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전태관, 30년의 봄여름가을겨울

친구 전태관과 30년간 봄여름가을겨울을 지킨 김종진과 나눈 대화.

셔츠 펜디. 아이웨어 뮤지크.

윤도현, 윤종신, 황정민, 오혁 등이 참여한 30주년 트리뷰트 앨범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법>은 언제부터 기획하신 거예요?
올해 4월 태관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날 음악하는 동생들이 다 왔는데, 태관이 너무 꺾여 있는 모습을 보고 형님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는데 충격이다, 너무하다, 그래서 돕자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친구가 가요계에서는 귀공자 같은 사람이었거든요. 보통 장례식장에서 만나 그런 이야기를 해도, 사나흘이 지나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흐지부지되잖아요. 그런데 다들 다시 연락이 와서 엄청 등을 떠미는 거예요. 윤종신, 김현철, 박학기… 등 떠밀려서 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6월부터 기획을 진하게 했죠.

아이디어가 많았을 거 같아요.
우리는 30주년 앨범을 내려고 했어요. 30년이 웬만해선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동안 우리랑 같이 일했던 위대한 감독들이나 끝내주는 스태프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하자, 우리 다 모여서. 그렇게 준비했어요.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부 태관이에게 바치자고. 퀸 영화에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나오는 것처럼, 이게 시작이다. 다들 비슷한 식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거예요. 그래서 두 가지를 동시에 투 트랙으로 하다가 바로 포기했어요.

왜요?
동시에 못 하겠더라고요. 처음에는 30주년 정규 앨범을 만들고 공연하고, 다른 건 이 친구들이 알아서 만들어주겠거니 생각했는데 발을 들여놓는 순간, 늪인 거야. 둘 다 하면 둘 다 망가지겠더라고요. 우리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달려온 폭주 기관차이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어요. 우리 안의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딱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아, 안 되겠다, 이 느낌이 딱 왔어요.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고 매일 밤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폭주 기관차를 세우기로 한 거죠.

음악 작업할 때 원했던 건 다 해야 했고, 해냈던 분들이잖아요. 멈추기로 결정했을 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 같아요.
엄청. 내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거에 자괴감이 왔어요. 겪어보니 생각이 깊어지더라고요. 곁에서 보는 거랑 겪어보는 거랑 이렇게 다르더라니까요. 태관이 총괄하는 걸로 해서 태관에게 물어가며 해왔는데, 이런 마음은 태관한테 말도 못 했어요. 옛날에는 일이 두 개건 세 개건, 네 개건 막 달리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우, 안 되겠는 거야. 그래서 자괴감이 ‘빡’ 왔죠. 멈출 수 없는데, 그래도 세울 수 있는 게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거라 이걸 세웠어요.

헌정 앨범에는 여러 사람이 참여하고 있고, 그게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이니까.
네. 그리고 이 헌정 앨범이 태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한테 어떤 정신을 주는 거니까.

태관님이 오래 편찮으셨어요. 아픈 친구 곁을 지키는 마음은 어때요?
나는 아프다고 말도 못 해요. 아픈 사람은 아프다고 말할 수라도 있지. 엊그제는 무지 아팠는데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엄청 많고, 그 아픈 사람들 곁을 지키는 사람이 또 엄청 많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픈 사람은 아프지만 곁을 지키는 사람은 아파선 안 되잖아요. 아프다는 티도 낼 수 없고.
맞아요.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비슷한 이야기인데, 웃으면서 왔다가 울면서 가는 게 인생인 것 같아요. 남들은 뭐 울면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애기들 보면 엄마만 봐도 웃잖아요. 그러다 세상의 이런 고통과 슬픔을 아는 게 어후, 잔인해요. 우리가 희로애락이라고 말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 감정들은 어떤 시대건, 어떤 환경이건 간에 그 양이 똑같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우정은 뭘까요?
정이에요, 정. 우정은 친구 간의 정이에요. 사랑은 3년이면 끝.(웃음) 그다음엔 정이야.

