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박사에게 절대로 멋진 인생은 없다

'알쓸신잡' 김진애 박사는 늘 이방인의 경계를 따랐다.

신기주(이하 ‘신’) ‘김진애’가 가진 이미지란 무엇일까요? 본인이 받는 질문 안에 정해져 있다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김진애(이하 ‘김’) 이른바 센 여자, 굉장히 남성적이면서 강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와 성장 배경을 얘기하고요. 그럼 속으로 웃으면서 대충 답해줘요.(웃음)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라는 것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너무 벗어나도 안 돼요. 적당히 그 이미지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알려지지 않아도 그만이고요.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고현경(이하 고) 출연 중이신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3>(이하 <알쓸신잡 3>)를 보면, 물론 편집의 덕도 있겠습니다만 유시민 선생님을 비롯한 출연자분들과 말씀이 잘 통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런가요?

유시민 선생을 제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알쓸신잡>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밥 한 번 같이 먹어본 적 없다고 말할 정도예요. <책으로 트다>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한 세 시간쯤 길게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예요. 평소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번에 함께 해보니 사뭇 다르더군요.(웃음) 김영하 작가님은 예전부터 좋아했고요, 김상욱 교수도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두 분 다 실제로 만나니 누구나 그렇듯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어요. 유희열 씨는 제가 20년 전에 라디오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만나자마자 그때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다들 대충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만나는 거죠. 근데 만나면 너무 긴 시간을 같이 보내요.(웃음)

토크 녹화 시간이 꽤 길어 보이긴 해요.

해외 촬영은 각자 따로 시간을 보내다 만나니까, 같이 다니지 않아서 좋은 점이 있었어요. 한데 며칠 전에 처음으로 국내 여행을 갔거든요. 하루 중 열한 시간을 얘기했어요. 다 같이 모여 대화한 것만 여섯 시간 반이었어요. 징글징글해요, 정말.(웃음) 유시민, 김영하 선생 두 분이 끊임없이 말을 해요. 대단해요. 이게 뭘 뜻하느냐면, 이른바 지적 수다라는 거죠. 우리가 평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일방적으로 혼자 말하면 재미없어요. 상대방 얘기에 저도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될 때 굉장히 즐겁거든요.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수면이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물이 흐르는 중간중간 바위가 있어 확 굽었다, 부딪쳐서 소리가 났다 다시 조용해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대화예요. 그러한 지적 수다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라서 평소 갈증이 많았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잘난 척하면서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도 거기밖에 없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드러내면서 충분히 논쟁도 할 수 있는 자리가 우리 사회에는 굉장히 드물거든요. 저도 늘 정말 잘난 척한다는 말이나 듣죠.

열심히 성의껏 얘기해도 돌아오는 말은 그것이었군요.

대부분 그러한 경우가 많고요, 가령 유시민 선생이 ‘썰전’에 나와서 하듯 논쟁이 벌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즐겁지 않죠. <알쓸신잡>의 대화는 이기고 지는 게 아니니까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충분히 얘기해도 반응이 오니까 즐거워하신다는 걸 이제 알겠어요. 그래도 열한 시간은 징글징글해요.(웃음) 그 가운데 신입인 김진애와 김상욱이 꿋꿋하게 버티고 웃고 노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죠. 지적이면서 감동적인 이런 대화가 저도 참 즐거워요. 좌뇌와 우뇌를 오가며 다차원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들고요.

서로 청중이 되어주는 것일 텐데요,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해주니까 굉장히 고맙고 즐거울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하던 표현이 있는데, 서로 사운딩 보드, 공명판이 되어야 해요. 저도 평소 말을 많이 하지만 고민이 생기면 더 늘어납니다. 특히 새로운 프로젝트 초기에 안절부절못하고 정말 말이 많아져요. 왜냐면 아직 길을 잘 모르겠으니 이 돌다리, 저 돌다리 두드려보며 그 과정을 즐기는 거죠. 하지만 함께하는 사람은 제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질릴 정도로 힘들겠죠.(웃음) 그때 얘기하면서 나온 아이디어의 90%는 쓸 수 없지만 서로 공명판이 되어주지 않고 제가 지시만 내리면 재미없어요. 공명판이 돼서 오가는 게 있어야 사운드도 점점 커지죠.

