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만 괜찮다면

우리는 당신의 말을 계속 듣고 싶어요.

신기주(이하 신) 그런데 이번엔 왜 헌법 독후감을 쓰셨나요? 도대체 왜 헌법을 읽었나요?

2년 정도 된 거 같아요. 헌법을 굉장히 두꺼운 책인 줄로만 알았고, 한 번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안…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

뭐, 다들 그렇죠.

유정수(이하 유) 김제동 씨가 헌법책을 냈다고 해서 되게 어려울 줄 알았어요.

왜요? 제목도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공손한데?

김제동이 헌법 얘기한다고 하면 헉, 이번엔 또 무슨 얘기를 하시려나.

골치 아픈 얘기 하겠구나?(웃음) 헌법이 뭔지도 몰랐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헌법책은 그냥 용 같았어요.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한테 법 자체가 멀죠. 주먹이 가깝고.

제일 가까운 법이 도로교통법이고요. 그런데 문유석 판사가 헌법에 대해 쓴 칼럼이 있다고 해서 읽었는데 헌법 조항만 딱 적어놓고는 ‘이런 조항이 있다, 아름답지 않냐’였어요. “37조 1항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어 있지 아니하다는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가 되게 마음에 와닿았고. “권력은 늘 국민에게 있다”고 ‘권력’이라는 단어를 한 번밖에 쓰지 않은 것도요. 전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헌법을 읽어서 조금 더 감동적으로 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271페이지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같은 맥락일 것 같아요.

늘 자격론에 시달리는데 헌법이 저한테 ‘너 자격 있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성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일 때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무기 체계에 대해서 국민들과 말할 자격이 있어요. 헌법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요”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정당한 권위 같은 게 필요했나 봐요. 그때가 2016년 즈음이었나.

내가 덜컹거릴 때 토닥여준 게 헌법이었다.

괜찮다, 울어도 된다, 말해도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너는 여기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다. ‘입 다물어’가 아니고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게 큰 위로가 됐어요. 그때 한창 김제동 욕하기 대회도 있었어요.

별 사람들이 다 있네요.

보고 있으면 사리가 올라오죠. <성경> 구절 같으면 “두려워 마라, 놀라워 마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이라, 너의 하나님”이다. <불경> 구절 같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처럼 항상 마음에 지니고 다니는 구절 같은 거 있잖아요. 내겐 헌법이 그랬어요.

<지금 다시, 헌법>(2016)이 나온 때가 헌법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죠. 현실과 헌법 정신의 거리가 몇억 광년쯤 떨어져 있던, 도무지 저항 또는 반대할 논리를 찾기 어려웠던 때. 초반에 나오는 인상 깊었던 구절이 “헌법 정신은 있는데 헌법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예요. 전 당시 상황이 헌법과 너무 달라서 읽기 싫더라고요. 탁상공론 같아서. 그때 저와는 다른 선택을 하신 거 같아요.

저는 사람들한테 영향을 받았어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다 헌법 정신을 실천하고 사는 것 같았거든요. 아이들이 안전해야 한다는 게 우리 헌법 전문의 목표예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며.” 그래서 헌법을 제정하는 거거든요. ‘안전’이 제일 먼저 나와요. 우리와 우리 자손의 ‘안정’인 줄 알았는데 ‘안전’이에요.

어, 그러네요. ‘안전’이네요?

우리 아이들이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헌법 정신을 실현하는 사람인 거죠. 아이들 손잡고 다니는 엄마·아빠들, 길 잃은 아이들 찾아주는 사람들, 제가 떡볶잇집에서 만난 애들에게 떡볶이 사주는 것도 헌법 정신의 실현이라고 생각해요. 헌법 정신하고 멀다고 만 얘기했는데 가까이 들어가서 보면 헌법 정신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더 헌법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헌법은 인류의 공통 유산을 담아놓은 거거든요. 1948년도에 만들어졌으니까 그 전에 만들어진 각 나라의 헌법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이전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담겨 있고, 지금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것 역시도 이 안에 담겨져 있을 거고. 우리가 원해온 것들이 이 안에 담길 거고요. 결국은 그게 개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법 정신과 일치하는 거네요. 거의?

맞춰가는 과정이 개헌이고, 헌법 조항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혁명의 완성은 헌법 개정에 나타나거든요. 지난번 혁명은 아직 결과물이 없는 거죠.

촛불 혁명의 결과는 헌법에 담겨야 한다….

정권 교체가 결과물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권한자가 바뀌었을 뿐인 거죠.

그렇죠. 대단한 성과인데 권한의 교체가 1년 앞당겨졌을 뿐이에요. 어쨌든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그 결과물을 담아야 하고,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것들을 담아내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과정이 개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야 되지 않나 싶어요. 다들 헌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래서 지금 헌법이 가장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을 통해 국민들이 허락하면 개헌을 바라고 싶은 거예요? 하하.

