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큐라는 스타일, 마이크라는 인생

마이큐와 음악과 패션과 고독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셔츠 폴로 랄프 로렌. 바지 폴스미스. 안경 모스콧.

마이큐는 원래 구슬모아당구장에 진짜 작업실이라도 차려버릴 작정이었다. 서너 달쯤 전에 구슬모아당구장 측과 전시에 관한 첫 번째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였다. 구슬모아당구장은 대림문화재단이 한남동에서 운영하는 신선한 전시 공간이다. 당초 구슬모아당구장 측이 마이큐한테 제안한 건 전시가 아니라 공연이었다.

싱어송라이터인 마이큐에게 공연을 제안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마이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미술관이 닫은 후’라는 소규모 공연을 열어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미술관이라는 근엄한 공간을 음악으로 스타일링해서 색다른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마이큐의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던 공연이다. 마이큐는 자전거를 타고 무대에 등장했다.

마이큐는 2017년 대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디뮤지엄에서도 공연을 했다. 마침 2017년은 마이큐 데뷔 10주년이었다. 올해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에서 ‘오피스가 닫은 후’라는 공연도 했다. 모두가 단순한 음악 공연이라기보다는 공간을 음악으로 스타일링하는 마이큐만의 음악 쇼였다. 구슬모아당구장 역시 그런 음악 쇼를 상상했을 터였다.

정작 마이큐는 공연 대신 전시를 하고 싶다고 역제안을 했다. 더군다나 전시 주제는 마이큐 자신이었다. 한술 더 떠 아예 마이큐 자신을 전시할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구슬모아당구장에 개인 작업실을 차려놓고 그 안에서 전시 기간 내내 먹고 자고 일한다는 발상이었다. 관객은 그런 마이큐를 관찰하고 말이다.

마이큐는 무대 위의 마이큐가 아니라 일상의 마이크를 관객에게 드러내 보여주고 싶어 했다. 싱어송라이터 마이큐의 본명은 마이크다. 한국 이름은 유현석이다. 마이큐는 마이크의 이야기와 유현석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다.

마이큐 자신을 전시하는 급진적인 시도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뤄지지 않았다. 정말로 마이큐가 전시된 건 아니지만 싱어송라이터 마이큐의 첫 번째 전시 <MIKE : 마이큐>는 지난 10월 13일 한남동 구슬모아당구장에서 그렇게 문을 열었다. 정말로 마이큐를 전시한 건 아니었지만 마이크가 원했던 바로 그런 전시였다.

셔츠 폴로 랄프 로렌. 안경 모스콧. 반지, 팔찌 모두 개인 소장품.

1.

“절대로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이번 전시는 저의 어떤 바이오그래피가 아니에요. 저는 대중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고 덕분에 조금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일진 모르지만, 그렇다고 다수를 설득하는 결과물을 낸 사람도 아니잖아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잖아요.”

<MIKE : 마이큐> 개막을 며칠 앞둔 10월 9일 한남동 카페에서 마주 앉은 마이큐는 이런 말로 운을 뗐다. 가까이서 처음 만난 마이큐는 듣던 대로 멋쟁이였다. 분명 밤낮 없이 전시를 준비하다 나온 편한 옷차림이었다. 그런데도 트레이닝팬츠와 후디와 스니커즈 같은 기본 아이템만으로도 결코 과하지 않은 독특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상이 세련된 사람이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일상에서 세련된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패션은 라이프스타일로 완성된다. 첫눈에 패션 에디터들이 왜 유난히 마이큐를 선호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음악과 패션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어져 있었다. <MIKE : 마이큐>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마이큐를 만나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던 이유다. 멋과 세련을 목숨처럼 여기는 에디터들의 지지를 받는 마이큐라는 사람에 관해 알고 싶었다. 그건 어쩌면 <에스콰이어>가 추구하는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탐구해가는 과정의 하나일 수도 있었다.

마이큐가 기준은 아니지만 마이큐도 기준인 건 분명했다. 그러자면 마이큐의 스타일만이 아니라 마이큐의 라이프도 알아야 했다. 마침 전시 주제도 마이큐였다. 마이큐와 함께 라이프와 스타일에 관해 대화를 나눌 만한 좋은 기회였다.

