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식, 미완의 형식

박형식은 자신만의 보폭으로 미완의 시간을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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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슈츠>에 출연한다던데, 첫 촬영은 언제인가요?

원래 내일이었는데, 며칠 미루어졌어요.

촬영 하루 전날 쉬지도 못할 뻔했군요.

촬영 전에는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이니 하루 전에 뭘 한다 해서 연기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에요. 물론 조금 더 쉴 수 있으니 좋긴 하죠.(웃음)

캐릭터의 직업적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전작들과 달리 <슈츠>에서는 변호사라는 전문직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지 않나요?

전문직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긴 해요. 게다가 장동건 선배님과 함께 특별한 브로맨스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화랑>에서도 박서준 씨와 나름의 브로맨스 관계를 보여줬는데.

아무래도 그때와는 다른 느낌일 거예요. <슈츠>에서는 장동선 선배님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개인적으론 그런 면에서도 기대돼요.

남남 케미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감이 있나 보군요.

<스물>이나 <청년경찰> 같은 청춘물에 출연해보고 싶었어요. 진짜 잘할 자신도 있고요. 오래된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도 모이면 ‘초딩’처럼 어울리잖아요. 남들이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래된 친구들끼리 있다 보면 그런 재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작품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성적인 누아르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나이를 먹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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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터놓고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이 꽤 있나보죠?

많은 건 아니고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라 친한 사람과 계속 만나는 걸 좋아해요.

직업 특성상 꾸준히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을까요?

어차피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니 그런 관계 안에서는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되지만 낯선 사람 자체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죠.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까. 물론 누구나 처음 본 사람이나 낯선 곳에 가면 그 정도 부담감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부담감을 안고 연예 활동을 해왔나요?

뒤늦게 깨달았어요. 어릴 땐 주변에 어른밖에 없으니 사무적인 이야기를 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 그저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어요.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냥 무서웠죠.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불편한 거였더라고요. 낯설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거예요. 그나마 이젠 그 정도 불편함을 이겨내고 할 말이나 해야 할 행동은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아요.

뒤늦게 그런 불편함을 깨닫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바쁠 때는 몰랐어요. 회사를 옮기고 연기 이외의 활동이 적어지면서 집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니 누군가를 만나야 할 자리가 생기면 부담감이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옛날에는 그런 부담감을 실감하지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인사했다는 것을요. 단순히 사람을 만나기 싫다는 말이 아니에요. 부담감이 따르는 자리를 일부로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는 거죠.

모르고 감당할 때보다 알고 감당해야 하면 더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을까요?

스트레스까진 아니에요.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오히려 정확히 알게 된 덕분에 대처하는 법도 알게 됐어요. 몰랐을 때는 인사만 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이젠 식사하셨느냐고 한두 마디라도 더 붙이고 대화하는 법을 익힌 것 같아요.

<슈츠>에서 연기하는 고연우는 동명 원작 미드의 마이크 로스를 대신하는 인물인 만큼 대단한 천재일 텐데 그런 인물의 지적 능력을 설득력 있는 연기로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거 같아요.

덕분에 아무나 천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더욱 노력하는 계기를 얻게 된 거 같아요.(웃음) 일단 대사 외우기가 엄청 어려워요. 지금까지는 대사 자체를 외우기보단 상황으로 대사를 이해하며 외웠어요. 대사를 하는 상황의 감정으로 이해하면 대사가 좀 더 쉽게 외워졌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법전을 외워야 돼요. 그걸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안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장동건 선배님 대사량도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대본을 보면서 같이 한숨을 쉬었죠.(웃음)

지금까지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는데 <슈츠>는 선배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서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작품들과 다른 기대가 있을 것 같아요.

작품도 재미있고,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장동건 선배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설렘이 컸어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젠틀하고, 먼저 따뜻하게 다가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죠.

그런 호감이 연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상관없다고 할 순 없어요. 실제 관계에서의 감정이 작품 안에서도 확실히 보인다고 생각하고요.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할 때에도 유동근 선생님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지만 극에서 맡은 역할처럼 아버지라고 불렀더니 아들 왔냐고 하시면서 잘 받아주셨어요. 그렇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면 촬영할 때에도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대기실에서 ‘선생님’ 하다가 촬영할 때 갑자기 ‘아버지’ 하려면 아무래도 어색하니까요. 어쩌면 프로답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니까 그만큼 잘 해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는 법이겠죠.

연기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할 때 너무 좋았어요. 많이 혼났고, 많이 배웠고, 잘 놀았죠. 끝날 무렵엔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주말 드라마는 처음이었는데 시청률이 40%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신기했고요. 선배님들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했지만 작품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나도 회식한다고 하면 이렇게 많은 배우가 참석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작품으로 모두 다 행복해하니 저도 덩달아 행복해졌어요.

