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이설

이설은 이렇게 늘 설레고 싶다.

<옥란면옥>에서 연변 사투리를 너무 잘해서 중국 동포인가 했어요.

그래서 댓글에 욕이 엄청 많았어요. ‘왜 연변 애를 데리고 왔냐. 세상 참 말세다’ 하는. 그런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고, 고마웠어요. 화교라고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한국 사람입니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요.

서울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6~7년요. 이왕 사는 거 엄청 큰 곳에서 한번 살아보자고 해서 무작정 올라왔어요. 아무것도 없이.

단순히 서울이 커서?

크면 뭐라도 있겠지 해서 올라왔는데 한강이 너무 커서 놀랐어요. 내가 보고 자란 마을의 개울이 정말 크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이 몇만 배는 될 거예요.

고향 사람들이 서울 사람 조심하라고들 하지 않아요?

가만히 있으면 코 베어 간다고 하던데.(웃음) 그것보다 서울 사람들 말투가 신기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부드럽고 착하게 말하지?’ 싶었어요. 우리는 억양이 세다 보니, 친구랑 대화하고 있으면 다들 싸우는 줄 알아요. 말투 때문에 오해를 받은 적도 있고요.

오늘이 첫 화보 촬영으로 알고 있는데, 대범하던데요. 처음이면 카메라를 더 의식하고 뚫어져라 보는데, 눈길도 안 주더라고요. 무심하고 쿨하게.

실은 배우 일을 시작하고 화보 촬영은 처음이라 무서웠어요. 그 순간 예쁜 모습을 다 보여줘야 하잖아요. 엄청 긴장됐는데 그냥 안 봤어요. 사진가분이 아무 생각 없이 하라고, 응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2016년에 백예린의 ‘바이 바이 마이 블루’ 뮤직비디오를 하루 종일 찍었는데 통편집됐어요. 그게 첫 영상 작업이었는데 통편집되어서 아쉬웠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잘해보고 싶어 뛰어들었어요.

경쟁률 300 대 1을 뚫은 괴물 신인이라면서요. 드라마 <나쁜형사> 오디션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예요?

감독님이 영화 <허스토리> VIP 시사회에 오셨는데, 대선배들 사이에서 머리를 쫙 붙이고 슈트 입고 있던 제 모습이 인상 깊으셨대요. 300 대 1은… 정말 맞나 싶어요. 감독님은 그렇다고 하시는데 안 믿겨요. 그냥 아주 많은 사람이 오디션을 봤구나 하는 정도지만, 300 대 1을 뚫어봤으니 1500 대 1도 뚫어보고 싶고, 뭐든 계속 돌파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쟁취하고 싶은 건 뭐예요?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거요.

믿고 보는 배우가 누군데요?

윤여정 선생님요. 일흔이 넘으셨는데 여전히 귀여운 역할도 하시고, 굉장히 섹시한 역할도 하시잖아요. 보통 그 연세가 되면 ‘엄마’나 ‘할머니’를 많이 하는데 선생님은 역할의 폭이 넓으셔서요. 연기 폭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외국 배우로는 레이첼 맥아담스 좋아해요. 그 자체가 사랑스러운 사람.

사랑스러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근에 알게 된 게,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이렇게 당차요?

당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해요.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궁금하면 “알려주세요”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작정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들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쁜형사> 상대역인 신하균 배우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방에 신하균 배우의 사진을 붙여놨다면서요. 절대 기 눌리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은데.

눈이 엄청 강렬하세요. 처음 대본 리딩할 때는 워낙 잘 웃으시고 인상이 좋으셔서 안도했는데, 현장에 가니 확 돌변하시더라고요. 이러다 내가 큰일나겠구나 싶어서 신하균 선배님 얼굴을 ‘희로애락’ 버전으로 뽑아 침대 옆에 붙여뒀어요.

작품이 끝날 때까지요?

네. 나중에는 아예 그걸 들고 다녔어요.(웃음)

엄청 대선배이니 기에 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그게 싫었어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자꾸 주눅 들고 긴장되더라고요. 눈을 보고 연기하는데, 내가 잘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나쁜형사>에서 참 많이도 맞았어요. 유리창에 내던져지기도 하고. 언제가 제일 아팠어요?

살인마 현민이가 벽난로를 뜯어 제 머리를 후려쳤을 때요.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그대로 맞고 진짜 나가떨어졌어요. 그게 편집돼서 좀 아쉽긴 해요.

<옥란면옥>에서는 어찌나 찰지게 때리던지.