다행히도 마이큐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는 마이큐가 아니라 마이크가 앉아 있었다. 기대는 했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역시나 그런 태도는 <MIKE : 마이큐>라는 전시 덕택이었다. 마이큐는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마이크가 마이큐일 때는 난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강했어요. 인터뷰할 때도, 무대에 설 때도 싱어송라이터라는 호칭을 꼭 넣어서 스스로를 소개했죠. 뮤지션이 아니고 가수도 아니고 싱어송라이터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요. 그게 저의 타이틀인 것처럼. 근데 이번 전시에서는 음악 또한 제 삶의 일부일 뿐이고 이젠 마이크로서의 다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이 내심 있었기 때문에 구슬모아당구장의 공연 제안을 전시로 바꿔서 이번 기획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이큐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 마이크라는 평범한 사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달까요.”

마이크는 자꾸만 평범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자꾸만 마이큐와 마이크를 분리해서 설명했다. 두 개의 이름이 달린 <MIKE : 마이큐>라는 전시가 마이크의 생활과 마이큐의 활동을 좀 더 분리해서 생각하도록 자극한 게 아닌가도 싶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저를 뽐내고 싶은 전시였어요. 이런 것도 보여주고 저런 것도 보여주려고 했죠. 다양한 사진을 나열해놓고. 내가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할 수 있고. 물론 이걸 보고 마이큐가 사진도 찍는다면서 누군가는 멋지다고 박수를 쳐줄 수도 있었겠죠.”

사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자신을 자랑하려고 안달이 난 시대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네모난 사각형 안에서 그럴듯하게만 보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꺼내놓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까 뭔가 불편했어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 이것보다는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깊은 것을 표현해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힘을 다 빼고 그냥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기로 했어요. 스스로 진짜 나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덜어냈어요. 내 작업실과 우리 동네와 부모님과 친구들과 그런 것을 잘 담아낼 자신은 없지만 그게 진짜 나인 거니까요.”

전시장에 마이큐의 작업실을 전시하자는 아이디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진짜 진짜는 진짜 마이큐일 테니까 말이다. 준비하기 이전의 마이크를 알지는 못했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이크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그런 변화를 위해 준비한 건지도 모른다.

마이크와 대화하면서, 세련됨이란 내 것이 아니고 진짜가 아닌 것을 철저히 버려가면서 만들어지는 스타일이 아닐까 싶어졌다. 내 것이 아닌 것들로 자신을 포장한 나를 과시한다면 그건 타인의 옷을 빌려 입은 모양새일 뿐이다. 그런 짓은 할 때나 볼 때나 느껴지는 낯간지러운 감정이 바로 마이크가 말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세련’이란 한자로 씻고 단련한다는 뜻이다. 덜어내고 다듬어서 꼭 필요한 부분만 남아야 비로소 세련돼진다. 세련을 뜻하는 ‘에지’나 ‘시크’ 같은 단어도 결국 유사한 어감이다. 마이큐의 음악과 패션이 우리에게 세련돼 보인다면 그건 강박적으로 진짜 자신이 아닌 것을 빼버리고 진짜만 남기려는 마이크의 성격 탓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셔츠 써네이. 바지 구찌. 운동화 뉴발란스.

2.

마이크는 아직 준비 중인 전시 공간을 살짝 보여줬다. 무엇보다 오렌지색 귤 박스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구슬모아당구장은 수많은 귤 박스로 이뤄진 오렌지색 벽으로 미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이큐는 귤 박스 안에 조명을 달아 전시 공간을 오렌지빛으로 연출했다. 구석에는 이렇게 툭 써 붙여놓았다.

“귤 박스 자체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집을 구할 때 주어진 돈과 나의 환경에 알맞은 집을 찾는 행위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독창적인 컬러의 귤 박스는 마이크와 같이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MIKE : 마이큐>는 마이크가 더더욱 마이크와 마이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대화 중 들려준 그의 자기 객관화는 변명 없이 솔직했고 그래서 세련됐다.

