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영, 후회는 없다

노선영은 대한민국 빙상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크 소재 롱 재킷 뎁. 앵클부츠 레이첼 콕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죠?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얼마나 만족할 수 있어요?

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어렵네요. 한 80% 정도요.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눈에 띌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은 건 아쉬워요. 하지만 항상 제 자리에서 꾸준히 쉬지 않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요.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었어요. 고3 때 허리 부상으로 한 번 탈락한 걸 제외하면 늘 국가대표 자리는 유지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은 출전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네. 이번이 저에게는 정말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해서 후회 없이 해보자,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출전을 못 하게 되면서 퇴소를 통보받고 집에 틀어박혀서 모든 것을 포기했어요.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문제로 결국 제가 올림픽에 나가게 됐는데, 누군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은 기회라 더 간절해졌어요.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깝기도 했고요. 최상의 컨디션을 올리기까지 시간도 부족했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2월 19일 팀추월 경기 이후로, 아마도 본인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지요.

네. 올림픽을 끝내고 한동안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어요. 스케이트장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받을지,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이었죠. 스스로 손을 쓸 방법도 알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어요. 갈수록 너무 큰 사태가 되었고,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알아봤어요. 운동선수인데 좋은 성적으로 알려진 게 아니니까 죄송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끝내고 싶다고 해도 끝나지 않는 거죠. 동정 어린 시선을 받다가 어느 순간 제가 가해자인 것처럼 되어 있기도 하고, 계속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선수들 사이의 감정이나 잘잘못을 되짚어 보자는 건 아니에요.

맨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을 때, 저는 함께 운동하는 선후배 동료 선수들을 저격해서 입장을 밝힌 게 아니었어요. 한데 ‘폭로’라는 단어가 붙어서 기사가 쏟아지는 게 충격이었어요. 선수가 부당한 일을 겪어도 무서워서 의견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 말이었어요. 올림픽을 할 때마다 항상 문제는 터지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잠깐 반짝하고 대충 수습하는 일이 반복되는 거죠.

위축되지 않고 ‘젊은 빙상인 협회’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마음인 사람들은 분명 있어요. 20년 가까이 스케이트를 탔는데 이 업계의 변하지 않는 면면이 안타까웠어요. 지치기도 했고요. 누군가는 제가 은퇴가 가까워졌으니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반대로 곧 그만둘 사람이니까 국내 빙상 분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변화를 미룰 수 없어요. 그리고 한번 목소리를 내면 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야 해요.

외롭지 않나요?

외롭죠. 선수들 중에서는 피해를 입을까 봐 동참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요. 워낙 이 분야가 좁기도 하고요.

모른 척 떠날 수도 있었는데, 스케이트를 오래 탄 사람으로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었군요. 하지만 올해 일어난 일을 후회한 적 없나요?

아니요. 후회하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용기를 내서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또 금세 잊히고 말았을 거예요. 지금까지 선수들은 한쪽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빙판 위에 서는 선수가 의견을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니트 톱, 바지 모두 자라.

메달 획득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올해 가장 화제의 선수였던 건 분명하죠.

네. 그래서 섭외 전화가 왔을 때 사실 놀라기도 하고 궁금했어요. 보통 올림픽 시작 전에는 메달 가능성이 높은 선수, 그리고 끝나면 메달을 딴 선수만 주목을 받잖아요. 하지만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해요. 저는 올해까지 네 번 출전했지만 대부분 몰라요. 한데 이번에는 메달리스트도 아닌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격려를 받아서 감사했어요. 전에 비해 꼭, 1, 2등을 다투지 않아도 운동선수의 노력 자체를 응원하시는 분도 늘어난 것 같고요. .

그 변화는 다행이에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선영 선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아직까지는 정말 힘든 기억이에요. 그렇지만 점점 갈수록 제가 어떻게 하느냐,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운동선수여서인지 승부욕 같은 게 있어요. 여기서 더 무너지면 정말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도 지금은 힘이 약한 선수 한 명일 뿐이니까, 앞으로 좀 더 배우고 공부해서 빙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가대표’라는 네 글자가 어느 선수보다 여러 의미가 있겠네요.

맞아요. 더 이상 미련도 없고, 선발전도 나가지 않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할 기회가 없었어요. 유명하지도 않은 한 스케이트 선수에게 보내주신 아낌없는 격려와 많은 댓글 정말 감사했어요. 자꾸만 숨고 싶을 때도 응원 덕분에 다시 용기를 냈어요.

2018년이 소란했던 것만큼 다음 행보도 분명 시선이 쏠릴 텐데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아요. 10~20대를 선수촌에서 운동만 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또래에 비해 사회 경험이 너무 적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게 공부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요.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니 스포츠업계를 완전히 떠나는 건 쉽지 않겠지만요. 제 장점을 살려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도움이 되는 사람, 좋은 말이네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지도자는 못 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 진로 문제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그때 ‘네가 필요한 사람이 돼 있으면 다시 너를 찾게 될 것’이라고 지인이 해준 말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어요. 제가 더 실력을 쌓고 필요한 사람이 되면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용,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신의현, 지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양현종, 최고의 투수를 꿈꾸다

김아랑, 올해의 금빛 질주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