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진의 생존

대한항공 승무원 박창진은 아직 살아남아 해야 할 말을 한다.

박찬용(이하 용) 대한항공에 입사할 때 다른 회사에도 합격했다고 들었어요. 1996년도였나요?

박창진(이하 진) 은행, 호텔, 대한항공, 그리고 다른 항공사에요. 은행은 당시 한일은행이었고, 롯데호텔 부산이 그때 막 생겼을 때예요.

대한항공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6월 중순부터 15일 정도 교육받고 바로 인턴으로 투입되었어요.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신기주(이하 주) 뭐가요?

사람들 대하는 게 나름 적성에 맞는구나 싶었던 거죠. 부산-제주만 왔다 갔다 하는데도 재미있는데, 외국에 다니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 모든 걸 뿌리치고 항공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2년 전이네요.

예전에는 LA 한인의 날 행사에 꽃마차를 타는 퍼레이드 같은 게 있었어요. 사람들도 많이 오시고요. 그런 행사에 가서 사람들을 보니 여러 분들이 항공사에 대한, 대한항공에 대한 묘한 향수 같은 이미지를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내가 더 자신을 관리하는 멋있는 승무원이 되어야겠구나. 내가 이 회사의 대표 승무원이다. 누가 시켜서 대표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대표라는 의식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한 일이 있나요?

처음 입사하고 3~4개월쯤 되었을 때, 기내 면세품을 판매하는데 어떤 승객이 제게 그 향수 번호를 말씀하셨어요. “250번 향수 주세요.” 그때 저는 에르메스를 몰랐어요. 이 브랜드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으면 헤르메스잖아요. 그래서 “헤르메스 향수 말씀이신가요?”라고 더듬더듬 이야기했더니 이분이 이건 에르메스로 읽는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비행기 안이 그렇거든요. 퍼스트 클래스에는 우리가 한 번 뵙기도 힘든 회장님이나 고위 관료층도 있고, 이코노미 클래스에는 비행기 처음 타보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때부터 패션도 좀 알아야겠다 싶어서 안 보던 잡지를 보기 시작했어요. 겉보기에 그럴듯한 뭔가가 되어야겠다가 아니라, 면세품을 팔든 퍼스트 클래스 팀장을 하든, 저 자리까지 가려면 많은 수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도 많이 읽었어요. 화법, 심리, 태도에 대한 책을 거의 한 달에 한 권 이상, 많을 때는 3~4권도 읽었어요.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제가 나이에 비해 신체 사이즈를 잘 유지하는 이유예요.

안 그래도 22년 동안 몸 사이즈가 똑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은 조금 살이 쪘지만요. 항상 외국에 나가면 1~2시간 이상 운동하고, 한국에 있을 때도 쉬는 날이라고 집에서 쉬기 보다 2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운동을 했어요. 이런 체력 관리가 몸의 외형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어요. 기내에서 일할 때 고된 환경을 견디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면서 묘한 목표 의식이 생기기도 했어요.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팀장이 되자’, ‘이사가 되자’ 이런 게 아니라, 나중에 후배들이 저를 봤을 때 ‘아,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목표였어요. 선배들 중에 ‘아, 저 선배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선배가 있고, 또 어떤 선배는 ‘참 닮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죠. 그게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아니기도 하고요. 저는 그렇게 닮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랬으니까 나 자신을 관리하게 되었죠.

승무원들은 어떤 때는 유럽에 가기도 하고 미국에 가기도 할 텐데, 그러면 시차가 커져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계획을 짜둬요. 승무원 일이 일상이 되다 보면 그냥 가방에 사계절 옷을 넣어 들고 다닐 수도 있어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파리에 가면 제가 해야 할 일을 쭉 정해둬요. 그다음에 운동이나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을 항상 정해뒀죠. 늘 수첩에 기록하고 계획했어요.

그런 식으로 직장 생활을 하셨으니 고과도 잘 받고 승진도 빨랐겠어요.

그렇죠. 사무장을 2005년에, 9년 차에 달았으니까요. 직장 생활의 반 이상을 관리자로 보냈죠. 팀장을 하면서도 조현아 씨에게 1등 상을 받을 정도로 팀 관리도 잘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이 사건이 나오고 나니까 이전의 성과나 예전의 저는 없어지고 음해를 당하는 저만 있더라고요.