개헌까지는 아니고 헌법이라는 좋은 책을 같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하는 거예요.

헌법 읽어본 적 있어요?

아뇨. 고등학생 때 심화 과목으로 근현대사,정치, 법 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신청이 제일 저조한 게 법이었어요. 모두가 법은 절레절레.

이게 현실이죠.

성적이 걸려 있으면 저도 안 했어요. 예전에 (이)승엽이가 그랬어요. 일요일에 사회인 야구를 하는데 따라 나와서는 “형, 왜 쉬는 날 야구를 해?”라고. 본인은 직업이고 쉬는 날에는 다른 걸 하고 싶잖아요. 처음에 헌법을 적은 사람이 문학가 유진오 박사님이어서 그랬나, 문장이 되게 좋았어요. 제가 말하는 사람이다 보니 상대의 몸동작이나 눈빛, 어느 단락에서 호흡을 끊고 얘기하느냐 위주로 보게 되거든요. 말을 글로 옮겨놓았을 때 그대로 글이 되면 좋은 말이래요. 글도 말로 옮겼을 때 바꾸지 않아도 되는 글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헌법이 그래요. 말로 옮겨도 문어체로도 맞고 구어체로도 맞아요.

유진오 박사님 말씀을 하시니까 <지금 다시, 헌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처음에는 ‘국민’이 아니고 ‘인민’이었다면서요. 인민은 공산당의 언어라고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서 국민이 되었지만.(웃음) 저도 오랫동안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서 ‘인민’이 좀 무서웠는데 공부 좀 하고 보니 인민이었어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사람’으로 바꿔도 괜찮지 않아요? 조금 더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사들이 엑스레이 결과 설명할 때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는데 모르거든요. 그렇게 자기들 전문 용어로 언어에 사람을 가두잖아요. 단어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자기들 편한 대로 쓰니까. 그래서 헌법을 쓰레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찌 됐든 진통을 겪고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만들어졌으니 더 나은 헌법을 만들어나가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돼요.

어떤 조항이 제일 좋아요?

저는 행복추구권요.

2장 10조, 행복을 추구할 가치와 권리를 가진다.

어떤 분은 책을 읽기 전까지 헌법이라는 문서의 주인이 나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대요. 헌법이 우리를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저도 그랬고. 법을 어기지 말아야지만 생각했지, 보장해준다고는….

저도 핵심은 거기 있다고 봤어요. 제가 느낀 것은 법은 늘 무의식중에 내가 지켜야 되고,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 것이라 싫은 거예요. 그런데 보면 나를 위해서 국가나 정부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만 명시되어 있거든요. 헌법 65조에 ‘니들 잘못하면 다 탄핵당해’라고. 저들이 겁을 내야 되는 건데 늘 우리가 겁을 냈던 거죠.

억울해. 왜 그랬을까.

옆집에서 노예처럼 뼈 빠지게 일했는데, 그 집 주인이 나란 걸 적어둔 문서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

아차차!

그런 느낌을 받아서 좋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리 와봐” 하고는 고쟁이 속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주머니에 쿡 찔러 넣어준 그런 느낌이었어요. 우리 손녀, 손자들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말라고. ‘어떤 놈들이 지들이 이 땅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더라도 니들이 이 땅의 주인이야’라고 끼워 넣어준 기분. 그 돈이 주는 애틋함이 있거든요. 그걸 모르고 살다가 불현듯 보면 그 마음이 전해져서 펑펑 울게 되잖아요. 저한테는 헌법이 그랬어요.

반대로 우리가 이제까지 몰랐다는 건 누군가는 우리가 아는 걸 원치 않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건설사 분양 원가 같은 거죠. 알면 난리 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언어로 자기들의 지위를 과시하잖아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해야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아까 얘기했던 ‘석션’도 짧지만 듣는 환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압감이 들죠. 법 조항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문이 조금 더 감동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지금부터 이 말씀을 드린다”로 시작해 모두 존댓말로 하잖아요. ‘니들 잘 들어, 우리 모두의 존립 근거의 기반이 헌법이고, 이 헌법의 기반이 국민이다.’ 그 문장을 사람들의 힘으로 끌어낸 거예요. 그런데 속상한 건 그 찬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촛농으로 지져서 만들어놓은 것들이 자꾸 잊히고 있어요. 그게 반의 완성이었다면 나머지 반의 완성은 개헌 형태로 나타나야 해요.

중요한 말씀이네요. 촛불 혁명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정권만 바뀌었다. 사실 다들 끝났다고들 생각하잖아요.

신경을 곤두세워서 하자는 게 아니고 문서의 주인이 우리니까 가끔씩 문서를 펼쳐보고,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우리나라 고민을 우리가 모르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런데 왜 안 할까요?