“솔직히 사람들은 저를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잘 생각하지를 않아요.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아예 모르죠. 농담이지만 마이큐라고 저 스스로 소개하면 터보의 마이키냐고 되물으실 때도 있어요. 아는 사람은 절 알지만 모르는 사람과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죠. 게다가 전 음반 회사라든지 이런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매체를 통해서는 간헐적으로 소개되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부분만 부각되죠. 저의 음악적인 부분이든 패션적인 부분이든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음악적인 부분이 감춰져버릴 때도 있어요.”

마이크는 귤 박스 자체는 큰 의미는 없다고 써놓았지만 결국 현실에 맞춰서 규정당하는 마이큐와 닮은 측면이 있었다.

전시를 통해 마이크는 마이큐를 좀 더 세련되게 바라보게 된 듯했다. 올해 데뷔 11년 차인 대중음악가로서 한 번쯤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던 때였다. 이날의 대화가 좀 더 편해지면서 더 솔직해진 측면도 있었다.

“저는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아니에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어요. 제가 노래를 한다니까 다들 의심부터 했죠. 지난 10년 동안 노력했고 실력도 늘었지만 여전히 저는 김범수나 나얼처럼 노래하는 가수는 아니죠.”

마이큐를 만나기 전에 마이큐에 관해 공부하다가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마이큐와 그 말을 화두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지금이 그 말을 꺼낼 순간이었다.

“언젠가 마이큐는 스스로 무엇 하나를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조금씩 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렇게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 부분을 1%씩 모아서 마이큐만의 전체를 종합해내는 게 자신의 작업이라고요.”

마이큐라는 아티스트를 가장 잘 규정한 정의다 싶었다. 마이큐의 앨범들을 내내 들으면서도 그는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로는 온전히 설명이 안 되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이큐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과 공간과 조명과 인테리어와 글과 사진을 총합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종합예술가였다. 그래서 마이큐를 부분으로만 보고 설명하려 들면 파편적이 된다. 그는 단순한 패셔니스타도 아니고 간단한 뮤지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큐는 말했다.

“제가 능력이 없어서 그래요. 나얼은 노래를 잘하고 장윤주는 신이 내린 몸매고 하루키는 글을 잘 쓰죠. 저는 음악을 해요. 그런데 음악한다고 그러면 다들 노래 잘하냐고 묻잖아요. 근데 전 노래하고 곡 만들고 기타 치고 편곡하고 믹싱하고 앨범 재킷도 스스로 찍고 뮤직비디오까지 만드는 사람이에요. 사실 제작비가 없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지만 그 안에서 제가 만들어졌죠.”

마이크의 말을 듣다 보니까 아직 텅 빈 전시장을 홀로 가득 채우고 있는 귤 박스가 자꾸 떠올랐다. 전체를 만드는 이름 없는 부분들 말이다. 1%씩 부분을 더해서 120%의 총합을 만드는 마이큐의 작업 방식과 닮았다 싶었다.

샤워 가운, 티셔츠, 양말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바지 개인 소장품.

그래서 마이큐한테는 스타일이 중요하다. 부분의 총합이 전체보다 크려면 부분을 이어주는 스타일이 중요하다. 스타일은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힘이다. 그래서 마이큐의 음악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껴야만 한다. ‘미술관이 닫힌 후’ 같은 콘셉트 공연이 늘 호평을 받는 건 마이큐의 이런 스타일링 감각 덕분이다.

마이크와 얘기하다가 문득 마이큐가 귤 박스 안에 밝혀놓은 전등이 떠올랐다. 평범한 귤 박스 더미를 하나로 묶어내는 건 조명 스타일링이었다. 종종 거창한 수식어가 붙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란 것도 결국 간단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란 인생의 부분들이 총합보다 더 크고 멋지고 아름답게 만드는 감각이나 태도다. 마이큐는 이미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사실 마이큐가 처음 음악에 빠져들었던 것도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음악에 매료된 덕분이었다. 마이큐는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영국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MIKE : 마이큐>에서 맨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장면은 마이크의 20년 전 공연 영상이다. 1997년 10월 5일 홍콩 웨어하우스에서 있었던 펑크록 밴드 납독스의 공연이다. 마이크는 납독스 멤버였다. 캠코더에 기록된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 마이크는 전형적인 펑크 로커였다. 마이크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때였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이크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음악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영상 속 마이크는 펑크록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옷차림과 말투까지 펑크적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뒤부터 마이크는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낯선 문화를 접할 때마다 그걸 음악으로 이해했고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였다.

