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의 뒷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다. 살아나간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에서. 드라마 '라이프'에서 김은하 선생을 연기한 배우 이상희와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에게 그들의 라이프에 대해 물었다.

남궁인(이하 남궁) 많이 피곤해 보여요. 괜찮으세요?

이상희(이하 이) 괜찮습니다.

남궁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요?

영화 촬영이 오늘 아침에 끝나서요. 끝나고 바로 와서 조금

김은희(이하 김) 문진하시네요, 선생님.(웃음)

남궁 저도 오늘 오후에 출근하면 밤새우고 내일 퇴근할 텐데, 그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촬영이 아침에 끝났구나. 어떡해.

괜찮습니다.(웃음)

남궁 예전에 RN으로 계셨다고 들었어요.

RN이 뭐예요?

남궁, 이 너스. 간호사요.

너스(nurse)인데 RN이라 하네요?

남궁 그러게요? R이 ‘레귤러’인가요?

아마 레지스터드 너스(registered nurse: 등록된 간호사)일 거예요.

두 분 잘 모신 것 같네요. 벌써 전문 용어가 오가고 있어요.(웃음)

남궁 지금 검색해보니 레지스터드 너스 맞네요. 그게 무슨 약자인지 찾아볼 생각을 안 했네요. 병원에 10년을 있었는데.

의사로 10년. 힘들어 죽겠지는 않나요?

남궁 죽지는 않죠.

예진우 선생과 같은 말을 하시네요.(웃음) <라이프>에서 예진우 선생이,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힘들어 죽겠지는 않느냐’고 한다면서, 힘들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말하더라고요.

남궁 정말 그래요.(웃음) 안 힘드냐, 괜찮냐, 죽겠지 않냐. 하도 많이 들어서, 뭐. 지금도 많이 들어요. 응급실에 있다고 하면.

그럼 뭐라고 답하나요?

남궁 다른 직업도 다 그럴 거예요. 월급 받고 돈 받는 각자의 일이 다 힘들죠. 힘들지만 힘드냐 물으면 저는 ‘할 만하다, 내 직업이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다른 직업도 다 힘들다, 동의하나요?

네.(웃음)

저는 <라이프>에서 이상희 배우 보면서 실제 응급실 간호사가 아닌가 싶었어요.

남궁 저도 그랬어요. 리얼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진짜 간호사였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어떤 포인트에서 ‘리얼하다’ 싶었어요?

남궁 이게 좀 설명하기 어려운데, 병원과 전혀 위화감 없는 이미지가 있어요. 정말 우리 병원에도 당장 있을 법한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분위기가 뭘까 생각해보니 저는 환자로서만 병원을 경험해봤잖아요. 병원 갔을 때 보면 의사나 간호사분들이 담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이 있어요. 평온한 것과는 좀 다른데,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별일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간다, 그런 담담함. 나는 아파 죽겠는데.(웃음) 이상희 배우가 연기한 김은하 선생도 그런 모습이 표현되는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남궁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응급 환자가 와도 병원 사람들은 별 표정 변화가 없어요. 막 피 칠갑하고 와도 다들 담담하거든요. <라이프>의 병원 인물들 모두 그런 표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더 리얼했던 것 같아요.

셔츠, 바지 모두 렉토. 신발 소보.

‘은하 샘’을 연기하기 위해 고민하거나 연구한 점이 있나요?

저는 이 인물에 대해 글이 잘 쓰여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했는데, 극 후반부쯤부터 제가 보기에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때가 오더라고요. 저는 이 친구가 그래도 소신 있고 신념 있는, 멋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장면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네. 후배 간호사에게 심하게 말하는 부분도 그렇고, 엔딩 부분에 가서 선우창 선생에게 자기 변명하는 부분도 그렇고. 그래서 그때 감독님한테 여쭤봤어요. 나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그랬더니 감독님이 작가님과 제일 많이 이야기 나눴던 부분이 어떤 선과 악이 아니라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서였대요. 쭉 좋은 사람, 쭉 나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입장과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게 선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는 거죠.

그렇네요. <라이프>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었죠.

그에 대한 위화감이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가 하게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IO 체크를 제대로 안 한 후배 간호사에게 뭐라고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아, IO 체크는 하루에 먹는 양과 배설량을 체크하는 거예요.

남궁 인풋, 아웃풋.

