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마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놀랍게도 시계와 연기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기는 남을 속이는 건가요? 아니면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일인가요?

좋은 질문이네요. 두 측면이 조금씩 가미된 것이라 생각해요. 다른 요소도 있고요. 기계적인 면도 있어요. 어느 정도 맞춰가야 하는 부분도 있고. 기억을 한다든지, 특정한 프레임 내에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 포지셔닝해야 할지 같은 건 기계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부분이겠죠. 내가 해당 캐릭터로 분하기 위해 신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한다거나, 캐릭터의 특징이나 언행 같은 면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특정 장면을 이해하고, 캐릭터를 이해하고, 어떠한 동기가 부여된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인 프로세스도 필요하겠죠. 그런 후에는 그런 순수한 마음과 전략을 복합적으로 연기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자신의 캐릭터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 인물로 그려낼지도 결정해야 하죠. 캐릭터가 해낼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본인이 연기한 모든 캐릭터를 다 이해할 수 있나요?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했나요?

아니에요. 캐릭터는 완전히 미스터리예요. 한 인물을 해체하는 거니까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특히 촬영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촬영을 하는 게 아니라 뒤죽박죽이니까 세트장에 들어서면서 ‘아, 이 인물은 이 상황에서 이럴 거야’라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다가도 나중에 보면 다른 경우가 많아요. 제대로 해냈는지, 정답에 근접했는지 등은 정말 마지막까지 알 수 없어요.

연기를 하면서 점점 그 캐릭터에 가까워지는 건가요?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죠. 얼마 전에는 패트릭 멜로즈라는 역할의 촬영을 끝냈는데 정말 마지막 촬영일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어요. ‘이 캐릭터는 이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겠구나, 이런 리액션을 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라는 걸 배웠죠.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다 보면 캐릭터에 대해 세밀한 조사가 필요 없어질 때도 있어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이 캐릭터에 대해 근육이 기억하고 있기도 하죠. 그 캐릭터와 오랜 여정을 함께하다 보니 얻어지는 거예요.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니네요.

저는 이런 부분이 항상 놀라워요. 예를 들어 제가 <햄릿>을 할 때 저는 매번 완전히 다른 무대를 보이는 것 같거든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내가 캐릭터를 이해하는 정도까지 말이에요. 연기가 그런 것 같아요. 완벽해질 수 없으니까 끊임없이 배우는 거죠. 한 가지로 정해져 있어서 그걸 완성하면 끝나는 종류의 일이 아닌 듯해요. 그래서 앞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돌아가면 둘 다인 듯하네요. 진심을 드러내는 예술이지만 기술적인 면도 필요해요. 다 놓아버리기 전에,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동시에 실제로 연기하는 순간에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다 생각하고 있을 수도 없어요.

제네바의 SIHH 예거 르쿨트르 행사장을 찾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왠지 고급 시계의 조건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고급 시계도 기술과 예술 둘 다 필요한 부분이라고들 해요.

정말 그래요. 손목시계와 비슷한 부분이 있죠. 정확도도 매우 중요하고, 뭔가를 계산한다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엄청난 노력과 작업이 필요하죠. 기계와 사람이 협업하고, 사람이 기계를 돕기도 하고. 자동화된 작업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어마어마한 기술과 연마도 필요해요. 그런 기술적인 노력과 성취가 예술로 승화되는 거고요. 기계지만 사람의 영혼이 들어 있는 결과물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공예의 수준을 넘어선달까요.

맞아요. 시계도 공학과 예술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연기도 그래요. 복합적인 작업이에요. 희한할 때도 있어요. 가끔은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할 때도 있죠. ‘어, 뭐야? 지금 딱 그 생각 했는데’라거나 ‘메모해뒀던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싶을 때도 있고. 동시에 기술적인 생각도 해요. ‘이 프레임 안에서 이렇게 해야 하지’라거나 ‘아, 대사 씹었다’ 같은 생각도 하죠. 시계 제조가 팀플레이인 것처럼 우리 일도 팀플레이예요. 현장에는 감독님이 있죠. 내 연기를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 저는 그 순간에 몰입하면 돼요. 나만의 개성을 표현해야 하고요.