실례지만 저희가 그 회사의 승진 속도를 잘 몰라서요. 9년 만에 사무장이 되면 빠른 건가요?

보통 30% 정도가 사무장까지 가요. 최고로 빠른 건 아니었지만 선두권에 있었죠.

조직에서 계속 좋은 성과를 내던 분이 불의의 사건을 겪고….

원래는 제가 그 스케줄의 비행을 가는 게 아니었어요. 워낙 오너 일가가 이성적인 사고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오너 일가가 비행기에 탈 때면 그 안에서 제일 지적을 안 받을 것 같은 승무원들을 발탁해요. 그때 원래 스케줄대로였다면 저는 호주로 가야 했어요. 그런데 “그 사무장으로는 안 된다. 네가 가야 한다”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누가 이야기한 거예요?

객실 본부장이 항상 (비행에 투입되는 인원) 할당을 해요. 그날은 정말 가기 싫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데 뉴욕에 가기 이틀 전에 제가 하노이에서 들어왔는데, 퍼스트 클래스에 타신 승객이 제 서비스에 너무 감동을 받았다며 회사 고객 센터에 전화를 하신 거예요. ‘이 사람 너무 대단하다’고 칭찬을 너무 많이 해주셔서 회사 안에서 ‘너 아니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된 거죠. 너밖에 없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사실 그 승객에게 감사할 일인데….

(침묵) 사건 초기에는 ‘왜 이렇게 다 운명적으로 엮였을까’라고도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다른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원래는 안 가려다가 그런 곡절이 있어서 타게 됐다는 이야기는 봤어요. 저도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저는 자신 있었어요. 그 가족이 다 결이 같기 때문에, 아버지부터 그런 걸 많이 겪어봤으니까요. 회사 오면 징계받을 거라고 생각했고. 징계 받으면 그냥 또 극복하면 돼요. 고과 마이너스 된 건 또 플러스 만들면 되고요. 그분이 너무 황당한 일을 저지른 거죠.

대한항공의 그 뛰어난 직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만큼 매력 있는 직장인가요?

일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어요. 비행기 안에서는 물도 혼자 먹을 수 없어요. 살 데도 없고. 승무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 작은 세계에서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게 제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 쌓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폭이 아주 넓어져요. 보통의 경우에는 하루에 400명과 대화하거나 어떤 일을 다루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해야 해요.

그렇죠. 12시간 동안 400명을 만나는 거죠.

여러 사람의 장단점을 보다 보니 나 스스로가 더 성숙해지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이란 회사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는, 외국 나가보면 저희만큼 훌륭한 항공사가 없기 때문이에요. 외국에 나가서 외국 승객과 이야기를 해봐도 대부분 “이만큼 서비스하는 건 처음 봤다. 너희는 정말 베스트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외항사를 타보면 알게 되죠.

정말 한국인 항공사 승무원들은 센스가 뛰어난 것 같아요. 공감 능력도 뛰어나고요.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일이 재미있었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요?

네. 사람들 눈치를 봐서 ‘저 사람이 어디가 가렵지? 왜 저럴까?’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해보고 또 문제점을 해결하고요. 심각하게는 아픈 승객 때문에 비행기가 비상 착륙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내가 승무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걸 어떻게 해보나’ 싶은 거죠. 저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많이 주고 싶어요. 저는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이고 나쁜 점도 많죠. 그런데 그거 말고라도 제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다는 건 좋잖아요. 저도 사회적 불만이 많았던 때가 있어요. 내가 가진 게 없으니까 남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저보다 더 모자란 사람도 있고, 그걸 채울 수 없는 사람도 있죠. 나이가 들면서 선한 영향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모두에게 여러 가지 입체적인 모습이 있죠. 모든 사람에게 선한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을 거고요. 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음해를 한다면 본인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4년 동안 집단적 음해를 당한 건가요?

그 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말을 들었죠. “예전에 박창진과 비행했는데 싸가지가 없더라.” “박창진은 인성이 안 좋아.”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어요. 루머라는 게 그렇잖아요. 어느 순간 루머가 만연해지고 그 루머가 돌고 돌다 보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면서 사람들이 믿게 되더라고요.