공명판이 잘 돼주셨기에 열한 시간의 대화가 가능했군요.(웃음) 그만큼 대화에 갈증이 있다는 뜻이고, 시청자도 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화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어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거죠.

나영석 피디가 해외 촬영에 같이 가고, 출연진이 모여서 토크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더라고요. 책임 프로듀서니까 최종적으로 조금 손보는 정도만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대화 전체의 맥을 알고 편집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차이가 크죠. 그러한 면에서 나영석 피디는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재미있는 사람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 긴 시간 중에서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 기대치에 대한 감성 코드를 잘 맞추는 거겠죠. 지금껏 많은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비결이기도 할 테고요.

맥락을 잘 잇는다는 것일 텐데요, 그러려면 전체와 일부, 디테일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통찰도 있어야겠죠. 출연자분들의 통찰도 넘치고요.

유희열 씨도 만만치가 않은 사람이에요. 왜 ‘감성 변태’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매의 눈’이라고 불리는지 알겠어요. 솔직히 맨날 농담 삼아 스스로 바보처럼 웃는 역할이라고 하지만, 끊임없이 매의 눈으로 우리 머리 위에서 다 보고 있어요. 감성 변태라는 표현도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변형, 변신을 뜻하는 ‘metamophosis’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아요. 유희열 씨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스스로 변화할 줄 알아요. 감성이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여러 자리에서 대화를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유연하게 변할 줄 아는 힘이 있어요.

 <알쓸신잡> 시즌 1, 2를 즐겨 본 시청자로서 박사님이 출연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트위터에 몇 번 <알쓸신잡>에 여성 출연자가 없는 것에 관해 쓰신 적도 있고요. 실제로 출연하게 됐을 때 기분이 조금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난해 <알쓸신잡>이 처음 시작했을 때 괜찮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고 생각했어요. 아재들 다섯 명 나오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봤고요. 한데 시즌 2에는 당연히 여자 출연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죠. 사실 출연자들의 성비 균형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비판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참고 참다가 트위터에 몇 번 글을 썼어요. 나영석 피디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유시민 선생이기도 해서, 직접적으로 그를 언급하기도 했죠. 그가 적극적으로 어필했다면 여성 지식인, 전문가가 나올 수 있었을 거거든요. 사실 저는 <알쓸신잡>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남성 출연진만 쭉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보기 불편해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프로그램 색깔이 불분명할 때도 많고요. 문제는 <알쓸신잡>은 일종의 지적 향연인데, 2000년 전도 아니고 왜 여성 출연진이 없느냐는 거죠. 더군다나 지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여성이 없으면 대중의 편향이 심해져요. ‘여자가 나오면 분위기가 흐려진다’,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차라니 낫다’는 편향이죠. 한데 여성이 등장하면 시각이 달라집니다. 그 인물 자체가 편향돼 있다 하더라도, 함께 출연해야 해요. 그렇게 노력을 해서 달라져야죠.

남성, 여성 딱 편을 가를 이유는 없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에요. 쉽지 않은 자리라는 생각도 했고요.

사람들 반응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여자가 출연하면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다들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홍보, 마케팅하는 입장에서도 이미 남성 출연진만으로도 성공해서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데, 굳이 여성 출연자를 합류시켜서 실험하기 싫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마침 미투 운동이 막 시작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죠. 비단 <알쓸신잡>만을 두고 그런 것도 아니고요. 제작진이 시즌 3를 준비할 때 저를 염두에 두었겠죠. 처음 연락이 왔을 때는 유시민 선생이 <썰전>에서 막 하차하셨을 때라 혹시 <알쓸신잡>도 안 나오시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한데 유시민, 김영하 선생 모두 출연한다기에 당연히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시즌 3에서 가장 주목받는 출연자가 되셨어요. 뉴스도 가장 많이 쏟아지고요.