“흉내 내기 같은 건 절대 안 했어요. 흑인 힙합 문화든 홍대 인디 문화든 일단 그 문화에 빠져들면 완벽하게 그 일부가 되고 싶어 했어요. 옷차림도 말투도 태도도 말이죠.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였던 거죠.”

수많은 부분을 더하고 곱해서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내는 마이큐의 탁월한 스타일링 능력은 이런 진짜가 되려는 태도 덕분이다. 어떤 라이프스타일이든 진짜로 겪어봤고 느껴봤기 때문이다.

매거진 에디터들이 마이큐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반면에 이 시대에 마이큐라는 아티스트의 설 자리가 자꾸만 좁아지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음악 산업은 뮤지션 각자가 부품이 되기를 원한다. 전형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의 방식이다.

아이돌 음악이란 한 곡을 여러 개의 소절로 나눠서 돌림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장르다. 그 안에서 개인은 부분이지 전체가 될 수 없다. 춤도 패션도 잘려서 세분화된다. 이정도로 부분이 증가하면 전체를 아우르는 스타일도 획일화되기 쉽다. 부품을 단순 조립한 공산품에서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정반대로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어낸 제품에서는 멋이 느껴지는 이유다. 혼자서 전체를 스타일링하는 마이큐의 작업은 시대와 불화하기 쉽다. 마이큐는 말한다.

“저도 알아요. 음악 한 곡만 봐도 감성적인 부분을 보는 사람과 테크닉적인 부분을 보는 사람에다, 전체를 통으로 보는 사람에 포장해주는 사람까지 다 따로따로인 세상이에요. 저의 작업 방식과는 다르죠. 하지만 전 이제 너무 멀리 왔어요. 제 선택과 상관없이. 저는 제 음악밖에 안 듣거든요. 제 음악이 최고라서가 아니예요. 자기 옷을 입는 디자이너의 심리와 비슷해요.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도 있으니까. 저는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있는 거죠. 돌아보면 저도 신기해요. 아, 이런 것이 모이니까 내가 된 거구나. 이런 게 나구나. 이젠 그저 제 길을 가는 거죠.”

니트, 셔츠, 반바지, 양말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반지 개인 소장품.

3.

마이큐는 늘 혼자 지낸다. 하루 종일 혼자 다니는 일도 많다. 마이큐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면 납득이 된다. 혼자서 전부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큐에게는 혼자만의 작업 공간이 너무 중요하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마이큐는 혼자서 자고 혼자서 먹고 혼자서 일한다. 이젠 너무 익숙하다. 마이큐에게 혼자라는 건 작업의 일부와 다름없다. 어쩌면 전시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려고 했던 건 혼자이면서 혼자이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마이큐는 음악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혼자 놀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감사한 일이죠. 지금도 새로운 문화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는 게. 하루 종일 음악을 갖고 놀아도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어쩌면 이것이 제 인생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정말 음악을 만들 때는 혼자 미치거든요. 이게 저에게 가장 큰 축복이에요.”

그래서 늘 혼자인 마이큐한테는 사랑이 중요하다. 마이큐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사랑을 하면 내 편이 생긴다는 걸 믿어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삿대질을 해도 이 사람만큼은 내 편이 돼준다는 그런 위안을 믿는 것 같아요.”

마이큐도 안다. 그런 사랑이 쉽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사랑이 없으면 음악이 탄생할 수 없으니까요. 사랑은 위대하지만 사랑은 늘 부족하니까요. 비슷한 가사와 상황과 멜로디인 것 같은데도 끊임없이 사랑 노래가 불리는 걸 보면 우리 모두 사랑을 노래하며 사랑을 애타해하는 거겠죠.”

트렌치코트 헤드 메이어. 셔츠, 니트 모두 폴로 랄프 로렌.

혼자라는 것과 사랑이라는 것은 마이큐라는 사람의 영혼을 이루는 두 요소다. 정작 <MIKE : 마이큐> 전시에는 숨겨져 있다. 음악과 친구와 추억은 있지만 고독과 관계는 감춰져 있다. 그만큼 두 가지가 마이큐의 내밀한 속내라는 얘기일 수 있다.