믿는 게 사실이 되니까요.

네. 어느 순간 사실이 되더라고요. 제가 회사에서 당하는 입장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그걸 변호해주거나 제게 긍정적인 면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대중의 심리가 그렇게 가는 것 같았어요.

교실 같은 곳에서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잘못을 안 했어도 덜 다가가게 되는 것처럼요.

네. 그런데 저희는 팀제로 비행을 해요. 팀 말고 외부 승무원으로 비행해도 저를 만날 승무원은 20~30명밖에 없어요.

대한항공 승무원은 총 몇 명쯤 되나요?

약 7000명?

그 7000명을 다 안다는 건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박창진 사무장과 비행을 해본 사람이 7000명일 수는 없는 거고, 지금 말씀하신 20명 남짓이겠죠.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할 만한 사람의 숫자는 훨씬 적을 거고요.

회사에서 내쳐지는 사람들은 똑같은 수순을 밟아요. 우선 어떤 식으로든 음해가 시작돼요. 땅콩 회항 사건이 처음 났을 때도 충격적인 찌라시가 돌았어요. 제가 많은 여성 승무원과 문란한 성관계를 갖고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해왔다고요. 제가 자기 관리 차원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40대부터 보디 프로필 사진을 매년 찍었어요. 그 사진을 캡처해서 사람들이 ‘찌라시’를 만들었어요. 제게는 운동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목적이 있는 목표였어요. 그 일을 폄하하고 제게 수치심을 주었죠.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보니 관리자가 지시하고 동료 승무원이 그걸 만들어서 돌렸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제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올린 걸 받아서 캡처했고요.

만든 사람은 동료고, 지시한 사람은 상사고, 올라가다 보면 ‘그분’이 있을 수도 있고요.

저는 후배들한테 본보기가 되고 싶었어요. 늘 동료나 후배들에게 이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이야기했어요. 서비스하면서 승객들의 지저분한 음식 접시를 치울 때 자존심이 무척 상해서 그만두고 싶다고 한 후배가 있었어요. 좋은 학교 나왔고 영어 성적도 좋아서 어렵게 대한항공에 들어왔는데 이런 걸 하려고 왔나 싶다는 거예요. 그때 했던 말이 있어요. “너의 가치는 네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달린 게 아니고, 네가 그 사람의 오염된 식판을 치운다고 네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야. 네 마음에 어떤 자긍심이 있는지에 따라 너의 자존감도 달라져. 내게 반말하는 승객도 있고 교양 없이 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안에 자긍심이 높으니 내 자존감은 떨어지지 않아. 너도 (자긍심을 갖고)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것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거야.”

그 자긍심은 승무원으로서의 자긍심인가요, 아니면 대한항공 직원으로서의 자긍심인가요?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이죠. 제가 못나서 그 사람에게 맞춰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오히려 더 포용력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내 일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이 유니폼 안에서 이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맞춰주는 겁니다. 제 인간적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고요. 그런 게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억울한 음해를 당했을 때 견디기 힘들 텐데요.

그래서 힘들었어요.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카더라’ 식의 음해나 수치스러운 말을 많이 들었어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 수준의 이야기들이 있었죠. 블라인드 게시판 같은 곳에 “박창진 그 새끼는 회사에서 좀 꺼져야 되는 거 아니야? 좀 나가라” 이런 말이 올라오곤 했죠.

고통스러운 건 이런 것도 있겠죠. 그런 얘기를 뒤에서 해요. 앞에서는 티를 안 내요.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제가 그 일 이후로 4년을 대한항공 안에 있었던 이유가 있어요. 적어도 나라도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일 말고 회사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자기 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부당함을 대놓고 말하진 못해도 나라도 항거하고 거기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 본보기로 남고 싶었어요. 또 혹시 나중에 저와 비슷한 일을 당하는 회사 동료들이 생기면 ‘아, 박창진이 저렇게 했었지’라는 걸 보고 용기나 지혜를 갖게 되길 바랐어요. 하지만 계속 모함을 받다 보니 어느 순간 동료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어요. 종양도 20cm 가까이 커졌어요. 종양 제거 수술을 할 때쯤엔, 원래 제 에너지가 100%라고 하면 99%는 소진된 상태였어요.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수술할 때 솔직히 회사를 관둘 생각이었어요.