<알쓸신잡>에 출연한 첫 여성 박사 김진애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거죠. 유일한 여성이라는 것 자체를 이슈로 만들어서 관심도 높아지고 시청률도 좋아지는 거죠. 그래서 그냥 참고 있는 거예요. 세계에서 제일 예쁜 여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솔직히 저도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가 출연해서 무엇이든 좋아져야 앞으로 여성 출연자가 두 명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요?(웃음) 그래서 제작 발표회에서 다음에는 두 명일 거라고 으름장도 놓았고요.

미리 포석을 놓으셨네요.

한데 제가 여자고 페미니스트여서 더 특별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다니는 데마다 농담 삼아 얘기해요. 지금 <김어준의 뉴스 공장>의 고정 패널은 저 혼자밖에 없어요. 제가 말을 잘하는 건 제작진도 다 알지만, 도시 이야기가 과연 이 프로그램과 잘 맞을까 의구심은 다들 있었을 거예요. 저도 김어준을 계몽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대신 여성 고정 패널이 생길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맨날 얘기하죠. 한데 가끔 제가 없어야 그 자리에 다음 여성 출연자가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KBS1 라디오에서 <열린 토론> 진행을 맡은 지 다섯 달 정도 됐어요. 여기서도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때는 여성으로 대타를 시키라고 늘 말해요. 우리가 어쩌다 한번 차지한 자리를 뺏기면 안 돼요. 채워야죠.(웃음)

생활 속에서 늘 실천하시는 거네요.

저처럼 남성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여성이라도 그 자리에 앉으면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 너무나 필요한 거죠. 고답적인 얘기를 잠깐 할게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 태도에 갇혀 있는 것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덫, 그야말로 족쇄가 되고 있어요. 모든 인간은 남성성, 여성성 둘 다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드러나지 못하게 막는 것이 가부장적 사회죠. 일상생활이 불편한 것을 넘어서 우리의 삶 자체를 너무 불행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해졌어요. 남녀, 이성으로서의 스파크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느끼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이 정말 힘이 된다는 말이죠. 이걸 가로막는 게 큰 문제예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크리에이티브하게 발전하려면 이 족쇄부터 없애야 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함께 갖춘 사람이 창의적이에요. 남자 속에 숨어 있는 여성성, 여자 속에 숨어 있는 남성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죠. 그래야 통찰력도 생깁니다.

저서 <집놀이>에서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어요.

요즘 강연할 때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려면 남성, 여성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해요. 1인당 국민 총소득이 3만 달러인 시대가 와도 여전히 불행한 이유 중 하나가 남녀를 너무 구분 짓고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요. 솔직히 지금까지 산업화 시대를 통과하는 동안 사회는 불평등했고 여성들이 불행했지만 남자들만 일을 해도 발전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려면 얘기가 달라져요. 정말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돈을 많이 버는 정치인이 아니라, 예를 들어 아트, 건축, 문학에 대해 사고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양성적인 경우가 많아요. 호모섹슈얼 중에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유가 있어요.

어떤 이유에서 그럴까요?

사회 소수자니까요. 사회 소수자의 경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여성도 분명 사회 소수자거든요.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는 사회 후발 주자예요. 여성이 크리에이티브한 면모를 드러낸 역사는 기껏해야 300년, 짧게 보면 100년밖에 되지 않아요. 사회에서 권력과 돈을 갖게 된 지는 더 짧죠. 후발 주자의 힘이 무엇이냐면 세상을 이상하게 볼 줄 알고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줄 아는 거예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호모섹슈얼도 마찬가지고요. 이 사람들의 시선은 왜 다를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굉장히 많이 작용했을 거예요. 실제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해요.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있을 때 창의적인 이유는 입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서일까요? 단 하나의 실상에만 머무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입체적인 사고도 있겠고요, 사회적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도 크죠. 소수자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일반 사람의 시선과는 차이가 있어요. 사실 남자들은 항상 마음속에 개천의 용이 존재해요.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우리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이 영웅 콤플렉스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요.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아직도 파묻혀 있는 원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살다 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이 오겠지만.(웃음)

