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승연은 해보고 싶다

맞지 않는 옷을 애써 입을 필요 없다는 것을, 공승연은 일찍 깨달았다.

지난 8월 7일 종영한 <너도 인간이니?>는 작년 12월에 촬영을 끝낸 사전 제작 드라마였어요. 오래된 앨범을 꺼내 보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촬영이 끝났을 때는 아쉽기도 하고 같이 작업한 사람들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쉬움도 그리움도 많이 무뎌졌어요. 그러다 오랜만에 작품을 보면서 그 당시를 다시 회상하게 됐어요.

<너도 인간이니?>에서 연기한 강소봉은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경호원이에요.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역할이었을 거예요.

한여름에 액션 스쿨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올해만큼은 아니었지만 여름은 여름이라 훈련을 받다 보면 너무 더워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한번 다녀오면 그날 하루는 누워 있게 되더라고요.(웃음)

역동적인 취미를 즐기는 편일까요?

원래 보드도 타고 웨이크보드도 탔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서워서 못 타게 됐어요. 나름 활동적인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요즘 들어서 보니 정적인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서예를 좋아하는 거 보면. 그런데 요즘 서예 학원이 드물더라고요. 캘리그래피는 많은데.

서예를 좋아하면 캘리그래피도 좋아할 거 같은데.

사실 저는 먹 냄새가 좋아서.(웃음)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서예를 하시는 걸 보고 자랐던 터라 일찍부터 맡았던 냄새라 그런 거 같아요.

먹을 갈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있죠. 어쩌면 공승연 씨가 인생에서 가장 오래 즐기는 취미이자 특기가 서예일지도 모르겠네요.

특기까지는 아니에요. 붓을 놓은 지 좀 오래돼서. 요즘은 아버지께서 지방 쓰실 때 옆에서 먹 냄새만 맡아요.(웃음)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동생이 둘인데 아버지께서 저희 세 자매를 데리고 자주 놀러 다니셨어요. 최근에는 가족끼리 휴가 계획을 세우려 했는데 키우는 강아지가 아파서 다들 집에 모여 있었죠. 그래서 다 같이 모인 김에 카드 게임을 했는데 식탁에 앉아서 세 시간 넘게 했어요.

화목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게 여러모로 느껴져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상대적으로 혹독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궁금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해서 이미 그 치열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그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언제나 첫 촬영 때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해서 잠도 못 자고 힘들었죠. 

터틀넥 파비아나 필리피.

늘 첫 촬영이 힘든 걸까요?

유독 처음이 힘들어요. <육룡이 나르샤> 촬영할 때 처음으로 느꼈는데 당시에는 신인이었고, 극 중반부에 투입되는 역할인 데다 첫 사극이었기 때문에 제 분량이 없을 때도 현장에 나가서 분위기를 익히고 배우려 했어요. 그래서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첫 촬영에 들어가니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못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느낄 수 있거든요. 저 때문에 재촬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민폐였고 다들 민폐나 끼치는 애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촬영이 끝나면 도망가듯이 집에 갔어요. 

그런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토요일마다 녹화가 있어서 아침마다 모여서 대본 연습을 했는데 막내다 보니 촬영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어요. 그래서 대기실에 혼자 박혀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해서는 배우 생활을 못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기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친분을 쌓다 보니 차차 괜찮아졌어요. 연기도 잘해보려 노력하고. 그 덕분에 마지막에는 나름대로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느끼며 끝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기억 탓인지 언제나 첫 촬영이 힘들어요. 처음 대본 리딩할 때도 비 오듯이 땀을 흘릴 정도로 힘겹다는 느낌이 들고. 

언제나 힘든 첫 촬영 이후로 안정감을 느끼는 시기도 일정하게 올까요?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람들이 눈에 익고, 편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때쯤 괜찮아지는 거 같아요.

혹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게 어려운 걸까요?

그런 거 같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할 때 항상 눈치를 보게 돼요. 물론 다들 그냥 쳐다보고 있던 것일 텐데 괜히 혼자 주눅이 들어서 심각해진 거죠. 그래도 요즘은 감독님이나 주변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의지하며 극복하는 편이에요.

원래 아이돌 그룹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이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야금 대회를 나갔다가 제안을 받았다고요.