인풋, 아웃풋이라 IO. 많이 배워 가네요.(웃음)

수액이든 뭐든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양을 체크하는 건데, 이게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밸런스가 안 맞으면 환자가 되게 안 좋아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신규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런 위험한 일을 겪어본 선배 간호사이기에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고 연기하기는 했어요.

남궁 응급실 간호사인데 IO 체크를 시켜요? 응급실은 IO 체크 안 시키는데.

IO를 몇 시까지는 지켜보라고 시켰는데 이 친구가 임의로 그 시간을 앞당겨서 본 거죠.

남궁 아, 그런 거라면. 그런 일 많지, 뭐.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원래 응급실에서는 IO 체크를 안 하나요?

남궁 못 해요. 너무 바빠서. 보통 병동에서 하죠.

응급실은 회전율이 빠르니까요.

남궁 의미도 없고요. IO라는 건 24시간 이상 돼야 의미가 있는 거라서. 그런데 후배 간호사에게 뭐라고 하셨길래…. 사실 제가 1, 2화까지밖에 못 봤어요. 바빠서. 그마저 보다가 출근하느라.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그때 대사가 “병원에서는 이러고도 니네 엄마한테는 맨날 가지. 니네 엄마한테도 환자한테 하듯이 해. 나중에 돌아가시면 제사나 지내.”

니트 톱 유니클로. 울 셔츠 쇼앤텔. 코듀로이 바지 맨온더분.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남궁 아주 흔한 패턴이네요. 몹시 흔한 패턴이에요.

그런가요? 세상에웃음)

남궁 현실적으로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도 많이 태우는데, 제가 볼 땐 간호사들이 더 많이 태워요. 그래서 제가 병원에 들어갔을 때 너무 놀라서 나는 간호사 못 버티겠다, 차라리 의사가 낫다,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갈굼’을 의료계에서는 ‘태움’이라고 한다면서요. 재가 되게 태운다고. 아니, 대체 어느 정도길래.

남궁 이해할 수가 없는, 그냥 별걸 다 트집 잡는 거죠. 사소하게는 뭐, “너 손톱이 왜 이렇게 길어” 같은. 별로 안 긴데.(웃음) 그런 식으로 태우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실 간호사들이 하는 처치가 의료계 현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생명과 관계된 거니까. 그래서 더 긴장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아서 일이 잘 돌아가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거라면 좋은데, 그 행동이 선을 넘을 때가 있는 거죠. 그 부분은 우리가 경계해야죠.

제가 예전에 병원에서 근무할 때 굳이 태움이라는 단어를 쓸 법한 선배는 딱 한 사람뿐이었어요. 수많은 다른 선배들은 다 좋았어요. 딱 한 분이 그랬는데, 멀쩡히 가만히 있는 저를 태우는 건 아니고 제가 업무적으로 실수하면 뭐라고 하시는 건데, 감정적인 수준을 넘어서 인격을 모독하는 거죠. 그 장면에서도 제가 신규한테 그냥 말하면 되는데, 차트로 몸을 툭툭 밀잖아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요. 그 장면에서 ‘태움’이라 부르는 행위의 미묘한 경계선이 보이더라고요. 혼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혼내는데, 이게 너무 감정적으로 나간 면이 있지 않나 하는.

태움이라는 그런 문화는 문화도 아니죠. 이상한 관습이죠. 그 이상한 관습은 분명히 없어져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뭐라고 하는 마음은 또 이해가 되는 거예요. 경험 있는 선배들은 숨이 간당간당하는 환자들의 경계 사이에서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일이 될지 아니까. 그리고 일이 너무 많거든요. 업무량이 너무 많은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규들은 금세 일이 익혀지지 않으니 또 실수를 하고….

남궁인 선생님이 고개를 깊이 끄덕이네요.

저희 드라마에서 투약 사고도 나오잖아요.

남궁 혹시 빈크리스틴?

네, 맞아요.

바로 아시네요. 드라마에서는 이런 예였죠. 여기에 놔야 하는 주사를 저쪽에 놔서 환자가 사망하는.

남궁 아마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을 거예요. ‘종현이 사건’이라고, 정맥에 놔야 하는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척수에 놓는 시트라빈 약과 바꿔 주사해서 종현이라는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실제로.

시스템도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잠도 일주일에 5시간밖에 못 자는데. 5시간이 뭐야.