전 진작에 깨달았네요.(웃음)

남자들이 더 불행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입장에서 보는 세상과 소수자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여성은 아직도 뭔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될 수도 있지만 개척해나가는 데 여러 제약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있죠. 제가 어렸을 때는 세상에 이상한 일투성이였어요. 한데 요즘 세상이 좋아진 줄 알았더니 우리 딸들이 일상의 불편함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참 놀라워요. 저는 많이 모나고 깐깐한 편인데 저보다 훨씬 신선한 시각으로 세상을 봐요. 우리가 칭찬하는 북유럽 사회도 모든 면이 평등하지 않아요. 다만 평등을 여러 시각에서 보고 아무렇지 않게 실천해야 훨씬 더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사회가 될 수 있어요. 그게 중요해요.

우리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진 미투 운동 이후에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이 분명히 한 단계 다른 지점으로 가고 있어요. 사실 1980~1990년대에 페미니즘이 많이 발전했어요. 그때는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와 자리를 주어야 한다는 양성평등의 개념으로 진행돼서 양적으로 많이 나아졌죠. 한데 지금은 차별화, 양극화가 심해졌어요. 양극화가 심해지면 평등성이 깨지는 거예요. 상당히 퇴행적으로 보이지만 사회가 변화하려면 퇴행을 겪으며 치고 올라갈 때가 있어요. 저는 그게 미투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서지현 검사의 고백 이후 이어진 움직임을 보면서 굉장히 많이 쌓여 있었다는 걸 느끼고 놀랐어요. 이를 통해 많은 남자들이 처음으로 ‘나도 잠재적 가해자로 보일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르면 다 들통이 난다’, ‘여자들이 이런 점을 불편해하는지 몰랐고 둔감했다’고 느꼈죠. 처음에는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불편함이 있어야 동력이 생겨요. 불편하지 않으면 아무도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때가 지금이에요.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 <미스터 선샤인>을 재미있게 봤는데, 여러 장점이 많은 드라마지만 이방인이라는 존재가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점이 가장 좋았어요. 드라마 속 많은 등장인물, 유진초이는 말할 것도 없고 구동매와 김희성도 마찬가지였죠.

개인으로 사회에 속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누구의 말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자기가 속한 문화에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도약의 동기가 된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너무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안 돼요. 편하기만 하면 변화의 동력이 발생하지 않아요. 세상 모든 일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낯설고 불편할 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어요. ‘왜 이런 걸까’라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이면 동력이 생겨요.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 역사가 안타까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변화의 동력이 생기고 움직이려 했던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했어요.

이방인의 존재를 그리 볼 수도 있겠네요.

아, 그리고 <미스터 선샤인>의 수많은 OST 중 박원의 ‘이방인’을 너무 좋아합니다.(신, 고 웃음) 아니, 왜 웃어요. 박원이 누구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드라마에서 노래가 나오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구동매가 “안 되는 거겠지요, 이놈은”이라고 애신의 부모 위패 앞에서 대사하는, 정말 애절한 장면에 이 노래가 나오거든요. 가사도 참 절묘해요.

특히 좋아하는 가사가 있나요?

