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바이 나이트’ 안토니 바카렐로

생 로랑은 왜 뉴욕의 밤으로 초대했을까? 첫 단독 남성 컬렉션을 선보인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를 만났다.

첫 남성 컬렉션을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선보인 이유가 뭔가?

뉴욕의 에너지를 사랑한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뉴욕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믿는다. 다이내믹하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큰 규모의 남성 컬렉션을 선보이고 싶었다. 또 뉴욕은 생 로랑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장소이다. 40년 전인 1978년, 이브 생 로랑은 오피움 향수 출시를 기념하며 뉴욕에서 퇴폐적이면서도 아이코닉한 파티를 연 적도 있다. 이번 컬렉션의 무대로 뉴욕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그중에서도 리버티 주립 공원의 어떤 지점을 콕 집어 고른 이유가 궁금하다.

뉴욕에서도 최고의 장소를 찾기 위해 모든 팀이 동분서주했다. 결국 뉴욕 리버티 주립 공원으로 정했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였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열린 지난 쇼들처럼 이번에도 야경이 훌륭한 장치적 역할을 했다.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나? 생 로랑의 영상과 사진에도 밤이 자주 등장한다.

밤이 주는 은밀하고 대담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낮보다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니까.

런웨이가 무척 드라마틱하고 웅장했다. 어떤 아이디어에서 이런 세트를 고안하게 됐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뉴욕은 에너지와 기회로 가득 찬 도시이다. 세트, 음악 그리고 밤, 이 모든 것이 도시가 지닌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완벽한 배경이라 생각했다. 또 이것은 이번 남성 컬렉션의 메시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컬렉션의 주제를 ‘미드나이트 어번 카우보이’로 정한 이유가 있나?

컬렉션을 만들 때 특정 주제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며 일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컬렉션에는 다양한 주제가 섞여 있다. 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컬렉션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미드나이트 어번 카우보이’는 뉴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실루엣이 무척 슬림해지고 복고적 무드가 강했다. 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가 연상되기도 했다.

1970년대 그리고 그 시절의 이브 생 로랑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당시 사람들의 스타일을 연구해서 나온 결과이니까. 실루엣에 관해서라면 나는 항상 몸을 드러내는 실루엣을 좋아했다. 슬림한 실루엣 안에서도 예상 불가능한 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컬렉션을 만들면서 당신에게 영향을 준 영화라든지 사진, 음악 같은 것이 있다면?

영화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와 <워리어> (1979),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과 그 시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아벨 페라라의 작품 등 다양한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

남녀 모델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앤드로지너스 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나는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방식으로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동시에 작업한다. 남성을 전통적인 성 역할에 가두고 싶지 않을뿐더러 궁극적으로 생 로랑의 남성복에는 세심하면서 최고의 감각을 가졌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싶다. ‘앤드로지너스’라는 단어도 내겐 지루하게 느껴진다. 생 로랑을 입는 여성들은 남자 친구의 옷장에 있는 생 로랑 남성복을 꺼내 입을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자유야말로 현대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옷 중 당신의 베스트 룩은 뭔가?

자신 없는 룩은 쇼에 내놓지 않는다. 모두 베스트 룩이다.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주는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나?

나는 다양한 이미지와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로부터 늘 영감을 받는다. 나의 컬렉션은 내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 발견한 현대적인 문화와 아이코닉한 이미지가 결합돼 만들어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이미지 그 자체가 출발점이 된다. 책이나 인터넷, 소셜 미디어, 영화 등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필요한 이미지를 수집한 다음 그중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이미지를 선택한다.

생 로랑 쇼에 초청된 VIP 리스트는 그 어떤 브랜드보다 특별하다. 단순히 지금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당신의 취향과 선호도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라서.

생 로랑 하우스의 VIP들은 나의 비전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꿈꾸는 생 로랑의 여성상과 남성상을 보여준다. 이런 연관성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리스트 선정은 특별한 전략 없이 매우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

에펠탑에 불이 켜지자 쇼가 시작됐다. 반짝이는 에펠탑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그날의 파리는 마치 생 로랑을 위한 무대 같았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안토니 바카렐로는 파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장소에서 생 로랑 쇼를 열었다. 이번에는 뉴욕이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첫 남성 쇼를 뉴욕에서 열었다. 파리의 상징 같은 브랜드가 말이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뉴욕에서는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6월 6일 수요일 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 야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런웨이를 보자 그의 계획이 마법처럼 이루어졌다고 생각됐다. 에펠탑을 런웨이로 끌어들인 파리의 그날 밤처럼. 마침 갓 완공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 제3빌딩이 뉴욕의 야경을 새로 그리고 있었다. 허드슨강은 낮보다 더 찬란했다. 휘몰아치는 강바람과 은밀한 분위기, 위태로운 음악이 깔리며 쇼가 시작됐다.

생 로랑 2019 S/S 컬렉션의 큰 그림은 ‘미드나이트 어번 카우보이’다. 하지만 안토니 바카렐로는 이 키워드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랐다. 온갖 문화의 집합체인 이 도시처럼 컬렉션은 다양한 생 로랑적 콘텐츠의 집합이었다. 웨스턴 룩과 로큰롤, 생 로랑 전형의 사하리엔 콘셉트, 1970년대에 대한 경외가 부지불식간에 느껴졌다. 신경질적으로 마른 모델들은 뾰족한 실루엣의 옷을 태연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온갖 휘황한 소재를 끌어모아 쿠튀르적 접근으로 만든 옷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태도에서는 어떤 통렬함 같은 것이 몰려오기도 했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남성복에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도 곧 그를 인정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시즌보다 남녀 구분이 힘들었다. 다시 말하면 구분이 무의미했다. 남성 컬렉션이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입는 옷이다. 앤드로지너스 룩이라는 용어조차 진부하다는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글리터리한 분장으로 뒤덮인 모델들이 줄지어 나오며 쇼는 끝났다. 런웨이의 검정 대리석 바닥은 밤하늘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고, 분장한 모델들은 맨해튼의 야경처럼 스스로 빛났다. 왜 뉴욕이어야 했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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