남궁 특히 외과는, 뭐.

일주일에 5시간도 못 잔다고요?

남궁 자기들끼리 맨날 세요. 이번 주에 5시간 잤다, 몇 시간 잤다.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너무나 많은 환자와 업무량이 쏠리는 거죠.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다 보니까어쨌든 가장 큰 잘못은 저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또 모든 변명이나 핑계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

종현이 사건은 어떻게 됐어요?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병원 사장이 직접 실수를 밝혀내고 환자 보호자에게 사실을 알리는데요.

남궁 잘 모르지만 종현이 사건의 경우는 보호자 측에서 먼저 의료 사고를 의심하고 밝혀낸 걸로 알고 있어요. 이거는 사실 오프더레코드인데, 어차피 재판 기록 뒤지면 나오는 거라 오프더레코드랄 것도 아니에요. 제가 의료 소송 관련 재판 기록을 뒤지다가 봤는데, 아이가 경기를 해서 병원에 왔어요. 그러면 아티반이라는 경기 약을 처방하거든요. 그래서 의사가 “아티반 주세요” 해서 처방하고, 그다음에 다른 의사가 또 아티반 처방하고, 한 세 번을 반복 투약해버린 거죠. 아이가 죽었어요. 체크를 안 해서 반복 투약이 된 거죠. 너무 바쁘니까, 다들 정신이 없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런 일이 생겨버린 거죠.

투약 체크를 안 해서 문제 되는 장면이 드라마에도 나오는데, 정말 있는 사건이었군요.

남궁 응급실에서 전산으로 기록이 칼같이 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옛날에는 특히 전산화가 덜 되어서 더 그랬죠. 한 15년쯤 됐어요. 그렇게 오래전 일도 아니에요.

그런데 어쩐 일로 의료 소송 관련 재판 기록을 찾아봤어요?

남궁 응급실 내부에 소송 기록 서류가 쌓여 있어요. 저희가 잘못한 것도 있고 잘못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어쨌든 항변해야 할 것들이니까 서류가 쌓여 있죠. 또 저도 공부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본 거였어요.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군요.

남궁 저희만 볼 수 있죠, 저희만. 워낙 제가 문서라면 모두 다 읽는 사람이라서 찾아서 읽고 그랬어요.

‘저희’만 볼 수 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남궁 아, 법적 기록 자체는 대국민 열람이 가능합니다.

의사들은 왜 실수를 인정하지 않나요?

남궁 진짜 누가 봐도 실수인 것. 가령 왼쪽에 기흉이 있는데 오른쪽을 호스로 뚫는 거. 간 수술해야 하는데 다리 수술하고 그런 거. 그런 명백한 잘못은 우리가 실수했다, 잘못했다고 해요. 그게 아니면 애매한 면들이 있어요. 실수가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게 거의 대부분이거든요.

불가항력적인 것?

남궁 의료 소송의 90% 이상은 의사가 잘 처치한 건데 환자 입장에서는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는 점이 있죠. 10%는 진짜 실수한 것들이고요. 그런 경우 우리끼리 엄청나게 많은 회의를 해요. 콘퍼런스하고, 회의하고, 우리가 한 실수를 내부에서 잘잘못을 따지죠.

내부에서라는 게 문제겠죠.

남궁 그게, 학문적으로 판단하고 개선 방향을 찾는 거거든요. 사실 우리끼리는 누가 뭘 잘못했는지 다 아니까 내부에서는 정확히 그렇게 얘기해요. “야, 이 살인마 새끼야.” 실제로 별명이 저승사자인 놈도 있어요. 환자 잘 못 봐서. 그것도 개개인의 능력이죠.

잘 못 본다는 게 뭐죠?

남궁 게으르다는 거죠. 바이탈 다루면서도 게으른 애들이 있어요. 부지런한 친구가 있다가 게으른 친구가 오면 확실히 대처가 조금씩 늦어지는 게 있거든요.

그 조금씩이 계속 계속 늦어지잖아요.

남궁 그렇죠.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늦어지는 대처가 실질적으로 환자한테 영향을 미쳐요.

게을러도 사람을 죽일 수 있군요.

남궁 당연하죠.

