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온이라는 여행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는 고등래퍼 김하온을 찾아서.

이너로 입은 점퍼 나이키. 오버사이즈 재킷 우영미. 바지 콰이어티스트. 구두 펜디.

유정수(이하 유) <고등래퍼2> 우승자 김하온은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었을까요?

김하온(이하 김) 선생님들 눈에는 반항아였겠죠. 그런데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신기주(이하 신) 학교에서 반항아인 게 맞는 거라고요?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악수를 나누는 김과 유)

이 악수는 무슨 의미죠?

서른 살이 넘어서 깨닫고 실천 중인 저의 생활신조.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행동하니까(깊은 한숨) 피곤하더라고요. 선생님들이랑 대화가 너무 많아져요. 반말도 하지 않고 어떤 비속어도 섞지 않고 최대한 예의를 지켜 말씀드렸는데 버르장머리 없다고 하시니까.(깊은 한숨) 그럼 저는 똑같은 말을 또 할 수밖에 없잖아요. 예의를 지켜서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 “어디서 말대꾸야”라고 하시니.(깊은 한숨)

아이고, 그게 언제였죠?

고등학교 1학년 때요. 그런 상황에 지쳐서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성적은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잖아요. 성적이 안 좋아서 대학에 못 가는 것도 제가 초래한 일이고. 그래서 저는 편하게 생각했어요. ‘어차피 난 대학에 가지 않을 테니 상관없지’ 싶었거든요. 선생님들은 그런 저를 가만히 두지 않으시더라고요.

왜 처음부터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나요?

그 길이 너무 뻔했어요. 좋은 중학교,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편한 노후 생활. 그리고 그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 뻔한 길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다들 자신만의 날개가 있는데.

사람들이 김하온의 노래를 들으면 날개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날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될까요?

다 때가 있죠. 때가 되었을 때 제 노래를 들으면 작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요.

김하온의 노래를 들으면 ‘나도 날 수 있었나?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해요.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영혼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너로 입은 니트 톱, 그레이색 집업 셔츠, 카키색 바지 모두 프라다. 스니커즈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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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힙합 음악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개코 형님의 ‘될 대로 되라고 해’를 듣고요. 충격이었어요. 멋있어서 계속 따라 했어요.

그렇게까지 임팩트를 준 음악이 없었어요?

전에는 아이돌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블락비 ‘베리 굿’에 있는 지코 형님의 랩 파트를 듣고 ‘멋있다’ 생각했는데 너무 짧아서.(웃음) ‘될 대로 되라고 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랩만 하는 랩 송이라 임팩트가 강하게 왔던 거 같아요. ‘아, 진짜 멋있다.’

하고 싶다?

네. ‘나도 해보고 싶다’ 해서 계속 따라 하고, 노래방 가서 친구들 앞에서 불렀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는 ‘래퍼가 되고 싶다’, ‘가사를 쓰고 싶다’가 아니라 ‘재밌네’ 하고 계속 따라 한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내가 랩을 하면 좋아하네?

네. 노래방에서 부르고 마는 정도였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박종완이라는 친구가 빈지노 형님의 ‘아쿠아 맨’을 들려줬는데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음악도 힙합이라고 하는구나.’

국내 재즈 힙합의 정수.

‘힙합은 정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본격적으로 힙합이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꼈어요. 바로 빈지노 형의 <24 : 26> 앨범을 구입해 아버지가 영어 공부하라고 사주신 시디플레이어로 들었어요.

가사에 영어가 나오긴 하니까요.

그렇죠.(웃음) 한 곡만 들어야지 했는데, 그 자리에서 전곡을 다 들었어요.

명반이에요.

다 듣고 ‘말도 안 돼’ 했어요. 그때 벅찬 기분이 들었고, 처음 나도 가사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까지는 아니고요.