가야금 연습을 하다 계단에 앉아서 쉬는데 어떤 분들이 내려오시다가 저를 보더니 보아나 동방신기 아느냐고 묻는 거예요. 사실 잘 몰랐어요. 그런데 옆에서 친구들은 난리가 났죠. 왜 모르냐고.(웃음) 그렇게 제안을 받게 됐고, 엄마에게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았어요. 그리고 옆에 있던 친구랑 같이 노래방 가서 연습하고, 유치원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던 동생 정연이한테 배운 춤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물론 헬스장 에어로빅 수준이었지만.(웃음) 

정연 씨가 트와이스 멤버가 되려고 언니를 통해 선행 학습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실제로 동생이 오디션 볼 때 따라왔어요. 그리고 가수가 꿈인 건 자기인데 왜 언니가 연습생으로 들어가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연기를 하게 된 것도 신기해요. 

2012년부터 배우가 되길 결심하고 연습생 생활을 청산했다고 들었어요.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으려 했던 거 같아요. 노래와 춤에 자신도 없었고, 잘하지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연기를 해보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원숄더 점프슈트 메종 마르지엘라 by 육스닷컴. 귀걸이 페르테.

연습생 시절에 연기도 배웠나요?

네. 물론 당시에는 가수로 데뷔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연기 수업을 지속적으로 받은 건 아니었지만. 연습생 생활이 길어지고, 열아홉 살이 되도록 데뷔를 못 해서 회사에 학교를 가겠다고 한 뒤 입시 준비를 해서 학교에 갔고, 그다음에 데뷔했죠.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반에는 그냥 이 바닥에 남으려고 연기를 선택한 거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는 정말 하고 싶더라고요. 첫 드라마인 <아이러브 이태리> 현장에서 주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가만히 서서 보고 있었는데 계속 거기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 행복할 거 같았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역할에 대사 한 줄 없었을 때인데.

2012년에 데뷔했으니 연기를 시작한 지 이제 7년 정도 됐네요.

사실 7년 차 배우의 내공이 있나 싶어요. 아직도 신인 같은데. 그만큼 연차가 쌓이는 것도, 나이가 드는 것도 부담되고요.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스터-국수의 신>에 출연한 뒤 연기에 대해 조금 깨닫게 된 거 같다고 했어요. 그 작품에서 연기한 김다해는 전작들에 비해 내밀한 감정이 요구되는 인물이었죠.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작품이기도 해서 좀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됐어요. 카메라 앵글이나 촬영 방식의 기술적인 부분도 좀 깨닫게 되고, 배우로서 심화 과정을 밟은 거 같았죠.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는 신도 많았는데 촬영이 끝나면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깊게 박혔어요. 선배님들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연기했거든요. 그만큼 버거웠나 봐요.(웃음)

<너도 인간이니?>의 강소봉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시원시원하게 다 말하잖아요. 공승연 씨는 왠지 삭히는 편인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말하고 싶어요.(웃음) 사실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들은 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었어요. 다들 할 말 잘하는 사람들이라. 

재킷, 팬츠, 신발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귀걸이 르비에르.

어쩌다 보니 닮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셈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캐릭터와 비슷하게 살아보려 해도 실제로는 속에 있는 말을 다 하기 어려워요. 요즘에는 그냥 이게 나라고 인정하게 됐어요. 

강소봉은 처음에는 돈이 된다면 뭐든 다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되면서 많은 면에서 변화하는 인물이에요. 지금껏 살아가면서 공승연 씨에게 어떤 변화를 준 경험은 없었을까요?

아직 특별히 삶을 변화시킨 건 없는 거 같은데, 어쩌면 연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목소리도 작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부끄러워서 발표도 못하는 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저를 보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이렇게 관계를 맺고 사는 게 신기해요. 어쩌면 이게 다 연기를 한 덕분인가 싶고.

본명은 유승연인데 배우로 활동하면서 공승연이란 가명을 쓰게 됐다고 들었어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소속사 관계자들이 축구를 보다가 성을 ‘공’으로 하자고 해서 공승연이 됐다고 하던데, 이게 정말인가요?

