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도나텔라

지아니 베르사체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도나텔라는 완전한 베르사체가 됐다.

지아니 베르사체가 당신의 곁을 떠난 후 지난 20년은 어떤 시간이었고 어떤 의미가 있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가끔 멈춰서 돌아보는 것을 잊게 된다. 베르사체는 20년 동안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이 회사를 21세기로 이끈 동시에 브랜드 고유의 DNA를 그대로 유지해온 것이다. 20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나 자신도, 이사회도. 새롭게 발견한 요소도 있고 새로운 기술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베르사체는 절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를 주시하는 편이다. 새로운 건 늘 환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이슈와 신념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환경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연구하기도 한다. 분명 많은 시간을 요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이 방향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패션과 유행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베르사체는 지난 40년간 유행에 휩쓸리는 대신 베르사체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집중했고 그걸 지켜왔다. 매우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빠의 죽음 직후 브랜드를 맡게 된 초창기에는 나만의 이미지를 찾는 게 어려웠다. 지아니가 했던 방식을 유지해야만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베르사체가 정체성을 잃었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방향이 지아니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지아니의 계보를 이을 자질이 있는지 확신하는 사람도 없었다. 솔직히 나에게는 정말, 진심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의 베르사체에서 당신의 역할은 뭔가?

내가 베르사체에서 하는 모든 일에 브랜드의 DNA가 담겨 있다. 내 이름이 베르사체이듯 베르사체의 DNA가 곧 내 DNA이고, 내가 할 일은 우리의 전통을 책임지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건 가장 짜릿한 일이다.

당신이 용기를 갖고 브랜드의 DNA를 지켜온 덕분에 베르사체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베르사체의 브랜드 파워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동시대의 사회, 문화와 잘 어우러지는 것. 이렇게 하려면 늘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항상 주위를 돌아보고,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 특히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이 없다. 나의 디자인 팀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20~30대들로 꾸려져 있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 베르사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음 트렌드는 뭐가 될 것이라 예측하는지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게 좋다.

베르사체는 디지털과 SNS에 친화적인 브랜드다. 도나텔라 당신이 먼저 SNS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애정도 자주 내비친다.

요즘 패션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다. 전 세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소통할 수 있고, 누구나 패션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예전에는 브랜드와 대중 사이에 벽이 있어서 그랬는지 항상 좀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반항아이자 선구자로서 룰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벽을 무너뜨리면서 패션계에 새로운 에너지가 생겼고 이 에너지가 패션의 미래가 될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우리의 고객이자 남은 21세기를 정리할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들과 패션업계에게, SNS는 이미 일부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너무 기대된다.

그들이 당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느껴진다. 또 어떤 것이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나?

내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남기거나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나를 사진에 태그하는 젊은이들이 엄청난 영감을 준다. 패션에서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다. 인터넷 세대가 더 확장되면 그 결과는 거의 혁명에 가까울 것이다. 세계의 청년들이 패션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나는 그들이 패션의 미래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이탈리아다. 대담하고,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내고,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이탈리아를 사랑한다. 이탈리아의 전통이 베르사체의 모든 것이고, 내가 이탈리아인인 것,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장인 기법을 디자인에 도입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베르사체맨’들. 루 리드,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알랭 들롱, 주드 로, 루퍼트 에버렛,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 카니예 웨스트, 조니 뎁.

‘베르사체맨’은 어떤 남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개성을 중시하는 브랜드이고 이 점은 여성 컬렉션과 남성 컬렉션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브랜드는 아닐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걸 원하지 않고. 베르사체맨은 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자신감과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강한 캐릭터와 개성을 가진 남자를 위한 옷이란 뜻이다. 테일러드슈트와 스트리트 스타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남자, 한 가지 스타일로 함축될 수 없는 스타일을 가진 남자여야 한다.

대담하고,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내고,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이탈리아를 사랑한다. 이탈리아의 전통이 베르사체의 모든 것이고, 내가 이탈리아인인 것,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장인 기법을 디자인에 도입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ABOUT 2018 F/W VERSACE MEN’S COLLECTION

2018 F/W 남성 컬렉션에서 베르사체맨의 면모가 더욱 부각된 것 같다.

평소에 잘 입는 티셔츠, 스웨터, 셔츠, 넥타이를 이브닝 웨어와 자유롭게 레이어링했다. 디자인과 소재에 관해 그 어떤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베르사체 그대로의 방식을 택했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엇이든 가능한 컬렉션이자, 다양한 스타일을 믹스매치하는 요즘 남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 요즘 남자들은 아이러니한 선택을 즐긴다. 당돌하지만 소재와 품질에 대해서는 어느 때보다 엄격하다. 딱 베르사체맨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새로운 남성 스니커즈 ‘체인 리액션’을 론칭했다. 아주 대대적으로 준비한 것 같은데?

난 내가 사랑하는 하이힐을 절대 버릴 수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스니커즈에 열광하는지는 잘 안다. 요즘은 누구나 스니커즈를 신는다. 절제된 스타일을, 물론 우리 컬렉션에 그런 옷은 절대 없지만,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다. 체인 리액션은 보는 순간 단번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스니커즈다.

남성 컬렉션에서 베르사체의 정체성을 응집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뭐라고 생각하나?

테일러드슈트. 강한 어깨선과 커팅에서 느껴지는 힘, 그와 대비를 이루는 디자인적 요소의 조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2018 F/W 컬렉션에서 다양한 타탄체크를 뒤섞어 만든 슈트처럼. 강인하면서도 세심한 감성이 느껴진다.

베르사체는 레디투웨어와 쿠튀르를 포함해 키즈, 언더웨어, 향수, 아이웨어, 홈 컬렉션, 호텔 분야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해왔다. 베르사체를 패션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까?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늘 베르사체가 캣워크 쇼 이상의 브랜드라고 믿었다. 특히 지아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한 패션 디자이너였다. 1992년 베르사체 홈 컬렉션이 처음 탄생했고, 지아니는 그의 창의적인 비전을 홈 아이템에 반영하는 걸 좋아했다. 베르사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줄 아는, 그 라이프스타일이 상징하는 특정한 미적 요소에 둘러싸이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브랜드를 확장하고, 경계를 허물고, 한결같은 스타일을 지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늘 당당해 보이는 당신도 이런 도전을 두려워하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되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이 일을 하며 소극적으로 행동하거나 조바심을 느낀다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나도 가끔 긴장하거나 나 자신을 의심할 때도 있지만 그건 그저 창의적인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내 작업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북돋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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