화보 촬영을 준비하는데 처음부터 단호하게 ‘메이크업은 노, 절대 노’라고 말씀하셨어요. 음악하면서 그렇게 칼같이 ‘절대 노’ 하셨던 건 어떤 것들이 있어요?
매 순간 노였죠.

성에 안 차서?
그렇죠. 성에 안 차면 견디질 못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나는 ‘Dark Side of the Moon’이었고, 태관은 ‘YES. Bright Side’. 그런데 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내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후배들을 대하는데 딱딱한 나무껍질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고. 옛날 우리가 음악할 때는 너무 치열하게 해서 정말 최고의 것만 선택해서 달려왔거든요. 아까 말한 것처럼 ‘no no no’. 잔인하게 평론했고, 아닌 건 아닌 거였어요. 난 24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좋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으니까. 사실 후배들 음악은 잘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들의 내면도 잘 들여다보지 않았고. ‘좋은 차 타려고 이런 가사 적었나 보지, 뭐’ 했는데, 이번에 작업하면서 후배들이 우리 음악을 재구성해서 가져왔는데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어떤 지점에서요?
내 수보다 훨씬 뛰어넘는 거예요. 카운터펀치를 한 대 맞고 해롱거리는 상태에서 옥타곤에서 벗어날 생각만 했어요. 내가 그 나이에는 절대 그렇게 못했거든요. 그렇게 생각이 깊지도 못했고. 그런데 딱 듣고 세 글자가 떠올랐어요. ‘해냈다’ 그리고 아, 미쳤다, 나쁜 놈들. 완전 두 손 들었어요. 그때부터 후배들 음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었던 거에 자책감이 들었어요. 엄청 겸손해지더라고요, 엄청. 그러고 나니까 지금 가요계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전엔 안 그랬어요. 어떤 시각이 있었느냐면, 대부분의 한국 음악 산업은 제작자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작자들, 뮤지션을 육성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가져다주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음원 사이트에서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에 달린 댓글을 확인해보신 적 있어요?
아, 그건 못 봤네요. 그런 게 있나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사람 여럿 살렸을 거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라디오 디제이 할 때 그런 사연이 몇 개 올라왔어요. 지금은 버스에서 음악을 잘 틀지 않는데, 그때는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틀었거든요. 그러면 주로 나오는 게 라디오였어요. 강을 건너는데 다리 한가운데 버스정류장이 있대요. 내려서 빠지려고 하다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듣고 멈췄대요. 그래서 지금 잘 살고 있다고, 감사하다는 사연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출근할 때 자동차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귀가 찢어져라 크게 틀어놓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른대요. 그러고 나면 ‘오늘 하루 이길 수 있다’ 딱 그런 생각이 든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음악을 한다는 게 달란트가 아니라 짊어진 의무 같아요.

2002년에 나온 이 노래가 월드컵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면서요.
방송에서 제일 많이 나온 노래 1위였어요. 그다음 해까지 2년 연속으로.

서태지와 아이들도 이겼고.
맞아요. 우와, 그걸 기억하시네.

요즘엔 이 노래를 누가 제일 좋아하는지 아세요? 두산 팬. 야구 직관할 때 이 노래가 나오면 그렇게 울컥울컥한다고 두산 팬들이 댓글을 많이 남겼어요. 14년이 지났는데 나이 들지 않는 노래라고요.
아, 정말? 한번 찾아볼게요. 댓글 달아야겠다.