피곤한 일이니까. 상담해주시는 의사 선생님하고 3년 상담하고 3년 정도 상담 공부를 했는데, 기억에 남은 말 중 하나가 노이로제나 신경 불안 증세는 정당하게 받아야 할 심리적 고통을 비켜 간 대가라는 거예요. 현재의 우울함과 불안한 상황을 충분히 맞닥뜨려서 해결하고 직면한 뒤에 다음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이걸 비켜 가면 어떠한 형태로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거예요.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면 조금 피로하고 귀찮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죠. 너무 큰 대청소를 했다고 생각하니까 잔청소는 미루고 있는 상황 같은데, 잔청소를 쉬어가면서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저는 정치 얘기가 재미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어 할까요?

이런 걸 알기 쉽고 피부에 와닿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김제동 씨는 또 사람들을 웃게 만들잖아요. 이게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의 큰 재능, 축복, 능력, 의무가 아닐까요?

알기 쉽게, 재밌게 설명한다는 말에 반감이 있어요. 설명이 아니라 받치고 싶은 거예요. 함께하기도 했지만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어떤 멋진 일을 했는지를 알려주고 싶은 거죠. “헌법을 보니여러분이 한 일이 모두 헌법에 기반을 둔 일이었네요. 주인으로서 진짜 멋지게 해줬어요”라고. 국회도 뭉그적뭉그적할 때 사람들이 촛불 촛농으로 지진 거고, 헌법재판소도 결정을 내릴 때 국민들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도록 해낸 거잖아요. ‘그 힘의 원천이 여러분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같이 보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어요. 또, 아이들이 부모님한테 대들기 좋은 헌법 구절 같은 걸 알려주고 싶어서. 하하.

“코미디언이라도 헌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라고 질문했다는 걸 보고 놀랐어요. 항상 사람들과 나란히 서 있으려는 분이 자격을 운운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좀 전에도 자격론을 갖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제일 많이 한 이야기가 “그놈의 자격 얘기 또 나오는구나”예요.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겠죠?

그런 거예요. 제일 많이 비아냥과 조롱을 받았던 게 ‘헌법 조무사’, ‘네가 뭘 아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치면서도 내 안에는 어떤 정당한 자격 근거가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다시 한번 돌아가면 그게 헌법이었어요. “전문대 나온 네가 뭘 아냐” 했을 때 “전문대 나온 나도 안다”, “너 따위가”라고 할 때는 “나 따위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헌법이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거요. 가만 보면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이 헌법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자기를 비하하고 있는 거거든요. 캐머런 재판관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천문학자가 아니면 마치 별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 별은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어른들의 내공이에요. 한 문장으로 설명이 되잖아요.

한 달에 평균 5000명, 많게는 2만 명까지 만난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의 사연에 공감하는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공감된 시선으로 헌법을 바라보니 이런 내용의 책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싶네요.

혹자는 사람들의 시선이 저한테 쏠려 있는 게 무당 같다고 하는데, 무당은 무병을 필연적으로 앓아야 되거든요.

무당이라….

사연을 잘 들어줘서라고 생각해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무당이 해줄 때 사람들의 한이 풀리는 거죠.

어떤 게 무병이에요?

편차가 심해지는 게 무병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 있는 내가 뭐가 된 거 같거든요.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대단한 힘이거든요.

마이크를 잡았으니까.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려고 권한 투쟁을 하는 거잖아요. 무당이 천민이지만 굿판이 벌어지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무당에게 머리를 조아리죠. 가만 보면 사회자도 굉장한 권한이에요. 소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소통이 아니거든요. 무대 밑으로 내려가야 진짜 사람들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황제보다 검투사에 더 열광하는 이유가 자기들과 눈높이를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예요. 심리적으로 더 지지가 가는 거죠.

무대에 서면 권력을 쥐지만 내려온 순간에는 모두가 등에 칼을 꽂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어요. 내가 헌법의 권위를 빌려오고 싶었나? 나를 보호하려고 헌법을 이용한 건가? 그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있어요. 의사들이 가운에 기대고 사회자는 마이크에 기대듯이 결국 내가 기댈 곳을 찾고 그걸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그 고민은 지금도 하고 있는데… 차이를 조절하는 게 되게 힘들어요. 집에 가서 혼자 누워 있을 때나 이렇게 기능인으로 작동하는 나를 볼 때의 심리적인 것들. 어디 가서 외롭다고 얘기하는 것도, 징징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아요.

40대가 되니 그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기가 참 어렵죠.