50부작이라 촬영 기간이 길었던 만큼 정도 많이 쌓였나 봐요. 어쩌면 긴 호흡으로 한 캐릭터를 연기해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을 거예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 좋은 레슨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촬영장이 연습장이 되면 안 되겠지만 현장에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최대한 준비해서 현장에 가지만 선생님들 하시는 거 보고 많이 깨닫게 되죠. 그리고 대사할 때 선생님들이 “형식아, 그 대사의 포인트가 뭐야? 여기에 강조를 해야지” 하시면서 대사의 장음, 단음까지 고쳐주셨어요. 그렇게 혼나면서 배웠는데 그것도 애정이 없으면 안 가르쳐주신대요. 그만큼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다들 저를 에뻐해주신다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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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상류사회> <화랑> <힘쎈여자 도봉순>까지 주연 캐릭터를 맡았는데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가족끼리 왜 이래>를 할 때와는 달라졌을 거 같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을 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타이틀롤은 (박)보영 누나가 연기하는 도봉순이었지만 제 역할도 너무 중요한 거 같아 부담이 됐죠. 감독님도, 보영 누나도 그걸 왜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느냐며 힘을 북돋아주셨는데, 정말 왜 그렇게 부담이 됐나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그 부담감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나요?

숨을 곳이 없다고 느낀 거 같아요. 그 전까지는 선생님들이 계셨고 기댈 수 있는 형이라도 있었는데, 거기서는 제가 형 소리를 듣는 입장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거죠. 그 전까진 선배님들이 먼저 논의해서 상황을 만들어나갔지만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처음으로 그런 책임감을 느끼니까 부담감이 확 오더라고요.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조언해줄 사람이 있었는데 이젠 스스로 정신 차리고 가야 한다는 느낌? 이 작품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헛구역질까지 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까 괜찮더라고요.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까 돌이킬 순 없고, ‘에라, 모르겠다’는 느낌?(웃음)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버거움이 있었을까요?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한다기보단 개인적인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무시당하지 않는 수준의 연기를 하고 싶었고, 내가 느낀 바를 사람들도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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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멤버로 연예계에 입문했는데 연기 경력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늑대의 유혹>이라는 뮤지컬을 할 기회가 갑자기 생겼어요. 연기도 할 줄 모르는데 무슨 뮤지컬인가 싶었지만 이것도 기회려니 싶어 연습실에 갔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당시 제 배역에 더블 캐스팅됐던 배우의 말투랑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어요. 그러고는 무대에 올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죠.(웃음) 하지만 연기를 하며 라이브로 노래하는 게 재미있어서 나름 몰입하며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작품을 끝내고 회사에 얘기했죠. 뮤지컬을 계속하고 싶다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연기를 못하니까 많이 깨지고 혼났죠.

그렇게 깨지고 혼나면서도 계속하고 싶었던 걸까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비록 못한다고 혼났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는 거잖아요. 그렇게 알아갈 수 있는 거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멋모르고 뛰어들었구나 싶기도 하지만.(웃음)

제대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진 않았나요?

그때부터 회사에 요청해서 연기 레슨을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자기가 하는 걸 똑같이 따라 하라고 했고,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니까 했죠. 뮤지컬을 처음 할 때 다른 배우를 보고 따라 했던 것처럼. 그런데 현장에 가서 연기할 때 감독님이 다른 식으로 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시는데, 당연히 안 되죠. 그렇게만 연습했는데. 결국 창피해서 얼굴이 시뻘개졌어요.(웃음) 그렇게 깨달은 거예요. 이 작품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내 캐릭터가 어떤 성격인지도 모르고 뭘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잘못 가도 너무 잘못 갔던 거죠. 그래서 당장 레슨을 접고 대본 분석부터 시작했어요. ‘얘가 왜 이런 대사를 했을까?’ 인물의 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공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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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기회는 언제 왔나요?

<시리우스>라는 4부작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 감독님과 대화가 되더라고요.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어요. 스스로 작품에 접근하고 정리해보니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그렇게 혼자서 공부하는 버릇을 들였죠.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보험을 들어놔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래서 연기 선생님을 찾아가 내 생각이 맞는지 체크해보고 디테일을 다듬은 뒤 작품에 들어갔죠.

처음에는 연기가 재미있어서 따라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기와 승부를 벌이게 됐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혹시 승부욕이 강한 편인가요?

내성적인 아이도 승부욕은 있을걸요? 뭘 하든 잘하는 게 중요해요. 잘하지 못한다고 느끼면 혼자 열 받고, 호구가 된 기분마저 드니까요.

결국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겠군요.

일단 제가 생각한 것만큼 나오지 않으면 남들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스스로 컨트롤이 된다고 느껴야 남들이 원하는 것도 볼 수 있죠.

어쨌든 현장에 의지할 상대가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으로 체감한 셈이군요.