코트 디올. 터틀넥 쇼앤텔. 바지, 구두 모두 오디너리 피플.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에는 ‘처음’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붙어요. 우리나라 가수 처음으로 라이브 앨범 제작, 처음으로 리마스터링 앨범 발매, 처음으로 미국에서 앨범 전곡 작업까지.
전태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겪어보니, 혼자서는 절대 못 해요. 이상하게 <성경>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둘이서 선교하러 가라’는 구절이 있는 걸로 기억해요. 겪어보니까 새로운 곳을 개척할 때는 두 명이 필요해요. 서로 쪼아야 하고, 이래서 그런 거구나 싶죠.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속담도 비슷한 이야기겠죠. 충분히 먼 시간, 30년.
맞아요. 그리고 인간이라는 게 나태함을 갖고 태어났잖아요.

그래서 인간이 혼자 못 사니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데, 또 창작의 영역에서는 우정이 훨씬 더 생산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
같이 사는 사람이 내 음악을 두고 얘기하잖아요? 그럼 하루도 같이 못 살아요.(웃음) 오늘 사진 찍으러 간다고, 그래도 스튜디오에 가는 거니까 신경 써서 나와야 하는데 아내가 추우니까 ‘돕바’ 입고 나가라 그러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지. 그런 예술과 관련된 부분을 침투하면 곤란해지는 것 같아요.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에서 뮤즈도 찾고, 그 안에서 안정도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더 자극이 되고 생산적인 건 우정의 관계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물론 자발적으로 영감이 되는 건 아름다운 여성, 맛있는 음식, 쏟아지는 햇살 그런 것들이고. 그러나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건 샐러리, 입금. 하하하. 정말이에요. 이거는 내가 후배들에게 꼭 꼰대처럼 알려주고 싶어요.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각자의 삶이 있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참 좋았어요. 멤버들이 싸우는데 존 디컨이 갑자기 베이스를 연주하잖아요.
(입으로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빰빰빰빰. 그걸로 딱 정리되죠.

싸우고 지지고 볶아도 음악이 딱 나오면 그 순간부터.
네. 세상 모든 일에는 긴장이 있고 논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세상이에요. 그래서 음악이 정말 고마워요. 음악은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거든요. 마음에 파동을 일으켜 때려주고 마사지하면서 딱딱했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줘요. 의사는 병을 고치는데 악사는 마음을 고치죠.

선생님도 그런 악사라고 생각하세요?
그럼요. 나는 의사, 변호사, 판사 뭐 하나도 부러운 사람이 없어. ‘사’ 자 중에서 최고는 악사야. 그 사람들이 밤에 우리를 만나잖아요? 그럼 우리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해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처럼 두 분도 30년 동안 싸우다가 음악으로 정리되는 순간 같은 거 없었어요?
늘 그랬어요.

30주년 앨범이 나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돌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의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이건 들어갈 것 같다 하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이쯤 하면 음악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음악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거든요. 그래서 병이 와도 이걸 할 수밖에 없어. 퀸의 순간하고는 확실히 다른데, 암이 발병해 태관이 신장 하나를 떼어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크루즈 타고 요양 다니는 걸 생각하는데, 우리는 거기서 멈출 수 없는 거예요. 돈 때문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해야 하는 게 있어요. 처음 무대에 올라갈 때 올라가기 전에 서로 부둥켜안고 등을 두드려요. 그러고 나서 이제 연주를 하는 거죠. 우리는 연주하다가 죽도록 프로그램된 사람들이에요.

의문이에요. 아프잖아요, 내가 살기 위해서, 또는 내가 덜 아프려면 병원에 입원도 하고, 일도 줄이고, 요양도 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요?
시간이 없고 절실하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해왔어요. 톨스토이도 헤밍웨이도 죽기 전까지 작품을 했잖아요.

아프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은데.
요즘 같은 때는 그런 생각도 드는데, 아파서 요양을 하면서 끌려가듯 사느니 그냥 음악하다가 무대 위에서 죽자는 게 우리 생각이었어요.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보면 정말 멋지게 음악 활동하셨어요. 3집 앨범은 미국에서 두 달 동안 만드셨다면서요. 당시 앨범 제작하는 데 4500만원만 들여도 크게 투자한 건데, 그때 2억5000만원을 쓰셨다고 들었어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소리를 위해 300년이 넘은 헝가리 고성에서 연주를 하셨다면서요. 세상 즐겁고 멋있는 것만 다 하셨네요.
크하하하. 우리가 미쳤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미쳤었나 봐. 그때 주변에서 빌딩이라도 하나 더 사놓으라고 엄청 그랬거든요.

