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플라라는 느낌

정상에 선 나플라는 이제 정상 너머를 넘본다.

점퍼, 바지 모두 구찌. 후드 티셔츠 겐조. 스니커즈 베르사체. 체인 스트랩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쇼미7>이 방송되기 전부터 우승 후보로 꼽히며 화제를 모았다.

아마 키드밀리는 알 거 같은데, 우승 후보로 꼽힐 때의 부담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거다. 다들 ‘사기캐’ 나온다며 기대하고 기사화까지 된 상황에서 예선 탈락이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니까. 그동안 쌓아온 프라이드가 다 날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4차 예선까지 정말 많이 긴장했다. 경연까지는 무조건 붙어야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같은 가사를 200번씩은 뱉은 거 같다. 매니저 앞에서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하고. 남들은 ‘쟤네 씹어 먹으러 왔다’고 했지만 정작 우리 입장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려면 더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키드밀리는 나플라가 자신을 우승 후보로 지목한 뒤로 계속 긴장하게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미안했다. 다들 우승 후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플라랑 키드밀리라고 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장난스럽게 한 건데 다들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실 처음부터 압도적인 실력을 드러낸 덕분이었을 거다. 키드밀리 말로는 2차 예선 때 나플라가 랩을 마치고 나니 정적이 흘렀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상황을 잘 몰랐다. 랩을 마치자마자 바로 인터뷰도 해야 하고, 정작 무대에서 내려오면 백지가 된 느낌이니까. 그런데 루피 형도 분위기가 싸한 걸 느꼈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실수 없이 잘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루피 형은 이 정도면 굉장한 이슈가 될 거라고 하더라.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 정도 이슈를 만들어줬는데 설마 나를 떨어뜨리겠어?’ 싶어서.(웃음)

네 명의 래퍼가 함께 공연한 팀 미션에서 박자를 놓쳐서 랩이 밀리는 실수가 있었다. 다행히도 큰 실수로 이어지지 않고 곧 만회했는데,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이 들지 않았나?

인이어로 AR을 들으며 리허설을 할 때는 적절한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무대에서 내 파트로 들어가는 비트 네 마디가 인이어상에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하는 랩만 들린 거다. 그래서 박자를 짐작해서 찾아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고 결국 박자가 좀 밀렸다. 솔직히 좀 화가 나더라. 자칫하면 탈락할 수 있는 상황인데 실전에서 사고가 나면 어떡하냐고.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분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잘 수습해낸 덕분에 더욱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무대에서는 언제든 크고 작은 실수나 사고가 생길 수 있는 법이니 그런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프로의 자격일 수 있으니까.

사실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 실수가 더러 있었다. 단어가 몇 개 씹혔다든가, 그런 사소한 실수. 내 입장에서는 다 수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본선 경연 무대에서는 간혹 랩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오늘 관객 진짜 많구나’ 같은 잡념이 끼어드는 걸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자칫 잘못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이상한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눈을 감고 랩을 해버렸다. 다시 무대에 집중하는 거지.

터틀넥, 아노락 모두 프라다. 바지 겐조. 워크 부츠 힐피거 컬렉션.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링 스팅925.

본선 1차 경연에서 김효은과 대결했는데 피처링을 도끼가 해서 화제가 됐다. 덕분에 도끼와 나플라의 대결이라는 말도 나왔고. 도끼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

리허설을 보면서 정말 잘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동생을 도와주러 나온 자리이다 보니 더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덜 보여주고 있다고도 느꼈다. 그래서 반대로 내 곡도 세니까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1차 투표에서 패배한 게 좀 충격이었다.

게임의 법칙을 깨닫게 된 순간인데, 그 이후로 경연을 대하는 방식에서 달라진 게 있었나?

선공과 후공을 선택할 때 전략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경연이라는 게 단순히 좋은 곡을 좋게 보여주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많이 배웠지.

과거 ‘컨트롤 대란’ 당시 스윙스를 디스한 적 있는데 <쇼미7>에서 프로듀서로 스윙스, 기리보이 팀을 선택해서 의외였다.

당시 컨트롤 비트에 스윙스 형이 했던 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스윙스 형을 디스하는 랩을 발표했는데 특별히 악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 뒤로 스윙스 형과 그 얘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형도 악감정이 없었다는 걸 알아서 그냥 웃고 말았다. 사실 스윙스, 기리보이 팀을 선택한 건 네 팀 가운데 가장 많은 이슈를 생산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 분량을 많이 뽑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기리보이 형이 다양한 비트를 찍을 줄 아니까 내 입장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디스 배틀 덕분에 차붐을 디스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그런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을까?