그것도 운명일까요? 하온의 가사를 보면 운명적인 걸 받아들이는 태도가 느껴져요. 지금 보면 개코의 ‘될 대로 되라고 해’를 듣게 된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잖아요. 그 순간에 그걸 듣고,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떤 원리일까요?

사람마다 다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면?

그럴 일은…(웃음) 공부는 시켜서 하는 거였어요.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반항심이 생겼죠.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는 하라니까 하는 거고?

네. 중1 때까지도 열심히 했어요.

힙합이 하온에게 자유를 줬네요.

네.

공부가 하기 싫은 와중에 무언가를 만났고 그게 터진 거죠?

맞아요. 전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내 이야기를 담은 가사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 <고등래퍼1>과 <고등래퍼2> 사이 어디쯤일 거 같아요. 그 이전에는 다른 사람을 흉내 냈고.

그러면서 따라간 거죠. ‘이게 랩이구나’ 하면서.

내 이야기를 가사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왜일까요? 경연에서 떨어져서?

차별화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 생각했을 때 나를 찾는 게 먼저였어요. 나는 누구일까 생각했을 때 정말 많이 헷갈렸어요. 그래서 TED 강연을 찾아봤는데 미립자라는 게 있대요. 세상 만물을 쪼갤 수 없을 때까지 쪼개면 미립자가 나오는데, 세상 만물이 이 미립자로 구성돼 있대요. 그때 내가 너이고, 네가 나구나 생각해서….

미립자까지 가면 너와 내가 구분이 없다는 말이죠?

네.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이걸 말해야 하나? 잠시만요. 너무 깊게 갈 거 같아서. (한참을 고민한다.) 하나의 삶에 진리를 찾았다고만 말할게요.

찾은 진리가 뭔지 궁금해요.

그건 각자만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말하면 너무 주제넘을 것 같아요.

우리는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니까요?

네.(웃음)

내가 누군지 찾아 찾아 쪼개서 들어간다….

너와 내가 다를 바 없구나 생각했고, 거기서 다 털어놓고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든 걸 용서하게 됐어요.

용서요? 이해하게 된 게 아니라?

용서가 이해죠. 그러다 보니 굳이 화를 낼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지금의 평화로운 내가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단어를 써가면서 랩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해봤을 때 답은 당연히 ‘아니다’였어요.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걸 하면 돼’라고 내가 나에게 대답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보고 느끼고 믿는 걸 쓰자고 다짐했어요.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러시아 물리학자가 쓴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읽었던 거 같아요.

그 책이 진리를 주었나요?

갸우뚱했던 것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했어요.

그 책은 어떻게 보게 된 거예요?

예전에 스윙스 형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책이에요. 인생을 바꿔주는 책이라고 해서 나중에 읽어봐야지 했는데, 자퇴하고 나서 문득….

이것도 운명처럼?

네. 딱 떠올랐어요. ‘책을 읽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지?’ 하다 보니 ‘트랜서핑’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거예요. 찾아보니 얼핏 본 책 표지가 기억나더라고요. 한 권만 사서 봤는데, 마인드 블로였어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또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해요. 내가 무언가를 느꼈으면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 책을 읽은 게 언제죠?

1년도 안 됐어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으려고 하다 명상을 하게 됐고?

명상은 그 이전부터 유튜브에서 보고 무작정 따라 했어요. 고2 학기 초에 선생님과 상담하다 명상을 한다고 했더니 신기해하셨어요.

명상을 하면 고요해져요?

네. 오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는데 2시간 동안 명상을 했어요. 몸에 힘은 없지만 정신은 맑은 상태예요.

이너로 입은 체크 셔츠 OHP. 오버사이즈 반팔 니트 톱 노앙. 체크 바지 MMIC. 신발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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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래퍼2>의 거의 모든 미션에서 1위를 했어요.

그랬나요?

독보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가,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학창 시절 제일 높은 등수와 낮은 등수의 과목이 궁금했어요.