당시에는 앨범 판매량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 얼마나 팔렸는지도 몰랐다면서요. 그런데 소속사 대표님이 백화점 대주주가 살던 사택을 산 걸 보고 우리 앨범이 이렇게 잘됐구나 아셨다고. 한참 뒤에.
그때 돈으로 45억짜리 집이었을 거예요. ‘봄여름가을겨울이 이 집 사는 데 반 댔다, 고맙다’ 딱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때는 회사가 투자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돈을 빌려 음반을 제작하는 시스템이었다면서요. 그런데도 그렇게 겁 없이 몇 억씩 빌려 쓰셨고요.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로 갚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셨던 거예요?
아무 생각 없었죠. 경제 관념은 뒤예요. 사람들이 엘론 머스크를 욕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잖아요. 저놈 이상하게 돈 끌어다가 회사 만드는 놈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믿음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고, 생각에서 진실성이 보여요.

어떤 사람은 인생을 불살라요. 예를 들면 퀸의 프레디 머큐리, 엘론 머스크도 마찬가지고. 불살라서 자기만 타는 게 아니고 주변도 다 태워버리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결국은 내가 원하는 절실한 무언가를 위해서 나뿐만 아니고 모든 걸 불태워버리는데.
그 과정에 주변 사람들이 엄청 고통받죠. 저는 좀 그런 편이었어요. 태관은 반대였고. 그 밸런스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던 장본인으로서 그런 존재가 사회에 필요하다고 봐요.

왜요?
생존의 문제 같아요. 전체의 생존.

어떤 생태계 안에서 지금 생존에만 집착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역설적으로 그 생태계는 금방 죽거든요.
맞아요.

누군가는 도전적으로 덤벼야 시장이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도전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을 ‘위대한 바보’라고 하는데, 그런 바보가 없으면 세상은 진보가 안 되는 거죠. 늘 그 자리에만 있으니까. 음악도 마찬가지 같아요. 누구나 모두가 다 음악해서 돈을 벌고 빌딩을 사면 새로운 음악은 나오지 않죠. 누군가는 더 나은 걸 위해서 나를 불살라야 하는 건데.
맞아요. 지금도 정말 고수들은 금전적인 것과 상관없이 좋은 음악을 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먹고살려면 세션맨이 돼서 얼마든지 해도 되는데 상업적인 것보다 예술적인 부분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요. 소수가 듣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을 계속 만들어내거든요. 바보들이죠.

선생님처럼요?
저도 바보라고 생각해요.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히트곡 제조 공장 같은 데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아니다 싶더라고요. 등 떠밀려서 30주년 앨범을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봄여름가을겨울은 시작부터 등 떠밀려 했던 것 같아요. 외국은 ‘Feel So Good’, ‘Rise’ 같은 연주곡이 차트 1위를 하는데 한국은 연주곡도 없는 거예요.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누가 안 하나?’ 안 하니까 우리라도 해야겠다, 우리라도 하자, 이렇게 하고. 미국에서 녹음하면 사운드가 좋은데 돈이 많이 든다더라. 히트곡 빵빵 낸 부자 뮤지션들이 했으면 좋겠는데 안 하나? 에라 모르겠다, 태관아 우리가 하자. 클래식에서는 원전 음악이라고 옛날 악기로 옛날 건축물에 가서 연주하고 그래요. 그런데 가요는 안 하는 거야. 맨날 스튜디오에서만 녹음하고.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재즈하는 친구들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왜 안 하지? 에라 모르겠다, 우리라도 하자. 그렇게 등 떠밀려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에라 모르겠다 우리라도 하자’ 해서 하고 또 하고.