“보잘것없는 약속이지만 변하지 못할 마음이라오” 이 부분에서 완전히 마음을 뺏겼어요. 스스로에게 한 보잘것없는 약속이 자신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알면서도 변하지 못할 마음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고, 하루에도 한 열 번씩 들었어요. 박원이 누군지도 찾아보고 팬이 됐어요.(웃음)

김진애는 어쩌면 평생 이방인이었던 거죠?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죠. <미스터 선샤인>에서는 ‘스트레인저(stranger)’라고 말했지만 전 트위터 프로필에 딱 세 가지를 썼어요. ‘Indie, Under, Free’. 아웃사이더보다 변방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주류에 편입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여성으로서 우리 사회에서는 항상 경계에 서 있는 거예요. 제가 봐도 전 이상한 사람이에요. 공부를 잘해서 아주 편안하게 사는 방법도 있었어요.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3년 정도 일했는데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그때 얼마나 우울했는지 아세요? 가고 싶은 회사도 없었어요. ‘가고 싶은 곳도, 오라는 곳도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새벽에 갑자기 든 생각이었어요. 그때까지 저도 상당히 사회 주류의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죠. 어디 입사해서 팀장을 하거나 월급 사장이 되거나 이 정도를 생각했지, 30대 중반까지 창업은 고려한 적이 없었어요. 아, 정말 제 자신이 기특했고 도약의 계기가 됐어요. 만약 안정된 길을 가고 교수가 됐다면 지금의 김진애는 없었을 거예요.

처음부터 주류에 안착했다면.

어릴 때부터 독립하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래서 ‘Indie’라는 단어를 쓴 거죠. 원래 ‘Under Dog’을 좋아해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아래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언더에 있어야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며 무엇이든 해보려고 난리를 치겠죠. 그리고 ‘Free’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거겠죠. 이 또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지금 정리해보니 경계인, 잡종, 혼성, 양성, 복합적이고 현장의 사람이라고 얘기하네요.

도시를 다룬다는 것이 사실 당시만 해도 남녀 구분을 하기에는 애매하고, 흔한 전공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공학이 아니라 건축공학과에 들어갔어요. 지금은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가 분리됐죠. 건축과 도시계획이 우리나라에서는 공학이라는 생각이 강하고, 이공계 공대에 속해 있어요. 한데 제가 졸업한 MIT도 그렇고 외국은 독립적으로 다루는 학교가 굉장히 많습니다. ‘Architecture noble studies school’로 따로 있어요. 잡종의 성격이 강해서 그래요. 과학기술적인 엔지니어링,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를 알아야 해요.

도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여기서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는 건축을 축복이자 저주라고 항상 말해요.

저주요?

네.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는 정말 축복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담아서 공간을 만들고 즐기고 싶어 해요. 자신만의 집을 짓기를 바라죠. 그렇기 때문에 건축 자체는 축복일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권력과 자본에서 너무나 제약을 많이 받아요. 왜 대량생산이 가능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만 열심히 고민하면 되는 일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텐데 싶죠. 이 때문에 건축계에는 이른바 영웅주의 같은 것이 깔려 있어요. 신처럼 모든 걸 창조한다는 마음이 건축가 안에 있죠. 한데 저는 멋있어 보이려 하고, 척하는 게 싫었어요. 건축에는 항상 조감도의 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건축학 박사 학위는 정말 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 시점에 제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만났죠. 그 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큰 눈, 본질적인 이야기가 등장해요. 그래서 도시계획으로 전공을 바꾼 거예요. 워낙 MIT는 도시계획 분야가 더 힘을 발휘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 이후로 굉장히 행복했어요. 시야가 넓어지면서 건축을 포함해 도시 설계 전체를 볼 수 있었어요. 성장하면서 어깨에 날개가 달리는 기분이었어요.

저도 지금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사실 건축에 대한 회의가 들 때 자극을 받은 계기가 있어요. 제가 박정희 정권 말에 임시 행정수도를 설계하는 기업단에 참여해서 일했어요. 당시 석학들이 모여서 불꽃 튀는 토론을 벌이며 제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독립해서 빨리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고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스스로 의문을 품고 회의가 들었던 사람이 공부를 하면 훨씬 더 큰 게 보여요.