너무 하기 싫었다. 그 전부터 제작진에 이번에 또 디스 배틀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어영부영 넘어가더니 결국 하더라. 아무래도 <쇼미더머니>의 꽃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 이왕이면 나랑 접점이 적은 사람을 상대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차붐이랑 하게 됐다. 그리고 서로 싫은 감정을 전하기보다는 나이 갖고 놀리는 정도로 웃기게 가자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뒤끝 없이 잘 마무리된 거 같다.

랩을 할 때의 나플라와 랩을 하지 않을 때의 나플라는 조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랩하는 것만 본 사람들은 내가 조금 과묵할 거 같다고 생각한다더라. 음악은 일기 쓰는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내 안에 있던 화나 감정을 풀어내는 데 유용하다고 느꼈던 거 같다. 선생님한테 한 소리 듣게 되면 선생님 디스곡을 만든다든지.(웃음) 그렇게 내 만족을 위해 시작한 건데, 그러다 운 좋게 떠버린 거지.

(루피) 셔츠 펜디. 트레이닝 바지 오디너리 피플. 머플러 오프화이트. 비니 힐피거 컬렉션. 체인 브레이슬릿 모두 스팅925. 링, 주얼 장식 브레이슬릿 모두 루피 소장품. (나플라) 점퍼, 바지 모두 포츠 V. 후드 셔츠 노나곤 by 비이커맨. 주얼리 모두 나플라 소장품.

한국에서 나플라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16년에 발표한 ‘Wu’ 덕분이었는데, 그 노래가 상당히 세게 들리는 곡이라 그런 이미지로 짐작하는 데 일조했을 거 같다.

‘Wu’는 ‘사람들이 왜 내 실력을 몰라주지?’라는 마음이 담긴 곡이었다. 화가 담긴 곡이었다고 할까. 원래는 여섯 명의 래퍼들을 조명하는 <킬라(Khila)>라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두 명씩 공동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그때 킬라그램과 함께 작업한 곡이 ‘Wu’였다. 그러다 여섯 명의 단체 곡을 작업하는 콘셉트로 변경돼서 이 곡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곡이라 킬라그램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쓰기로 했다. 그리고 애드리브도 없이 단 한 번에 원테이크로 녹음한 뒤 믹스테이프를 공개한 거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해준 형이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서 촬영을 제안했고, 아마 한 20만원쯤 들여서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다. 그리고 유튜브 조회 수가 꽤 나왔지만 한국에서 얼마나 알려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을 때 조금 실감했지.

요즘의 트렌디한 랩을 구사하는 래퍼들과 달리 올드스쿨의 정통파 래퍼에 가깝다는 평을 얻고 있다.

내가 랩을 처음 시작할 때는 뉴스쿨 방식이 존재하지 않을 때였고, 붐뱁 비트밖에 없던 시절이라 올드스쿨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올드스쿨에 대한 고집이 있었던 거 같고. 붐뱁 비트에 랩을 잘하는 게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루피 형이나 영 웨스트를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드레이크나 켄드릭 라마처럼 조금 진화한 방식으로 붐뱁을 소화하는 래퍼들이 나오기도 했고, 나도 마음이 열린 거 같다. 물론 여전히 붐뱁이 제일 좋지만 요즘 흐름에 어울리는 비트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랩이 좋아진 건 언제부터였나?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거다. 할아버지 집 위층 방이 비어 있었는데 거기서 자주 친구와 놀고 했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씨비 매스 뮤직비디오를 보고 매력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TV에 나오던 아이돌, 이를테면 H.O.T.나 S.E.S.도 힙합 감성이었던 거 같다. 서태지도 그랬고. 그래서 그게 좀 친숙하게 들렸다.

랩을 하기 시작한 건 언제였나?

가사를 적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비트를 받아서 가사를 써서 붙이고 녹음했는데 처음에는 혼자 만족하기 위해 하다가 친구한테 들려주게 됐다. 그런데 친구도 거기 자극받아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 친구도 지금 음악하고 있는데 원래 그 친구가 나한테 한국 힙합을 알려준 장본인이다. LA에서 그 친구와 함께 듀오로 랩하고 그랬는데 잠시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돌아왔다. 지금은 한국에서 함께 지내고 있고.

그 친구도 메킷레인 소속인가?

메킷레인 소속은 아니지만 메킷레인의 모두와 친하다. 늬안이라는 친구인데.

늬안이라면 나플라라는 이름을 지어준 친구?