그럼 실수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투약 사고 같은 걸 막는 방법은요? 미국에는 시스템적으로 약품 통이 아예 잠겨 있고 처방전의 바코드를 찍어야만 관련 약통이 열리도록 하는 사례도 있던데요.

남궁 저희 병원도 2년 전에 그렇게 바뀌었어요.

변화가 있긴 하군요.

남궁 그 시스템이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처방 내면 약 하나하나 받아 써야 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데, 말하자면 안전이죠. 안전. 그렇게 해야죠. 저희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약품 나오는 기계가 약이 다 들어 있어야 하니까 거의 방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크거든요. 저희는 약통 기계에 진료실 뺏겨서 서서 진료하고 그래요.(웃음) 응급 약품만 키트에 있고 나머지는 전부 관리 아래 받아서 써요. 바뀌어야죠.

요즘 메르스는 어때요? 잘 대처하고 있나요?

남궁 난리죠. 난리예요.

난리인가요, 현재? 3년 전 발병 때보다는 조용해서 의료 현장도 그런가 싶었는데.

남궁 어쨌든 감염 방지 원칙을 다 지키고 있어요. 일단 응급실에 환자가 실려 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열 나는지 먼저 판단하고 그다음에 중동에 갔다 온 적이 있는지 판단해야 해요. 중동에 갔다 오지 않았고 감염 경로 접촉도 없으면 그제야 환자를 받아요.

교통사고로 급히 실려 온 환자라도요?

남궁 네. 간호사가 문 앞에서 감염복, 마스크 다 착용하고, 무조건 문진을 한 다음에 병원 안으로 들여보내요. 최근에는 한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중동 다녀오셨는지 여쭈니까 중동은 무슨, 집 밖에 나간 지 1년 됐다고….(웃음) 누가 봐도 중동은커녕 제주도도 못 다녀오셨을 것처럼 침대에 누워 투병 중이신 할아버지였거든요. 그래도 예외를 두면 안 되죠. 그러다 보면 퍼지니까.

3년 전 메르스 사태 때만 해도 이런 체계가 없었는데, 터지고 나서 생긴 건가요? <라이프>에서 음압 병동 이야기가 나오죠. 지난 메르스 사건 이후에야 이렇게 체계가 잡혔다고.

그렇게 예민하게는 안 했던 거죠.

남궁 체계 자체는 있었지만 현장에서 그렇게 발현되기 어려웠던 거죠. 지금은 말 그대로 예민하게 하고 있죠. 그때 삼성병원 거의 망할 뻔했잖아요. 진짜 망할 뻔했어요. 그렇게 홍역을 치렀는데 오죽하겠어요. 지금은 완벽하게 대처하고 있어요.

반대로, 드라마와 달라서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내부자가 보기에는요.

남궁 처음에 그 이야기로 시작하잖아요. 응급의학과, 소아과, 산부인과 지방으로 퇴출시키는 거. 실제로 어느 대형 병원에서는 치과를 없애기도 했어요.

실제로요?

남궁 네. 수익이 너무 안 나니까. 대형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 안 나는 과 자체를 극단적으로 줄이면 정말로 흑자가 나거든요. 당연히 흑자가 나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드라마처럼 그렇게까지는 못 해요.

법 때문에라도 그렇게는 못 하죠.

남궁 그리고 어떻게 가겠어요. 다 퇴사하지. 어쨌든 극단적으로는 저렇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은 들더라고요. 저렇게 하면 진짜 수익이 나겠다.

솔직하네요. 퇴사하지 누가 가느냐고.(웃음) 왜 퇴사하죠?

남궁 그런데 발령 내면 의사들이 착해서 또 가요.(웃음) 그렇게 도끼눈 뜨고 그러지 않고, 회의 몇 번 한 다음에 ‘가야지 뭐’ 하고 다 가요.

왜 또 가요?

남궁 가지 뭐, 어떡해.(웃음) 그렇게 대규모로 보내고 과 없애듯이 구는 게 약간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납득할 수 있었어요.

그 장면에서 김은하 선생이 구승효 사장에게 나름 카리스마 있게 질문했다가 그냥 바로 앉잖아요.

실크 블라우스, 울 바지 모두 에이벨.

아, 완전 말린 날이에요, 그날은.

연기적으로요? 왜요?

