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라는 위대함

무엇이 여성을,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이토 미도리라는 이름을 아시는지. 여성 선수로는 거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일본 피겨스케이팅 선수다(‘거의’라는 말을 굳이 붙인 까닭은 공식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9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 작은 선수가 힘찬 연기로 우승하는 광경을 방송으로 목격하면서 어린 마음이 꽤나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아시아 선수로서 최초로 세계 선수권을 따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게 왜 하필 일본이어야 했는지….

알다시피 일본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때마다 비슷한 종목에서 비슷한 기량으로 한국과 혈투를 벌이는 스포츠 라이벌이다. 그런 나라의 선수가 영광을 차지했으니 그저 축하하고 싶지만은 않았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낯선 종목에서는 한국과 일본 모두 유럽이나 북미에 대해 비슷한 열등감을 느끼리라 믿었다. 그러다 이토 미도리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우리 머리보다 한 뼘 위에서 놀게 된 것처럼 보였다. 성적이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끼던 짝이 평소 힘겨워하던 과목에서 느닷없이 점수가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랄까.

또 하나 신경을 긁은 게 있다. 이토 선수의 다리였다. 그녀의 드높은 점프를 지탱하는 두 다리는 흔히 여성의 아름다운 다리로 생각하는 표본과 거리가 멀었다. 서양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에 비해 짧고 굵고 단단해 보였다.

필요 없는 오해를 막기 위해 못 박아두자면, 나는 굵은 다리가 여성에게 흠결이라 여기지 않는다. 여성의 다리는 가늘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굵을 수도 있다. 단지 얼마나 점프를 많이 했으면 저리도 허벅지가 굵어졌을까, 아시아 선수로서 피겨스케이팅에서 정상권에 들려면 외적인 아름다움은 포기해야 할까 하는 등등의 생각이 들어 못내 겸연쩍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카타리나 비트 같은 유럽 선수들은 높고도 우아한 점프를 손쉽게 해내면서 다리 또한 가늘었다. 서울올림픽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아르헨티나의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같은 테니스 선수도 비슷한 예다. 코트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도 모델 못지않은 다리의 모양새를 자랑했다. 그에 비하면 동양 선수들은….그런 생각이 그야말로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밝혀주는 예가 다름 아닌 한국에서 탄생했다. 김연아였다.

김연아의 다리는 그냥 여성의 다리다. 크게 상관도 없고 필요도 없겠지만 구태여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면 나는 그녀의 다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김연아는 그 다리로 높고 멀리 점프한다. 그 와중에 이토 미도리처럼 세 바퀴를 돌기까지 한다. 악셀과 토루프라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회전수는 똑같으며 높이와 거리는 오히려 능가한다.

김연아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무척이나 놀랐다. ‘그 다리로 그 점프를….’ ‘점프 열심히 하면 굵어지는 것 아니었어?’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점프 높이와 허벅지의 굵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시에 김연아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도 예술적인 연기를 해냈다. ‘예술적 연기에는 소질이 없어 기술 쪽으로 힘을 쏟는다’던 이토 미도리와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세상에는 위대한 여성 스포츠 선수가 적지 않다. 역대 최다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이라는 기록으로 모자라 현재도 역대 최고령 ATP 투어 우승이라는 기록(현재 보유자는 39세 7개월의 빌리 진 킹)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미국의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 철의 여인이라 불린 체코의 테니스 영웅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세계 기록 보유자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밥 먹듯 해낸 러시아의 장대높이뛰기 스타 옐레나 이신바예바, 한 템포 빠른 공격으로 테이블 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중국의 탁구 영웅 덩야핑, 여자 다이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국의 다이빙 듀오 궈징징과 우민샤, ‘야와라짱’이라는 애칭으로 일본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한 유도의 다니 료코(결혼으로 성이 다무라에서 다니로 바뀌었다)….

김연아는 그들과 또 다르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저변은 아예 없었다.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한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이라고 해도 좋았다. 몇몇 선구자들이 애를 쓰고는 있었어도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세계 수준으로 가는 건 아득해 보였다. 김연아는 거기서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 한국에서 김연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라 해도 좋았다. 천재란 그녀와 같은 존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또 하나, 그녀에게서 가장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은 정신력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스포츠 세계에서도 기량 이전의 경쟁력이 존재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마음. 그것이 ‘이때다’ 하는 결정적 순간에 찬란한 영광을 만들어낸다.