그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제가 마이크 들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충격을 받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으로 대하잖아요. 드라마에서도 남편을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기능만 남은 거라 굉장히 위험한 신호라고 하잖아요. 어디서든 회장님으로만 살면 한 인간으로서는 정말 불행한 일이죠. 그런데 연예인이 힘들다고 하는 것에 사람들은 극도의 반감이 있고.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부자와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처럼.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어도 제가 그걸 모를 때가 있더라고요. ‘아, 내가 알려진 사람이어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많은 연예인들이 비슷한 무병을 앓는데, 김제동이라는 사람이 느끼는 건 그보다 더 심할 거라는 짐작이 돼요. 대부분은 카메라 앞에 서는데 김제동은 1 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니까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데, 그 말 한마디가 엇나가면 휘몰아치는 칼바람이 분다는 걸 경험할 수밖에 없고.

칼바람이 아니고 칼이 불어요.

하하. 이거 또 예상 밖의 말씀을.

칼을 방패가 아닌 칼로 받아치셔서 경계하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걱정도 많으시고….

무대에 오른다는 건 특히 김제동 같은 사회자한테는 전쟁이고, 수없이 많은 칼 숲을 헤쳐나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처럼 편하게, 갑옷을 벗고 있었던 때가 없어요. 그렇게 살았죠 뭐.

김제동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명백하게 나뉘잖아요.

저의 머릿속에서도.

하하. 또 여기서 칼을 드시는….

길을 가다가도 마주치는 사람이 나를 극명하게 싫어하는 사람일 수 있어서 길고양이처럼 긴장해서 다녀요. 언제 나한테 돌을 던질지 모르니까.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전혀 생각 못 했어요.

그렇게 돼요. 길거리 나가서 걸어 다니고 싶어도 그게 안 돼요. 그래서 늘 이렇게 곤두서 있는 것 같아요.

짐작도 못 했어요. 어제도 강연 중에 계속 ‘사람들이 내 혀 뽑으러 온다고 했다’는 말을 하셨는데 농담인 줄 알았어요.

뭘 한다고요? 아, 나 진짜 정말….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 했는데, 죄송하지만 반대 세력이 정말 분명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러분 제 혀가 제 혀입니까?”라고 하셨죠.

‘우리 모두의 혀는 소중하다’ 이런 의미죠.(웃음) 저는 사람들의 혀로 살 생각은 없어요.

긴장한다면서도 하실 말씀은 다 하고. 저 같으면 진즉 실어증에 걸렸을 거 같거든요.
하하. 실어증에 걸리고 싶어도, 걸리면 더 죽으니까요. 그래서 그럴 거예요.

셔츠, 니트 모두 TNGT. 시계 탠디. 신발 자라. 안경 림락. 바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에야 휴가를 다녀오셨다고요.

방송 일 하고 그냥 쉬는 걸로 떠난 휴가는 20년 만에 처음이에요.

어떻게 그런 귀한 기회를 마련한 거예요?

라디오를 하다 보니, 라디오가 저에게 엄청난 도움이 돼요. 아침에 출근해서 지지고 볶고 같이 밥 먹고.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지만, 유일한 장점이 같이 아침 먹을 사람이 생겼다는 거라고.

라디오에서 만난 사람들이 약간 길고양이들 같아요. 서로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크게 멀어지지도 않고.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기면 다가와서 쓱 한번 기대고 가고. 고양이들이 쓱 한번 발에 기대고 가거든요. 이렇게 지내는 게 되게 좋아요.

흥에 겨워서 노래 부르기도 하고, 사심으로 라디오 방송을 즐기는구나 했어요. 자기만족의 공간인가 싶던데요. 듣기 좋더라고요.

되게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 빼고. 하하.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또 밤에도 생방송을 해야 하니까.

아침 생방에 밤 생방이면 잠을 몇 시간 못 잔다고 들었는데.

낮에 한두 시간 자려고 방송국 숙직실 알아놨어요.

그래서 울분을 토하셨죠.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날 사람이 없어서 내가 라디오 진행을 하는 건데, 나한테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고.

정권이 바뀌어서라고.(웃음)

김제동 씨 예능 출연하는 것 때문에 KBS 노조에서 성명서도 발표했다고 하던데.

‘시사 교양 PD들이 하는 방송인데 김제동이 앵커를 한다’에서 시작해서 ‘정권의 혜택을 보는 거’라는 둥 ‘김제동이 정권 실세니까 그렇다’는 둥.

정권 실세예요?

정권에 있는 사람들은 또 저를 그렇게 욕해요. 본인들 환상 속에 내가 없는 거죠. 저도 환상에 맞춰서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고요. 미국에서도 몇십 년 전에 이런 유의 프로그램을 코미디언들이 처음 진행할 때 극렬한 저항이 있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수긍이 가는데, 사실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제가 징징거린 적 없잖아요. 한 번도 피해를 입었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고요. 그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나한테 피해를 줬다? 피해를 줄 수 없어요. 제가 그 정도로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마이크 하나 들고 토크 콘서트 했잖아요. 그래서 토크 콘서트 기획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도 하고, 모르겠어요 정말.

