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랑, 올해의 금빛 질주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아랑을 만났다.

앙고라 니트 톱, 플리츠스커트 모두 자라.

기사마다 ‘맏언니, 맏언니’ 해서 봤더니 이제 스물네 살이더라고요.(웃음) 쇼트트랙 평균 연령이 낮은가 봐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낮아졌어요. 소치 올림픽 때는 위로 언니들도 있고 중간 역할이었는데 갑자기 선수들 연령이 낮아져서 저도 맏언니라는 말이 아직 어색해요. 마치 엄마처럼 잘 챙겨줄 것 같은 단어인데 제가 그러지 못해서 솔직히 부담이 될 때도 있어요. 대신 나이대가 비슷하니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후배마다 성격도 장점도 각기 다를 텐데요, 어떻게 다가가는 편이에요?

계주 종목을 함께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운동이기도 해요. 그래서 선수마다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결과가 좋은 덕분에 맏언니로서 긍정적인 평을 후하게 들었지만, 저도 아직 어려서 계속 알아가고 있어요.

처음으로 스케이트 탔던 날 기억해요?

정확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오빠를 따라 빙상장에 갔어요. 난간 위에서 오빠를 보며 ‘왜 저렇게 못하지?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때마침 코치 선생님이 한번 타보라고 하셨는데, 일단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않았어요.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으면 다 넘어지거든요. 그때부터 승부욕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럼 스케이트가 재미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선수반에 등록한 이후로 매일 혼나는 게 정말 싫었어요. 한데 저는 남들이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오히려 더 자극받는 성격이에요. 고등학생 때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그만두라고 하니까 멈추지 말고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타면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어서 성취감을 맛보니까 이 종목을 잘 선택했구나, 재미있구나 느꼈어요.

선수로서 직업의식이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나요?

네. 평창 올림픽 전에 시합에서 얼굴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어요. 한데 그 시합 이후로 10일 뒤에 또 시합도 있고 국가대표 선발전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얼굴을 다쳐서 많이 속상할 수도 있었는데 사실 스케이트 탈 때 얼굴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다 싶더라고요. 그때 정말 내가 스케이트 선수구나 싶어서 스스로도 좀 놀랐어요.(웃음)

블라우스, 재킷, 스커트 모두 앤디앤뎁. 슬링백 레이첼 콕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엄청 울었잖아요. 그렇게 한번 승리를 맛보면 정말 몇 년 동안의 고생이 한꺼번에 다 잊히나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계주만큼은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을 정도로 간절했어요. 그리고 오직 그 결과를 위해 몇 년 동안 훈련했으니까요.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해냈다는 기쁨도 크고, 여러 가지로 북받쳐 올랐어요. 정말 눈물을 많이 쏟았어요.

올림픽 일기를 썼다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이 적혀 있나요?

특별한 것보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하자고, 괜히 긴장하면 평소 잘하던 것도 잊어버리니까 그러지 않도록 하자는 내용이 많아요. 또 하나는 먹는 거요.(웃음) 사실 소치 올림픽 때 위경련으로 너무 고생했는데 구토할 때마다 당근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아예 당근을 먹지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는 일기네요.(웃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더 컸을 것 같아요.

준비하는 동안은 많이 긴장했는데, 오히려 올림픽이 시작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원래 평소에도 심하게 긴장하는 편인데, 소치 올림픽 때 느낀 압박감이 더 컸어요. 평창에서는 몸 컨디션도 좋고 선발전에서 한 번 탈락한 경험이 있어서 올림픽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국가대표 선수는 때로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고 이런저런 상황에 휩쓸릴 수도 있는데요, 그때마다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모든 어려움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기면 마음이 좀 더 편해요. 올림픽 끝나고 관심을 많이 받았는데 감사하면서도 혹시나 내 마음과 다른 모습으로 비쳐질까 봐 스트레스도 그만큼 컸어요. 관심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스트레스받는 와중에도 하던 대로 운동하고 시합에 참가하니까, 앞으로도 운동선수로서 묵묵히 쇼트트랙이라는 길을 걸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와 분명 다른 경험을 많이 한 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빙판 위에서 이거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싶은 것이 있나요?

인정할 줄 아는 것. 현재 나의 실력, 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빙판 위에서 운동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다른 선수가 나보다 나은 점, 또 상대방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점 등을 먼저 인정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렇다면 스케이트장 밖의 김아랑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시끌벅적하게 노는 것보다 풍경을 감상하는 걸 선호하죠. 평소 생각이 워낙 많아서 머릿속을 비우고 정리하고 싶을 때는 책을 읽어요. <엘리트 마인드>라는 책을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아서 다른 선수에게 권해주기도 했어요.

2018년의 김아랑이 있기까지 가장 많이 의지한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일까요?

네, 당연히 부모님이지요. 어렸을 때는 맞벌이하시느라 바빠서 시합장에도 오지 않고, 제가 무슨 종목에 출전하는지도 모르는 부모님에게 무척 서운했어요. 한데 대신 부모님은 저한테 스트레스를 전혀 주지 않았어요.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도 변함없이 믿고 제 결정은 무엇이든 지지해주셨어요. 알아서 하게끔 믿어주셔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일찍이, 확실히 깨달았어요. 그 점은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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