99%의 에너지가 사라지고, 이제 1%도 아닌 0.1% 정도 남아 있을 때였군요.

서서히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조현민 씨의 음성 파일 유출 사건이 생긴 거죠. 얼굴을 드러내놓고 우리 내부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은 잔 다르크가 된 것과 비슷해요. 제가 해석하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는, 그냥 시대적으로 그런 이미지가 필요했다는 거예요. 우리를 대신해줄, 우리를 응집시키고 어떤 방향으로 몰이를 할 수 있는 인물로 잔 다르크를 사용한 거죠. 그 결과 사람들이 원하던 이익을 얻었어요. 어쩌면 제가 지난 4년간 그 과정을 겪었는지도 몰라요. 제가 내부 고발자로, 한 사람의 노동자로 이야기하고 나서 동료들이 받은 혜택도 있어요.

무엇이 바뀌었나요?

오너 일가의 간섭이 많이 없어졌어요. 말도 안 되는 행동의 제약이라거나 일관성 없는 지시가 좀 덜해졌죠. 조현아 씨가 주로 했던 면세품 판매 강요도 줄어들었어요. 예전에는 1등부터 꼴찌까지 대자보를 붙여놨어요.

승무원의 판매 실적을요? 기본적으로 승무원은 기내에서의 안전 요원 아닙니까?

조현아 씨는 자기 이익에 더 집중했어요. 제 사건 전에는 승무원들의 식사도 다 안 실어줬어요. 퍼스트나 비즈니스 클래스에 남는 식사가 있으면 그걸 먹으면 된다는 식이었어요. 그건 안 먹으면 버리니까. 물론 그런 걸 제가 주장하진 않았지만 제 사건을 통해 내부 발언이 나올 수 있게 됐죠. 이런 문제도 있다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문제가 드러나고 해결되었죠.

조금은 개선되었으나 당사자인 본인은 에너지가 99% 소진되었고요.

사람이라는 게 생긴 꼴이 있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가족 입장에선 힘들었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 써야 할 시간에 옆집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리로 가시고.

그런 사람들이 있죠.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투의 어느 고지에서 혼자 살아남았어요. “왜 도망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봤더니 “내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왜 손해 보는 짓을 하지?’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버지의 의지이자 인생 철학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걸 닮아가는 것 같고요.

그러다 결국 조현민 전무가 화를 내는 녹취록이 공개됐어요. 처음에 대한항공 측에서는 조 전무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죠. 그러자 녹음한 당사자 사원이 반박문을 발표했어요. “아마 열심히 임원분들이 일명 ‘커피 브레이크’ 미팅 후에 총대를 메고 제보자를 색출하시겠죠. 솔직히 그래서 겁도 납니다. 그래도 박창진 사무장 보면서 힘을 냅니다.”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조 전무의 녹취록 공개 뒤에는 박창진이 버텨온 4년이 있었다고요.

음, 약간은 슬프기도 했어요. 참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싶어서요. 4년이란 시간 동안 저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 순간순간, 4년 동안 정말… ‘만고불변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이 사건에서 4년을 버텼던 제 의지는 하나도 잘못된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제대로 발현된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그 두 가지 마음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가장 바닥을 쳤을 때가 언제였나요?

한번은 15년 정도 후배가 팀장으로 간 일이 있었어요. 그분이 저를 부를 때부터 ‘박창진 사무장님’이나 ‘선배님’이 아니라 ‘박창진 씨, 박창진 씨’ 하더군요. 이미 언어로 사람을 다운그레이드시킨 거죠. 나이 어린 사무장 후배가 그렇게 하니 그날 같이 갔던 입사 1년 차 여승무원도 똑같이 행동했어요. 제 구역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여승무원이 갑자기 저를 불렀어요. 갔더니 자기 구역 승객의 짐을 저보고 올리라는 거예요.

왜요?