그 장면이 대본 페이지로 거의 15페이지예요. 절반 이상이 (조)승우 오빠가 하는 거죠. 당연히 그걸 한 번에 할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근데 그걸 한 번에 가시더라고요. 연극하듯이 그 열 몇 장의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했어요. 다른 선배님들도 그에 맞춰서 쭉 하시고.

그 장면을 한 번에 찍었다고요?

네. 나중에 필요한 각도에서 추가로 찍긴 했는데, 처음에 승우 오빠도 그렇고 다른 선배님들도 한 번에 다 맞춰서 쭉 갔어요. 저는 그렇게 긴 신을 한 번에 쭉 하는 걸 처음 봤거든요. 너무 멋있는 거예요. 진짜 너무너무 멋있는 거예요. 승우 오빠가 괴물 같아 보이는 거예요.

남궁 되게 중요한 장면이었잖아요, 첫 등장하는 장면. 1, 2화 보고 온 게 천만다행이다.(웃음)

보조 출연자 분들 한 200명 계셨는데 그때 점심 먹고 찍어서 저희 다 같이 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승우 오빠가 하자마자 완전 넋이 나갔어요. 그러고 나서 제 장면을 딴다는데 너무 떨리는 거예요. 그때 현장에서 처음 뵌 선배들도 계셨고, 그냥 승우 오빠가 너무 멋있어서 떨리더라고요. 그래서 쭈뼛대면서 연기 했죠. 승우 오빠와 제 거리가 되게 멀었거든요? 그랬는데 나중에 그러시더라고요. “너 눈 밑에 경련 일더라.”

남궁 그 한마디 하는데.(웃음)

네. 되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웃음) 그 먼 데서 그게 보였으면 나는 죽었다, 화면에서는 작살났다 그랬죠.

경련까지는 못 봤지만 떠는 게 느껴졌어요.

너무 떨렸어요. 좀 당차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남궁 사실 “노조랑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묻는데 “상의해야죠. 할 겁니다” 그러면 할 말 없거든.(웃음) 상의한다는데 어떡해. 그래, 상의해야지.(웃음) 현실적으로도 할 말이 없겠더라고요.   

그러니까요.(웃음)

그다음에 승우 오빠를 만난 건 옥상 엘리베이터에서 스치는 장면 촬영할 때였거든요. 구승효 오고 나서 이렇게 됐다고 막 욕하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에서 구승효 사장이 딱 내리잖아요. 저도 모르게 90도 인사를 한 거예요. 아 “저 너무 비굴했죠?” 그랬더니 “어.”(웃음) 그다음에는 고개만 까딱했는데 다행히 그 장면을 써주셨어요.

남궁 드라마 현장 얘기 듣는 것도 되게 재밌네요.

병원이 훨씬 더 서바이벌이죠.

남궁 저희는 뭐, 네.(웃음)

그런데 교수님이 되게 젊으시네요.

남궁 전문의는 다 교수라고 부르니까. 발령받은 건 아니고요, 전문의는 병원에서 다 교수라고 하는데, 그것도 병원 시스템 나름이에요. 전문의를 그냥 전문의라 부르기도 하고, 교수라고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고. 제 명칭은 임상조교수인데 실질적으로 대접받는 건 교수가 아니죠.(웃음)

아까 드라마에서는 의사라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힘들어 죽겠지 않냐”라고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제로 많이 듣는 질문에는 뭐가 있어요?

남궁 이럴 시간 있냐.

오늘 사진 찍어주실 사진가도 그러더라고요.(웃음) 의사 선생님이 온다고요? 의사 선생님이 시간이 있어요?

남궁 많이 듣죠.

저도 <라이프> 보면서 응급의학과 의사도 퇴근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다른 의학 드라마에서는 퇴근하는 모습을 못 본 것 같아요.

남궁 그게 현실적인 게, 응급실에서 살 수가 없죠. 그건 환자한테도 잘못된 거고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어떻게 평생 응급실에서 일해요. 안전 면에서도 그렇고요. 레지던트라면 몰라도 전문의면 일정한 휴식 시간을 보장받아요. 하루 24시간 당직을 서면 적어도 48시간은 보장을 받아요. 그때는 콜 없이 쉴 수 있어요. 입원 환자가 있으면 콜을 받지만 적어도 응급실 환자는 안 봐요. 그렇게 해야지만 지속 가능해요. 이건 생존의 문제예요. 그렇게 해야지만 환자를 볼 수 있어요. 맑은 정신으로요.