원래 때리는 게 아니었는데, 거리 조절을 잘못해서…. 그래서 정적이 흘렀죠. 너무 ‘쫙’ 소리가 나서. 제 손은 괜찮은데, 김강우 선배 얼굴에 계속 손자국이 남아 있었어요. 울먹거리면서 죄송하다고 하니, 괜찮다고 왜 네가 우냐고 하시더라고요.

맞는 역할이 나아요, 때리는 역할이 나아요?

맞는 역할이 훨씬 나아요. 때리면 상대한테 너무 미안하니까. 다른 배우들도 차라리 맞는 게 쉽다고 해요. 마음이 편해서.

방송으로 보니 언제 자신이 매력적이었어요?

가만히 상대를 쳐다보고 있을 때요. 제 눈이 좋아요. 눈두덩 위에 있는 실핏줄이랑 볼에 있는 점도요.

<나쁜형사> 마지막 회에서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도 좋았어요.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알았는데.

많은 분들이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없다고 하는데, 공부해보니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뿐이지 자기감정과 본능에 굉장히 충실하대요. 기사 댓글을 보면 ‘사이코패스가 왜 우냐’, ‘사이코패스가 그렇게 감정을 다 표현하냐’고 해서 조금 억울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이코패스였거든요.

 

 

재킷 제이백 쿠튀르. 브라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청바지 알렉산더 왕. 목걸이 르세이.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이다 싶은 건 뭐예요?

예쁘지 않은 거? 자고로 예쁘다고 하면 송혜교 선배님이나 한지민 선배처럼 감탄이 나오는 얼굴이잖아요. 전 예쁜 얼굴이 아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배우가 아니라면 뭘 했을까요?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깃집 사장. 아니면 빈티지 옷이나 액세서리를 수집해서 파는 일요. 옛날 옷 입는 거 좋아하거든요. 빈티지 제품들.

좋아하는 게 확실한 편이에요?

확실하고 단순해요. 시장에서 파는 거나, 옛날 물건 좋아해요. 옛날 밥상이나 주워 온 그릇, 옷도 빈티지 제품, 책도 낡은 거 좋아하고요. 익숙한 게 편해요. 새 물건은 때 탈까 봐 대하기 조심스러운데, 누군가 사용하던 물건은 원래 쓰던 것 같아서 막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편안해지는 기분이에요.

지금 자신은 어떤 색인 것 같아요?

가진 거 없는… 딱 이 색. (생수병을 가리킨다.) 물. 투명한 색.

왜요? 어떤 색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겁이 나고, 내 중심이 오롯이 서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 거예요? 중심을 잘 잡으려고? 스튜디오에 들어올 때 <연금술사> 책을 들고 있더라고요.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도 없어서 어릴 때부터 놀 거리가 책밖에 없었어요. <연금술사>는 열한 살 때인가 처음 읽었는데, 아무리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서 의문의 책으로 남겨뒀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자주 가는 알라딘 서점에 있더라고요.

중고 서점요?

네. 심심하면 거기 들러서 책 봐요. 정말 읽고 싶은 신간이 있으면 사는데, 새 책은 정이 잘 안 가요. 헌책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게 매력적이잖아요. 냄새도 좋고. 누군가 책에 필기해놓은 게 있으면 그걸 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가끔 작가의 사인이 적힌 책도 발견하는데, 그러면 ‘운명이다’ 하고 무조건 구입해요.

그리고 또 팔아요?

저는 책 안 팔아요. 보관하지.

찾아왔으면 하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있어요?

(‘으악’ 소리를 질렀다.) 일생일대의 기회요? (생각에 잠긴다.) 삭발 같은 거?

삭발해보고 싶어요?

진짜 해보고 싶어요. <매드맥스>의 샤를리즈 테론처럼. 삭발이 정말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아, 요즘은 액션 장르를 하고 싶어요.

그렇게 많이 맞고도요?

재밌어요. 한국에서도 <어벤져스> 여자 배우들 버전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여자 배우들의 다양한 연기를 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요. 여자 배우로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라 고민하는 배우도 많고요. 이제 연기를 시작하는데, 그런 걸 고민해 본 적 있어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못 했고, 요즘 그런 인터뷰를 보면서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약하고 누군가가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나쁜형사>에서 제가 연기한 은선재는 구하러 가거나 응징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도 많이 봐요?

그러려고 해요. 최근에 배두나 선배의 인터뷰를 흥미롭게 봤어요. 연기 논란을 오히려 반갑게, 덤덤하게 대하는 모습이 용기 있고 멋있어 보였어요.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이 많이 간 장면은 뭐예요?

하나만요?

마음껏요.