맞다. 다른 이름을 쓰다가 고등학생 때 그 친구 의견에 따라 나플라로 바꿨다.

나플라(Nafla)가 내추럴 플레이버(natural flavor)의 약자라고 들었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든 이유가 궁금하다.

신선한 이름이 필요했다. 함께 곡 작업을 하다가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때 늬안이가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다. 그 사이다병에 ‘100% 내추럴 플레이버’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걸 보고 늬안이가 갑자기 ‘나플라’ 어떠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일단 써보고 별로라고 느껴지면 나중에 바꾸자고 했는데 계속 쓰게 된 거지.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유니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터틀넥, 아노락 모두 프라다.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랩에 인생을 걸어도 될 거 같다고 생각하게 된 시기가 언제였나?

한국에 오면서 생각하게 된 거 같다. 사실 음악은 항상 취미였다. 그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 정도? 부모님의 반대가 워낙 심하기도 했고.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랩을 잘해서 한국에서 잘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주목받게 됐고 덕분에 졸업하자마자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 내 입장에서는 다른 루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도 잘해보라는 쪽으로 바뀌었고. 그러다 루피 형이 한국으로 간다고 선전포고하듯이 말했는데, 한국에서 공연 섭외까지 와서 13년 만에 돌아오게 됐다. 그런 경험이 이어지니까 정말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3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어땠나?

처음 4일은 시차 적응을 못해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정신없었다. 한번은 아침 9시쯤 청담동 거리를 걷는데 낯선 나라에 온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뭘 먹어야 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다가 맥도날드에 갔더니 현금 영수증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는데 그게 뭐냐고 묻고. 그런 기억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목표를 달성해서 결국 한국에 오게 된 거니까.

그게 벌써 3년 전인데, 미국과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적응하기 힘든 점은 없었나?

미국에서 한인 타운에서 지냈는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얘기하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완전한 미국 문화를 경험했다고 말하긴 어렵고, 한국 문화도 많이 접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크게 혼란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다만 한국에 너무 적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플라라는 래퍼를 좋아해주는 건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살아온 나 자신의 본래 색깔이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다.

(루피) 후드 티셔츠 발렌티노. 셔츠 MSGM. 크로스백 루피 소장품. 볼캡 발렌티노 가라바니. 이어 커프 포트레이트 리포트. (나플라) 퍼 점퍼 겐조. 스웨트셔츠 베르사체. 선글라스 오프화이트.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주얼리 모두 나플라 소장품.

루피 말로는 나플라가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 거리를 뒀다고 하던데.

사실 당시 우리가 활동했던 42크루 멤버들은 프로 래퍼라기보다는 학생들이 취미로 랩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때 루피 형도 취미로 음악을 하는 유학생에 가까웠고. 그런데 루피 형이 사랑 노래를 많이 해서 내 입장에서는 좀 오글거리게 느껴졌다. 그래서 좀 멀리했는데 계속 나한테 러브콜을 보내더라. 그러다 점점 인간적으로 좋아졌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가면서 우리한테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돼가는 과정을 설득하니까 동료로서도 신뢰감이 생긴 거 같다.

결과적으로 루피에게 영향을 받아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있나?

바이브나 감정을 믿게 됐다는 거? 일본 노래를 들을 때 언어를 몰라도 슬픈 감정이라는 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나는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노래 가사를 다 이해해서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당연하게 느꼈던 부분들을 루피 형이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그게 우리의 비전이 될 수 있다는 걸 설득하면서 내 관점도 좀 바뀐 거 같다. 음악적인 색깔뿐만 아니라 음악에 접근하는 마인드를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가사도 중요하지만 목소리가 주는 울림이 더 셀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결국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2월 4일에 루피와 함께 ‘Woke Up Like This’라는 곡을 발표했다. 루플라의 첫 곡인 셈인데, 기존에도 함께 발표한 곡이 없지 않았다. 그때와의 차이점이 있나?

이번에는 루피 앤드 나플라로서 프로젝트를 하는 건데, 그 전까지 그냥 나플라 노래에 루피가 피처링하거나 루피 노래에 나플라가 피처링한 거라 좀 다르다. 정말 듀오로 활동하는 거니까.

어쨌든 <쇼미7>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루피도 준우승자가 됐으니 메킷레인을 알리겠다는 목표는 확실히 달성한 거 같다.

이제 투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으니 잘된 거 같다. <쇼미7>이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우승까지 했으니까. 지금은 루피 형과 함께 루플라로 활동하는 계획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거기 집중하고 있다.

루피라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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