그래서 (박)서준이 형한테 연락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형이 <화랑> 할 때 느낀 걸 조금 알겠다고.

인스타그램을 보면 두 분이 정말 친해 보이더라고요.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할까요? 누굴 만나도 제 모습 그대로 보일 수 있어야 편한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서준이 형과 같이 있으면 편안하면서도 재미있어요. 방탄소년단의 태형이(뷔)도 싹싹하죠. 원래 서준이 형이나 저는 자주 연락하는 타입이 아닌데 태형이가 단체 카톡방에서 종종 ‘밥 먹어요. 한번 봐요’ 이러는 덕분에 만날 기회도 생기고, 자주 안부도 전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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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일을 하면서 낯선 사람을 만날 일이 많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기회도 있었으니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믿음도 생기지 않았을까요?

궁금하죠.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선배님이나 또래 배우들이 어떤 성격일지, 어떤 사람일지, 어떤 생각을 할지. 그래도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누군가와 잘 맞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걸 보면 제가 인복이 있나 봐요.

<슈츠>에서 연기한 고연우는 원작처럼 초능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기억력이 대단한 인물인 거 같아요. 혹시 본인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걸 갖고 싶나요?

현실적으로는 고연우처럼 천재적인 기억력? 초현실적인 능력 중에선 순간 이동. <점퍼>라는 영화를 보고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행 가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 여행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제가 워낙 나다니는 걸 귀찮아해서 집에만 있는 편이기도 하고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있고, 나름 외향적인 취미를 즐기는 거 같던데요.

스쿠버다이빙이랑 스키를 좋아해요. 대체로 수상 레저가 좋아요. 물을 굉장히 좋아해서. 관광지에 가서 돌아다니고 쇼핑하고 맛있는 거 사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대체로 휴양을 하거나 액티비티를 즐기는 편이에요.

몸 쓰는 걸 좋아하나 봐요.

원래 집에 있을 때는 세상만사 귀차니즘인데, 몸 쓰는 걸 정말 좋아하긴 하나 봐요. 그걸 하려고 움직이는 걸 보면.(웃음) 어쩌면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 큰 편이라 뭐든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해보죠.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건 싫어요.

혹시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화랑>에서 액션 신이 많아서 좋았어요. 들끓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 영화에서도 <신세계>나 <비열한 거리> 같은 작품을 좋아해요.

아무래도 선이 굵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슈츠>에서 연기하는 고연우는 전문직 변호사로 남성적인 매력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기존에 맡았던 역할이 재벌 2세 혹은 자수성가형 기업가 등 주인공의 주변 환경으로 규정되는 인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슈츠>의 고연우는 그 인물의 능력 자체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단 나름의 성장기가 있어요. 처음부터 변호사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요. 꿈은 있었지만 여건이 마땅치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되죠. 애초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애들과는 다른 날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게 새롭게 느껴졌고요. 사실 다른 캐릭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짜증 나는 일일 수도 있죠. 평생 공부만 해서 그 자리까지 왔는데 갑자기 대학교도 안 나온 애가 제일 잘나가는 로펌에서 일하니까.

어쩌면 고연우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좋은 입장일지도 모르겠어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은 아이돌 가수가 갑자기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는 이들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근본도 없는 애들이 설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런 선입견이 있다 해도 어쩌겠어요.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두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에 신경 써야지. 그냥 제가 감당할 몫인 거 같아요. 언젠가 사람들이 ‘박형식이 나오는 작품이면 봐야지’라는 말을 할 때까지 해보는 거죠.

옐로 골드 케이스 티파니 스퀘어 워치 가격 미정 티파니. 청재킷 리바이스.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로즈 골드 케이스 티파니 이스트 웨스트 오토매틱 워치, 로즈 골드&파베 다이아몬드 티파니 T 투 링 모두 가격 미정 티파니. 터틀넥 톱 띠어리.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주목받는 걸 즐기는 편이었나요?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밴드부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대회에 나갈 때마다 3등 안에 들었어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죠. 좋아서 했는데 상도 받게 되니까 내가 잘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입문한 걸까요?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밴드부원들과 함께 시에서 주최한 대회에 나갔어요. 고등학교 올라가면 다들 뿔뿔이 흩어질 테니 무대에서 난리나 쳐보자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1등을 해버렸죠.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캐스팅 매니저들이 저한테 막 명함을 주더라고요. 사실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고, 명함에 적힌 회사들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엄마한테 명함들을 보여주니까 “네가 가능성이 있나 보다. 이 사람들이 괜히 명함을 준 건 아닐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오디션을 봐서 떨어지면 마음을 접고 공부에 전념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는데 선택돼서 연습생 생활이 시작된 거죠.

어쩌면 대단히 갈망해온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할 때도 있지 않나요?