하하.

막았는지 안 막았는지 모르겠지만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았고, 내 일을 했어요. 마이크를 빼앗지는 못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쪽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태생 자체가 달라요.

<오늘밤 김제동>은 어떤 프로그램이에요?

30분짜리 ‘보이는 라디오’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요.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같이 이야기하는 방송.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맨날 사람들에게 같이 걷자고 하시는, 어깨동무 시리즈의 일환이겠네요.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라디오 첫 방송에서 어머니에게 전화 연결했을 때 어머니가 우시려했잖아요. ‘네가 이 시간에 잠자고 있을 애인데 건강 괜찮냐’면서 흑흑.

“뭐 또 이런 거나 하니. 근데 밥은 먹었니” 전속 악플러.

그래도 “내 니 걱정한다. 내 지금 니 기도한다” 이러시더만.

우리 엄마는 그게 낙이에요. 저는 괜찮은데 들으신 분들이 많이 우셨대요. 들으면서 자신들을 그렇게 챙기는 사람들이 떠올랐나 봐요.

따뜻한 이야기 하니까 크리스마스에 만난 산타클로스 택시 기사님 이야기도 떠올라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들 때였어요. 늘 한 번씩 나와요. 좌파, 영창, 군대, 욕하기 대회….

가만있는 사람을 왜 건들이지?

제가 가만히 있진 않아요. 하하. 제가 그들이어도 제가 싫을 거예요.(웃음) 크리스마스이브였나,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미터기를 끄시더니,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텐데 편안하게 가시라고, 내가 당신을 알아보기 전까지 요금만 받겠다고, 나처럼 제동 씨 좋아하고 이렇게 꼭 한번 태워주고 싶은 사람도 많다고, 그것만 알면 된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내려서 택시 가는 거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어요. 그때 눈도 내려서 그게 되게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요.

영화 나오겠다, <택시 운전사 2>.

내가 아니라 김제동이어서 욕을 먹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직업 때문에. 그런데 그 때문에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날 수도 있는 거네요.

채식한다는 걸 알고 고기 나오는 김치찌개집에서는 이미 고기 딱 빼서 주시고, 계란 프라이 안 주는 집인데 다른 손님들 몰래 계란 프라이 완숙해서 갖다주시는데, 그런 게 얼마나 좋다고요. 계란 프라이 완숙으로 받는 VIP 대우.

슈트 턱시도월드. 안경 림락.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서 왜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는 듣지 않느냐고 성이 나셨어요.

아이들의 목소리는 너무 나오지 않잖아요. 지금 20대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잘 산다고 하지만 적어도 장벽은 좀 낮춰줘야 하잖아요. 애들을 무조건 도와야 될 대상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게 어른의 역할이죠. 시대 상황이 변했으면 아이들의 기본 소득에 변화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이런 얘기하면 ‘자영업자들 힘든 거 안 보이냐’ 이런 구도를 만들고 있어요.

대결 구도.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가 망하고, 자영업자가 잘되려면 최저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프레임을 짜놔서 누구도 입을 열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어느 한쪽도 얘기를 못 하도록 돼 있잖아요. 토끼와 거북이 경주 같은 구도를 만들어놓은 사람들과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편의점 거리 규정 제한 없애고, 솥에 찌개 팔고 옷 팔던 그 많은 자영업자들 사라지게 한 게 누군데요. 대기업들이 찌개 시장에 진출하고 비빔밥 시장에 진출해서 우리 엄마, 아빠들 시장 골목에서 사라지는데 아무도 그런 얘기 안 했잖아요.

근거리 출자 제한 폐지. 2012년도죠.

대기업만 다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 엄마, 아빠들 일자리 다 줄어들고, 식당들 다 문 닫는다 할 때 아무 얘기도 안 했던 언론들이잖아요. 그때는 아무도 나서지 않다가 애들 최저임금이 올라서 이 사람들이 다 어렵다는 구도로 만들어놓으면 아이들 입장에서 정말 기분 좋지 않을 거 같아요.

그렇지.

어떤 부모가 시급 7530원 받은 애 불러다 놓고 “너 이 새끼 이렇게 최저임금 많이 받으면 나라 망해. 네가 그만큼 가져가면 자영업자 700만 다 죽어!”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래요. 또 어떤 자식이 자영업자 부모님들 밤새도록 일하고 들어왔는데 “엄마, 아빠 일하는 사람들 월급 좀 더 챙겨줘요. 그렇게 착취하면 안 돼” 이야기할 사람은 또 누가 있겠어요. 일부 언론을 보면 싸움 붙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 둘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둘 중 한 명은 피를 흘려야 우리 사회가 유지된다는 논리잖아요. 이 둘이 경주를 멈추고 같이 잘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봐야 될 거 아니에요? 너무 이상주의적이다 할 수 있겠지만,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해야 현실이 이상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안 하고 싸움만 붙여서 투견 대회 만들어놓는 거 같아요.