박사님 책을 읽고 방송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여러 도시의 생로병사를 쭉 지켜보며 맥락을 짚어왔던 경험들이 지금의 통찰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책에서 권유해주신 대로 서울 지도를 따라 그려봤어요.

멋지네요. 아마도 <도시 읽는 CEO>를 읽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MIT를 다니며 런던과 파리에 몇 차례 가서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진짜 통찰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몇백 년 동안 지속된 큰 도시인데 제 머릿속에 넣어본 적은 없었거든요. 한 시간 반 동안 런던과 파리를 제 머릿속에 그림으로 정리해주는데, 세상이 달리 보였어요. 감동을 받았죠. 서울을 주제로 밀라노에서 전시를 할 때도 같은 순간이 왔어요. 협소한 공간에 앉아 밤새 그림을 그리며 준비할 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어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만들어냈을 때, 통찰했을 때 오는 짜릿함. 한번 경험하고 나면 더 맛보기 위해 계속 노력합니다. 그래서 도시 공부를 넓게 하길 참 잘했어요.

박사님 말씀을 들으면 서울이라는 도시도 맥락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스나 진주 같은 도시도 누군가 그 맥락을 이어줘야 하는 거죠. 보통은 이해하기 어려우니까요.

저도 MIT 교수님에게 처음에 그렇게 말을 했어요. 지식은 많아도 제 안에서 이것이 이어지고 관계를 맺어 전체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요.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알쓸신잡>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가능하면 정말 호기심을 남기는 게, 무언가 잡힐 듯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럼 관심 있는 사람은 직접 찾아보겠죠. 철학의 차이일 수도 있고요. 전 강연할 때도 조목조목 정리해서 알려주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원하죠.

주입식 교육이 익숙하고 편해서 그럴 수 있어요.

아휴, 저는 굉장히 싫어합니다. <알쓸신잡> 피렌체 편에서 유시민 선생이 도서관에 가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라요. 저에게 맞는지 틀린 건지 물어보는데 옳고 그름이란 없다고 답했어요. 스스로 그걸 느끼신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알쓸신잡>을 통해 유시민이 진화할 줄이야!(웃음)

그런데 오늘 박사님을 만나뵈면서 정치하실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런 말씀 많이 듣지 않으셨나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아마 오늘 여러분이 보는 제 모습은 제가 쓸 수 있는 여러 모자 중 하나인 걸지도 몰라요. 가령 정치 관련해서 저를 만나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이 김진애가 그 김진애 맞아?’라는 소리 굉장히 많이 듣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의 모자는 왜 쓰셨어요?

어디서든 전문가로 일하면 거치는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실력을 키워서 맡은 일을 잘해야죠. 실력이 좋아졌는데도 뭔가 잘되지 않는다, 그럼 상사의 문제일 수 있죠. 자신이 보스가 된 다음에는 잘못된 정책이 눈에 보여요. 시민 단체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면 많은 부분이 국회의원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데 정책을 바꾸려 하면 너무 어렵죠. 그러니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정치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스스로 현실 정치에 뛰어드느냐 아니냐는 다른 얘기고요. 제가 늘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배렸다’고 얘기하는데요, 그 당시는 뭔가 가능성이 보였던 때예요. 잘 알다시피 건축, 도시공학은 자본과 관련이 깊어요.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고 마침 기회도 왔어요.

계획에 있었던 일은 아니었네요.