어, 다 우는 거예요. <허스토리>에서는 교실에서 김해숙 선배님과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다 울 때. 선배님께서 제게 어떤 감정을 준 것 같았어요. <옥란면옥>에서는 빗속에서 우는 장면. 감독님께서 ‘절대 인공 눈물을 주지 않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라’ 하셨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나는 배우가 될 자격이 없다’고까지 생각했죠. 며칠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시도를 했는데 또 눈물이 안 나는 거예요. 그러다 김강우 선배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그날이 드라마 마지막 촬영이었거든요. 아쉽고 서운하고 부담감도 크고, 그런 복합된 감정이 확 터진 것 같아요. 그때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좋아해요.

<나쁜형사>에서는요?

돌아가신 엄마가 했던 식당에서 우연히 우태석을 만나 “너 나 안 믿는 거네” 하고 운 장면요. 원래는 우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배신감이라고 해야 되나, 오묘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막 울었어요. 감독님이 ‘컷’ 하고는 “왜 울어?” 하셔서 “제 마음이 지금 너무 울고 싶어요” 하니까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셔서 그냥 울었어요. 그런데 신하균 선배가 그걸 또 바로 받아주셔서 감정을 주고받았어요.

대본에 없는 게 오고 간 거예요?

네. 그때 진짜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하고, 또 많이 돌려 봤어요.

이런 걸 두고 본능적으로 연기한다고 하는 건가? 연기를 열심히 공부해서 하는 편은 아니에요?

공부도 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감정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그걸 좋아하고 그렇게 하려고 해요.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그렇게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걸 느끼는 것도 연기의 매력일 수 있겠네요.

네. 그렇게 해서 상대와 동화될 때도 있고 내가 상대를 동화시킬 때도 있는데 그런 지점이 좋아요.

배우 생활을 하면 역할을 위해 배워야 하는 게 많잖아요. 자의든 타의든 취미 생활을 만들어가는 건 참 부러워요.

그래서 이 직업이 너무 좋아요. 하나를 진득하게 못하는데, 배우는 무엇을 계속 배워야 하고 변신을 해야 하잖아요. 요즘은 노래 연습을 하고 있어요. 노래를 동요처럼 불러서 동요같이 부르지 않으려고요.

 

 

셔츠 타미 힐피거.

고치고 싶은 연기 습관이 있어요?

말의 어미가 처진다고 해야 하나, 그게 경상도 사람들의 고질병이래요. 그런데 <나쁜형사> 감독님이 저만의 말투가 있는 것 같다고, 재미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말투를 갖고 가되, 필요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가며 하고 싶어요. 다양한 말투를 많이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름 ‘이설’로 이행시 한번 해주세요.

이행시요? 아, 미치겠다.(웃음)

잘 못할 것 같은데… 순발력이 없을 것 같아요.

네? (버럭) 아, 순발력 있고 싶다.

승부욕은 있어요?

있는 것 같아요.

있네요. 표정 보니까 너무 있네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할게요. ‘이’ 이렇게 늘, ‘설’ 설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 괜찮은 것 같아요.(굉장히 만족한 듯한 목소리와 표정)

이건 무조건 편집인데요, 통편집.

아, 이러면 집에 가서 잠 못 자는데.

어떤 승부욕을 발휘할 때의 자신이 좋아요?

매번 좋아요. 승부욕이 나쁜 게 아니잖아요. 도전하는 마음이랑 일맥상통하기도 하고.

승부욕이 강하면 지치지 않아요?

안 지치던데요. 오히려 활활 타서 내가 다 탈까 봐 좀 무섭긴 한데 그것도 재미있어요.

2018년 MBC와 KBS 연말 시상식에서 모두 상을 받았어요. 시상식에서 멋지게 턱시도를 입었던데, 어떻게 턱시도 입을 생각을 했어요?

밥을 굶기 싫어서요. 먹는 걸 좋아해서.

드레스 입으려면 밥을 굶어야 해요?

그래야 하지 않아요?

턱시도가 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더 쉽게 입을 수 없는 옷 같은데.

그냥 입고 싶었어요. 친한 패션 디자이너가 신상이라고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옷에 눈이 가더라고요. 언젠가는 반드시 입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시상식이 될 줄은 몰랐고요?

네. 예상보다 빨리 입게 돼서 기분 좋았어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그대로 입고 싶어서, 옷과 한 벌인 나비넥타이도 했어요. 그런데 같이 간 선배가 ‘이러고 왔냐’고 하더라고요. 드레스를 기대하신 거 같은데(웃음) 그 반응도 재미있었어요.

“뭐 어때서요” 하지.

“그냥요. 씩씩해 보이고 좋잖아요” 했어요. 그리고 같이 씩씩하게 레드 카펫 위로 걸어갔어요.

그렇게 씩씩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던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비어 있어서 뭐든 채워갈 수 있는 그런 사람. 뭐든 다 채울 수 있게 그릇이 큰 사람이 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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