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은 나쁜 놈이 편하다

중요한 건 인물이 지닌 욕망의 세기다. 김의성이 악역을 선택하는 이유다.

김의성 - 에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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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이하 민) 지난 5월에 <강철비>가, 6월에는 <골든 슬럼버>가 크랭크업됐다. 한동안 바빴을 텐데

김의성(이하 김) 두 작품의 촬영이 비슷한 시기에 끝났다. 8월 말부터는 <창궐>이라는 작품을 찍을 예정이다.

민_최동훈 감독의 <도청>에도 캐스팅됐다.

김_7월 말에 확정됐는데 배우들 스케줄을 조율 중이다.

민_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겠다.

김_일해야 되는데.(웃음)

민_이경영 씨를 잇는 다작 배우가 되고 싶나?(웃음)

김_사실 올해에는 작품 수를 줄이자고 다짐했다. 주어지는 대로 많은 작품을 소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좀 더 까다롭게 출연작을 결정해야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

민_<부산행>이나 처럼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와 드라마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김_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는 건 배우로서 중요한 일이고, 다 같이 고생해서 찍은 작품을 한 명이라도 더 봐준다는 건 기쁜 일이다. 배우로서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다시 일을 시작한 건 6년 정도 됐으니 스스로는 신인 배우라 여긴다. 그러니 커리어를 방어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연기에 임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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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_어쨌든 “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시기는 지난 것 같다.

김_작품 선택에서 캐릭터는 중요한 요소다. 다만 그게 어떤 역할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캐릭터의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가 중요하다.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선 극적인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진다. 욕망이 강한 인물은 그 욕망을 통해 극적인 행동을 하게 되니까.

민_욕망이 강한 캐릭터를 선호한다는 것이 악역을 자주 맡게 되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악한 사람의 욕망이 더욱 강하게 피력될 수밖에 없으니까.

김_아무래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갈 길이 좁다. 그런 면에서 악역이 보다 자유롭게 느껴진다. 도전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나이 즈음의 남자 배우는 악역인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40~50대 남자라는 존재가 좋은 역할로 이해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런 관점이 영화나 드라마에도 반영되는 것 아닐까.

민_<남영동 1985>에서 연기한 강 과장과 <26년>에서 연기한 최 계장은 그런 의미에 딱 들어맞는 역할 같다. 그 두 역할을 거치면서 이름 없는 중년 악역의 적자로 자리매김한 인상이기도 하고.

김_그렇네.(웃음) 사실 <소수의견>의 홍재덕이야말로 내가 가장 공감하는 캐릭터였다.

민_어떤 면에서?

김_나랑 비슷한 점이 많아 보여서 왜 그런 사람이 됐는지 알겠더라. 다들 악역이라 여길 수 있는 캐릭터지만 배우 입장에선 나쁜 사람이라 규정하고 연기할 순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는 없을 테니까. 다들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배우로서도 그런 이유를 많이 확보해야 연기하기가 편해진다. 그리고 본래 사람에겐 변덕스러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어떨 때는 정말 용감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 비겁할 수 있다. 배우 입장에선 어떤 역할을 할 때는 용감한 나를 끌어다 쓰는 거고, 어떤 역할에선 비겁한 나를 끌어다 쓰게 되는 거지.

민_결국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란 의미로 들린다.

김_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이 새롭게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한다. 내 안에서 그 인물과 제일 닮은 부분을 찾은 뒤 상황에 따라 그 부분을 조금씩 끌어내거나 과장해서 연기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결국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에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 셈이다. 다만 <부산행>의 용석처럼 그런 이유를 확보할 수 없게 되면 괴로워지는 거고.

민_<부산행>의 용석을 납득하기 힘들었던 건가?

김_전반부까지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폭주할 때는 나라면 이렇게까진 못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독하더라. 이 상황에 어떻게 정당성을 부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서 감독한테 이 캐릭터에 대해 좀 더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요지부동이더라. 오히려 “그냥 막 소리지르면서 해주세요”라고 하는 거다. 약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감독이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어쩌면 그 덕분에 시대의 악한이 탄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_결과적으로 만족하나?

김_만족한다. 사실 영화는 감독의 것이니 감독보다 더 큰 애정을 갖진 말자고 생각한다. 나보다는 영화를 더 잘 이해하는 감독의 의견에 맞추는 게 맞을 거라는 거지. 그럼에도 종종 부딪힐 때가 있지만 결과적으론 따라가는 편이다. 그리고 <부산행>에선 감독 연상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자기 영화를 만드는 걸 돕자는 마음이 컸다. 결과적으로 모든 배우가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평면적인 인물들로 채워지고,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생긴 것 같다. 그게 <부산행>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민_2000년도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다 배우로서 한계를 느껴서 연기를 그만뒀다고 종종 밝혀왔는데 그 이유를 직접 듣고 싶다.