삶을 계획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시나리오를 써두고 그에 해당하는 기회가 오면 잡는 사람일 뿐이죠. 그때 제가 쉰을 바라보고 있을 때인데,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좀 더 공적인 삶에 가까워지는 거였습니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창업, 출마, 낙선을 해봐야 한다고 자주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창업은 자기 힘을 책임지는 겁니다. 보통 일이 아니죠. 조직의 직원, 간부급으로 일하는 것과 창업한 사람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고 출마는 발가벗어보는 거예요. 그 경험도 굉장히 중요해요. 자신이 믿고 원하는 걸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발가벗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각오가 돼 있어야죠. 세상이 정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이 바로 낙마입니다. 전 각기 다른 종류의 낙마를 세 번이나 경험하니까 도가 트더라고요. 물론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낙마가 아니라 다른 경험으로 느껴도 됩니다. 이 세 가지 경험을 하면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타인에 대한 포용력도 생기고, 지혜가 늘어납니다. 저는 사람 만나는 걸 훨씬 더 좋아하고 연줄, 이권 다툼에 약해요. 인정합니다. 굉장히 싫어하고요. 한데 선거는 재미있어요.

선거가 재미있군요.

전략을 세우고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인 선거 자체가 재미있고 신나요. 하지만 연줄에 기대고 어느 파벌에 속하고 그런 건 잘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구 국회의원은 굉장히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고, 직접 마주하면서 밥도 많이 먹으며 부대껴야 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까지 제 시간을 투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니 비교가 될 수 없죠.

지상전을 해야죠.

같은 정당 안에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정치입니다. 지지를 끌어내거나 조정을 할 때도 있고 정말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하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에요. 설득해서 제 편으로 오면 이겼다고 좋아하고요.(웃음) 공간 하나를 잘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건축, 도시가 이 모양인 이유도 정책 탓이 큽니다. 정책, 정치, 자본의 구조가 왜곡돼 있어서 그렇습니다. 좋은 건축물이 많이 생겼지만 좋은 도시가 만들어지긴 여전히 너무 어려워요. 건축도시공간연구소를 만들고 건축 기본법을 제정한 일은 건축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하시는군요.

지난 박근혜 정부 때는 말을 해도 소용이 없고, 자꾸 짓눌리고 퇴행하는 느낌에 아주 불쾌했어요. 그게 바로 패배주의입니다. 미리 지고 시작하는 거죠. 현재 문재인 정부가 좋은 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처럼 세상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긍정의 신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기업 취재를 다니면서 한 기업의 사옥이 기업 문화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밋밋한 회사 사옥을 보면 정말 사내 문화가 수직적인 곳이 많았어요. 비유를 들었지만 도시라는 것도 이 사회의 생각들이 물성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해요.

물성에도 심성이 녹아 있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가서도 항상 돌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돌의 말을 들어줄 줄 알면 이탈리아나 그리스에 간 보람이 생기죠. 물성과 심성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죠.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 심성을 가진 도시일까요?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서는 메트로폴리스가 되면 하나의 심성으로 보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게끔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척 갑갑한 일입니다. 아파트 단지도, 도심도,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하게 개발해요. 동질성을 가지고, 일류가 되려 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전혀 없다고 부정 못 합니다. 그럼에도 최근 조금씩 나름대로 캐릭터를 가지려고 하는 노력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파리가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에요. 동네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제각각 달라요. 각각의 동네가 괜찮으면 도시도 덩달아 좋아져요. 동네가 모인다고 저절로 도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커야 하는데, 파리가 잘하는 게 바로 이거죠. 도시를 더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 서울에도 있을 겁니다. 저는 서울의 산과 강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은 특이하게도, 도시 안에 산이 있죠.