아, 저 국어 전교 꼴등 해봤어요. 시험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문항 수만 확인하고 OMR 객관식 카드에 로또 하듯 체크했어요.

왜요?

귀찮았어요.

놀랍네요. 이런 가사를 쓰는 사람이 국어가 전교 꼴등이라니.

(‘헤헤’ 하고 웃었다.) 그렇게 전교 꼴등했다고 자랑하고 다녔어요.

국어 전교 꼴등이 이런 시를 쓴다는 거죠?

배신감 드는데요.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재미있었던 과목은 뭘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수업 시간이었어요. 수행평가가 가창 시험인데 하고 싶은 노래를 하라는 거예요. “랩해도 돼요?” 하니까 그러라고 하셨어요. 그때 진짜 재밌었어요.

어떤 랩을 했나요?

‘아쿠아 맨’요.

여학생들 반응이 굉장히 좋았겠네요.

에이, 몰라요.(웃음)

이너로 입은 점퍼 아디다스. 데님 셔츠, 바지 모두 캘빈클라인 진. 모자 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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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를 실감하나요? 재미있나요? 할 만한가요?

최대한 즐기려고 해요.

<고등래퍼2> 이후 처음 하는 일도 많고, 많이들 알아보고,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고, 마지막 경연 곡처럼 붕붕 뜨는 기분일 것 같아요. 최근 가장 즐거웠던 적은 언제였어요?

공연할 때요. 많은 분들이 노래를 따라 불러주시는데 신기해요. 벅차고 신나요.

같은 무대지만 경연과 공연 무대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겠죠? 어떤 부분이 많이 다르던가요?

경연할 때는 내내 불안에 떨고 위태로웠어요. 그런데 공연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즐기면서 하고,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아요. 공연하다가 가사를 두 번이나 놓쳤는데, 많이 창피하고 부족함을 느껴요.

경쟁을 초월한 듯한 하온의 모습을 보고 도사 같다고들 해요. 위태로웠다는 말을 들으니 승패에 연연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승패에 연연하지는 않았는데 ‘실수하면 끝이다’라는 압박감은 있었어요. 되돌릴 수 없고, 경쟁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는 참 이상한 아이예요.

뭐가 이상해요?

상관없다고 하면서 엄청 떨었어요.

우승하고 펑펑 울었던 건 그동안 짓눌렸던 긴장이 풀어져서 그랬나 봐요.

그랬던 거 같아요. ‘댑따’ 위험한, 하지만 재미있는 외줄 타기를 끝내고 바닥에 무사히 안착한 기분이었어요. 땅을 밟고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끼는데 부모님 얼굴이 딱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부모님은 어떤 표정을 하고 계시던가요?

어머니는 웃고 계셨고, 아버지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었고, 형도 웃고 있었어요. 가족 모두가 눈물이 별로 없어요.

어떤 부분에서 눈물이 났을까….

모르겠어요.

‘내가 해냈어요’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런 거 같아요. 저를 믿고, 자퇴를 허락해주신 부모님에게 조금은 저를 증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고등래퍼2> 내내 외줄 타기 하는 기분이었다고 했죠?

재미있으면서도 정말 많이 떨었어요.

경연 동안은 그 떨림을 숨긴 건가요?

딱히 숨기려고 하지 않았어요. 정말 많이 떨었는데, 다들 왜 떨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본인은 알았어요?

네. 굉장히 떨고 있었어요.

혹시 왼손잡이예요, 오른손잡이예요?

오른손잡이요.

그런데 마이크는 왼손으로 쥐더라고요. 랩을 시작하면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막아요. ‘떨림을 이렇게 감추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오, 그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오른손으로 제스처하는 게 편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향받은 국내외 뮤지션이 누구인지 궁금해요.

비와이 형이오. 그분 노래를 많이 듣고 따라 했어요. ‘딕션’이라고 하는 발음, 스킬적인 부분에서는 대한민국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언프리티 랩스타2>에서 ‘The Time Goes On’을 부르는 모습이 결정적이었죠.

