겠죠.

있다, 없다.

있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사실 지금 활동하는 많은 사람이 다 그 부분을 갖고 그 점을 극대화시키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자기가 타고난 것을 말이죠.

사실 연기는 깊어지는 것이겠죠. 많은 창작의 영역이 다 그런 것 같은데 타고난 게 있으면 그걸 얼마나 깊이 가져가느냐의 싸움이잖아요.

네. 그래서 자기를 찾아야 하고, 자기 안에서 그게 변주되어야 자연스러움이 나오는 거고. 연기뿐만 아니라요.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천재가 나오는 것보다 거장이 나오는 게 더 어렵다고. 천재가 나오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인데, 인생을 겪고 기량이나 테크닉 등 여러 가지를 갈고 닦으면서 거장으로 거듭났을 때 나오는 퍼포먼스가 더 감동을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죠.

배우 배성우는 현재 깊어지고 있는 거겠죠?

그래야 되겠죠.

그렇다는 것을 시청자나 관객분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당히 감사하고 고맙죠. 부끄러운 부분도 많고 더 채워야 되는 부분도 많고 버려야 되는 부분도 많은데요.

버려야 되는 게 뭘까요? 아까 연기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인상 깊게 들은 부분이어서. 깊어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 같은데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이게 사실 추상적인 이야기라 참 애매한 것 같아요. 그 고민에 정답이 없으니까. 축구는 골 넣으면 정답인데 이건 정답이 없으니까. 고민 자체를 계속해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저희의 공식 질문이 있는데요, 고민이기도 해요.

쑥스럽네요.

뭐예요?

요즘 행복하신가요?

(침묵)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지’ 하는 눈빛이네요.

저 잠시 오양촌 씨의 눈빛을 본 것 같아요.

(웃은 후 잠시 뜸을 들였다) 네.

끝?

안 돼요. 왜, 어떻게 행복하다고 느껴요?

어려워요. 어렵네요.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했어요?

어떤 분은 행복하길 선택했다고 하분도 있고 ‘행복이 어딨어, 인생에’라고 단언하70대 교수님도 계셨어요. 또는 이제부터 행복해지겠다고 하면서 불행한 상태라는 걸 인정하분도 계셨고요. 참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러게요. 행복이라는 게 참 많이 쓰이기도 하면서 정의 내리기 애매한 말이잖아요. 감정이니까. 아까 어떤 분이 행복하길 선택했다고 했다는데, 저도 잠깐 들었던 생각이 어떻게 보면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싶어요. 사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모습과 행복한 모습이 되게 많이 섞여 있는데 행복하다는 부분을 주로 생각하면서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같은 말인 것 같아요. 행복하기로 선택했다. 행복하려고 한다.

기왕이면 행복한 게 낫죠.

기왕이면요. 뭐, 좋자고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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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JDZ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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