거기서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119조 1항 2항이 경제 민주화 조항이잖아요.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 조정 과정이라는 게, 보면 1970년대 이후 기업의 수익만 월등하게 올라가 있어요. 예전에는 한 사람만 나가서 일을 해도 됐기 때문에 맞벌이를 안 했던 거고요. 지금은 두 사람이 벌어도 허덕이기 때문에 애들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지금 소득 분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면,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하고 논의를 해야죠. 그런데 언론은 그걸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장기적으로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이 없는데 자동차가 팔릴 리가 없잖아요.

소득이 있어야 소비를 하죠.

편의점 주 고객층이 10대, 20대 아니에요? 자영업하는 사람들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애들한테 용돈을 줄 거로, 아이들 주머니에 돈이 좀 들어가면 엄마, 아빠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좀 줄어드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갈라놓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제쳐두고 사람들한테 돈이 좀 돌아가야 되는 거잖아요. 이걸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려 들고. 또 기업에만 화살을 쏘는 건 반대예요. 경제 3주체가 어떻게 해야 적정 수준에서 사람들이 함께 과실을 누릴 수 있는지 토론하고 논의해야죠. 토론하기 늦을 때까지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몰라요.

그렇죠.

지금 국회의원들한테 최저임금 지급하자 그러잖아요. 그런데 못 할 이없어요. 늘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다 그랬으니까, 봉사시키면 되잖아요.

책에서 읽었습니다만, 노동법 관련된 조항을 만든 국회의원 중에도 노동자 출신이 아무도 없죠. 그러니까 거리가 멀고.

국회의원이 최저임금 지급하자고 하면 ‘너도 최저임금 받아라’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공인의 개념도 이 시점에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에요. 직업과 얼굴이 알려진 사람인 거지.

능력인인 거고.

진짜 공인들이 유명인이 돼야 해요. 공적인 일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알려져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을 하는 알려진 사람들의 뒤를 캐는 것이 훨씬 더 공익에 부합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진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인들이 유명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법인 카드를 어디다 쓰는지가 진짜 국민의 알 권리 아니에요? 공인은 대한민국 헌법 7조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들이 공인인 거예요. 그런 사람이 공인의 개념인 거고, 우리는 공공의 사람들이 아는 거고. 저 사람들은 공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뭘 하는지 우리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책임지는 건 자기들이 잘못했으니 그래야 하는 거죠. 제일 가슴 아픈 건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이 덤터기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휴.

그러네요.

‘니들 최저임금 올려줘서 편의점 문 닫는다’ 식이 되는 거죠.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 모든 문제가 결국은 최저임금으로 귀결될 거라는 거예요.

최저임금, 부동산값 급등, 대출 구조 이런 것 때문에 이 정부의 지지율이 벌써 40%대까지 주저앉았잖아요.

경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정부의 실패로만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구조 자체는 선진국형 경제가 겪어야 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거든요.

지난 15년 동안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온 문제이기도 하고요.

경제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셨는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요. 도대체 뭘 어느 정도 공부하는 거예요? 한자도 배우신다죠?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이거나 혼자 있으면 별로 할 게 없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웃음) 그리고 예민해서 그래요.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해서 찾아보고. 최근에 유치원 건물 붕괴됐다는 뉴스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김제동 하면 진짜 전문은 웃음 아니에요?

그게 자꾸 잊히죠. 저 재밌는 사람인데. 하하.

제가 그걸 완전히 잊고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웃어서 턱이 나갈 뻔했어요. 어제 강연 들으면서 10초에 한 번은 웃었던 것 같아요. 강연 듣는 내내 ‘이 사람 왜 이렇게 웃기지’ 하다가 대체 본업이 뭐였지, 헷갈리더라고요.

기사에는 웃음을 쓸 수가 없거든요.

웃음이 활자가 되기 어렵죠.

활자가 돼서 재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람들이 웃는 시간을 활자화할 수 없잖아요. ‘만민 공동회’를 촬영해둔 게 있는데 두 시간 넘도록 사람들이 계속 웃어요. 웃는 시간을 확인해봤더니 평균 15초에서 20초에 한 번씩 웃더라고요.

인정!

또, 한두 번쯤은 생사의 고비를 왔다 갔다 해야 돼요.

네?

웃다가 죽겠다 싶을 만큼. 원래 제가 웃기는 사람이에요. 마이크 들고 올라가면 뭔가 와요. 툭툭툭툭툭.

