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형식 1편

박형식은 자신만의 보폭으로 미완의 시간을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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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슈츠>에 출연한다던데, 첫 촬영은 언제인가요?

원래 내일이었는데, 며칠 미루어졌어요.

촬영 하루 전날 쉬지도 못할 뻔했군요.

촬영 전에는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이니 하루 전에 뭘 한다 해서 연기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에요. 물론 조금 더 쉴 수 있으니 좋긴 하죠.(웃음)

캐릭터의 직업적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전작들과 달리 <슈츠>에서는 변호사라는 전문직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지 않나요?

전문직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긴 해요. 게다가 장동건 선배님과 함께 특별한 브로맨스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화랑>에서도 박서준 씨와 나름의 브로맨스 관계를 보여줬는데.

아무래도 그때와는 다른 느낌일 거예요. <슈츠>에서는 장동선 선배님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개인적으론 그런 면에서도 기대돼요.

남남 케미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감이 있나 보군요.

<스물>이나 <청년경찰> 같은 청춘물에 출연해보고 싶었어요. 진짜 잘할 자신도 있고요. 오래된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도 모이면 ‘초딩’처럼 어울리잖아요. 남들이 보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래된 친구들끼리 있다 보면 그런 재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작품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성적인 누아르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나이를 먹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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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터놓고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이 꽤 있나보죠?

많은 건 아니고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라 친한 사람과 계속 만나는 걸 좋아해요.

직업 특성상 꾸준히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을까요?

어차피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니 그런 관계 안에서는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되지만 낯선 사람 자체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죠.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까. 물론 누구나 처음 본 사람이나 낯선 곳에 가면 그 정도 부담감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부담감을 안고 연예 활동을 해왔나요?

뒤늦게 깨달았어요. 어릴 땐 주변에 어른밖에 없으니 사무적인 이야기를 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 그저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어요.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냥 무서웠죠.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불편한 거였더라고요. 낯설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던 거예요. 그나마 이젠 그 정도 불편함을 이겨내고 할 말이나 해야 할 행동은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아요.

뒤늦게 그런 불편함을 깨닫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바쁠 때는 몰랐어요. 회사를 옮기고 연기 이외의 활동이 적어지면서 집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니 누군가를 만나야 할 자리가 생기면 부담감이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옛날에는 그런 부담감을 실감하지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인사했다는 것을요. 단순히 사람을 만나기 싫다는 말이 아니에요. 부담감이 따르는 자리를 일부로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는 거죠.

모르고 감당할 때보다 알고 감당해야 하면 더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을까요?

스트레스까진 아니에요.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오히려 정확히 알게 된 덕분에 대처하는 법도 알게 됐어요. 몰랐을 때는 인사만 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이젠 식사하셨느냐고 한두 마디라도 더 붙이고 대화하는 법을 익힌 것 같아요.

<슈츠>에서 연기하는 고연우는 동명 원작 미드의 마이크 로스를 대신하는 인물인 만큼 대단한 천재일 텐데 그런 인물의 지적 능력을 설득력 있는 연기로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거 같아요.

덕분에 아무나 천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더욱 노력하는 계기를 얻게 된 거 같아요.(웃음) 일단 대사 외우기가 엄청 어려워요. 지금까지는 대사 자체를 외우기보단 상황으로 대사를 이해하며 외웠어요. 대사를 하는 상황의 감정으로 이해하면 대사가 좀 더 쉽게 외워졌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법전을 외워야 돼요. 그걸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안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장동건 선배님 대사량도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대본을 보면서 같이 한숨을 쉬었죠.(웃음)

지금까지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는데 <슈츠>는 선배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서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작품들과 다른 기대가 있을 것 같아요.

작품도 재미있고,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장동건 선배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설렘이 컸어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젠틀하고, 먼저 따뜻하게 다가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죠.

그런 호감이 연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상관없다고 할 순 없어요. 실제 관계에서의 감정이 작품 안에서도 확실히 보인다고 생각하고요.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할 때에도 유동근 선생님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지만 극에서 맡은 역할처럼 아버지라고 불렀더니 아들 왔냐고 하시면서 잘 받아주셨어요. 그렇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면 촬영할 때에도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대기실에서 ‘선생님’ 하다가 촬영할 때 갑자기 ‘아버지’ 하려면 아무래도 어색하니까요. 어쩌면 프로답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니까 그만큼 잘 해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는 법이겠죠.

연기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할 때 너무 좋았어요. 많이 혼났고, 많이 배웠고, 잘 놀았죠. 끝날 무렵엔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주말 드라마는 처음이었는데 시청률이 40%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신기했고요. 선배님들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했지만 작품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나도 회식한다고 하면 이렇게 많은 배우가 참석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작품으로 모두 다 행복해하니 저도 덩달아 행복해졌어요.

50부작이라 촬영 기간이 길었던 만큼 정도 많이 쌓였나 봐요. 어쩌면 긴 호흡으로 한 캐릭터를 연기해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을 거예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 좋은 레슨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촬영장이 연습장이 되면 안 되겠지만 현장에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최대한 준비해서 현장에 가지만 선생님들 하시는 거 보고 많이 깨닫게 되죠. 그리고 대사할 때 선생님들이 “형식아, 그 대사의 포인트가 뭐야? 여기에 강조를 해야지” 하시면서 대사의 장음, 단음까지 고쳐주셨어요. 그렇게 혼나면서 배웠는데 그것도 애정이 없으면 안 가르쳐주신대요. 그만큼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다들 저를 에뻐해주신다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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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상류사회> <화랑> <힘쎈여자 도봉순>까지 주연 캐릭터를 맡았는데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가족끼리 왜 이래>를 할 때와는 달라졌을 거 같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을 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타이틀롤은 (박)보영 누나가 연기하는 도봉순이었지만 제 역할도 너무 중요한 거 같아 부담이 됐죠. 감독님도, 보영 누나도 그걸 왜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느냐며 힘을 북돋아주셨는데, 정말 왜 그렇게 부담이 됐나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그 부담감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나요?

숨을 곳이 없다고 느낀 거 같아요. 그 전까지는 선생님들이 계셨고 기댈 수 있는 형이라도 있었는데, 거기서는 제가 형 소리를 듣는 입장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거죠. 그 전까진 선배님들이 먼저 논의해서 상황을 만들어나갔지만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처음으로 그런 책임감을 느끼니까 부담감이 확 오더라고요.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조언해줄 사람이 있었는데 이젠 스스로 정신 차리고 가야 한다는 느낌? 이 작품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헛구역질까지 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까 괜찮더라고요.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까 돌이킬 순 없고, ‘에라, 모르겠다’는 느낌?(웃음)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버거움이 있었을까요?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한다기보단 개인적인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무시당하지 않는 수준의 연기를 하고 싶었고, 내가 느낀 바를 사람들도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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