남자니까 당신이 올려달라는 거죠. “저는 힘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했어요. ‘당신은 이제 회사에서 뒷방 신세인데 네 까짓 게 뭘 어떻게 하겠어’ 같은 상황이 연출된 거죠. 그때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다 뭉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내가 왜 이런 일까지 겪으며 여기 있는가’ 싶은 순간이었겠군요.

어떤 선배는 “너는 왜 회사를 계속 다니냐, 너로 인해 우리 동료 승무원들이 어마어마하게 불이익을 많이 받는다. 우리가 오너 일가에 반항하는 조직처럼 되어 있다. 그 이미지가 너로 비롯된 거다”라고도 하더라고요. 4년이 지나고 나니 제가 앞서 했던 행동의 본질이 없어진 거예요.

맥락이 다 끊겨버리니까요.

훼손되고 조작된 이미지만 남아 있는 느낌? 그런 이야기를 연륜과 경력이 있는 분이 하니까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너 진짜 찌질해서 여기 있는 거야’ 같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죠.

괴로웠겠어요.

이 일은 제 일이에요. 제가 포기한다는 건 제 자존감의 하락 같았어요. 자존심과는 좀 달라요. 제가 누군가에게 씨앗 하나를 심어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좀 더 버텨야겠다, 참아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신 더 침울하고 우울해졌죠. 식당에서도 저 혼자 밥을 먹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더 무섭죠. 제가 막 나서서 이러니. 인터넷으로는 지지할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당당하게 있으니 더 음해를 하더라고요. ‘봐, 쟤 멀쩡하네. 아프지도 않네’가 되는 거죠.

지금 시위 현장에서 얼굴은 가렸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승무원들이 있죠. 그런 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분들이 저와 같은 과정의 경험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나올 때는 어마어마하게 두려웠겠지만 집에 돌아갔을 때는 ‘적어도 내가 뭔가를 했구나’라는 성취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사측의 회유 같은 건 없었나요? 더 좋은 자리를 주겠다거나, 돈을 주겠다거나.

조현아 씨는 지금까지도 제게 구타를 하거나 고성을 지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때는 증거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법적으로 감형을 받았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저는 바보가 되어 있고,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고.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내친 거죠.

승무원직 자체가 매력이 있다면 다른 항공사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었어요?

승무원이라기보다는 제가 서비스업에 관련되어 있으니까 뭔가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죠. 그런데 그 목표가 직원연대라는 NGO 단체 같은 걸 만들면서 요즘 조금 수정됐어요. 제가 갑을 관계의 권력 불균형에서 오는 약자의 불합리함을 극렬하게 경험했는데, 그런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줄 수 있는 곳이, 이 일을 당해보니 없었어요.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고 외국에 나가면 돈도 많은 나라예요. 그런데 개인을 보호하는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지 않아요. 언젠가 그런 걸 개선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이 그런 단계일 수도 있고요.

조금 분위기를 바꿔볼게요. 2014년 그 일이 처음 일어나고 KBS <뉴스라인>에 출연하신 걸로 기억해요. 그때 입은 정장이 혹시 디올 옴므인가요?

아닌 것 같아요.(웃음) 다른 브랜드였을 거예요.

그때 심야 뉴스에 나온 사람치고는 옷을 너무 잘 입고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사진을 최근에도 다시 찾아봤는데, 아주 가는 타이를 멋지게 매고 나오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항상 멋있게 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얼마 전에도 어떤 기자에게 “병가를 낼 정도로 아프고 정신없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옷을 그렇게 멋있게 입고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허세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제 모습이 대한항공 직원과 저희 승무원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제게 대표를 주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저는 대한항공 대표 승무원이라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나왔기 때문에 더 좋은 모습, 승무원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머리에 까치집을 지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불쌍해 보이는 연출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말 반듯하게, 승무원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늘 강조하는데 대한항공이 망하라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대한항공이 더 좋은 회사가 되길 바라고, 대한항공을 사랑하고, 대한항공에 대한 긍지가 있기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이렇게 곪아 있는 문제들을 방치한다면 건전하게 나아갈 수가 없어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대한항공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저는 여전히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 같아요.