뭐가 와요?

설명할 수 없어요. 툭 던졌을 때 툭 오는, 둘이 이렇게 붙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초면에 마이크 들고 만났다가 찻집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일대일이 아니라 일 대 다수인 경우에도요?

그게 일대일이 돼요. 5000명이든 1만 명이든 모인 사람들이 합체 로봇처럼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해요. 똑같은 공연을 똑같은 도시에서 하더라도 토요일에 만난 사람이 수줍은 사람이었는데 일요일에는 활발한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사람들을 모아서 막 반죽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사실 관객들끼리 분위기 속에서 웃음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예요. 끝날 때쯤 되면 저와 관계없이 본인들이 알아서 즐거운 거예요.

집단 지성, 집단 유머, 집단 무의식.

어머니가 “서울에서 너 콘서트가 너무 재밌어가 대구에 또 오셨단다” 하시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셀카를 찍어달라고 하는데 자신도 교만해지는 것 같다고, 교만해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잖아요. 다행인지 김제동 씨는 셀카 찍는 걸 되게 싫어하시잖아요. 19세 미만의 사람들하고만 사진 찍는다고 19금, 19세 이상 셀카 금지.

반드시 19금이지.

터틀넥, 베스트, 코트 모두 B.O.B. 바지 TNGT. 슈즈 리복. 안경 림락.

요즘 어머니가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매일 아침 라디오에서 자식 목소리 들리는 게, 그게 그렇게 좋으모양이에요.

밤에 얼굴 보고 주무시니 더 좋으시겠네요.

그건 욕 많이 먹는다고 걱정이 많아요. KBS에서 반대한다고 하니까 엄마는 KBS 전체가 나서서 반대하는 줄 아시죠.

자식이 40대여도 엄마 마음은 한결같은가 봐요.

엄마는 늘 짝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런가 봐요. 저는 어떤 건지 짐작도 안 가요.

길고양이를 돌보는데도 그렇죠?

엄마 마음과 비슷해질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어차피 야생이라 지들이 알아서 잘 살 건데 겨울을 어떻게 나야 되나 생각이 들고, 안 보이면 걱정되고. 저는 걔들 볼 때 제일 시간이 잘 가요. 길고양이들이 지들끼리 싸우고 놀고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좋아요.

그 아이들 보면 본인과 공통점이 느껴져요?

공통점은 없죠. 걔들은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껄껄껄.

그 말이 생각나요. 여러분 제발 국가에 대한 고충이 있으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쓰시라고, 왜 자꾸 저한테 고민을 얘기하시느냐고, 나도 이제 제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맞아요. 아까 편집장님도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지를 왜 저한테 물어요.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왜 그러지? 자꾸 고민을 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셔.

차고 계신 노란 팔찌도 그렇고, 가방에 노란 리본 고리도 그렇고, 회사 명함의 노란 리본 그림도 김제동 씨 아이디어라고요. 항상 아이들을 생각하시네요.

저 편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야 죽을 때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생존 학생들하고 5년 후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게 벌써 내년이에요. 아이들이 잘 버텨내고 잘 살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아이들이 제일 힘들었을 텐데.

“공감은 결국 상상력이다. 지금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상상력이 결핍된 사람이다. 웃음은 들숨과 날숨의 호흡체에서 나온다. 또 눈물과 웃음을 모두 다루지 않으면 웃음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웃음으로 가는 과정도 없다. 어떤 웃음도 눈물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다”고 하인터뷰 기억나세요?

네. 주로 제가 하는 이야기들이니까. 그런데 그 단락만 빼놓고 보니까 되게 있어 보이네요.

인터뷰를 누구랑 했는지 기억나세요? <인물과 사상> 인터뷰이고, 인터뷰어는 접니다. 2015년 11월이더라고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1인 시위 하시던 직후의 어느 시점이에요. 그때에 비하면 한결 편안해 보여요.

나이가 든 게 제일 큰 거 같아요. 마흔다섯이 되고 나서 조급해지는 것도 있지만 덜 치열해지는 거 같고, 머릿속 전쟁터가 덜 살벌해지는 것 같아요. 조금 여유가 생긴 거죠.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김제동을 둘러싼 논란은 끊임이 없는데.

하하. 그렇죠.

말의 칼날 위에 서 계신 건 변함이 없는데 그걸 조금 더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거군요.

그래서 제 머릿속이 조금 편안해진 거겠죠. 그때 국정교과서 반대 시위했다가 엄청 욕먹었어요.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그렇지, 때가 어느 땐데 지금.

굳이 그렇게 최전선에 서는 이유가 뭐예요?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예요?