두 사람을 두고 많이 닮았다고들 해요.

똑같이 하려고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었나 봐요. 존경하고 인정하는 분이라 그저 감사합니다.

따라 해서 이만큼 올라섰으니 이제 자신의 색을 찾아야겠네요.

노력 중이에요. 그런데 제 노래에서만큼은 누구를 따라 한 적 없어요. 가사에 내 이야기를 쓰는 것도 나 스스로가 되고 싶어서예요. 그래서 부정적인 걸 배제하려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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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사를 쓰고 싶어요?

표지판 같은 거요.

표지판요?

글자가 없는 표지판이에요. 누군가 불현듯 그걸 보고 갑자기 무언가를 느끼고 행동하도록 하는 가사를 쓰고 싶어요.

김하온의 가사는 누군가에게 표지판이었으면 좋겠다?

네, 혹은 이정표.

그 가사가 스스로에게도 표지판이 되나요?

친구랑 대화하다가도 놓치고 있던 걸 깨닫잖아요. 가사를 쓰다 보면 생각의 바닥에 있던 예기치 못한 것이 튀어나와 마음에 새기게 하는 때가 있어요.

늘 생각하고 있던 건데 문득 말이 되어서 나오는?

맞아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건데 툭 튀어나와서 ‘맞아’ 깨닫게 하는 것들.

그렇게 뾰족 튀어나와서 가사가 된 건 어떤 게 있을까요?

‘붕붕’에서 “난 붕 떠 like 풍선 툭 뚝 떨어져도 밑에는 쿠션 아님 ocean 바람이 날 모셔 상품이 되어버린 나의 emotion.” ‘모셔’랑 ‘이모션’이랑 라임이 맞구나가 시작이었어요. 사람들은 누군가가 감정이나 감성을 담으면 감성팔이라고 하고 그걸 깎아내리잖아요.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상품이 되어버린 나의 emotion’이라는 가사를 썼어요.

자퇴 계획서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겠다고 쓴 부분을 보고, 자퇴를 하는데 왜 유명해지고 싶은 건지 의아했어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이제 이해가 되네요.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사람들이 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막연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그땐 막연했어요?

네. 뚜렷한 게 없었어요. 자퇴할 때는 나를 찾아야지가 먼저였어요.

나를 찾아야지….

<고등래퍼1>을 끝내고 든 생각이었어요.

그때 타격을 많이 받았나요? 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던데.

그랬던 거 같습니다. 세상에 멋있고 재미있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어요. 다른 사람과 차별화될 수 있는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여행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래퍼1> 때만 해도 지금의 김하온과는 달랐다는 이야기네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네. 그때의 김하온도 저이긴 하지만, 지금의 삶이 더 흥미로워요.

자퇴 후 자유를 얻어서일까요, 원하는 걸 해서일까요?

일단 시간이 많아졌어요. 시간이 많다는 건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무언가 시도할 수 있는 것도 훨씬 많아졌어요.

자퇴 계획서에 시간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시간 낭비다, 시간이 없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다섯 시 반 정도 돼요. 학교가 언덕에 있었는데, 방과 후 비탈길을 내려와 집에 갈 때마다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매일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허탈한 거예요. 학교에서는 멍때리고 밥 먹고 친구들이랑 이야기한 것밖에 없고, 집에 오면 하는 것 없이 무기력해지고. 이건 아닌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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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전에 하이어뮤직 공식 입단 영상이 떴어요. 멤버들이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하이어뮤직 금 목걸이 수여식. 기분이 어떤가요?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진 않나요?

아직 자랑할 건 이 목걸이밖에 없어요. 일주일간 티셔츠 안에 넣고 다녔는데 이제 밖으로 빼고 다닐 수 있어서 홀가분합니다.

학교를 벗어나 하이어뮤직이라는 다른 형태의 조직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게 의아했어요. 나와 보니 소속감이 그립거나 또 다른 울타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죠.