김_모든 일이 한 가지 이유로만 결정되진 않는다. 다만 너무 개인적인 사연이라 말하기 힘든 이유도 있어서 배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한 셈인데, 어쨌든 그 당시에 나는 연기를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민_친한 사이인 강풀 작가가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김_강풀은 그냥 미남이지.(웃음) 아무튼 그 당시엔 심각할 정도로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로 이 일을 쭉 해나가면 내 인생이 즐거울까 고민됐다. 그리고 배우는 수동적인 직업이다. 남이 나를 써주고 찍어줘야 하는 거라 내가 스스로 인생을 결정할 수 없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괴롭더라. 그렇게 연기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조금 더 능동적인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결국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민_그 이후로 베트남에서 FnC미디어 대표로 일하다 CJ미디어 베트남 공동대표까지 맡았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김_처음부터 베트남에 가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당시 2000년도 초반으로 IT 버블이 한창일 때였는데 엔터테인먼트 쪽으로도 관련 자금이 많이 유입됐고, 대형 연예 기획사들이 생겨날 때였다. FnC미디어도 그때 생긴 회사였는데, 거기서 우연히 한국 영화를 베트남에 배급하는 일을 하다 현지로 가서 드라마 제작 업무까지 보게 됐다. 그런데 뭔가 가능성이 있어 보였는지 CJ미디어에서 FnC미디어를 인수했고 공동대표직을 맡았다. 하지만 나중에 내부 문제로 회사가 문을 닫고 개인적으로 연극을 기획하고 연출도 했다. 막상 말로 하니까 짧게 느껴지네.(웃음)

민_결국 1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출연한 작품이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이었다. 다시 연기를 시작했을 때 마음이 어떻던가?

김_다시 연기를 시작하려고 <북촌방향>에 출연한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3~4일 정도 촬영하는 것이니 아는 사람과 잠깐 일해본다는 마음이었지. 그런데 재미있더라. 2~3일 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상업 영화였다면 훨씬 긴장했겠지만 딱히 부담이 없는 현장이었으니까. 그런데 홍상수 감독이 촬영 중에 다시 배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정확하게는 “네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배우는 아니지만, 너 같은 배우는 없으니 먹고살 순 있지 않겠니?”라고 했다.(웃음)

민_<북촌방향>에서 연기한 중원도 베트남으로 떠나 사업을 하다 오랜만에 국내로 돌아온 배우라고 소개된다.

김_구체적으론 이런 식이지. “얘 베트남 가서 많이 망가졌어. 살이 많이 쪘더라고.” 당시에는 좋지도 않은 사적인 사연을 굳이 끌어내는 건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원래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다시 소개해주는 느낌이라 깊은 배려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 당시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지난 10년간 이리저리 부대끼며 뭔가를 해왔는데 재미있었는지 행복했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다시 즐거워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런데 <북촌방향>을 해보니 연기가 좋아져서 다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민_그 이후로 <건축학개론>에 출연했다.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배우 활동을 재개한 이후에 처음으로 출연한 상업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김_1996년에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당시 영화학도들에게 충격을 준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촌방향>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연배우 김의성을 오랜만에 환기시킨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은 ‘김의성이 계속 연기할 건가 보다’라고 얘기해준 작품이었다.

민_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이나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 함께 출연한 이경영과는 오랜만에 <남영동 1985>로 배우로서 재회했다. 어떤 식으로든 반가웠을 것 같다.

김_이경영 선배와는 옛날부터 친한 형, 동생 사이였는데 그때 경영 선배도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명계남 선배도 함께 했으니 시간을 되돌린 기분이었지. 경영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너와 내가 보낸 공백의 기간이 보약 같은 시간이 돼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고. 내가 연기를 멈춘 기간이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인데 남자 배우에겐 정말 꽃 같은 시기다. 가장 활발하고 도전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이라 그 시기에 대한 상실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만약 내가 배우로서 그 시기를 꽉 채웠다면 지금처럼 연기하는 게 행복하진 않았을 것 같다. 배우로서는 커리어의 손해를 봤을지 몰라도 한 인간으로서는 후회할 필요가 없는 공백이었던 거다.

민_<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배우 송강호의 첫 영화이기도 했다. 그리고 송강호 씨는 자신을 영화로 이끌어준 사람이 김의성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김_정말 좋은 배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추천한 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배우 송강호의 인생을 좌우할 만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뾰족한 송곳은 어느 주머니에 들어 있어도 튀어나오는 거니까. 다만 그때 받은 출연료로 신혼여행 갔다고 할 땐 뿌듯했다. 물론 한국 영화사에 큰 기둥으로 기억될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건 영광이지.

민_<관상>으로 14년 만에 배우로서 재회했을 땐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김_배우를 그만둔 시기에도 팬으로서 송강호 씨의 작품을 꾸준히 봤기 때문에 후배를 다시 만난다는 마음보다는 대배우와 같이 연기한다는 사실에 떨림이 컸다. 그러니 그가 나를 기억해주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건 보너스 같은 거였지. 긴 장면에 함께 출연한 건 아니었지만 함께 연기하는 순간엔 정말 짜릿했다. 좋은 배우와 함께 연기한다는 게 이래서 멋진 일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민_정치적인 주제의 연극 무대에 설 기회가 몇 번 생기면서 연기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배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 보다.