하긴 시계 장인들 역시 작업하는 순간에는 최대한 몰입하겠죠.

세부적인 사항이 딱딱 들어맞아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시계 장인이 모든 디테일에 다 전전긍긍한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작업을 할 수 없을 거예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 몰입한 채로 흐르는 듯한 연기를 할 수 없죠. 연기를 시작하면 운동선수라거나 장인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에는 미래도 과거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만 존재하는 겁니다. 딱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 몰입한 채로 흐르는 듯한 연기를 할 수 없죠. 연기를 시작하는 그 순간에는 미래도 과거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만 존재하는 겁니다. 딱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지금 아주 크게 성공했죠. 이렇게 성공할 거라 예상했나요?

아니죠, 아니에요. 제 부모님이 모두 배우였기 때문에 저는 일찍 이 업계를 알았어요.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었죠. 두려움, 선택받지 못하는 것, 거절당하는 것, 실패와 성공, 남이 나를 숭배하는 것, 자신감을 갖는 것 등등. 하지만 계속 성장해나가려면 이 모두가 필요해요.

혹시 배우가 된 처음부터 최악의 순간을 예상하기도 했나요?

연기하는 삶의 실체를 못 볼 정도로 콩깍지가 씌워져 있지는 않았어요. 환상에 사로잡히지도 않았고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연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항상 열심히 노력하고, 연기를 평생 경력으로 삼고 싶었어요. 그게 제 성공의 기준이었어요. 제 부모님의 삶에서 그런 면을 봤고, 그렇게 되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보았죠. 끊임없이 일하고, 동료들에게 존중받고 존경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입니다. 물론 일을 잘하려면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해야 해요. 어떤 부분은 내가 통제할 수도 없어요. 삶에서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좀 내려놓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헌신해야 해요. 저는 그래도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 더 있는, 운 좋은 입장에 있었어요. 굉장히 신나고 기분이 좋죠.

그러면 원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얻은 명성과 인기는 자신에게 어떤 건가요?

그게 제 목표는 아니었어요. 명성이나 인기는 독이나 질투에 가까울 수도 있어요. 음, 하지만 제게 명성의 긍정적인 의미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거예요. 저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죠. 제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다른 쪽으로요. 예거 르쿨트르의 홍보대사로서 인터뷰를 하는 이런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서 궁금했던 게 있어요. 당신은 대학에서 고전 연기를 공부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의 크로마키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 아니에요?

아, 좋은 질문이에요. 정말 좋은 질문이군요. 물론 그걸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말하자면 연기와 거울처럼 고전적인 눈속임이죠. 전통 극장에서 연기를 하든, 메소드 연기자든, 촬영 현장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진짜라고 생각해야 해요. 상황이 항상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아요. 메소드 연기자든, 캐릭터에 빠져 들었든, 배우로서 이야기를 풀어내든, 거기에는 최신 촬영팀이 있어요. 거기에 최신 장비에 능통한 다른 프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영국인인 내가 프랑스에서 루이 14세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해도(웃음), 어떤 요구가 있다 해도 어느 정도는 신뢰해야 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걸 찍을 때 마블 유니버스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많이 요구합니다. 하지만 거기 있는 수많은 세트가 얼마나 현실적인 라이브 액션을 만들어내는지 알면 모두 놀랄 거예요. 그 세트들은 대단하고 완벽해요. 360도로 촬영하며 앵글을 잡을 수 있죠.

최신 기술에 긍정적인 건가요? 최신 영화, 최신 기술이 도입된 영화도요?

네. 저는 아날로그 영화만큼이나 하이테크 영화를 좋아해요. 디지털을 필름만큼이나 좋아하고요. LP를 좋아하는 동시에 파일을 보내기도 쉽고 접근성도 좋은 디지털 음악도 좋아해요. 그 둘은 서로 다르지만 좋은 음악이라는 가치로 즐길 수 있어요. 사실 이런 식으로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저는 중간에 낀 세대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책을 읽는 동시에 뉴스 피드를 읽거든요. 저는 SNS도 해요. 세상의 모양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굉장히 영국인처럼 생겼는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요.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가 많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네. 굉장히 흥미로워요. 제 스타일리스트 덕분 아닐까요. 제 머리는 어두운 갈색에 곱슬이에요. 스타일리스트인 푸는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어요. 아니면 제 생각에 제 외모가 아시아인과 이어지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아시아인에게 통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걸 많이 물어봐요. 저는 모릅니다.(웃음) 추측할 뿐이죠. 그분들이 말해주겠죠.