늘 같이 음악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냥, 그냥, 그냥 박재범 사장님이 너무 멋있어서요.(웃음) 그분이 회사 대표이면 믿을 수 있고 즐겁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고등래퍼2> 프로듀서였던 그루비룸이 아니라 박재범 씨 때문에 들어간 것도 의외네요. 직접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을 텐데.

자신은 소속 아티스트를 이용해 돈을 벌지 않는다고, 자신이 돈을 잘 벌어서 괜찮다고 말하는 영상을 봤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서 바로 결정했어요. 믿음을 주는 사장님.

자퇴 계획서에도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자퇴 후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나요?

네. 제가 번 돈으로 마이크와 음악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샀어요.

어떤 아르바이트였는지 궁금하네요.

휴대폰 가게에서 전단지 나눠주기요. 팝콘이랑 전단지를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인형 탈 쓰고 나눠줬어요.(웃음)

아르바이트도 고됐을 것 같고, 지금은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학교 밖으로 나와보니 학교생활이 그립진 않던가요?

학교는 아비규환이에요. 모두가 화나 있어요. 모두가 너무 진지해요.

학교 밖 사회도 그런걸요.

그래서 바꾸려는 거예요.

바꾸고 싶어요?

네.

김하온의 영향력으로?

아뇨.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과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 이야기했는데 그때도 ‘운명이 허락한다면’이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을까요?

애초에 시작이 경쟁이니까요.

앞만 보고 달리라고 배웠으니까?

네. 등에 날개가 달려 있는데도.

우리 등에도 날개가 달렸어요?

네. 그런데 사람들은 달리기부터 시작해요. 그래서 두 날개가 땅에 질질 끌려요. 멀리 가면 날개가 다 닳아서 나중에는 날지 못해요.

그걸 언제 생각했어요?

최근에요.

그 날개를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알고 있나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각자의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제 이야기 같네요.

다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그러니까 빨리 알려줘야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Find Your Wings’라는 노래를 좋아해요.(노래를 흥얼거렸다.) “날아, 넌 날아가야 해”라는 가사를 듣고 우리 모두 날개가 있는데 발견하지 못하고, 날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이어뮤직은 김하온에게 어떤 날개가 되어줄 것 같아요?

더 많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섭지 않아요? 학창 시절도, 키프클랜도 모두 또래들과 어울리는데 하이어뮤직은 모두 형들이잖아요. 회사에 들어간 건 사회인이 됐다는 거고, 진짜 경쟁을 해야 할 텐데.

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즐길 준비를 하고 있나요?

네.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더 많이 도전할 수 있고, 더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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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는 부모님이 단번에 허락해주시던가요?

“엄마 학교 그만 다니고 싶어” 했을 때 어머니는 “그래라” 하셨어요. 대신 “아버지 성격 알잖아. 세부적으로 세세하게 계획서를 써봐” 하셔서 자퇴 계획서를 써 갔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나중에 천천히 읽어볼게” 하고 가져가셨죠.

그걸 늘 지갑에 지니고 다니셨다잖아요.

굉장히 큰 사이즈로 프린트해 오셔서 제 방 벽에 붙이고 “이거 명심하면서 행동해” 하셨어요.

대자보만 한 크기더라고요.

형이 있다고 했죠?

세 살 터울 형이 있어요. 지금은 상병이십니다.

김 상병님은 자퇴 안 하셨나요?

네. 그러고 보니 대학교를 어디 갔더라?

혹시 형의 진학 과정을 보고 학교가 다니기 싫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형이 고3일 때 너무 힘들어 보였다거나.

맞아요. 형이랑 아버지랑 많이 싸웠죠. 학교가 뭐라고, 참.

경쟁이 사람을 화나게 하고 있다….

너무 사람들을 진지하게 해요.

힙합, 랩의 주제가 ‘분노’인 이유도 경쟁에서 기인하는 걸까요?