그런데 애초에 어떻게 24시간 깨어 있을 수 있어요?

남궁 그건 제가 평생 하던 거라(웃음) 제가 레지던트 때는 워낙 인력이 없어서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하고 24시간만 쉬었거든요. 그런데 24시간이 사실 24시간이 아니에요. 24시간보다 더 일하게 되고 덜 쉬게 되죠. 어쨌든 24시간씩 하루 근무, 하루 쉬는 걸 EOD(Every Other Day)라고 해요. 그걸 4년 하는 게 레지던트예요. 그건 솔직히 지속 가능하지 않죠. 실제로 피로에 지쳐서 확실히 영민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데 평생 하다 보니까 24시간이 익숙해져서 가능하긴 해요.

이상희 배우는 오늘 아침까지 무슨 영화 촬영했어요?

<국도극장>이라고 명필름 랩과 이동휘 씨와 같이 찍는 저예산 영화예요.

새벽부터 찍었다고 했죠?

새벽 2, 3시부터? 그런데 어제는 두 신밖에 없어서 일찍 끝났어요. 새벽 2시쯤 가서 아침 8시에 끝났어요.

그게 일찍 끝난 거군요.(웃음) 24시간 근무하고, 새벽에 촬영하고, 그런 이야기 듣다 보면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떻게 가능하지?’ 싶은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 버틸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갑자기. 

남궁 그렇죠. 저도 응급실에서 환자 보는 거 되게 좋아해요. 아픈 사람들 봐주고 얘기하고 이런 거 좋아하는데, 하… 새벽에 상태가 너무 심한 환자가 오면 그때 당시로는 좋아지지 않아요. 아, 제발 나도 좀 살려달라, 이런 느낌이죠. 제가 엊그제 근무였는데 환자가 진짜 많았어요. 아침부터 정말 많이 시달렸어요. 환자 계속 보면 그냥 한 12시간 정도는 훅 지나가요. 무아지경처럼. 그러다 새벽에 간신히 정리되고 한 새벽 4, 5시 정도면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시간인데, 엊그제 새벽 5시쯤에 한 남자가 왔어요. 칼을 네 방 정도 맞았어요. 집에서 자고 있는데 강도가 들어와서 칼로 찔렀다는 거예요. 칼에 찔리면 상처가 장난 아니거든요. 팔에 이만큼 살점 떨어지고, 그 칼을 막느라 손바닥에 이만큼 상처가 나고, 그다음에는 흉부에 20cm 정도 되는 상처가 났어요. 피가 막 뿜어져 나와요. 상처가 흉강까지 안 들어가면 응급학과에서 매니징(처리)해야 하는데 흉강까지 안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 상처를 새벽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제가 꿰맸죠. 이미 20시간 정도 못 자고 환자를 계속 봤는데. 저 상처 꿰매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런데도 그럴 때는 도저히 좋아지지가 않더라고요. 아휴, 집에 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피가 또 막 묽어져요.

아….

남궁 피가 하도 많이 나다 보니까 수액을 한 3L쯤 부으면 물리적으로 피가 묽어지는데, 묽어지다가 죽는 거거든요. 여기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진짜 죽는 걸 아니까. 그 코스를 아니까. 너무 피곤한데 갑자기 정신이 다 깨고, 아,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도망가. 내가 응급의학과 교수인데. 구해줄 사람이 어딨어요.

현실적이네요, 굉장히. 상상으로는 막 ‘살려야 한다’ 그럴 것 같은데.

남궁 당연히 살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피로에 지쳐 있고, 눈앞에서 피는 뿜어져 나오고, 환자는 되게 무던하고 그러면….

무던하다고요? 칼 네 방 찔린 환자가?

남궁 네. 마취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래도 분명히 아플 텐데 “안 아파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래요. 그런데 그러다 넘어가는 거거든요. 착한 환자들이 되게 많아요. 대부분의 환자들이 착해요. 그래서 괜찮다고만 하다가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착하면 오히려 더럭 겁이 나요. 참다가 가버리니까. 그런 걸 몇 번 봐서 겁이 나는 것 같아요.

저도 맹장 터진 거 모르고 참고 있다가 병원 갔더니 더 늦었으면 안 좋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 병원 가기 전에 좀 아파지는 시기에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하는 병원에 갔는데 그냥 위염이라고,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남궁, (웃음)

그 말 저는 좋았어요. 비록 맹장 터진 건 모르셨으나.(웃음) 마냥 참지만 말고 말을 잘해야겠어요.