SNS도 하고 이런 인터뷰도 하니까 본인의 영향력을 알 거예요. 유명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하죠. 저는 말하는 걸 항상 조심해요. 기분대로 말하고 싶은 걸 참기도 해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제가 받는 관심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리려고 하죠. 난민일 수도, 뇌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명성을 얻는 건 좋은 일이지만 많은 책임이 따라요. 저는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습니다. 이런 일을 이어갈 생각이에요.

그나저나 그래서 시계도 좋아하나요?

네. 엄청요. 엄청 많이요. 저는 물질적인 뭔가를 한 번도 모아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남자 손목시계에는 항상 관심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요. 어릴 때는 스와치에 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기계식 시계라거나 그 시계의 제조 현장에 가까이 있던 적은 없었어요. 남자의 손목에 채워지는 아름다운 물건인 손목시계에 어떤 장인 정신이나 예술혼이 들어가는지 말입니다. 시계의 제조 공정을 보는 건 정말 행운이에요. 저는 오늘 아침에 예거 르쿨트르의 시계 공장에 다녀왔습니다. 이들이 가장 복잡한 기계적 구성이라고 부르는, 우아한 장인 정신을 봤어요. 기념 시계, 고급스러운 세공, 테일러 메이드 시계를요. 이 기술은 예술이에요. 사랑을 받는 기술이죠.

아주 인상적이었나 봐요.

그럼요. 그걸 작게 만드는 작업도. 아름다운 그림, 이니셜, 사진이 제 엄지손톱보다 작게 줄어들어요. 그 모든 디테일, 존재감, 놀라울 정도로 고급스러워요! 시계 안에 뛰어난 건축물을 짓는 것 같아요. 속을 볼 때도 완전 환상적이죠. 어떤 시계는 조립하는 데 9개월이 걸리고 그 안에서 1400개의 부품이 작동한대요. 놀랍지 않나요? 그게 이름이 뭐였더라….

자이로 투르비용?

맞아요! 그건 정말 그냥 심장 같아요. 기하학적으로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데 스프링 내부는 정적이에요. 완벽하게 정확해 보이고요. 저는 예술적으로 압도당했어요. 이 모든 걸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어요. 럭셔리 브랜드, 하이 브랜드라는 이름을 넘어 진짜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무언가가 있는 브랜드예요, 예거 르쿨트르는. 우리는 그들의 시간을 함께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는 거예요. 한평생을 함께한 직원들도 있어요. 회사와 함께하는 장인이죠. 긴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 그 전문성에 대한 헌신은 정말 대단해요. 그냥 ‘이것 봐! 나는 이 시계 회사에서 일했어’보다는 많은 걸 의미하죠. 이 시계 뒤편에는 마음이 들어 있어요. 참 감명 깊죠.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시계가 이번 SIHH 신제품 폴라리스였다. 폴라리스 라인업 중에서 메모복스를 차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시계가 굉장히 좋다고 했다.

바보 같은 질문인 걸 알지만, 고급 시계 제작과 연기 사이에도 비슷한 점이 있을까요?

처음에 이야기한 건데,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기술과 마음을 적절히 조합해야 하거든요. 그러면서도 세세한 부분과 큰 그림을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하고요. 그 여러 요소를 조합하는 거고, 정확도를 지키면서도 버텨야 해요.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어야 하고, 숨을 쉴 수 있어야 하죠. 완벽해질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제가 연기한 유명한 배역들이 있죠. 셜록 홈스나 앨런 튜링 같은 사람들. 믿을 수 없이 정확하고 기계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건 그들의 실패입니다. 실패를 거쳐 사람이 될 때 정말 영웅이 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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