처음에는 두 분의 만족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음악을 했다고 했는데 차츰 모두를 위한 음악으로 바뀌었어요.
바뀌었죠. 음악은 순전히 나를 위한 건 줄 알았는데 나를 위한 게 아니었구나, 번개가 ‘꽝’ 쳤어요. 그전까지 완벽을 추구해서 음악을 정말 못되게 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이 좀 힘들었죠.

코트 디올. 터틀넥 쇼앤텔.

아티스트, 예술가에게 최고의 악보는 인생 같기도 해요. 그걸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런데 인생에 ‘삑사리’가….

너무 많죠.
그럼요. 궁금한 게 내가 나이가 들어서 삑사리가 많이 보이는지, 아니면 시대가 점점 삑사리가 많은 건지 모르겠어. 어릴 때는 삑사리 없이 그냥 다들 둥글게 살아갔던 것 같은데 요새는 그게 많이 보여요.

밴드 구성에서는 이 빠진 조합이라면서요. 조합으로 이렇게 30년을 활동 한 게 흥미로운 일이라고 들었어요.
우리의 롤모델은 스틸리 댄. 기타와 키보드 연주자 두 명으로 ‘할 수 있어’를 보여준 밴드. 그리고 우리는 바보였지만 되게 현실적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30년을 함께하는 데는 두 가지 지혜가 있었어요. 하나는 피아니스트 김광민 씨. 형이 우리 직속 선배였는데 “모든 팀은 다 싸워서 깨져. 그런데 너희 둘은 깨지지 마. 내가 명령한다”라고 했어요. 1987년 봄여름가을겨울을 만든 그때요. “네, 형님” 했던 그 약속을 지킨 거죠. 지혜의 명령. 또 하나는 사진가 김중만 형이에요. “너희가 음악만 해서는 절대 작품 못 남긴다. 너희를 회사라고 생각해라. 서양은 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음악이 남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음악도 산업이 있다고, 그걸 볼 줄 알아야 된다고. 그러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이 회사 같은 게 됐어요.

두 분이 버킷 리스트처럼 투 두 리스트를 함께 만들어오셨잖아요. 회전 무대에서 공연하기, 한 손에 햄버거 들고 각 그랜저 타기, 자동차 번호판 연달아 하기 등 진짜 소소한 것들.
만 명이 모인 공연장에 한 손으로 햄버거 먹으면서 들어가는… 하하. 진짜 우리 어릴 때 꿈이었죠.

이루지 못해서 아쉬운 건 없어요?
없어요. 딱 하나 못 이룬 게 있다면 무대 위에서 죽는 거. 정말 그때는 그 리스트에 백발이 성성해도 섹시한 남자로 남자고 했어요. 외국 뮤지션들의 라이브를 보면 백발의 라틴 남자 가수가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되게 멋있었어요. 우리도 언제나 무대 위에서 섹시하자고, 그리고 제일 멋지게 무대 위에서 연주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자고 했죠. 그런데 최근에 생각을 바꿨어요.

어떻게요?
이뤘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여기가 무대다. 이젠 뭐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외에도 음악이 있으니까. 그리고 조심스럽긴 한데, 저처럼 음악에 미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하고 정상적으로 사회관계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머릿속에 음악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에서 무언가 계속 들리니까 다른 데 집중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음악하는 사람들한테는 측은지심을 한번 가져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코트, 바지 모두 에스.티. 듀퐁 클래식. 카디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두 로크. 아이웨어 뮤지크.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 맞을까요?
(긴 정적) 어, 쉽지 않네요. 요즘 태관을 봐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도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견디는 걸 보면….어쩌면 삶에 대한 의지, 애정, 집착 그런 것들도 모두 취향이에요.