대한항공은 박창진을 사랑할까요? 박창진은 대한항공을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아,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웃음) 먼 훗날 알 것 같아요. 박창진이 대한항공을 사랑했던 사람이고 우리가 사랑했어야 될 사람이라는걸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확고하게, 100% 믿고 있습니다. 제가 대한항공을 음해할 생각이었다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많이 했겠죠. 저는 개선을 위한 이야기를 할 뿐이에요.

폭로가 아니라 비판인 거죠.

건전하게 바꾸자는 이야기예요.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오너 일가이기 때문에 그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대한항공이 어떤 회사가 되기를 원하세요?

일단 내부적으로 민주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번은 회장님 앞에서 유니폼 시연회를 할 때 제가 모델로 나갔어요. 회장님이 별로라고 하면서 “어때?”라고 묻는데 임원진 30~40명이 모두 별로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유니폼 담당이었던 조현아 씨가 화를 냈어요. “아빠!” 그러자 회장님이 “어, 그래?”라고 이야기했죠. 그러자 (간부들이 일제히) “제가 무식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시트콤이네요.

저는 대한항공에 좋은 인재가 정말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승무원도 외국 항공사 승무원보다 훨씬 뛰어나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우리가 더 좋은 항공사가 될 수 있는데, 그게 지금 시스템 때문에 막혀 있어요. 서비스업이 사람이 우선인데, 서비스를 수행하는 우리라는 사람의 가치가 없어진 거예요. 승무원인 우리가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여 고객 서비스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에 대해 오너 일가가 더 깊이 생각해야겠죠.

조직 문화가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건 오너 일가의 의사 결정이 모순적이기 때문이군요.

(오너 일가가 하는 건) 징계밖에 없어요. 말대로 안 되면 “징계! 징계! 벌줄 거야!”라고 하잖아요. 저는 2014년에도 다 설명드렸어요. 당신이 잘못 알고 있고, 여성 승무원은 잘못한 게 없고, 나는 나중에 징계를 받아도 되는데 지금 내가 내리면 어마어마하게 큰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거죠.

‘내가 내리라고 하는데’가 더 중요하군요.

대한항공의 좋은 인재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재정비되어서 더 좋은 항공사, 더 좋은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년 동안 잔 다르크가 되어서 99%의 에너지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조현민 씨가 컵을 집어 던지는 바람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죠.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앞으로 또 지난 4년 같은 고통을 당할지도 몰라요. 그런 두려움은 없어요?

이미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익명 게시판을 통한 음해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노조가 나서서 저를 제명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을 하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어요. 노조가 회사를 대신해 저와 싸우는 거죠.

노조가 내세우는 명분은 뭐예요?

제가 비판을 했다는 거예요.

그게 제명 이유가 될는지….

“어용 노조다. 노조는 조직원들의 어려움이 있을 때, 특히 내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건 노조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났다”라고 말했죠. 이미 그 칼날은 제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전면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집회 등등에 공식적인 이름은 제 이름이 나가고 있으니 제가 제일 먼저 여러 상황에 접하게 되겠죠.

전략적으로 박 사무장을 꺾으려고 하겠죠.

그렇지만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빤히 보이는 미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예상하고 있어요.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제 마음에 부끄러움은 없을 거 같아요.

그게 해피 엔딩은 아니라고 해도.

제가 시위에서 사회를 본 것도 얼굴을 드러내고 사회 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국회에 갈 때는 수술한 부위가 다 아물지도 않은 상황이었어요. 이틀 후에 빼야 하는 실밥을 앞당겨서 뺐어요. 나 말고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짐인 걸 알지만 책임감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생긴 대로 가는 것 같아요.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제가 이렇게….

아까부터 캡틴 아메리카 휴대전화 케이스가 눈에 띄었어요. 캡틴 아메리카를 좋아하세요?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캡틴 아메리카가 방패로 모든 걸 막아내잖아요. 어느 날 <어벤져스>를 보다 제 모습이 생각나는 거예요. 전 어느 순간부터 출근할 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예전에는 이 유니폼을 입었을 때 되게 좋았어요. 내가 정말 대표가 됐고,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제 모습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너무 따돌림을 당하니까 동료들에 대한 신뢰가 없어져서 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나가기 전에 ‘내 마음에 방패를 하나 쌓자. 내게는 눈에 안 보이지만 나를 보호할 방패가 있다. 그건 나의 선한 의지다’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런 방패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케이스를 어떻게 캐치하셨네요.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정말 종잡을 수 없거든요. 자기한테 이익이 되면 내 편을 들어주지만 자기한테 피해가 되면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더 고립되죠. 그럴 때 방패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고, 배신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