카페에서의 대화가 어느덧 가벼운 술자리로 이어졌다. 술자리의 주제는 고독과 사랑이기 마련이다. 마이크는 태생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사람 같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홍콩에서 자랐고 영국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에서 활동하는 인생 궤적은 마이큐를 숙명적인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음악 활동의 무대로 한국을 선택하면서 혼자라는 건 운명이 됐다.

“2000년대 초반에 홍대 인디 신에 매료돼서 한국으로 들어왔죠. 아버지의 반대가 컸기 때문에 혼자나 다름없었어요. 당시 아는 형네 집에 얹혀살면서 음악을 하겠다고 돌아다녔죠. 집시 생활이었어요. 처음에는 한국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있었어요. 나중에는 한국이 광야라는 걸 깨달았죠. 한국이기 때문에 막연히 집일 거라고 생각한 건 제 착각이었죠. 한국은 전 세계 어디보다 저한테 낯설고 외로운 광야였어요.”

한국은 마이큐라는 이방인을 받아주는 척 안 받아주는 이중적인 감옥 같았다. 겨우 이너서클로 들어온 것 같지만 결국 더 안쪽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기분을 거듭 느꼈다.

“차라리 우리는 너를 안 받아준다고 말해버리면 서바이벌을 하겠어요. 안 그런 척 그러니까 더 어렵죠. 다들 저한테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 사람이 되라고 조언하면서 유현석이라는 한국 이름 대신 마이크라는 영어 이름을 불렀어요. 사실 외국 문화를 아는 외국인 마이크를 좋아하는 거면서 자기네와 다른 건 또 싫어했죠. 그러다 한국인으로 살 것이냐 외국인으로 살 것이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어요. 그때 ‘형님’이라는 말을 배우면서 한국인으로 살기로 결정했죠.”

이방인 마이큐에게 광야에서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고독은 마이큐 음악의 정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마이큐는 소주잔을 들이켜면서 말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고독은 건강할 수 있으나 외로움은 쌓이면 아프죠. 고독은 자양분이 될 수 있어요. 외로움은 좌절하게 만들어요. 그걸 구분하는 분별력은 깨우친 것 같아요.”

고독한 마이큐한테 필요한 게 음악이었다면 외로운 마이크한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사랑이었다. 마이크만큼 열심히 사랑한 사람도 없었다. 마이크처럼 사랑에 실패한 사람도 없었다. 인연도 시련도 결국 고독과 외로움이 됐고 마이큐의 음악이 됐다. 사랑과 고독을 논하면서 마이큐와 술잔을 기울였다. 사실 인터뷰하면서 술을 마시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잊지 못하는 뮤즈가 있나요?

뮤즈는 단 한 명뿐인 거 같아요. 이미 오래전에 그녀를 잃었지만 나를 움직이게 했던 그 느낌을 다시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왜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결국 기록인 것 같아요. 그냥 몸과 마음이 반응해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거죠. 머리로도 아름다운 곡을 쓸 순 있어요. 진실된 감정이 있다면 조금은 부족해도 아름다운 곡이 돼요. 오히려 더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러면 가짜가 되니까. 그 감정이 진짜인지는 리스너들도 다 알더라고요.

마이큐의 뮤즈는 어떤 사람일까요?

인간으로서 제가 존경할 만한 사람. 그래서 매력적인 사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안 살았으면 좋겠어요. 동화 속에서 산다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의 시스템이 강요하는 뻔한 삶에서 자유로운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감정의 강렬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요.

그녀를 위한 곡을 많이 썼나요?

솔직히 3집까지는 전부 한 여자에 대한 곡이거든요. 4집에서도 몇 곡이 그래요. 저는 멜로디 가이드를 만들면 바로 가사가 나와요. 감정에서 가사가 나오는 거죠. 그래서 가사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감정이니까 어쩔 수 없죠. 어제 쇼핑을 해서 멋진 브라운 재킷을 샀는데 오늘 길을 걷다가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카키색인 재킷을 발견하고 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기분 같달까요.

그녀도 알까요?