취향요?
네. 모두가 생각하는, 자신 앞의 삶에 대한 생각이 다양해요. 누구의 잣대를 갖다 댈 수가 없는 게, 저 같은 경우에는 과거 종교의 영향으로 나를 부르기 전까지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법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를 만나고 나서 바뀌었어요. 아내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라고 생각을 정했어요. 아내가 없으면 세상이 재미없을 것 같아, 혼자 남아 있는 게. 태관이 죽으면 죽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웃음)

너무 솔직하신 거 아니에요?
아내가 죽으면 정리하고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할 만큼 삶과 죽음에 대해 마음이 비워져 있어요. 덤으로 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태관이 이렇게 지고 있고, 나는 뭐 계속 이렇게 있는 거에 대해서 매우 덤덤해요.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고 흑인 연가 중 로드 스튜어트의 ‘People Get Ready’ 가사가 이래요. “기차가 오고 있어요. 짐은 필요 없어요. 그냥 몸을 실으면 되죠.” 가사처럼 그렇게 저는 준비가 잘돼 있어요.

전태관 선생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태도를 갖게 되셨다는 거예요?
아뇨. 12년 전에 사랑스러운 여성을, 아내를 만나면서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도 나에게 가치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렇게 험한 상황에서도 아직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친구와 우정을 지키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끝까지 친구이면 돼요. 확실한 기준이 있는데, 좋을 때 좋은 건 누구나 다 하는 거다, 그런데 힘들 때 잘하는 게 진짜 내 편이에요. 전쟁이 났대요.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하지’ 발만 동동 굴리는 건 누구나 다 하는 거고, 상황을 판단해서 ‘이렇게 하자’ 하는 사람이 나한테 필요한 사람인 거예요. 친구.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 이름 자체가 참 심오해요. 2년만 활동했어도 이렇게 심오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30년이니까 밴드 이름이 깊은 거죠. 봄여름가을겨울 다음에 계절이 또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순환될 것 같기도 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영대학원에 특강을 하러 가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가 황당해하다가 결국에는 수긍을 했어요. 이런 이야기예요. “봄여름가을겨울이 두 사람이에요. 그런데 한 사람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혼자 남았어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이름을 걸고 노래하면 그게 봄여름가을겨울 맞습니까?” 했더니 약간 헷갈려하더라고요. 다른 예로 “레드 제플린이 네 명인데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나간 상태에서 노래를 한다고 하면 레드 제플린 맞습니까?” 했더니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아들이 주식을 물려받고, 이 사람들의 음원을 관리하면서 다른 뮤지션들에게 리메이크를 부탁해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하면 그게 레드 제플린이 맞습니까?” 했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대요. “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계자를 만들어서 자기들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만들라고 하면 그건 레드 제플린인가요?” 했더니 아니래요. 그러면 사업은 어떻겠느냐고 물었어요. “이병철 회장이 기업을 운영하다가 이건희 회장한테 내려왔는데 그래도 삼성이잖아요. 그런데 왜 음악은 아니라는 거죠?” 물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저는 태관하고 그런 생각을 통해 ‘톡식’을 발굴했고, 그들에게도 봄여름가을겨울을 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물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요. 그들도 뮤지션이기 때문에. 그런데 음악이 사업과 다른 게 뭐죠?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성을 우리의 방침으로 계속해준다면 말이에요.

그러면 계속 봄여름가을겨울이 오겠네요. 겨울이 끝나고 다시 봄부터 시작되는 것처럼요.
그렇게 경영대 대학원생들과 이야기해보니,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우리처럼 오랜 시간 음악해 온 사람들보다 갇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 우리의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행복하세요?
전 찢어지게 행복합니다. 뽀드라지게 행복해요. 아주 찢어지게. 제 눈에 이렇게 보여요.

행복이 눈앞에서 막 펼쳐져요?
그냥 속에서 막 감사함이 나오고 행복해요. 몸은 좀 많이 아프지만 마음은 엄청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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