약간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조현아 씨도 그렇고 사람 개개인에 대한 미움은 없어요. 예전에는 나와 좋게 지낸 사람이 어느새 나를 음해하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많이 있죠. 제가 이런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에요. 나쁜 계획을 세워서 한 사람을 망가뜨리려 하는 흐름 말입니다. 대한항공이라는 회사 안에서, 혹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관계에서, 내부 고발자를 음해하려는 행태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뿐이죠.

계기가 있나요?

이 사건 후 1년 동안은 매일 명동성당에서 1~2시간씩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열심히 하던 어느 날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누구도 미워하지 마라. 그 감정이 너를 죽이고 있다.’ 그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감정적인 회오리가 왔어요. 그때는 정말 너무나도 미웠으니까. 조현아도 밉고, 나를 뉴욕으로 가라고 했다가 음해한 그 관리자도 밉고, 그 당시 내 옆에 있던 후배 승무원도 밉고, 그러다 보니 제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찼어요. 나중에는 그 미움이 목구멍 밖까지 나와서 질식하게 생긴 거예요. 미움이라는 감정이 가득 차서. 그때 깨달았어요.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이 외부에도 있지만 내 안에도 있구나. 내 마음속의 미움 때문에.’ 그래서 그 미운 마음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려 노력했어요. 그러고 났더니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살아난 거예요.

그러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대가를 치렀죠.

그렇죠. 그러면서 또 매일 다른 이야기를 듣고요.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아직 정신과 치료도 받나요?

받고 있죠. 제가 공황장애를 앓고 말초신경에 교란이 와서 잠을 못 자요. 숙면하지 못하고 한 시간 정도 졸긴 졸아요.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일반 직장인도 힘든데….

14시간짜리 비행을 가는데 출발하기 4시간 전부터 준비를 하고, 비행기에 내려서 호텔 가고 씻고 어쩌고 하면 30시간씩 못 잔 적도 있어요. 회사 안에서 ‘박창진이가 일을 안 한다’는 음해가 많았지만 저는 한 번도 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지금도 후배 승무원과 같은 일을 하지만 저는 이 사건 이후에 더 노력했어요. ‘내가 선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고 누군가 나를 통해서 작은 용기를 심길 바란다면 내가 나를 더 채찍질해야 한다고, 내 업무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인적인 힘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일이 내 존엄인 거죠.

그렇죠. 옛날에는 대한항공이 나인 것처럼, 회사가 나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그게 아니어도 이 일은 내가 좋아했던 일이고, 내가 긍지를 가졌던 일이고, 내 성장의 발판이었던 일이에요. 그 큰 꿈이 없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제 일을 열심히 잘 수행하는 게 제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도 조현아 부사장과의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한동안 그렇게 많이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요. 오히려 나에게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네?

(웃음) 너무 웃긴 이야기인데, 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더 큰 피해를 봤을까 싶어요. 저도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나마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박창진, 네가 이 정도의 십자가는 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걸 내게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요. 제가 그 짐을 지고 소중한 의미를 받을 수 있어서요. 저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상황을 극복해나갈 만한 힘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려 한 것 같아요. 너무 잘난 척을 했나요?(웃음) “(조현아에게 혼나던) 그 승무원을 그냥 두지 네가 왜 그랬냐”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 어린 승무원이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게 빤히 보이잖아요. 회사 가서 징계받고, 다른 직원들 눈초리도 받고, 그걸 제가 막아주고 싶었던 거죠. 그때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만요. 지금 와서는 ‘아, 나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요.