남궁 그런 거 보는 것도 의사 일이에요. 참는 환자 보는 거. 아프다고 안 하는 환자도 잘 봐야죠.

병원 동료들끼리도 <라이프> 이야기 하나요?

남궁 봤다는 사람이 없어요. 바쁘고 현실에 지쳐서 드라마 보는 사람이 없어요.(웃음) 보지는 못하고 들은 적은 있다 정도? 저도 이 인터뷰 자리가 없었으면 1, 2화도  못 봤을 거예요.

비단 <라이프>뿐 아니라 뭐든 잘 못 보는군요.

남궁 그렇죠.

이상희 배우는 어때요? 주변에서 <라이프> 이야기 건네던가요?

저는 이미 대본만으로도 흥미로워서 이런 내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저희 엄마, 아빠가 방송 보시더니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의료 민영화라든지 수가라든지, 이런 병원 내 이야기가 어쩌면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모르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화두는 던졌다고 생각해요. 그 안의 이슈에 대한 생각은 보는 누군가의 몫이겠지만.

남궁 물론 ‘응급, 소아, 산부 3개과 퇴출’ 같은 이야기처럼 내부자가 보기에는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거기서 던지는 화두 자체는 내부자로서 분명히 고민할 수 있고, 고민했던 화두이고, 그걸 세상에 내보낸 게 <라이프>라고 생각해요.

결국 갈등을 빚는 요소 중 하나는 이익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의사가 하는 행위는 영리를 추구하는 게 아닌데 이익은 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오죠. “의사가 숫자를 뭘 알겠어요.”

남궁 정확한 말이에요. 대학 병원 환경에서는요.

그런가요?

남궁 의사도 숫자를 알아야 하는 의사가 있고 아닌 의사가 있는데, 혹시 <라이프>에서 응급의학과 과장이 아무 일도 안 하는 걸로 나오나요?

무슨 일을 하긴 하는데….

남궁 환자는 잘 안 보죠?

환자는 가끔 보고.(웃음)

남궁 고증을 누가 한 거네요.(웃음) 확실히 한 거예요. 과장은 환자 잘 안 보거든요. 과장이 하는 일이 숫자 보는 일이에요. 누가 보기는 봐야 하잖아요.

관리자급이니까?

남궁 네, 관리자급이니까. 그리고 그 밑으로는 숫자란 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물론 개원하거나 자기 매출 실적이 중요한 병원에 취직했다, 그러면 다른 얘기죠.

숫자가 중요한 병원에는 어떤 게 있나요? 성형외과?

남궁 음…. 대학 병원이 아닌 병원은 다 그래요. 대학 병원이 아닌 병원은 페이 닥터의 세계죠. 매출에 따라 페이에 정당성이 생기니까 직장과 자기 일에서 계속 숫자 싸움을 하게 돼 있어요. 흔히 일컫기를 강호의 세계라 그래요. 거긴 숫자가 중요하죠. 강호의 세계니까. 그런데 대학 병원은 그렇지 않아요.

대학 병원의 영리화를 막는 이유가 그런 데 있겠군요. 대학 병원까지 강호의 세계가 되면 안 될 테니까.

남궁 대학 병원 의사들은 ‘숫자가 뭐야, 수가가 뭐야, 내가 알 바야?’ 다 그런 식으로 진료해요.(웃음) 물론 숫자를 신경 안 쓴다고 해도 병원 수익이나 이익 때문에 ‘이 약을 이렇게 쓰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는 관리자급 아래로는 숫자 자체에 관심이 없어요. 당장 환자 보고, 환자 살리고, 필요한 처치하고 퇴근하는 사람이라.

두 분 모두에게 묻고 싶어요. 왜 이 길을 택했나요?

남궁 왜 이 길을 택했느냐…. 제가 의사로서의 길을 택한 건, 그런데 현장 분위기도 그렇고 의사, 간호사 된 사람 중에 ‘환자를 봐야겠다’, ‘내가 살릴 거다’, ‘신념이 있다’, 이런 사람 되게 적어요. 그렇게 미리 생각하고 오는 사람이 되게 적어요. 그냥 현실적인 이유 있잖아요. 의대 가기 힘든데 힘든 만큼 아무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그런 이유. 직업적인 어떤 의식을 떠나서, 그냥 그에 맞춰서 선발돼 오는 사람들이거든요. 의대 갈 성적 나오고, 그럼 내 길은 의사인가 해서 의대에 왔고, 와보니까 대부분 그렇게 온 사람들이고.