김_시대가 요구한 것 같기도 하다. 전두환 씨가 대통령이던 1980년대는 억압된 사회였고 대학교는 사상적인 해방구처럼 존재할 때였으며 젊은 혈기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으니까. 게다가 경제적으론 풍요로운 시대라 취직 걱정이 덜해서 세상에 대한 고민을 더 할 수 있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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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_혹시 정치나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에 더 끌리진 않나?

김_작품의 유익함이 선택 기준은 아니다. 그보다는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지, 얼마나 좋은 캐릭터인지, 그리고 얼마나 돈을 많이 주는지(웃음) 이런 게 중요하다.

민_소셜테이너, 폴리테이너로 불린다. SNS로 사회적 발언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편인데, 이를 비난하는 이들을 특별히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 같진 않다.

김_원래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반사회적이거나 차별적인 생각만 아니라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아는 배우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건 난센스니까.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건데 가끔은 조직적으로 공격당한다는 정황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오기도 생기고, 한편으론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발언할 수 있는 자유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앞서기도 하더라.

민_이젠 부담스러워진 건가?

김_여전히 원칙적으론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고민이 생긴 거지. SNS상에서 뱉은 말은 너무 쉽게 왜곡되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러니까 내 진위와 무관한 일들을 만들어내더라. 그런 면에서 조금 조심스러워졌다고 할까. 내 말이 내 의도대로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진흙탕에서 발을 빼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거지. 가끔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부당한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생기는 것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뭔가에 대해 자꾸 말하고 글을 쓰고 주장하다 보면 점점 언어나 감정이 세지더라. 게다가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만큼 더욱 신중할 필요성을 느낀다.

민_일단 배우로서의 본분인 연기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할 거 같다.

김_내가 잘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나.(웃음) 사실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모래 위에 집 짓고 파티하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 다 들통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걱정을 하게 되는데, 아마 배우라면 다 그럴 거다. 자기 연기에 만족하는 배우는 없을 테니까.

민_그렇다면 배우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는 이상 끝나지 않을 고민일 텐데, 어떻게 견딜까?

김_좀 뻔뻔해지는 거?(웃음) 스스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만둔 적도 있지만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달라진 건 이제 ‘좀 못하면 어때? 필요하니까 쓰겠지’란 생각이다.(웃음) 우스갯소리로 세게 던진 말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배우를 캐스팅할 때 연기 잘하는 사람을 1번부터 10번까지 세워놓고 차례로 가져다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어떤 역할에 필요한 배우를 쓰는 거고, 단순히 그 배우의 째려보는 눈이 좋아서, 목소리가 좋아서 역할을 맡길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내가 필요한 면이 있다면 쓰게 만들고, 만약 내가 조금 더 잘해서 작품에 도움이 되면 더 좋고, 이렇게 뻔뻔해지는 거지.

민_결국 남들이 인정하는 나의 쓸모를 스스로도 인정하게 됐다?

김_맞다. 어차피 세상이 공평하지만은 않으니까.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게 쉽진 않다. 아는 사람, 검증된 사람을 쓰는 게 편하니까. 나도 연기를 다시 시작한 뒤로 6년 만에 그런 혜택을 누리게 됐는데, 반대로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새로운 얼굴을 보고 싶어 하니까. 한동안 나는 새로운 얼굴이면서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얼굴이 아니니 더 큰 믿음을 줘야 한다. 더 잘하는 배우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민_촬영할 작품이 줄 서 있으니 아직은 걱정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촬영이 끝난 <강철비>와 <골든 슬럼버>에서는 악역이 아니라던데.

김_악역이 아닌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하지만 다시 악역을 많이 하겠지.(웃음)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이미지가 고정되는 걸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이미지가 단단하게 고정될수록 지혜로운 감독이 다른 방법으로 쓰고 싶어 할 거라고. 당시에는 내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할 때도 아니라서 뜬금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예언처럼 들린다.

민_<도청>은 <암살>에 이어 최동훈 감독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김_영화를 다시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기쁜 제안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감독이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심지어 주연으로 캐스팅해줬으니 너무 기쁜 일이지.

민_현재 소속사인 아티스트 컴퍼니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직접 설립한 매니지먼트사다. 그만큼 배우들이 능동적으로 일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어떤가?

김_실제로 도움을 많이 받는다. 캐스팅을 비롯해 배우 입장에서 논의할 수 있으니까. 연기 잘하는 동료가 많기 때문에 선후배 혹은 회사의 경영진이란 관점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진지하게 의논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좋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있다 보니 배우와 회사의 관계를 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씩 무명 신인 배우들을 위한 연기 훈련에 참관하고 있다. 진짜 회사원이 된 기분이랄까.(웃음) 더 많은 배우들이 모여서 치열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글_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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