힙합의 뿌리는 저항과 자유예요. 그런 걸 조금이나마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힙합, 랩의 가사는 대부분 분노에 차 있거든요. 나를 질식시키는 세상에 대해서 욕을 하고 싸움을 거는 거죠. 잠시나마 그것을 통해 쾌감과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게 청중의 심리고요. 그게 일반적이었는데 김하온은 다른 메시지를 던진 거네요?

세상에 틀린 거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병재 가사가 비판적이면서 날카로운데 제가 병재 가사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본인이 진짜 느끼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진짜 삶을 얘기하는데 그걸 솔직하게 내뱉는 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고요.

조금 걱정되는 게 지금의 하온은 사람들에게 한없이 착한 캐릭터예요. 긍정의 아이콘, 힙합 신에 떠오르는 평화의 비둘기 같단 말이에요. 언제나 평화의 아이콘은 위태로운 존재예요. 조금이라도 기대를 벗어나면 반발 심리가 클 테니까.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다만 저를 너무 달관한 사람으로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아직 자라는 중이라서요. 요즘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지 생각 중이에요. 재미있어야 많이 찾아주실 테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재미있게, 뻔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뻔하지 않았지만 계속 같은 걸 하면 분명 뻔해질 걸 알기 때문에 다음을 고민 중이에요.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라. 가사만 보면 ‘달관한 사람인가? 어떻게 이 나이에 달관했지?’라는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해요.

저는 아직 깨닫지 않았고, 정말 얕은 물에 손가락만 담갔을 뿐이에요. 다만 그렇게 알게 된 게 좋아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예요. 그 매개체가 제가 좋아하는 랩인 거고요.

다들 달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달관한 척해버리면 거기에 갇히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하는 말에 자꾸 신경 쓰게 되고, 그 말을 따라가면 자신을 잃게 되고.

그렇죠.

개인적으로 ‘바코드’가 참 좋았어요. 한쪽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또 한쪽에서는 위로를 더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씨줄과 날줄이 엮이는 것 같았어요. 자꾸 듣게 되더라고요.

세상에는 음과 양이 있잖아요.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게 있고, 뜨거운 게 있으면 차가운 게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병재가 어두운 면을 보면 저는 밝은 면을 보잖아요. 서로 다른 시선을 굳이 하나의 주제 안에 가두지 말자고 했어요. 자신의 입장으로 대화해보자, 그렇게 나온 게 ‘바코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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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힙합에 열광하는 걸까요?

자유 때문이죠. 본질적으로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말씀드렸듯이 힙합의 뿌리가 자유와 저항이라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힙합, 힙합을 넘어 음악의 영향력이 더 커질 거라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슬프네요. 자유가 없는 상태가 계속될 거라는 말처럼 들려서.

음악이 가진 힘이 커지면서 바뀔 수도 있겠죠.

세상이 조금이라도?

네. 키프클랜은 그걸 원하고 있어요.

하이어뮤직은요?

하이어뮤직은 제가 몸을 좀 더 담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하이어뮤직 면접 봤을 때 어떤 질문을 받았어요?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느냐고 물었어요.

하온의 대답은요?

길잡이, 이정표가 되고 싶다고.

“바코드를 횡단보도 삼아 뛰어 넘어가야겠다”라… ‘바코드’ 가사를 들으면 두 사람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에요. 분노에 멈춰 있으면 분노만 배설하고 끝날 거고, 위로만 던지면 공익 광고에 그치겠죠. 현실이 있고 위로가 있고, 그 너머에 의지가 나와야 하는데, 이 가사에서 두 사람의 내공이 40대 아저씨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과 양, 흑과 백의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성향이 완전히 다른데?

애초에 조화로우라고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니까요.

응….

아….

저와는 대략 열 살, 편집장님과는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요. 이상해 보이지만 우리도 꽤 조화로웠어요. 저희가 계속 질문을 했는데, 반대로 저희에게 묻고 싶은 건 없어요?