사실 비행기를 타면 가끔 너무 신기해요. 공항에 가면 수천 대의 비행기가 하루에도 여러 번 내리는데 모든 비행기가 그 스케줄대로 정확하게 움직여요. 나는 그냥 앉아 있으면 되고. 비행이라는 게, 상상하기엔 하늘길이 없이 아무 데나 다닐 것 같지만 항로가 있고 정확한 시간이 짜여 있죠. 사무장님도 그런 인생을 살아왔으니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습관이 몸에 뱄을 테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비유하자면 항로에서 이탈했거나 항로가 갑자기 변경되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겪으신 거거든요. 지금은 항로를 따라가고 있나요? 지금은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말씀하신 대로 승무원은 항상 시간과 장소를 엄격히 지켜야 해요. 저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그러다 느닷없이 추락하게 됐죠. 내 목적지로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추락이란 건 상상하지 못했던 거죠. 반대로 승무원은 비상사태에 대한 교육을 받아요. 승객을 생존시켜야 하고, 비상 탈출을 시켜야 하고. 그런 기지가 제 몸 안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비행기로 치자면 추락한 비행기이고 외딴섬에 홀로 생존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걸 잘 극복해 다시 제 항로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제 목표는 정년퇴직 때까지 승무원이 되어서 나중에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제 삶이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지든, 이 생존기를 통해 다시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그 이후에 또 다른 저만의 루트를 개발할 것 같고요. 고난의 시간이 있지만 그걸 통해 또 새로운 생존 전략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 이야기를 돌려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어내는군요.

하다 보니까 트레이닝이 되는 것 같아요.

주변에 힘이 되는 사람이 있나요?

제게 큰 위안은 사람이나 상황이 아니라 제가 믿고 있는 의지 같아요. 이 일이 어떤 식으로 가든, 제가 지금 하는 행동이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는, 이게 바른 일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제게 있어요.

스스로 떳떳한 게 가장 중요한 거네요.

그게 제일 큰 위안이 되는 거 같아요. 내가 그 일에서는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활에서는 부끄러운 게 많이 있어도.(웃음) 회사 생활에서도 제가 잘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감내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제 가족, 저와 신뢰 관계가 있는 친구들이 제 편이 되어줘요. 그거면 충분해요. 모두가 저를 좋아해주고 인정해줄 수는 없겠죠.

승무원이 아닌 박창진은 어떤 사람일까요? 직업에서의 사명감이 나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자연인인 나를 설명해야 하기도 하잖아요. 그때의 내가 누군지 아는 일이 쉽지 않긴 하지만요.

저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사람이나 상황에 공감하고 반응할 줄 알아요. 제가 땅콩 회항 사건을 겪고 깨우치는 과정에서 저란 사람에 대해서 정말 깊이 생각해봤어요. ‘내가 피해자가 맞나? 내 잘못인가?’부터 시작해서 그 근원에까지 들어가봤어요.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까지. 타인에 의해 시작된 사건에 의해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게 됐지만, 지금은 박창진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겼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요. 없으면 좋았을 일로 시작됐지만 제게는 (땅콩 회항 사건이) 다른 계기가 되었어요.

아직도 휘트니 휴스턴의 ‘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을 가장 좋아하세요?

영어 ‘디그니티(dignity)’를 자존감이라고 번역하잖아요. 그 노래 가사에는 ‘누군가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네 인생을 살 수 있는 가장 큰 자존감을 지키는 게 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제게 일어난 일을 통해 두 가지를 배웠어요. 자존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떻게 보면 승무원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줘야 하는 일이에요. 주위에서 실패한 승무원을 보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이 일에서 낙오해요. 내 마음에 사랑이 없으니 남에게 친절할 수가 없고, 그 사람에게 공감해줄 수도 없는 거예요. 내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라면. 그래서 그 노래가 제 인생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을 영원히 사랑하고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군요.

나를 사랑하라는 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저희가 두 명이 하는 인터뷰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하는 고정화된 질문이 있는데요.

뭐길래 이렇게 쑥스러워하세요?(웃음)

사무장께 해도 되는 질문인가 해서요. 행복하십니까?

현재의 저는 불행한 저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고요. 제가 이렇게 안정을 찾고 제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찾으며 깨달은 게 있어요. 외부 환경이 어렵고, 몸이 아프고, 이런 것이 내 행복의 가치를 꺾는 게 아니에요. 내가 온전히 내 자신을 받아들였고,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고 있다면 더 이상 누군가에게 훼손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 관점에서 내가 내일 죽더라도 “아,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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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KIM CHAM
출처
36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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