서울은 도시를 굉장히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대개 어디 건물 위로 올라가서 전체를 내려다보며 느끼잖아요. 높고 거친 산과 넓은 한강이 있어 항상 도시를 조감할 수 있어요. 동네를 더 그럴듯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나름 생기는 것 같아요. 파리도 나폴레옹 3세 시대와 에펠 박람회를 거치며 도시가 팽창했어요. 하지만 192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을 합니다. 철학, 문학, 산업의 중심이 돼요. 자본과 권력은 세계적 도시로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쳐요. 과감하게 성을 부수고 확장시키는 과정을 거치면 도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연 서울은 그때가 언제일까요? 1960년대, 1990년대, 그리고 지금 다시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을 메운 촛불의 힘 덕분이죠. 국가로서, 도시로서 촛불의 힘을 한번 맛보고 처음으로 광장을 인식하게 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교수님 책에서 도시 이데아를 얘기하면서 베를린을 언급한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서울과 평양을 비교한 부분도 열심히 읽었죠. 남북 교류가 상당한 진척을 이루면서 앞으로 도시의 새로운 캐릭터가 잡히겠지요. 베를린이 통일 후 달라졌던 것처럼요. 서울에도 도시의 이데아가 새롭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미스터 선샤인>은 바로 1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에요. 정말 보는 내내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몰라요. 매일 울면서 도와달라고 편지 쓰는 일밖에 못 하잖아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때가 정말 긴 역사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우리는 흥미 있는 역사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거죠. 뭔가 변화의 계기를 맞으려면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 그럼 야심을 품고, 박력도 생기고, 자본도 들어오고, 사람도 모입니다. 인위적인 세계화 시대와는 달라요. 권력과 사람, 정보의 흐름에 의해 타이밍이 만들어져요. 지금이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큰 때죠. 저는 조금 더 오래 살아도 되겠다 싶습니다.

진정한 국제도시가 될 수 있겠군요.

진짜 세계화는 자본만으로 이룰 수 없어요. 솔직히 건축업계는 콤플렉스가 많아요. 돈은 벌었지만 진정 우리가 만든 것이 뭐냐는 콤플렉스의 시대를 보냈어요. 이제는 얼마나 노력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한국적인 것을 완전히 초월한, 이 같은 집착에서 벗어난 세대가 등장할 때 진짜가 나올 거예요. 방탄소년단도 싸이도 이러한 맥락에서 즐거워하는 거죠. 건축은 그에 비하면 변화가 늦어요. 하지만 우리 후배 세대를 보면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어요. 이른바 정통 건축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죠. 도시도 다른 에너지가 필요해요.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이거예요.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도시와 나라의 역할이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역할을 처음으로 다시 생각해봅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넘나들어야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진보와 보수의 시각을 넘나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발전하려면 어느 한쪽만 우세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보수 세력이 스스로 갇혀 있는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 사회가 발전하고 멸망하지 않으려면 다양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제 좌우명이 ‘잘하자, 배우자, 평생토록’인데요, 개인이 혼자 끊임없이 잘할 수 있지만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에너지가 크거든요. 사회는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리고 사회는 부단히 잘하지 않으면 금세 멸망합니다. 우리 사회도 최근까지 그러했죠. 한 도시는 20년, 한 사회는 한두 세대 30~40년이면 멸망해요. 우리나라는 아슬아슬하게 늘 줄타기 하듯 가야 해요. 힘들지만 또 얼마나 신나요. 즐길 줄 알아야죠. 다들 개인이 소모되는 것 같아 이 사회에서 무슨 의미냐고 생각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모든 것이 오고 갑니다. 훨씬 더 재미있죠. 재미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지 않나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행복하세요?

저는 행복하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한 5~6년 전에 시아버님을 모셔야 해서 납골당을 하나 마련했어요. 그러니까 대표 묘비명이 하나 필요하더라고요. 사자성어로 할 수도 없고, 고민을 하다가 남편에게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이런 문장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남편이 너무 괜찮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묘비명이 뭐로 정해졌겠어요?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의외로’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인생은 절대로 멋질 수 없어요. 95%는 고통이에요.(웃음) 나머지는 큰 무리 없이 넘어가는 시간이겠죠. 가끔씩 그렇게 의외로 멋진 순간이 있어요. 이 의외의 순간이 잘 연결되면 인생이 괜찮아질 수도 있죠. 의외로 멋진 순간은 스스로 어느 만큼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잘 캐치할 줄 알아야 하죠. 그리고 사람은 많은 실패도 겪어봐야 면역력도 생기고 근육도 붙습니다. 그러다 의외로 멋진 순간을 만났을 때 감동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겠죠. 전 행복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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