저를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는 김하온이 김하온이라는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그냥 무념무상인 것 같아요. 인생을 마냥 진지하게 바라볼 줄 알았는데, 즐거움을 좇는 모습이 굉장히 귀엽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으하하! 감사합니다.

작년 11월호 듀오 인터뷰에서 라종일 교수를 인터뷰했어요. 75세, 이 칼럼의 최고령 인터뷰이. 하온은 올해 19세니까 최연소 인터뷰이예요. 그런데 56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나는 두 분에게 관통하는 태도가 있어요. 될 일은 될 일이다. 라종일 교수도 산전수전 다 겪은 분 아니겠어요?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느냐는 질문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될 일은 됩니다”라고 하셨죠.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걱정은 쓸모없는 일이다. 만약 그 일이 잘될 일이면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 일이 잘 안될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요.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아요.

팔순을 앞둔 노학자와 10대의 래퍼가 삶에 대해 하나의 태도를 공유하고 있는 거예요.

재밌네요.

저도 신선해요. 그리고 그 태도를 잘 공유하지 못하는 건 저 같은 40대가 아닐까 해요. 하온의 랩으로 30~40대가 위로받는다는 건 어쩌면 가장 자유롭지 못한 나이 때여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입시생들의 경쟁도 피 튀기지만 저희 세대의 먹고사는 경쟁도….(웃음)

그럼요. 저도 저희 아버지를 봐왔잖아요.

실례지만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세요?

디자인 쪽 일을 하시는데 묵묵히 하세요. 계속해서 수정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거절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다 해주시죠. 그걸 옆에서 보니까, 하.(깊은 한숨)

아버지가 그런 고충을 티 내실 것 같진 않은데.

네.(깊은 한숨) 아버지는 “난 괜찮으니까 너네 해” 하세요. 언젠가 아버지 생일을 까먹은 적이 있는데 만취해 들어오셔서 처음으로 서운함을 표현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내 생일은 잊어도 어머니 생일은 잊지 마라” 하셨어요. 저희 아버지는 그런 분이에요. “난 괜찮아, 너네 해” 그런 아버지.

집에서는 어떤 아들이에요?

굉장히 말 없는 아들입니다.

혹시 믿는 종교가 있나요?

무교예요.

인생의 여행자는 어디로 날아가고 싶어요?

바람 부는 대로요.

폭풍우를 만나면?

그것도 즐겨야죠. 롤러코스터라 생각하고.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는 이야기 자주 듣죠?

많은 물줄기도 결국 바다로 모이잖아요. 그것처럼 모두 날개가 있고, 날 수 있으며, 어느 곳에나 행복이 있고 어느 곳에나 평화가 있다는 걸 결국엔 모두가 다 알 거예요. 다만 언제 아느냐, 시기의 차이인 거죠. 저는 운이 너무 좋아서 그 시기가 빨리 찾아온 것 같아요.

부럽네요. 트랙에 올라서 달리고 또 달려야 다음 트랙이 나오거든요. 끊임없이 경주해야 하고. 언젠가는 그 트랙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 순간이 40~50대에 오면 힘들죠. 그래서 중장년층이 김하온을 좋아하는 걸까? 저 사람은 내가 그때 알았어야 하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늦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무언가를 느끼신다면 그걸 찾아서 떠나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지금은 일단 퇴근을 해야겠어요.(웃음)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 않고 고통뿐인데 오직 돈을 위해서만 한다면 분명 행복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돈을 위한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도 “돈은 부속품에 불과하다. 영혼과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 돈은 알아서 따라온다”라고 해요.

그런 것과는 아디오스 한 거죠?

그럼요.

이제 마지막, 낯간지러운 질문인데 재미있는 답변이 나와요.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에요.

네. 순간순간 매우 행복하나, 행복하나…(생각에 잠긴다) 저는 모두가 다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노력 중이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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