진짜 솔직하시다.(웃음)

남궁 현실적으로 그래요. 이건 제가 다른 식으로 미화해 얘기한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교육이라는 게 되게 큰 것 같아요. 의대 들어온 이후부터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을 계속 공부하고, 환자를 보고, 병원 실습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떤 건지 보고 또 보다 보면 없던 마음이 생겨요. 결국 다 생겨요. 의사로서 내가 이렇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되는구나. 거기서부터 선악을 판단하고, 어떤 게 정의인지 판단하게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레지던트 4년 하다 보면 그 안에서 나름대로 하나하나 다 철학자가 돼요. 신념도 생기고, 결국 그런 사람이 전문의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의사가 되는군요.

남궁 그런 것 같아요.

이상희 씨는 왜 배우의 길을 택했나요?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잘 모르니까,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냥 해보자. 남궁인 선생님 말씀대로 저도 하면서 어떤 건 줄 알게 되었고, 하면서 애정이 생겼어요. 가끔은 그 재미나 애정이 주춤하고 떨어질 때도 있어요. 사실 <라이프>를 찍으면서 (이)동욱 오빠에게 도움을 되게 많이 받았거든요. 오빠가 제게 뭘 도와주려고 해서 한 게 아니라, 응급실 장면을 찍는데 오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여기 응급실 찍을 때 너무 재밌어.” 어렵지 않느냐, 왜냐하면 슈처(꿰매는 것)도 직접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할 것도 많고 어렵지 않느냐 물었더니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아니. 여기 있으면 내가 진짜 의사가 된 것 같아. 재밌어.” 그 말이 저한테는 되게 큰 울림이었어요. 제가 잘 모르고 연기할 때, 그때는 진짜 놀이로 연기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하면서 욕심이 생기고 잘하고 싶다 보니까 주객이 전도된 거죠. 저한테 연기가 놀이였던 적은 너무너무 옛날인 거예요. 그래서 동욱 오빠의 그 말이 제게는 크게 울렸어요. 저는 ‘나는 김은하야. 김은하여야만 해’ 그러는데 오빠는 ‘내가 의사인 것 같아’라고 하니까. 그건 좀 다르잖아요. 동욱 오빠가 가진 굉장히 순수한 면이 그의 캐릭터를 좀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런 시도를 계속하려고 해요. 언젠가는 되겠죠.

제가 왜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이유로 두 분을 만나고 싶었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저 역시 모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 분의 답변을 듣고 명확해졌어요. 오랜만에 즐겁게 본 드라마 속에서 현실의 단서를 찾는 것도, 실제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결국은 계속 삶을 살아나가고, 무언가 좇고,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도 내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라이프 같아요.

저는 사실…. 제가 간호사였던 때를 지금 와서 말하기가 좀 부끄러워요. 왜냐하면 저는 ‘나 연기를 하겠어’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일을 관둔 건 아니었거든요. 버거워서 관뒀어요. 어쩌면 도망치듯이, 낙오되듯이 일을 관뒀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하기를 꺼려했어요. 그런데 <라이프>라는 드라마도 어떻게 보면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어쨌든 저라는 삶에서 그 역시 저의 과거이니까, 제가 걸어온 행적이니까 ‘그래, 가서 편히 얘기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 인터뷰에 오기는 왔는데, 그게 잘 안된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뭐가 이렇게 불편한지. 병원에 남아 계신 분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건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고 고마운 존재인데 아마 제가 거기 끝까지 남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남궁 그런데 라이프의 반대말은 ‘데스’잖아요. 삶이 끝나기 전에, 살아 있는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그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라이프 아닐까요? 제 일 자체가 죽음을 보는 일이지만 저는 거기에 라이프라는 가치로 맞서 싸우고 싶어요. 이상희 배우도 무언가 찾으면서 사는 것처럼 보여요.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지금은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바람은 이 과정을 잘 채워나갔으면 하는 거고, 모르니까 찾아나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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