신기하죠.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엄마도 신기하다고 했어요. 엄마한테 자기 아이도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혹시 뭘 시키면 되느냐고, 어떤 레슨을 받으면 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대요. 그래서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돈을 써본 적 없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들 한대요.

일거수일투족을 주목받는 유명인이 돼서 불편하진 않나요?

만약 외향적인 성격이었다면 불편했을지도 몰라요. 눈을 피해 조심히 다녀야 하고, 언행도 조심해야 하고, 술에 만취해서도 안 되고. 하지만 워낙 집에만 있는 편이라 제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도 없을 거예요.(웃음)

얼마 전에 공개된 허진호 감독의 단편 <두 개의 빛: 릴루미노>라는 작품에 출연했던데, 좋은 의미로 만든 작품이더라고요.

맞아요. 그래서 좋은 취지에 도움이 되고자 재능 기부 차원에서 출연했어요.

저시력장애인들을 위한 VR 시력 보조 앱인 ‘릴루미노’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작품인데 망막 색소 변성증(RP)이라는 시력장애를 앓는 인수라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사실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시력장애라는 게 그냥 눈이 안 보이는 증세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아예 눈이 보이지 않는 ‘전맹’을 생각하죠. 그런데 생각보다 시각장애인 중에 전맹의 비율이 적어요. 전체 시각장애인이 25만 명 정도 된다면 전맹은 5만 명 정도죠. 20만 명이 다 저시력장애인인 거예요. 아침에는 뿌옇게 사람 형태는 보인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밤에는 빛이 없으니 아예 안 보이는 거고.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그런 사실을 알게 됐어요.

결국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된 계기였던 셈이네요.

덕분에 여태껏 실수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각장애인도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거. 단지 잘 안 보일 뿐이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촬영에 들어가기 전 RP를 겪고 있는 분들과 만나서 대화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밝았어요. 사실 만나기 전까진 뭘 물어봐야 할지 너무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로 농담도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게 선입견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시각장애인분들이 두리번거리면 ‘어디 찾으세요?’라고 물어봐야지, ‘어디로 데려다 드릴까요?’라고 묻는 것도 실례였을 거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선의인 것 같지만 그분들에겐 선의로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사소한 말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영화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도 출연을 결심하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허진호 감독님이 연출하고 한지민 누나가 같이 출연한다고? 진짜? 나랑? 왜?” 이렇게까지 물어봤으니까.(웃음) 정말 기분 좋았죠. 영화 촬영을 정말 해보고 싶었거든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금방 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비록 단편이고 캠패인성 영화라고 하지만 허진호 감독님 작품이라니, 로또 맞은 기분이었죠. 솔직히 장편이었다면 저를 캐스팅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그렇게 원하던 영화 촬영을 해본 소감은 어땠나요?

저랑 정말 잘 맞아요.(웃음) 느긋한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드라마 촬영은 그렇게 하기 힘드니까. 사실 두 시간 방송 분량을 일주일 만에 뽑아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영화 촬영하면서 믿기지가 않았어요. 오후 6시에 촬영이 끝나는 거예요. 하루에 세 신 정도만 찍었는데, 한 신을 찍기 전에 리허설하고, 동선 정리를 한 다음에야 촬영에 들어갔죠.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모니터를 같이 보고 대화하며 한 장면씩 가다듬는 과정이 좋았어요. 어떤 식으로든 좋은 기회였던 건 분명해요. 허진호 감독님을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아무래도 드라마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세함이 있죠.

드라마 현장에서는 다시 찍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쉴 시간도 없으니까. 그러니 애초에 제가 정말 잘해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몸에 계속 과부하가 걸려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래야만 되는 것도 같아요. 그렇게 컨디션을 끌어올린 상태를 지속해야 피곤한 줄 모르거든요. 한번 멈추게 되면 그때까지 쌓여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올 테니까요. 그리고 작품 끝나는 순간 쓰러져서 연락이 안 되죠.(웃음)

연기를 하다 보면 벽에 부딪치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을 텐데.

꼭 지나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성장통? 차라리 좀 더 빨리 느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고. 왜냐면 제가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한 것도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거 같아서.

그렇지만 딱히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아 보여요.

그냥 그런 성격인가 봐요. 누군가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지만 저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면 실망감이 너무 클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잘해내고, 제가 잘하는 걸 남들이 좋아해줄 때 성취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처음 뮤지컬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한 것을 계기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이젠 배우로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걸까요?

청사진은 너무 거창하고, 그냥 계속 작품을 하고 싶어요. 대단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까진 해본 적 없지만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난다면 해보는 거죠.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저 연기를 좋아하는 수준이지만 이젠 진짜 잘하고 싶어요. 정말 그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글_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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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패션 에디터권지원
사진김희준
헤어임정호
메이크업이지영
스타일링이윤경
출처
3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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