사실 포털 사이트에서 유승연이라고 검색하면 동명이인이 너무 많았어요. 당시에는 신인이었으니까 제 이름을 검색하면 저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름은 두고 성만 건드리자 했는데 매니저 오빠가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우스갯소리로 ‘공’은 어떠냐는 거예요. 장난이라 생각했는데 공승연을 검색해보니 정말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어감도 나쁘지 않았고요. 물론 처음에는 너무 장난스러워서 좀 그랬죠.

대단한 의미를 동원해야 할 거 같지만 의외로 굉장히 사소한 결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는 일들이 있죠. 어쩌면 지금 배우로 살아가는 것도 사소한 선택의 결과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가끔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붙여서 말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저는 자연스럽게 배우가 된 거라 왜 배우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뭔가 특별한 의미를 지어서라도 말해야 할 거 같더라고요. 사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배우가 된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배우라는 직업이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일이라는 생각은 드나요?

어려운 일 같아요. 하지만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 확신은 없어요. 평생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서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그래도 지금은 할 수 있는 한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사실 <너도 인간이니?> 초반부에서 캐릭터에 대한 논란이 있었잖아요. 

사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1, 2회에서 제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 나와서 ‘내 연기가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도 다 그렇게 느낀 거죠. 제 연기에 대한 평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촬영할 때 좀 갈팡질팡했다고 느꼈는데 그게 드러난 거 같아서 큰일이다 싶었죠. 주변에서도 제 걱정을 해주셨는데 한동안 포털 사이트 앱도 다 지웠어요. 아예 보지 말자 싶어서. 그래도 이젠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요. 다 떠나서, 제가 더 잘해야죠.

그래도 부정적인 생각을 오래 붙잡고 사는 편은 아닌가 봐요.

맞아요. 잘 까먹거든요.(웃음)

터틀넥 파비아나 필리피.

<풍문으로 들었소> 오디션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할까 봐 편지를 써서 제작진에게 전달했다고 들었어요.

편지라기보다는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생각을 쓴 거였어요. 공개 오디션장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이 와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미리 준비해서 전달한 거죠. 그 뒤로 오디션장에 항상 뭔가를 써 가요. 

그렇게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오디션에서 많이 떨어지니까 오디션장에 가면 주눅부터 들더라고요. 항상 오디션이 끝나면 아쉬웠어요. 더 보여줄 수 있는데 다 못 한 거 같아서. 그래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어요. 최소한 제 마음에라도 위안을 주자는 생각으로 준비한 걸 다 보여주지 못했다 싶으면 그걸 드리고 나오는 거죠.

정말 마음이 편해지던가요?

최소한 후회하진 않게 됐어요. 결국 그런 아쉬움을 털어내고자 쓰게 된 거 같아요.

한때 배우의 길을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승무원 준비를 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연습생 생활을 접었을 때 부모님께서 당황하셨어요. 우리 딸 어쩌려고 저러나 싶으셨나 봐요. 저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웃음) 그래서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토익이랑 HSK 준비를 했는데 이걸 살리려면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승무원을 떠올렸던 거죠. 사실 저는 별걱정이 없었는데 부모님께서 워낙 걱정을 하시니까.

연습생 시절에는 데뷔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나요?

있었죠. 그래서 선망으로 버텼어요. 데뷔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버텼던 거죠.

그게 내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을 때는 좀 후련했나요, 아니면 절망적이었나요?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이 데뷔해서 TV에 나오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젠 제가 조금이나마 나아져서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겠죠. 당시 같이 연습하며 친해진 레드벨벳의 슬기와 종종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내가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한 환상만 갖고 살았다면 너랑 이렇게 만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널 편하게 볼 수 있는 입장이 돼서 다행이라고. 

그동안 연기해온 캐릭터들에게는 크건 작건 어두운 면모가 있었던 거 같아요. 오늘 대화를 나눠보니 공승연 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들보다는 밝고 유쾌한 사람 같아요. 본인과 닮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밝고 유쾌한 캐릭터가 더 연기하기 힘든 거 같아요. 이번에 <너도 인간이니?>의 강소봉도 거침없고 좋았지만 힘든 부분이 많아서 여전히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의 밝은 부분을 연기할 때 힘들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숙제 같아요.

지난 작품에서의 연기나 과거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듣는 건 어떤가요? 불편하진 않나요?

오늘 얘기 나누면서 예전에 했던 작품과 했던 말을 되새겨보니 그래도 예전보다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안일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감회가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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