올림픽은 세계선수권대회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평가된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철저히 개인의 기량을 겨루는 자리라면 올림픽은 나라 간의 경쟁이다. 그 때문에 국가의 명예까지 짊어져야 하는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정신적으로 좀 더 힘겨운 싸움판으로 여겨진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무적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올림픽에서는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선수가 여럿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는 스포츠 세계의 금언도 그런 이유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느껴야 했던 부담감은 여느 선수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금메달 좋아하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이 넓지 않은 어깨 위에서 선수를 짓밟아대고 있었을 것이다. 김연아는 그처럼 무거운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기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정신력이다. 한 걸음 떼기도 힘들 판에 연속 트리플 점프를 그토록 우아하게 뛰어내다니.

나는 김연아만큼 금메달이 어울리는 선수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선수다. 그것은 남자, 여자를 따지기 이전의 문제다.

굳이 골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유독 한국 여성들이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성적이 좋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남성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몇몇 마초들은 ‘그래봤자 여자 스포츠’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그 따위 생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남자에게는 남자의 세계가 있고 여자에게는 여자의 세계가 있다. 절대적 기량, 절대적 기록은 차이 날지 몰라도 치열함만큼은 두 세계가 마찬가지다. 그 아수라장 같은 세계에서 한국 여성들은 여느 스포츠 강국의 여성들 못지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 땅에 살면서 여성 스포츠 영웅들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기왕에 여성 스포츠 선수를 이야기하는
자리인 만큼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잘 알지 못할
한국의 ‘위대한’ 여성 스포츠 선수를 몇 명 더 이야기해보자.

조혜정

한국이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것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였다. 이 대회에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헝가리를 물리치고 동메달을 따냈다. 이때 팀의 중심이 바로 ‘나는 작은 새’라고 불린 조혜정이었다. 조혜정은 배구 선수치고는 작은 165cm의 키로도 경이로운 도약력과 발군의 볼 센스로 공격을 주도해 한국 대표팀이 동독(당시), 쿠바 등 장신 팀들을 잇따라 격파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국 여자 배구계에는 장신의 김연경 이전에 단신의 조혜정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여자 배구 대표팀에는 조혜정 외에 정순옥, 윤영내, 유경화, 유정혜, 변경자, 백명선, 이순옥, 이순복, 마금자, 장혜숙, 박미금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 여자 배구의 선구자이자 세계 정상급의 스타플레이어로 그 이름들을 가슴에 담아둬도 좋을 것이다.

정현숙, 이에리사

1973년 유고슬라비아(당시) 사라예보 여자 탁구 세계선수권대회.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패배를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탁구대 위에서만큼은 최강이라는 중국 또한 적수가 되지 못했다. 예선, 결선 포함해서 여덟 번 싸워 여덟 번 이겼다.

사람들이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부른 이 쾌거의 중심에 정현숙과 이에리사가 있었다. 두 선수는 특히 예선에서 중국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에는 당시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유란이라는 스타가 버티고 있었다. 정현숙과 이에리사는 단체전에서 후유란 복식조를 모두 이겨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두 선수 이전에 있었던 조경자라는 탁구 스타 역시 기억해둘 만하다.

백옥자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여성이다. 무대는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이었고 종목은 포환던지기였다. 백옥자는 이어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16.28m라는 아시아 기록을 세우며 또 한번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의 마녀’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은 그저 붙은 것이 아니다. 여자 농구계에서 활약했던 김계령이 이분의 따님이다.

김진호

지금의 양궁은 한국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종목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한국이 득세하기 이전 세계 양궁계는 유럽의 독무대여서 힘에서 밀리는 아시아 선수들은 감히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김진호는 그런 양궁 종목에서 한국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특히 1979년, 198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연속 5관왕에 오르며 양궁 영웅이 됐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은 차지하지 못하고 1984년 LA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으나 한국 양궁이 지금에 이르게 된 데는 김진호라는 ‘원조 신궁’의 힘이 컸다.

박찬숙

한국이 올림픽 여자 구기 종목에서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은 어디까지일까? 은메달이다. 무대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종목은 여자 농구. 준결승에서 거함 중국을 격파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때 한국 팀의 중심 선수가 센터 박찬숙이었다. 재산 문제와 관련해 구설에 오르는 등 은퇴 이후의 삶은 그다지 평탄치 않았지만 농구 선수로서의 업적만은 제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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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유준
사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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