알겠죠. 우리의 사랑은 우리 둘 다에게 아름다운 추억인 거죠. 물론 저는 앞으로도 멋진 사랑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분명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줬어요.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만남과 이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창작의 동력이 되나요?

이별이 더 강해요. 아주 격렬한 감정이죠.

후회도 음악에 담나요?

저는 후회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히트곡이 없는 거예요. 노래가 신파가 없으니까.

세련된 거죠.

그래서 히트곡이 없다니까요. 제 나름대로 여백을 두고 덜 채우려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날 밤 마이크와의 술자리는 거기까지였다. 마이크는 기다리는 스태프들과 밤새 전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술병도 비워진 지 오래였다. 문득 <에스콰이어>와 촬영한 사진 얘기를 나눴다.

마이크는 <에스콰이어>에서 랄프 로렌을 입었다. 마이크는 랄프 로렌이 후원하는 아티스트다. 마이크 자신도 평소 랄프 로렌을 즐겨 입는다. 랄프 로렌은 전통과 혁신이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브랜드다. 그런 균형을 무려 반세기 동안이나 유지해왔다. 랄프 로렌은 올해 50주년이 됐다. 마이크가 말했다.

“랄프 로렌은 역사가 있고 깊이가 있어요. 크게 안 변해요. 그런데 매년 새로워요. 끊임없이 변하지만 동시에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브랜드예요. 저도 랄프 로렌처럼 하고 싶어요. 너무 어렵거든요. 변화를 하면 나를 잃기 쉬우니까요. 랄프 로렌이라는 권위도 있으면서 권위를 내려놓을 줄도 알아요.”

랄프 로렌도 마이큐라는 아티스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MIKE : 마이큐>도 랄프 로렌의 지원을 받았다. “마이큐의 라이프스타일이 좋다. 우리 랄프 로렌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런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이번 전시를 지원해줬죠.”

그 순간 마이크가 마이큐로 가려고 하는 길이 조금은 더 분명하게 그려졌다. 변하지 않는 듯 변화하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아티스트의 길이겠구나, 미루어 짐작했다. <MIKE : 마이큐>는 그렇게 먼 길을 더 나아가기 위한 심호흡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이큐는 음악을 넘어 이미 라이프스타일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다. 그 스스로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돼가고 있다. 마이큐는 앞으로 연주해나갈 인생의 스타일을 가다듬기 위해 마이크라는 인생을 조율하는 중이었다.

벨벳 재킷, 터틀넥 톱, 벨벳 바지 모두 김서룡. 로퍼 아페쎄.

4.

지난 10월 16일 <에스콰이어> 마감 마지막 날 저녁에 쓱 구슬모아당구장에 갔다. <MIKE : 마이큐>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시는 마이크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뒷문으로 출입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일부러 계단을 지나서 출입구로 들어갔다. 마이크가 말한 것처럼 크고 작은 두 개의 문이 있었다. 마이크는 이렇게 써 붙여놓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어떤 문으로 들어가 어느 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 삶도 변하게 됩니다. 입구에서부터 관람객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었습니다.”

마이크가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한 아버지, 반항하는 아들, 억지스러운 법대 진학, 음악, 패션, 낙제, 낙오, 질풍노도의 시절 얘기였다. 마이크가 말했다.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저 자신과 약속한 게 하나 있어요. 사람이 얼마나 진심일 수 있겠느냐만, 제가 창작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끌리는 대로 하자고. 골방 작업실에서만큼은 진짜 진심으로 하자.” 마이크는 그렇게 진심의 문을 선택해서 오늘의 마이큐가 됐다.

전시회에서 기념품 몇 개를 샀다. 마이큐가 좋아하는 문장들이 쓰인 스티커였다. 마이큐라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이루는 문장일 수도 있었다. 브랜드 매니저 마이크는 이렇게 써놓았다. ‘CAN I BE YOUR DREAM TONIGHT.’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것이었다. ‘LET’S END THE NIGHT WITH ICE CREAM.’

문득 그날 밤 고독과 사랑 얘기로 쓴 술잔을 나눴던 인생 술집이 끝난 뒤 마이큐와 달달한 아이스크림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질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MIKE답게. 마이큐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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