아니에요. 제가 알려진 사람이었을 뿐이지 국정교과서 반대 시위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누가 뭐래도 쪽팔리고 싶지 않은 저의 선택이에요. 쪽팔리는 거보다 겁나는 쪽이 더 크면 안 했을 것 같고, 쪽팔리는 게 조금 더 크면 그렇게 하기도 하고요. 누구나 그렇듯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내린 겁니다.

어떤 권위가 무너질 때 사람들이 울면 그건 괜찮은 권위라고, 지난번 인터뷰했을 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 노제 얘기였어요. 다시 읽으니까 노회찬 의원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얼마 전에 회찬이 아저씨 생일이었어요. 전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장례식장에만 갔어요. 아휴, 진짜 모르겠어요, 세상 일이라는 게… 정말 모르겠어요.

휴.

강당 밖에서 아이가 우니까 안으로 들어와 달래도 괜찮다고, 우리 모두 울기 위해 태어난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실제로도 울보시라죠?

잘 우는 편이에요. 울기 시작하면 그냥 정신을 놔요. 그래서 한 번씩 울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는 사람이 건강하대요. 그래서 ‘괜찮아요’ 할 때가 제일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감정을 억누르면 반드시 돌아오니까요. 그런데 라디오 마지막 인사가 “문득문득 행복하세요”인데 어떻게 정한 거예요?

토크 콘서트할 때 큰절하기 전에 하는 멘트예요. 매일 행복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문득문득 행복하자고. 신영복 선생님이 ‘우리가 불행했던 것만큼의 행복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어느 사소한 행복이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킬 때가 있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서 “문득문득 행복하세요”라고 했어요. 계속 행복할 순 없는 거니까. 유람선 보고 손 흔드는데 누군가 함께 손을 흔들어줬다든지, 라면을 뜯었는데 다시마가 두 개 들었을 때 느끼는 그런 행복. 아유, 이거면 됐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캬.

프랑스에 강연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옛날 2G폰이 하나 있더라고요. 영화처럼 벨이 계속 울렸어요. 왜 테러 일어나기 전에….

로맨틱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누가 봐도 잃어버린 전화기인데, 주변에 사람은 없고 불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양 청년이 집었다가 훔쳐 간다 할 수도 있는 거고. 주인이 올 수 있으니까 자리를 안 떠나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헐레벌떡 뛰어오시더라고요. 누군가 이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고 말해줬어요. 프랑스에 닷새 있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비주가 그 할아버지였어요. ‘메르시보쿠’ 고맙다고 계속 하시면서.

& 크하하하하.

오래된 할아버지 핸드폰이니까 그 안에 모든 연락처와 사진이 있었을 거예요. 할아버지 표정을 보고 ‘난 앞으로 평생 못되게 살아도 된다. 이걸로 충분하다. 살면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별 거창한 거 아니잖아요. 가끔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나 싶을 때 그 할아버지를 떠올려요. ‘나 이렇게 좀 못되게 살아도 돼. 그때 그 일로 충분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할아버지가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이상하게 그 할아버지가 계속 떠올라요.

그 할아버지 찬스를 언제 썼어요?

나쁜 일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쓸데없는 죄책감이 들 때 있잖아요. “죄송해요, 저 사진 못 찍어요”, “지금 사인 못 할 거 같아요” 할 때.

듀오 인터뷰를 2년째 하고 있는데 할 때마다 늘 마지막에 똑같은 질문을 해요.

오글거리는 질문 하지 말라고 했는데… 행복하십니까?

문득문득 행복해요.

최근에 문득 행복했던 적은요?

여행 갔다가 이어폰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의자 밑에 있었어요. 내 운이 아직 다하지 않았구나 했죠.

저희한테는 문득문득 행복하라고 하면서, 그건 꽤 오래전 행복 아니에요?

근래에는 고양이들이 밥 잘 먹고 갔을 때. ‘요즘 왜 안 오지’ 했는데 창문 밖으로 문득 스쳐 지나갈 때 ‘잘 사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요.

자신을 응원하고 싶을 때는 언제예요?

요즘은 거의 매일 해요. 이만하면 됐다, 자라, 일어나자. 새벽마다 일어나서 혼자 운전하고 라디오 방송하러 갈 때도 좋아요. 교통 통제된 도로를 달리는 것 같거든요. 새벽 5시 50분에 내부순환로 쪽이 좀 막히긴 하는데, 그것도 좋아요. 라디오 오프닝할 때도 행복하고. 행복한 순간이 조금씩 늘어나네요.

이렇게 사람들 만난 후에는 기 안 뺏기세요?

그래서 집에 가서 누워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빨리 누구를 만나야죠. 요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요. 1년 전부터. 일보다 관계가 우선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요.

제20조 혼인과 가족 생활은 보장해야 한다고. 껄껄껄.

그러니 제발 나라 고민은 김제동이 아닌 청와대 게시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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